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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56화 (56/225)

[56화]

문호영.

그는 참가자다.

함정 설치에 특화된 권능을 가진 그는 거점 수비에 유용하다는 이유로 이한울에게 스카우트되었다.

대가로 이한울이 내걸었던 건 단 하나.

그를 Re write의 우승 조건인 TOP 10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1등보다는 승리에 목표를 두고 있던 문호영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 선택을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었다.

이한울은 머리가 굉장히 좋은 남자였다.

사람의 감정적인 면을 잘 헤아리지 못해 가끔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는 최고의 결과를 내놓았다.

오늘 작전도 이한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때문에 그는 ‘독 안에 든 쥐’라 명명된 이번 작전이 실패할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제 역할을 모두 마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식량 창고의 문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기요. 님들? 여기서 뭐 하세요?”

식량 창고의 구석에 세 명의 남녀가 옹기종기 모여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그들은 범행 현장을 들킨 범죄자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잇, 깜짝이야. 호영 아저씨, 왜 여기에 있어요?”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기가 차다는 얼굴을 한 문호영이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천 번째 별 지현아.

야수의 군주 나설주.

칼의 군주 박화영.

권왕 남지후와 함께 작전에 동원되었어야 할 교단의 최고 무력들이 어째서 작전은 내팽개치고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그게 말이죠.”

긴 머리를 묶어 올린 10대 중반의 소녀 지현아가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애교 있게 웃었다.

그러더니 굉장히 난감하다는 듯 구석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그곳에 문호영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20대 후반의 여성이 있었다.

참가자 천소해.

문호영과 같은 조건으로 영입되었으나 이한울을 진심으로 따르는 문호영과 달리, 언제나 권력의 전복을 노리는 야망가다.

그리고 꽤나 자주 이한울의 지시를 무시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인간을 아직까지 협력자로 두고 있는 건지 문호영으로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도 땡땡이에요?”

“아니죠. 저는 무려 12시간에 걸쳐 제 할 일을 다 마치고 정당하게 휴식을 취하는 겁니다. 그쪽과는 달리.”

문호영이 분노를 담아 천소해를 노려봤다.

농땡이의 현장을 포착했음에도 천소해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로 나왔다.

“어차피 침입자들은 천뢰의 진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을 건데. 굳이 2레벨 구원자를 일곱 명이나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건 돼지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는 격이라고요.”

“리더의 지시잖아요!”

“하지만 이한울은 너~무 신중하단 말이죠. 구원자 한 사람만 투입해도 해결될 일에 신중을 기한답시고 세 명, 네 명씩 투입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든 게 한두 번이어야죠.”

“그건 그렇지만…….”

문호영은 교단의 리더인 이한울을 꽤나 좋게 보고 있었다.

조금 오버하자면 존경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이한울은 그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 주었으니까.

그러나 천소해가 하는 말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이한울은 늘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다. 마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늘 여기 모인 구원자들이었다.

구원자들은 필요 이상의 노동을 요구받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가벼이 넘길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쥐덫에 걸린 쥐새끼 둘을 발견해서 처리 중이라는 보고도 받았고, 나머지 하나도 발견했다고 하니. 나머지는 남지후가 알아서 잘 끝내지 않겠어요? 그 이설아의 후방 지원도 있을 텐데,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하지 못할걸요?”

천소해가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이번 작전에 과도한 전력이 투입된 것은 사실이다.

천뢰의 진으로 무력화된 적을 처치하는 건 남지후와 이설아, 두 사람만 나서도 충분할 테니까.

그런데 왜일까, 불안한 마음이 당최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대체로 문호영의 느낌은 잘 맞아떨어졌다.

* * *

상황이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어쩌면 상정하고 있던 가능성이 더 이상 바닥이 없을 만큼 최악이었기에 상대적으로 괜찮다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전투원만 해도 수십에 달하지만, 솔직히 말해 전투원은 아무리 많아 봤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머릿수를 모아 봤자 시간 끌기밖에 안 되니까.

문제가 되는 건 남지후를 포함한 구원자들이다.

‘당장 보이는 건 남지후뿐이지만……. 저게 끝일 리가 없겠지.’

당장 약탈자들만 해도 열에 가까운 구원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교단 역시 그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의 구원자를 보유하고 있을 터.

그들 역시 무전을 받았으니 곧 이쪽으로 모여들 것이다.

‘그 전에 두 사람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는데.’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걸까, 시현이 빠져나온 병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와장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절로 병실 입구로 집중되었다.

