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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53화 (53/225)

[53화]

어두운 방.

권수학은 떨고 있었다.

물어뜯어 흉하게 된 손톱이 그가 느끼는 불안을 대변하고 있었다.

쓴웃음을 지은 이은철은 그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손길이 닿자 흠칫 놀라던 권수학은 이내 이은철에게 매달렸다.

“선생님, 너무 불안해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약하다. 툭 치면 부서져 버릴 만큼.

이런 남자가 어떻게 저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위기에 빠뜨렸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아니, 어쩌면 약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용기를 내렴.”

“하지만 선생님, 저는…….”

“나는 널 믿고 있단다.”

“…….”

이은철은 아직도 떨리는 권수학의 신체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권수학의 손에 그것을 건넸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란다.”

* * *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이한울이 어느 정도 규모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두지 않는다면 복수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 피일차일 미루기만 했던 레벨 서포터에 대해 알아볼 기회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도 최후의 결전 직전에 등장했으며, 그마저도 시간이 모자라 미완성으로 남은 레벨 서포터.

그걸 어떻게 이한울이 소지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레벨 서포터가 완성된다면 이한울의 목을 치는 일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될 테니까.

초반에도 그렇지만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1레벨의 벽은 높아진다.

“출발은 언제쯤 하실 예정입니까?”

“사실은 상황을 지켜보다 모레쯤 출발하려 했는데. 시현 씨가 이렇게 의욕을 내니까 보기 좋네요.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출발할까요?”

“날이 밝으면 잠입에 적합하지 않잖아요.”

시현은 창밖을 확인했다.

이재현과 게임을 하고 있을 때는 해가 중천이었는데, 지금은 눈부신 노을이 세상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지금 출발하면 도착할 때 즈음에는 딱 맞게 밤이 되겠네요.”

“그러면 당장 선생님께 보고하러 가야겠어요.”

“그 전에 인원 편성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인원이 많으면 그만큼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목적은 교단을 정찰하는 거지만 악마를 향한 경계를 빼뜨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인원을 데리고 가면 교단에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천리안이 아니더라도 교단의 방비는 제법 뛰어나다. 그러니 그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

“원래는 호석이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요. 아시다시피 그 애의 권능은 정찰에 유용하니까요.”

“원래는?”

“하지만 호석이네 어머니께서 눈치를 좀 주시더라고요. 뭐, 부모 마음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둘이 가시죠.”

“둘이서……라. 음, 나쁘지 않네요.”

공격과 방어뿐 아니라 보조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민서라의 권능은 정찰에도 유용하다.

시현 역시 이전의 전투에서 괜찮은 권능을 얻었기에 정찰에서 활약할 자신이 있었다.

괜히 짐을 늘리느니 소수 인원으로 빠르게 질 좋은 정보를 뽑아 오는 편이 나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면 가실까요?”

두 사람은 곧장 학교의 리더인 이은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고를 위해서다.

교단의 정찰을 요청한 것은 이은철인지라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이은철은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두 분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권수학과 이재현, 이 둘을 데려가세요.”

“엥?”

너무도 예상 밖의 대답인지라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러운 건 민서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만 깜빡거리던 민서라는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인원 편성은 제 재량 아니었나요? 왜 갑자기…….”

“천리안이 없어도 교단은 교단입니다. 두 분만 보내기에는 너무 위험해요.”

“그 반대예요. 저희 두 사람만 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부담도 없어요.”

어처구니도 없고 답답하기도 했던 민서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언성을 높였다. 늘 생글생글 웃는 그녀답지 않게 표정이 사나웠다.

“제 의견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재현과 권수학, 두 사람을 데려가세요.”

“그러니까 왜요? 제대로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 주셔야지 무조건 데려가라고만 하면 어떻게 해요?”

민서라의 손바닥이 강하게 책상을 내려쳤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힘 조절을 했는지 책상이 망가지는 일은 없었다.

“하다못해 잠입에 특화된 호석이를 데려가라거나, 2레벨 구원자인 재현이만이라면 이해가 돼요. 도대체 왜 수학이를 넣는 거예요?”

둥지 공략에 참가하지 않은 권수학은 아직 1레벨 구원자이며 능력 또한 정찰에 적합하지 않다.

도움은커녕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인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데리고 가지 않는 게 옳다.

지금까지 현명하게 학교를 이끌어 온 이은철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은철은 고집을 부렸다.

“수학이에게도 경험이 필요합니다. 요즘 의기소침해 있는데 이대로는 크게 엇나갈 겁니다.”

“그건 이해해요. 하지만 그게 지금일 필요는 없잖아요.”

아무리 민서라가 언성을 높여도 이은철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가만히 상황이 흐르는 걸 지켜보던 시현이 입을 열었다.

