[59화]
“아, 눈이다.”
하늘을 올려다본 이나연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희고 가는 손 위로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올려다본 하늘은 잿빛이었으며, 함박눈을 쏟아 내고 있었다.
어린아이와 연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첫눈이지만 그리 반갑다 여겨지지는 않았다.
예비군 0년 차인 데다 연인조차 없는 시현이 보기에는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추워지겠네. 가능하다면 돌아가는 길에 두꺼운 옷이라도 몇 개 챙겨 가는 게 좋겠어.”
“오, 그거 좋네요.”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부터 해야지.”
“그렇겠죠?”
이나연은 한숨을 내쉬며 쭈그리고 앉았다.
그런 이나연의 정면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이재현의 시신이 있었다.
이번에 이나연이 개화한 특성 천살성은 죽음과 굉장히 연이 깊은 특성이다.
상대를 어떻게 하면 쉽게 죽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괴롭게 죽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상이 겪게 될 죽음의 전후를 엿보는 것이다.
하수인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심장은 멎고 인간으로서의 죽음이 결정된다.
따라서 죽음의 전후를 보는 이나연의 특성을 이용하면 이재현이 무엇을 계기로 하수인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문제는 이제 막 개화시킨 특성을 다루기에 이나연의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다.
“제가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나연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시스템의 보조가 있고, 육성으로 명령을 입력하기만 하면 되는 권능과는 다르다.
엄연히 자신의 힘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 또한 스스로 깨우쳐야만 했다.
원작에도 정보는 없었다.
Re write는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주인공도 아니고 악역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사용했다’로 묘사되지, 사용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묘사하지는 않는다.
“힌트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노력해 봐. 그래도 무리하지는 마. 정 안 되면 내가 권능을 사용하면 되니까.”
미리 모방해 둔 유령 군대를 사용하면 이재현의 영혼을 유령으로 뽑아 낼 수 있다.
그래 봤자 ‘키히히히!’ 같은 웃음소리밖에 내지 못하지만 네, 아니오 등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으로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수로 남겨 두고 싶었다.
이재현을 유령으로 만드는 것은 그를 향한 모독이자 배신이다.
가능하다면 그쪽으로는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이나연의 머리 위에 눈이 쌓이기 시작할 무렵, 불청객이 찾아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머리 위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반쯤 붕괴한 건물의 옥상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날도마뱀이 보였다.
그 크기는 작게 잡아도 2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런 놈이 활공을 위해 날개를 펼치자 덩치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날도마뱀은 이나연을 목표로 삼았다.
건장한 체구의 성인 남성보다는 여성, 그보다는 아이를 노리는 건 포식자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주제도 모르고…….”
살벌하기 짝이 없는 음성을 토하는 이나연으로부터 유형화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고작 소형 악마가 버틸 만한 살기가 아니었다.
날도마뱀은 당황해 달아나려 했으나 이미 이나연의 사정거리 내에 진입한 후였다.
푹!
내지른 흑도는 정확하게 날도마뱀의 심장을 뚫었다.
인간과 달리 날도마뱀의 심장은 목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날도마뱀과의 첫 조우에서 급소를 오인한 구원자가 역으로 사망하는 건 자주 있는 사고다.
그러나 이나연은 날도마뱀을 상대하는 게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심장의 위치를 간파했다.
어떻게 해야 날도마뱀이 죽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날도마뱀을 죽인 후에도 이나연의 주변에서 넘실거리는 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래서 나연이의 특성은 개화시키지 않으려 했는데…….’
원하지 않는 결과였기에 입 안이 썼다.
살기등등한 이나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섬뜩하던 살기는 눈 녹듯 사라지고 꽃이 만개한 것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어때요? 오빠! 저 조금 세진 거 같지 않아요?”
마치 두 개의 인격이 하나의 몸에 공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의 이나연은 원작의 이나연처럼 자신의 특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휘둘리지 않으니까.
그녀의 정신이 건강한 상태로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게. 좀비를 상대로도 전전긍긍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소형은 상대도 안 되는구나.”
“훌륭한 스승 덕분이죠. 그보다 오빠.”