“신호를 주라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하라고는 안 했는데.”

“쳇, 기껏 준비한 천뢰의 진이 쓸모없어졌군.”

혀를 찬 남지후가 무전기를 들었다.

이곳에 없는 다른 구원자들에게 추격을 명하기 위해서다.

“여기 남지후다. 목표물 중 일부가 창을 통해 달아나려 하고 있으니…….”

콰직!

“……쫓아라.”

말을 마친 남지후는 짜증 섞인 한숨을 토했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문장을 내뱉기 직전에 시현이 던진 단검이 무전기를 부숴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린 무전기를 바닥에 내팽개친 남지후가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 망할 새끼, 이거 구하기도 힘든 물건이라고. 너도 알 거 아니야.”

“그래? 미안하게 됐네. 내가 가진 게 없어서 다른 보상은 어려울 거 같고. 대신 많이 놀아 줄게.”

시현은 웃었다.

하수인이 된 이서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현은 세 사람과의 만남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신혈을 이용해 머리지네를 소환하고 이서윤을 구하러 가던 자신을 방해한 이한울.

죽기 일보 직전의 이한울을 권능 한 번으로 되살려 버린 이설아.

두 사람의 편에 서서 자신을 방해한 남지후.

이 세 명의 원수에게 처절한 피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오늘은 교단의 정보만 가지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았을 때도 시현의 머릿속에는 민서라, 이재현과 함께 무사히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남지후의 얼굴을 본 순간, 그런 자잘한 것들은 머릿속에서 싹 날아가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하나.

남지후의 머리를 잘라 자신을 잘 따르던 작은 아이의 무덤 앞에 조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적색의 칼날이 바닥에 작은 상처를 만들었다.

남지후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놀아 준다고? 건방진 놈이 주제도 모르고……. 다들 뒤로 물러나! 저놈은 나 혼자 상대한다.”

“가능하겠어? 수준 차이가 좀 있을 텐데.”

“어차피 구원자가 아니라면 헛된 희생일 뿐이니까. 그리고 듣자 하니 너 2레벨이라며?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은 2레벨 구원자 사이에서도 격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려 주마.”

전투의 시작을 끊은 것은 남지후였다.

다혈질에 오만한 성품의 남지후는 간단한 도발에도 쉽게 걸려들었다.

마치 한 마리의 난폭한 투우처럼 자세를 낮추고 달려드는 거구의 남자를 보며 시현은 조소했다.

‘단순하긴.’

원작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남지후는 단순한 인간이었다.

강하기는 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품격이란 게 없는 구원자다.

그렇기에 대처 방법만 알면 은근히 손쉬운 상대였다.

“뒈져!”

남지후는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제 힘만 믿고 달려는 일자무식의 공격.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까지 악마와의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은 시현에게 통할 만한 공격은 아니었다.

슬쩍 옆으로 회피한 시현은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남지후가 시현의 다리에 걸려 추하게 넘어졌다.

“크억!”

허술하게 뒤통수를 내놓고 있는 남지후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훗날에는 권왕으로 불리게 될 남자이지만 지금의 그는 경험이 부족하다. 아직 병아리는 고사하고 부화조차 하지 못한 계란 같은 상태다.

‘그러니까 지금 죽여 놔야 해.’

타임 리미트는 다른 구원자의 지원이 올 때까지다. 그러니 봐줄 생각은 없었다.

살살 꼬드겨서 영입해 보겠다는 생각 또한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그의 두 눈동자에 지독한 살심이 피어났다.

크게 궤적을 그린 핏빛 칼날이 남지후의 뒷목을 긁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대량의 외피가 찢겨 나갔다.

강한 충격에 남지후는 몇 번이고 바닥을 굴렀다.

“이 개자식이!”

얼굴을 붉힌 채 일어선 남지후가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달리 그의 배후에 푸른 날개가 돋아 있었다.

“권능인가.”

“속도 하나 만큼은 인정해 주마. 그래도 조금 전과는 다를 거다!”

날개가 펄럭이며 작은 깃털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리고 남지후는 경이로운 속도로 접근해 왔다.

권능을 사용하기 전과 비교하면 족히 두 배는 빨라진 듯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갑작스럽게 빨라진 남지후의 속도에 대처하지 못하고 크게 한 방을 허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현은 제대로 반응했다.

이번에도 남지후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피했다고?”

“너 이한울한테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구나? 다음에는 잘 좀 가르쳐 달라고……. 아니, 어차피 다음은 없겠구나.”

경악하는 남지후의 머리 위로 흑색의 기류를 휘감은 칼날이 떨어졌다.