“애초에 권수학 그놈은 저 살겠다고 저희를 팔아넘긴 놈입니다.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인데, 이은철 씨의 얼굴을 봐서 모른 척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애새끼 뒤까지 봐주라고요?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요.”

민서라의 논리적인 반대.

은원 관계를 들먹인 시현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동반한 반대.

보통이라면 누구라도 두 사람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논리에 이은철은 무논리와 권력으로 대응했다.

“뭐라 말씀하셔도 제 의견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대체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민서라가 투덜거렸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시현은 이은철의 의도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먼저 정찰을 요청한 건 이은철이다.

요청을 받아 줬더니 고마워하며 머리를 숙여도 모자랄 판국에 조건을 내걸며 갑질을 하고 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한 행동이 아니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게 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시현은 그를 떠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권수학은 뭐 그렇다 치고, 이재현을 데려가라는 이유는 뭡니까?”

예상했다는 듯 이은철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두 분이 정찰에 집중하느라 수학이가 무방비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등장인물 중 유일한 2레벨 구원자인 재현이를 동행시키려는 겁니다.”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권수학에게는 호위를 붙여 두죠.”

“호위요?”

“얼마 전에 재미있는 기술을 확보했거든요.”

시현은 권능을 발동시켰다.

여러 개의 권능을 사용한다는 것은 되도록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평범한 단추가 특수한 아이템이라도 되는 양, 일부러 이은철에게 내보이면서 말이다.

상당량의 정신력이 소모됨과 동시에 그의 그림자로부터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끔찍하고 섬뜩한 외형을 한 반투명한 존재, 유령이었다.

이은철이 경악을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 그건 대체……!”

“이번에 얻은 아이템의 효과입니다. 다룰 수 있는 유령이라 해 봤자 기껏해야 최하급 유령 셋이 한계지만, 그래도 쓸 만합니다.”

시현은 약간의 거짓말을 가미했다.

이은철에게는 아이템의 효과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다.

시현에게는 타인을 모방할 수 있는 아르하의 권능이 있으며, 그를 이용해 유령 군대를 모방한 것이다.

모방할 수 있는 권능의 개수가 최대 두 개였기에 어쩔 수 없이 폭풍을 해제해야 했지만.

이나연이 곁에 있는 한 폭풍은 언제든 모방할 수 있으므로, 유령 군대를 모방해 두는 편이 더 이로우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시현은 실시간으로 유령 군대를 잘 이용해 먹고 있었다.

“권수학의 호위로 유령 하나를 붙여 둔다면 굳이 이재현까지 데리고 갈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건…….”

이은철은 망설였다.

진심으로 권수학의 호위를 위해 이재현을 추천한 거라면, 유령을 호위로 붙여 주겠노라 선언한 순간 태도를 바꾸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망설인다는 것은 곧 호위는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고, 이재현과 권수학을 동행시킬 이유가 있다는 말이 된다.

과연 이은철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지, 시현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쓴웃음을 지은 이은철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하며 운을 뗐다.

“사실……. 수학이가 그날의 일로 두 분께 굉장한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밤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매일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요.”

“그래서요?”

“두 분께 사과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고, 제게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이은철의 표정에 조금 전까지 보이던 고집은 오간데 없었다.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부친과도 같은 인자한 미소만이 맺혀 있을 뿐이었다.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은 변화다.

“그런 거라면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조금 마음이 약해진 건지 민서라의 음성이 많이 가라앉았다.

“아시다시피 학교에는 보는 눈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소문이 퍼져서 입장이 난처하니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겠죠. 교단의 정보? 사실 학교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학이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핑계일 뿐이죠.”

“끄응…….”

“서라 씨, 시현 씨. 부탁드립니다. 감히 용서해 달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수학이가 하는 말을 한 번만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 후에 두 분이 어떤 선택을 내리시든 저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 음성은 애절한 데다 제법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민서라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언제나 위험에 앞장서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책임감 있게 모두를 이끌었다.

그렇기에 강한 여성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 그녀의 멘탈은 굉장히 약하다는 걸 시현은 알고 있었다.

그런 민서라가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는 이은철의 요청을 뿌리칠 수 있을 리 없었다.

반면, 시현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한 번 배신한 놈이 두 번은 못 하겠는가.

같은 의미에서 강소하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목줄에 이은 입마개를 고려할 정도로 말이다.

더군다나 권수학의 행동은 일행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였다.

만약 일행과 리퍼 퀸의 전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틀림없이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다.

차라리 악마를 하나 훈련시켜서 동료로 두고 말지.

권수학의 용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리면 저 영감도 고집을 꺾지 않겠지.’

무엇보다 뭐라도 좋으니 교단에 대한 정보가 갖고 싶었다.

지금이야 생존이 우선이라지만 2차 아포칼립스가 1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죽음과 광기로 물든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승자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자의 정보가 중요하다.