“왜?”
“저 알았어요.”
“뭘?”
“재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벤치에 앉아 있던 시현은 엄청난 기세로 몸을 일으켰다.
손으로 내리누른 벤치의 팔걸이가 구원자의 힘을 견디지 못해 망가졌을 정도다.
그만큼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한달음에 달려간 시현이 이나연의 양쪽 어깨를 붙들었다.
“이유가 뭐야?”
“동그랗게 생긴 약이요. 크기는 엄지 정도?”
“…….”
약이라 하니, 자연히 떠오르는 게 있었다.
교단에 잠입하기 직전에 권수학은 일행에게 청심환이라며 약을 나눠 줬다.
그 약을 시현과 민서라는 먹지 않았고, 이재현은 먹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것 외에는 수상한 게 없었는데.
어째서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동시에 감정이 부풀었다.
“권수학……!”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한울 이후로 처음이었다.
* * *
“그러면 저는 이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만약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신호를 주세요.”
학교의 주변에 도착하자 이나연은 잠깐의 작별을 고했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지만 이나연은 학교의 생존자들을 위협했다.
아무리 이나연이 학교를 위해 어느 정도 공을 세웠다지만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은철은 이나연을 학교에서 추방했다.
학교의 리더로서 당연한 권리의 행사였다.
이은철이 학교의 리더로 남아 있는 한 그녀는 두 번 다시 학교에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동안 얌전히 있어. 괜히 경험치 벌겠다고 위험한 데 싸돌아다니지 말고.”
“네에.”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해도 그저 좋다고 웃는 이나연을 두고 가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현은 빠르게 감정을 추슬렀다.
그녀를 보낸 시현은 학교로 되돌아갔다.
여전히 이재현을 연기하고 있는 그를 방해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음?”
학교 내부가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특정 교실의 앞에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마침 인파 속에 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실 안을 훔쳐보려 하는 신호석이 보였다.
“신호석, 여기서 뭐 해?”
“어? 재현아! 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그는 벌컥 화를 냈다.
“잠시 밖에. 왜 그러는데?”
“지희 상태가 말이 아닌데. 한가롭게 밖에 나갔다 왔다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아아…….”
찔리는 구석이 있던 시현은 시선을 회피했다.
그는 최지희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
진실을 알게 된 최지희의 표정은 아마 평생 가도 기억에 남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범인을 찾아 복수해 주겠다는 약속을 대가로 비밀을 약속받을 수 있었지만 최지희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재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신이 곁에 있으면 더 괴로워할 것 같아 최지희의 케어는 민서라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신호석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리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냥 그럴 일이 있었어.”
“둘이 싸우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라면 빨리 화해해라. 지희 만큼 네 생각 해 주는 애가 어디 있다고.”
“그보다 이거 다 무슨 일이야? 왜 다들 여기에 모여 있는 건데?”
시현은 부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이재현과 최지희가 크게 싸웠다고 성대하게 착각하고 있는 신호석은 속아 주겠다는 태도로 시현의 물음에 답했다.
“권수학, 지난 작전에서 시현이 형님이랑 같이 죽었다고 했잖아. 그놈이 살아 돌아왔어.”
“…….”
“……너 수학이 싫어하던 거 아니었냐? 뭘 그렇게 웃고 그러냐. 무섭다야.”
그제야 시현은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전에 실패했으므로 불필요해진 권수학은 토사구팽 당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뒤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으나 권수학은 살아 돌아왔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적어도 이재현의 복수를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온 미소였으나, 신호석은 다른 방향으로 해석했다.
“하긴, 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동급생인데. 무사 생환했다니 다행이기는 하네. 형님도 살아 계셨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그보다 권수학이랑 잠깐 이야기를 해야겠어.”
“지금은 불가능해. 선생님이랑 대화하고 있거든.”
“……그래?”
시현의 시선이 자연히 교실로 향했다.
저 안에 권수학이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시현은 권수학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금쯤 안에서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릴 거 같네. 나는 먼저 간다.”