와장창!

권능이 담긴 일격에 남아 있던 남지후의 외피가 완전히 박살났다.

“이런 미친! 고작 두 번에 외피가 찢겼다고?!”

외피가 찢어진 상태에서 더 이상의 교전은 위험하다.

그는 시현과 거리를 벌였다.

“저놈을 막아!”

구원자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전투원들은 살벌한 외침에 다급히 참전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달려들던 그들은 제대로 무기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한 채 제압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혼자 상대하겠다더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도망가면 쓰나.”

“이 새끼가……!”

실력에 비해 과도한 자존심을 가진 남지후에게 싸구려 도발은 제법 잘 먹혀들었다.

도망가던 것을 멈춘 남지후가 이를 갈며 주먹을 내질렀다.

권능이 담겨 무시무시하게 빠른 공격을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검을 세워 막았다.

콰앙!

검과 주먹이 부딪쳤다고는 믿기 힘든 소리가 났다.

“멍청한 놈, 나와 힘 싸움을 하려 들어? 실수했구나.”

힘과 힘의 격돌.

이쪽 분야에는 자신이 있었는지 험악하던 남지후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는 2레벨 구원자이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쉬지 않는 근력 운동으로 자신의 근육을 한계까지 단련시켰다.

같은 2레벨끼리의 힘 싸움이라면 단연 남지후가 앞설 수밖에 없다.

같은 2레벨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두 개의 권능을 가진 시현은 보통의 2레벨이 아니다.

“멍청한 건 너지. 네 외피가 겨우 두 번의 공격으로 찢어진 걸 보고도 느낀 게 없냐?”

“…….”

그제야 남지후는 머리에 열이 올라 잠시 망각하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속도만이 장점이라 생각했던 시현의 공격력은 자신보다 월등하게 위였다.

강한 충격과 함께 힘겨루기를 하던 주먹이 뒤로 크게 젖혀졌다.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가 된 남지후의 가슴으로 적색의 칼날이 쏟아졌다.

“이익!”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판단한 남지후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휘둘렀다.

기적을 노리고 행한 최후의 발버둥이었다.

촤악!

핏빛 칼날은 남지후의 어깨부터 시작해 대각선으로 긋고 내려오며 그의 장기들을 모조리 끊어 버렸다.

붉은 피와 함께 내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처형의 권능은 쏟아진 내장을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시켰다.

남지후의 눈동자에서 빛이 빠르게 사라졌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 역행!”

하지만 구원은 있었다.

남지후의 신체에 빛이 스며들며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쏟아진 내장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고, 부러진 뼈가 다시 붙고 갈라진 근육과 피부가 들러붙었다.

회복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처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남지후의 눈동자에도 빛이 돌아왔다.

“……쳇.”

원하는 바를 이뤄 내지 못한 시현은 작게 혀를 찼다.

날카로운 시선이 향한 곳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설아가 있었다.

이한울의 여동생이자 시간을 다루는 권능을 사용하는 구원자이자 참가자였다.

시현의 입장에서 그녀는 굉장히 까다로운 훼방꾼이다.

그와 반대로 남지후 입장에서 그녀는 광명이었다.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어.”

“조금만 버텨 주세요. 지현아, 나설주, 천소해. 무전 꺼 두고 구석에 짱박혀서 게으름 부리고 있는 사람들 전부 불러 모았으니까요. 길어야 5분이에요.”

“그거 좋네.”

주먹을 말아 쥔 남지후가 재차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시현의 시선은 남지후가 아닌 이설아에게 향해 있었다.

‘역시 귀찮은 권능이야. 정석대로라면 남지후를 잡기 위해서는 이설아를 먼저 잡아야 하는데…….’

이설아의 옆에는 두 명의 구원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이설아의 호위로 보이는 그들은 전투에 참여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시현이 이설아를 공격하려 든다면 그들은 이설아를 지키기 위해 주저 없이 무기를 뽑을 것이다.

남지후 하나라면 모를까, 구원자 둘이 더해진다면 아무리 시현이라도 벅찬 감이 있었다.

더군다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구원자들도 있다.

‘어째서 임진아의 Re write에 기록되어 있던 구원자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고민하던 시현은 결단을 내렸다.

“1분.”

“뭐?”

“1분 안에 이설아의 정신력을 바닥나게 해 주마.”

“……!”

시현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남지후는 경악했다.

그러나 알아차렸다 해서 무언가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다.

이를 악물고 공격을 시도했으나 그의 주먹은 여전히 시현에게 닿지 않았다.

