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시현은 2층을 향해 달렸다.
그걸 도주라 판단한 건지 병사들이 잔뜩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저 남자가 도망간다!”
“리더의 말대로 외피가 얼마 남지 않은 거야. 쫓아서 끝장을 내!”
몸을 숨기고 방아쇠만 당기던 놈들이 맞나 싶을 만큼 용감한 돌진에 시현은 혀를 찼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건 아니지만 1초라도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나연아!”
“네!”
딱히 뭔가를 지시하지 않아도 척이면 척이었다.
그녀는 2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막아 버렸다.
이나연 덕에 병사들을 따돌리는데 성공한 시현은 무사히 2층에 도착했다.
“히익!”
작은 비명과 함께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권수학이 보였다.
1층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때문인지 하얗게 질린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당연하지만 시현은 권수학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만약 둥지의 공략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약탈자들이 들이닥쳤다면 일행은 지금처럼 유리한 고지를 점한 채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그걸 생각하면 머리통을 깨부수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권수학보다 임진아가 우선이다.
벽 한쪽을 차지한 커다란 창문을 향해 달린 시현은 주저 없이 유리를 깨고 뛰어내렸다.
군용 트럭의 짐칸에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임진아가 보인다.
그녀의 시선은 마트의 입구에 폭탄을 설치하고 있는 간부들을 향해 있었다.
‘입구를 무너뜨려 시간을 벌 생각인가? 바보 같기는.’
어찌 되었건 임진아가 헛짓거리를 하느라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는 건 시현에게 좋은 일이었다.
시현은 착지와 동시에 검은 가시를 던졌다.
“……!”
심장에 꽂아 넣을 생각이었건만, 놀랍게도 임진아는 몸을 틀어 공격을 회피했다.
스걱.
그러나 완전히 회피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왼쪽 팔에 생긴 자그마한 상처를 확인한 순간, 임진아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자신의 왼팔을 잘라 냈다.
“크윽!”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부하들의 도움을 받아 지혈을 마친 임진아가 살기등등하게 시현을 노려봤다.
“……설마 팔을 잘라 낼 줄은 몰랐는데, 엄청 독종이네. 하긴, 그 정도는 돼야 약탈자들의 리더를 해먹지.”
“이게……!”
임진아의 그림자에서 재차 유령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조금 전과 비교했을 때 그 수가 확연하게 적다.
지친 것이다. 저장한 유령의 수도 많이 소모했을 테고.
유령뿐만 아니라 간부들 또한 임진아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었다.
시현도 핏빛 칼날을 꺼내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위이이잉!
귓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모기의 날갯짓 소리다.
시현의 눈앞에 보통보다 배는 더 큰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이 추운 계절에 모기가 있다고?’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콰앙!
모기가 시현의 코앞에서 피의 폭발을 일으켰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그를 감싸고 있던 외피에 크게 균열이 생겼다.
“제법 괜찮은 능력을 가진 구원자를 데리고 있었군. 하지만 하필이면 피를 이용한 폭발이라니. 고맙기도 하지.”
피를 마실수록 성능이 강해지는 핏빛 칼날이 대량의 피를 들이마시고는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힘을 해방하라고 떼를 쓰는 아이 같다.
시현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괴물 같은 새끼!”
비틀거리는 시현을 보고 기회라 생각한 건지 험악한 표정의 간부 하나가 개머리판을 이용해 그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시현이 검을 휘두르는 게 더 빨랐다.
스걱!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검이 간부의 허리를 이등분했다.
그 단단한 척추까지 아주 깔끔하게 갈라진 것이다.
“어……?”
그 허망한 중얼거림이 간부의 유언이 되었다.
핏빛 칼날의 위력은 뛰어난 절삭력뿐만이 아니다.
고기와 뼈를 베면 벨수록 무뎌지는 일반적인 날붙이와 다르게 피를 흡수하는 핏빛 칼날은 더욱 강해졌다.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곤충 술사는 계속해서 시현의 주변으로 모기를 보냈다.
처음 일격으로 유효타를 가해서 그런지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시현은 교묘하게 그것을 이용했다.
폭발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며 검에 피를 먹여 거듭 강화시켰다.
“그만!”
무언가 이상을 감지한 임진아가 옆에 있던 곤충 술사를 만류했으나 이미 늦었다.
시현의 검은 자신의 공격을 막으려고 들이민 소총째로 간부를 이등분해 버릴 만큼 강화되어 있었으니까.
“차 출발시켜!”
많은 피를 흘려 얼굴이 하얗게 질렸음에도 임진아는 필사적으로 권능을 운용했다.