신호석이 먼저 자리를 떠나고, 뒤를 이어 모여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흥미를 잃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현은 끝까지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무려 세 시간이나 인내한 끝에 교실 문을 열고 나오는 두 사람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학교의 리더인 이은철과 권수학.
두 사람은 어째서인지 시현을 보고 죄지은 사람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권수학.”
시현이 나지막이 그 이름을 불렀다.
권수학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는 일행을 배신하고 그들을 교단에 팔아넘겼으니까.
분명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의 심정일 것이다.
그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양심이란 놈이 남아 있다면 말이다.
권수학의 목을 따 버리는 건 굉장히 간단한 일이다.
손을 뻗어서 잡아 비틀기만 하면 그의 목은 몸과 분리되어 차디찬 복도를 나뒹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가서 그를 살며시 안아 주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영락없이 죽은 줄 알았어.”
“어? 어어?”
당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그럴 수밖에. 이건 죄를 용서하는 수준의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의 반응이었을 테니까.
고민하던 권수학의 표정이 서서히 피어났다.
권수학은 생각했다.
‘설마 내가 배신했다는 걸 모르는 건가? 그래, 소식을 전달하기도 전에 윤시현이 살해당한 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시현은 본능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반가움, 감동, 생존에 대한 기쁨 등으로 포장했다.
그날 그렇게 달아나 버린 권수학이 학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적다.
덕분에 시현의 기만 작전은 수월하게 먹혀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재현에게 약을 먹인 것은 권수학이다. 그렇다면 권수학은 어디서 그 약을 얻었단 말인가.
단순한 등장인물이자 학생에 불과한 그가 원작에도 등장하지 않은, 구원자를 하수인으로 만드는 약을 자체적으로 개발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틀림없이 배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현은 권수학의 배후로 의심되는 인물을 꼽았다.
왕근식.
연구를 위해 하수인을 감금하고 있으며 그가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옥상에는 학교의 리더인 이은철조차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권수학을 조수로 두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남은 건 그가 권수학의 배후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만 찾으면 되는 일이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보기 좋구나.”
그런 시현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이은철은 언제나 그랬듯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
날이 밝았다.
“으아아……. 뭐가 이렇게 추워.”
“주, 죽을 거 같아. 우리도 난로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에취! 푸에엣취!”
하나둘 잠에서 깬 남학생들이 요란 법석을 떨어 댔다.
몸을 웅크리고 있거나 이불을 둘둘 말고 있거나, 심지어는 강풍을 견뎌 내는 남극의 펭귄처럼 저희들끼리 뭉쳐 몸을 비비대기까지 한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참극이었다.
“흐아아……. 입김 나온다. 그런데 재현이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추워 죽을 거 같은데 참는 거야.”
시현이 입고 있는 옷은 늘 쾌적한 온도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그 옷은 윤시현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걸치고 다니다가는 어떤 의심을 사게 될지 모른다.
간만에 온몸으로 추위를 느끼며, 시현은 창으로 다가갔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인해 세상은 순백으로 물들어 있었다.
“예쁘네.”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시현이 스마트폰을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교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이닥쳤다.
“재현아!”
민서라였다.
“으아아아악!”
“변태다! 누나는 변태였다!”
한창 옷을 갈아입고 있던 남학생들이 기겁하며 난동을 부렸다. 그래 봤자 이어지는 민서라의 한마디에 침묵했지만.
“뭐래, 볼 것도 없는 것들이!”
“…….”
한창 자라나는 소년들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은 그녀는 시현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최지희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주변을 살피던 민서라가 시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강소하가 시현 씨에게 꼭 좀 전해 달라고 해서요.”
“강소하가요?”
게으름의 화신과도 같은 그 인간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보고라니, 좋지 않은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별로 듣고 싶지 않네요.”
“그러면 말하지 말까요?”
“아니요. 말씀해 주세요.”
“꼬맹이가 사라졌다. 그렇게 전해 드리면 알 거라던데요?”
“……망할.”
어떻게 하면 권수학의 배후를 캐내고 최고의 복수를 해낼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해도 하루가 부족한 마당에 새로운 사건이라니, 머리가 아팠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