코앞에 있는 시현과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반면, 시현의 검은 한없이 가까웠다.

촤악!

붉은 피가 튀었다.

오른팔과 다리에서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손과 발에 감각은 없었다.

“시간 역행!”

따스한 빛이 남지후를 포근하게 감쌌다.

잃어버렸던 손과 발의 감각이 돌아왔다.

‘버티자. 이 인간의 능력이 괴물 같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돼! 다른 대장들이 오기만 하면……!’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온 남지후는 방법을 바꿨다.

공격을 완전히 포기하고 수비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시현은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수비를 위해 들어 올린 두 팔을 잘라 버렸다.

권능을 잔뜩 담아 어지간한 금속보다 단단해진 팔이 종잇장처럼 잘려 나갔다.

“시간 역행!”

잘려 나갔던 두 팔이 되돌아왔다.

“젠장! 무기를 내놔!”

결국 남지후는 권사로서의 자존심까지 포기하고 옆에 있던 전투원의 검과 방패를 빼앗았다.

시현은 무심하게 검을 내질렀고, 남지후는 방패로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피를 한계까지 머금은 핏빛 칼날은 금속 방패도 두부 가르듯 손쉽게 갈라 버렸다. 그 너머에 있던 남지후까지.

“시간……. 역행!”

다시 한번 남지후의 시간이 되돌아갔다.

불과 5초도 버티지 못하고 남지후의 숨이 끊어졌다.

“시, 시간……. 역행…….”

남지후는 살아난다. 그리고 죽는다.

“시간……. 허억, 헉. 시간 역행!”

다시 한번 죽음을 거스르고, 또다시 죽는다.

그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시간……. 우웩!”

버티지 못한 이설아가 쓰러지며 토악질을 했다.

정신력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그녀는 물에 빠졌다 가까스로 건져진 사람처럼 힘겹게 호흡하며 손을 뻗었다.

지독한 두통으로 인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역행…….”

가까스로 권능을 완성한 그녀는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한계까지 정신력을 쥐어짠 대가였다.

그녀는 괴로움에 떨면서도 남지후를 걱정했다.

그런 이설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딱 봐도 억지로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게 느껴져 안쓰럽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시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드디어 한계인 모양이네. 그러고 보니 시간 역행으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최대 6시간이었나?”

세상에 완전무결한 권능은 없다.

아무리 사기성 짙다 평가받는 권능이라도 엄연히 단점과 한계는 존재한다.

이설아가 사용하는 시간 역행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의 권능은 죽음마저 거스를 수 있지만, 그 한계는 여섯 시간이었다.

“과연 그 안에 정신력을 회복하고 깨어날 수 있을까?”

“…….”

이설아의 두 눈에 절망이 피어났다.

지독한 희열이 느껴졌다.

저런 얼굴이 보고 싶었다.

분명 이서윤이 죽었을 때, 자신 역시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이설아는 정신을 잃었다.

두 명의 호위는 남지후를 곁눈질하더니 이설아를 부축해 달아나 버렸다.

남지후도 남지후지만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리더인 이한울의 여동생이자 시간 역행을 통해 죽음마저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설아일 테니까.

시현은 되살아난 남지후에게 시선을 줬다.

최악의 상황.

정말 악랄한 인간이었다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전투원들의 등을 떠밀어서라도 자신이 살고자 했을 것이다.

실제 약탈자들의 리더 임진아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남지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서로 뜻이 맞아 이한울의 편에 서고 있을 뿐, 남지후는 근본적으로 글러 먹은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유언은?”

“지옥에서 기다리마!”

“하긴, 혼자서 가기엔 외로운 길이기는 하지. 길목에서 조금만 기다려. 조만간 네 친구들도 보내 줄 테니까.”

저 복도 끝에서 몇 명의 남녀가 달려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뿌려 대는 게 최소 2레벨 구원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수가 무려 넷이나 된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시현은 검을 휘둘렀다. 바닥에 떨어진 남지후의 머리가 시현의 발치에 굴러왔다.

더 이상 그가 죽음을 거스르는 일은 없었다.

―남지후 컷! 이한울 구독자 놈들 꼴좋다!

―정찰이라며. 정찰하러 간 거라며! 그런데 왜 지후를 죽이냐, 이 나쁜 놈아!

―윤시현은 정훈이랑 똑같은 능력을 가졌는데 하는 짓은 천차만별이네.

―그보다 이제 어쩔 거임? 그거 먹었잖아, 그거!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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