유령들이 시현을 둘러싸는 동안 그녀를 태운 군용 트럭이 매연을 뿜으며 출발했다.
제 목숨이 경각에 처하니 병사들에 이어 중요한 간부들마저 버리고 달아나려는 심산이다.
‘정신력이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니 괜찮을 거야.’
시현은 비어 있는 왼손을 뻗었다.
“폭풍.”
그의 정면을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남겨진 광경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람들은 팔다리가 찢겨 고통에 신음했으며, 유령은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뿐이랴. 멀쩡하던 도로는 거대한 용의 발톱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처참하게 망가졌으며, 도로 위의 차들은 거인이 밟고 지나간 것처럼 짓이겨졌다.
임진아가 타고 달아나던 군용 트럭 역시 마찬가지다. 대파되어 옆으로 쓰러진 차에서 임진아가 기어 나왔다.
운전자는 날아온 파편에 머리가 깨져 즉사했다.
“씨발……. 괴물 같은 새끼…….”
그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팔을 잘라 냈는데 제대로 된 처치는 고사하고 두들겨 맞기만 한 까닭에 출혈량이 많아졌다.
이대로는 과다 출혈로 죽고 말 것이다.
이를 악문 그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시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기억에 있는 물건이었다. 어찌 저것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검붉은 액체가 담긴 주사기, 레벨 서포터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전원. 주사를 투약해.”
그리 중얼거리는 임진아의 흰자는 피처럼 붉었으며, 눈과 귀에서 피가 흘렀다.
마트의 정수혁 때와 같다.
레벨 서포터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캬아아아!]
인근 대지로부터 대량의 유령들이 솟아올랐다.
심지어 2레벨 구원자가 된 임진아는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악마의 영혼까지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영혼보다 빠르고 강한 검은 늑대의 유령이 달려들었다.
놈들은 한껏 강화된 핏빛 칼날로도 일격에 죽지 않고 이를 들이밀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레벨 서포터는 하나가 아니었다.
폭풍에 적중당하지 않아 가까스로 살아남은 10여 명의 군인들의 손에도 레벨 서포터가 들려 있었다.
‘와, 이거 거지 같은 상황이네.’
같은 2레벨 구원자라 해도 두 개의 축복을 받은 시현은 남들보다 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2레벨의 구원자 다수가 우르르 몰려들면 아무리 시현이라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군인들은 피를 흘리는 임진아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희망이 보였다.
‘보아하니 임진아에게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는 놈은 없어 보이네. 하긴, 공포로 군림하는 놈의 결과가 다 그렇지 뭐.’
임진아는 모두의 충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공포를 선택했다.
압도적인 무력, 배신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잔학함.
거기에 더해 사자를 희롱하고 끝내는 그 영혼까지 소멸시키고 마는 그녀의 권능은 약탈자들에게 극에 달한 공포를 선사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충성심이 진실할 리 없다.
물론 진심으로 그녀를 따르는 이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충성심을 가진 부하는 이미 그녀를 위해 선두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즉, 임진아가 새겨 넣은 공포 그 이상의 공포심을 자극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임진아를 배신할 수 있는, 그런 놈들만 남아 있다는 소리다.
‘해 보자.’
시현은 얼굴 가득 얍삽하기 짝이 없는 비웃음을 만들어 냈다.
“그나저나 레벨 서포터라니. 그 미완성 제품을 사용해도 괜찮은 거야?”
말은 임진아에게 하고 있었으나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무협지처럼 목소리에 내공을 실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시끄러워.”
임진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 정도는 흔들려 줘도 좋을 텐데, 강철 같은 정신력이다.
하지만 그녀를 따르는 다른 군인들의 경우는 달랐다.
“부작용?”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피어났다.
임진아는 더욱 많은 수의 유령들을 만들어 냈고, 그에 따라 시현의 검에서 피어나는 검은 기운도 덩치를 부풀렸다.
수많은 유령들이 윤시현이라는 이름의 태풍을 잠재우기 위해 몸을 던졌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시현은 이를 악물고 허세를 부렸다.
“나는 전에도 레벨 서포터를 사용하던 놈을 본 적이 있거든. 그놈도 너랑 똑같이 레벨 서포터를 사용한 순간 피눈물을 흘리고 귀에서 피를 쏟더라고. 완성품이라면 그런 현상이 나타날 리가 없잖아.”
“…….”
“그 인간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궁금하지 않아?”
“닥쳐! 어디서 뻔히 보이는 수작을…….”
임진아는 이를 갈았다.