“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고민 끝에 민서라가 입을 열었다.

“수학이는 그렇다 쳐도 재현이는요? 호위라는 되도 않는 이유 말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수학이에게 조건을 걸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한 장소를 마련해 주는 대가로, 재현이에게도 용서를 구하라고요. 두 분과 마찬가지로 판단은 재현이의 몫이지만요.”

그의 말에 민서라는 눈에 보이도록 경악을 드러냈다.

“선생님은 두 사람의 사이를 중재할 생각이신가요?”

“네, 아무래도 구원자끼리 싸우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이 이상 방치하기에는 위험하다 판단했습니다.”

심각한 표정의 이은철과, 그와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민서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는 시현뿐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안 좋습니까?”

그에 아차 싶었는지 민서라의 안구에 지진이라도 난 듯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한참을 망설이던 민서라는 질문의 회피가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초중고를 같이 다녀서 그런지 엄청 친했어요.”

친하다가 아니라 친했다. 즉, 과거형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사실상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게 됐어요. 시현 씨, 혹시 지희라고 아세요? 최지희. 웃는 얼굴이 되게 예쁜 앤데.”

“잘 모르겠군요.”

“하긴, 원작에서도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진 인물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지희가 누구냐면, 재현이의 여자 친구예요. 수학이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잠시 호흡을 끊은 민서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진실을 고했다.

“얼마 전에 수학이가 지희한테 고백을 했어요. 그래서 한 번 크게 싸웠거든요.”

“뭐야. 쓰레기네요?”

아무리 사람 마음이란 게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친구의 연인에게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친구와 그의 연인, 두 사람을 동시에 배신하는 일이다.

적어도 시현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더군다나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법이다.

그런 존재를 빼앗아 가려 한 상대를 어떻게 용서하겠는가. 설사 친한 친구라도.

오히려 친한 친구였기에 더욱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하필이면 재현이가 져 버렸지 뭐예요. 그렇다고 지희의 마음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엄청 깊어졌죠.”

“그 정도면 용서를 구해 관계를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비양심적인 거 아닙니까?”

“솔직히 저 같아도 용서 못 해요. 친구가 제 남자 친구에게 고백하면 친구고 뭐고 전쟁이죠. 하지만 그걸 결정하는 건 저희가 아니잖아요.”

“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를 재현이가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봤을 때 피해자는 어디까지나 이재현이다.

때문에 시현은 철저하게 이재현의 입장에서 사고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제가 한 번 재현이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만약 재현이가 싫다고 하면 그때는 수학이만 데리고 가는 걸로 부탁드립니다.”

이은철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마치 자식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하는데 무조건 싫다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토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재현이나 서라 씨라면 몰라도 저는 절대 권수학을 용서 안 할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이은철의 정수리 부위의 희끗한 흰머리가 괜히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 * *

참가자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악마뿐만이 아니다.

다른 참가자 역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특히 이한울처럼 순위권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참가자라면 어떻게든 발목을 잡고 끌어 내리려는 참가자가 수두룩하다.

그렇기에 이한울은 자신의 거점 방어를 아주 철저하게 했다.

대학 병원을 거점으로 삼은 교단은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했다.

정문에 바리케이드 하나를 세워 놓은 게 전부인 학교와 달리 병원의 정문에 도달하기까지만 무려 10여 개의 바리케이드를 돌파해야 한다.

참가자뿐 아니라 일반 구원자, 싸울 수 있는 생존자의 수도 많다.

길목에 있는 멀쩡한 건물에는 무장한 전투원이 2~3명씩 짝을 지어 망을 보고 있었다.

사실상 천리안이 없더라도 병원에 진입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와……. 진짜 빈틈이 없네요. 사실상 권능이 없으면 파고드는 건 불가능하겠어요.”

민서라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래도 천리안을 가진 구원자가 자리를 비워서 다행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시도조차 못 할 뻔했습니다.”

“그러게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빠르게 움직이죠. 시현 씨,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시현은 유령 셋을 소환했다.

현재 시현의 능력으로는 총 스물 정도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유령을 여럿 다루다 보면 자연히 명령에 허술함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허술함은 고스란히 작전의 실패로 연결된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시현은 자신이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 한계가 넷이었다.

“너희도 준비됐어?”

“네!”

시현은 우렁차게 대답하는 남학생에게 시선을 보낸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이재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주 호구가 따로 없네. 나였으면 떼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싫다고 했겠다.”

“아하하.”

이재현은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너는 어때? 정 못 하겠으면 여기 남아 있어도 돼.”

시현은 권수학에게도 시선을 줬다.

이재현을 대할 때와 달리 시린 음성에 그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씹었다.

“저도 준비됐어요.”

“그래?”

“그 전에 형, 이거 드세요.”

권수학은 떨리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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