자신의 정신을 흔들기 위한 수작질이라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시현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할 능력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제아무리 권능을 한계까지 쏟아 내도 시현은 여유롭게 유령들을 처리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엄청 아파 보이더라.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결국에는 자해까지 시작하는데,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어. 그런데도 강화된 신체 탓에 쉽게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제 몸을 자해하는데…….”
시현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군인들의 표정에 경악과 공포가 깃들었다.
죽음도 두렵지만, 죽음까지 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울수록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증폭된다.
더군다나 지금 임진아는 레벨 서포터까지 사용했음에도 시현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임진아를 보며 갖던 경외심과 공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생각해 봤는데,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처음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세상 모든 일이 대게 그러하듯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그러게. 사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잖아.”
“이런 곳에서 개죽음 당하기는 싫어.”
“지금까지는 리더의 권능이 무서워서 아무 말 없이 따랐지만, 저 남자가 리더를 이긴다면…….”
웅성거림은 더욱 커져 갔다.
그 소리를 들은 임진아가 눈이 벌개져서 고함을 질렀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레벨 서포터를 투약하고 합류하란 말이야! 윤시현의 말에 휘둘리는 멍청한 놈은 내 손으로 죽여 주마!”
“히익!”
뼛속까지 굴복하고 있던 하나가 그녀의 겁박에 레벨 서포터를 꽂았다.
그러나 약이 체내에 스며들기도 전에 핏빛 칼날이 군인의 목을 수거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군인의 모습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젠장! 튀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순간 군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헐레벌떡 도망치는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저 멍청한 놈들이……!”
혼자 남겨진 임진아는 이를 갈며 더욱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유령은 빠른 속도로 줄어 나갔으며, 시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결국 임진아의 몸에 핏빛 칼날이 닿았다.
일격에 외피가 산산이 조각나고 그녀의 몸은 멀리 날았다.
“커헉!”
그녀는 피를 토했다.
외피가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 주었을 텐데도 이 정도 충격이라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젠장! 대체 어떻게 돼먹은 공격력이야…….”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미 한계까지 혹사당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정신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현을 에워싸고 있던 유령들이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나둘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후우……. 죽을 뻔했네.”
흔들리는 시야에 한숨을 내쉬며 소매로 땀을 훔치는 시현의 모습이 보였다.
연기가 아니라 상당히 지쳐 보이는 그의 모습에 임진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간발의 차였다.
만약 간부들이 레벨 서포터를 투약하고 참전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유언 정도는 들어 주지.”
시현은 그녀의 목덜미에 검을 들이밀었다.
“병신.”
“거 되게 재미없는 유언이네.”
붉은 피와 함께 임진아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참가자 임진아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임진아의 Re write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임진아가 소지하고 있던 토큰 54개를 노획합니다.>
<축하합니다! 윤시현의 Re write가 보다 많은 조회수를 얻어 순위가 상승했습니다.>
<경쟁자를 처치했기에 보상으로 2,450,000원을 획득합니다.>
<이는 참가자 임진아의 가치를 치환한 것입니다.>
—애가 조금 악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내 최애였는데, 슬프다.
—임진아 컷!
—진아네 애들이 레벨 서포터를 잔뜩 가지고 있어서 윤시현이라도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공포로 산 충성심에는 한계가 있구나.
시현의 눈동자에 그의 승리를 축복하는 붉은 문자들이 가득 맺혔다.
반면, 서서히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 임진아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패자의 말로였다.
* * *
임진아가 죽고 30분 정도가 흘렀을 때, 비로소 전투를 끝마친 일행이 마트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의 배후에는 무기를 빼앗기고 손이 묶인 포로 다섯 명 정도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외피가 있어도 만능은 아니구나.”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온 이나연이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까 외피가 뚫렸을 때는 진짜 간담이 서늘했어. 그나마 총알이 스쳐서 망정이지.”
민서라는 자신의 왼쪽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붕대로 응급처치를 했지만 조금씩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폐차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시현을 발견한 이재현이 방방 뛰었다.
“아니, 형님! 바깥의 상황이 다 정리되셨으면 좀 도와주시지! 제가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했는지 아세요?”
“나 정신력 하나도 안 남았어. 손 하나 까딱 못 하겠다. 지금이라면 좀비한테도 물려 죽을 자신 있어.”
“……죄송.”
그제야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시체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발견한 이재현이 공손해졌다.
“그래도 사망자 없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에요. 빨리 돌아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쉬도록 해요.”
민서라가 시현을 부축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 전에 회수해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제가 힘이 안 남아서 그런데 부탁 좀 드릴게요.”
“회수할 물건이요?”
“저거요.”
시현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도망가던 군인이 흘리고 간 레벨 서포터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