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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44화 (44/225)

[44화]

참가자의 개입으로 인해 원작은 크게 뒤틀렸다.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등장인물의 운명 또한 심하게 바뀌었다.

그 중에서 이재현이 가장 큰 혜택을 본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무려 죽음을 회피했으니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재현이라고 해요. 이래 보여도 여기 3인방 중에서는 제일 강합니다. 하지만 서라 누나보다는 약하죠. 형은 누나보다 강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저는 누나를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지…….”

과묵하고 무덤덤한 성격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발랄했으며 수다스러웠다.

어찌된 게 초면이라 어색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입이 쉬지를 않는다.

지금까지 시현은 이나연의 친화력을 굉장히 높이 사고 있었다.

그런 이나연조차 이재현의 앞에서는 새 발의 피요, 태양의 앞 반딧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재현아, 조용히 좀 해 줄래? 누나 귀에서 피가 날 거 같아.”

“넵.”

참다못한 민서라의 핀잔이 있고 나서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으나 근질거리는지 입술이 쉬지 않고 씰룩거린다.

그래도 민서라의 말은 잘 듣는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윤시현이다. 잘 부탁해.”

시현도 의례적인 자기소개를 했다.

흥미가 있어 만나러 왔지만 이재현은 엄연히 학교의 인재다.

시현이 협력을 목표로 삼고 있는 민서라 또한 아직 학교의 참가자고.

괜히 민서라와 척을 지며 빼돌리려 하기보다는 좋은 관계를 맺는 걸 목표로 하니, 필요 이상의 과한 관심은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자, 그럼 다 모였으니 출발할게요.”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도보가 아닌 차량이 이동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운전석에 오른 민서라가 일행을 재촉했다.

어디 소풍이라도 가듯 흥분한 민서라와 달리, 여타 학생들은 영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나, 선빈이가 운전 잘 하던데.”

“수학이 말이 맞아요. 누님, 제가 운전은 조금 잘 합니다.”

은근슬쩍 김선빈의 등을 미는 권수학.

불안한 눈빛의 신호석.

“누님, 선빈이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렸습니다. 날도 좋고 선빈이의 생일도 121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오늘만큼은 양보해 주시죠.”

이재현도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가며 적극적으로 김선빈을 지지하고 나섰다.

영문을 모르는 시현과 이나연만이 멍한 눈으로 그들의 콩트를 지켜볼 뿐이었다.

다수의 주장에 민서라는 웃는 얼굴로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타.”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바람마저 따스하게 느껴질 만큼 차가운 음성에, 학생들은 입을 꾹 다물고 차량에 올라탔다.

조수석이 비어 있었기에 올라탄 시현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평소 하지 않던 안전벨트를 맸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나연이 탑승하고 문을 닫는 것까지 확인한 민서라가 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앙!

“으어억!”

머리가 뒤로 크게 젖혔고,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렸다.

10점 만점에 10점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급발진이었다.

* * *

“아……! 스트레스 풀린다!”

기지개를 한껏 켜 환하게 웃는 민서라를 보며 시현은 다짐했다.

두 번 다시 그녀가 운전하는 차에는 타지 않겠다고.

‘죽는 줄 알았네.’

식은땀이 아직까지도 등줄기에 가득했다.

중형 악마와 싸울 때도 느끼지 못한 죽음의 공포가 몇 번이고 그를 덮쳐 왔다. 고작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말이다.

민서라의 운전은 난폭하다는 말로 정의할 수준이 아니었다.

폭력 그 자체다.

만약 Re write의 배경이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었다면 수십 대의 차량과 추돌 사고를 내고 뉴스 1면을 멋지게 장식했을 것이다.

아무리 교통 법규란 게 무용지물이 되었다지만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나연아.”

“네?”

“차 키 확보해 둬.”

“목숨 걸고 해낼게요.”

이나연은 세계의 종말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명을 부여받은 기사처럼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한 장소에 차를 세워 놓은 일행은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마트를 향해 걸었다.

길을 알고 있는 민서라가 가장 선두에서 걸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걷기를 수 분 후, 저 앞에서 마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아……. 세상에.”

“저게 다 뭐야.”

서서히 가까워지는 D마트의 외형을 확인한 학생들이 질색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D마트의 끔찍한 모습에 치를 떨면서도 쫄랑쫄랑 민서라의 뒤를 잘 따라갔다.

하지만 시현은 달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극도로 당황한 시현은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민서라 씨, 혹시나 싶어 묻는 건데 제정신입니까?”

그제야 앞장서 걷던 민서라가 걸음을 멈췄다.

시현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얼굴에 장난기 다분한 미소가 가득했다.

“많이 놀라셨어요?”

“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안 놀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지금까지 민서라가 무언가를 함에 있어 이 정도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것은 적어도 시현이 합류하고 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때문에 D마트 원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여긴 둥지잖아요! 젠장, 어쩐지 조사치고는 인원이 많더라니…….”

놀랍게도 민서라가 공략하고자 했던 D마트는 악마의 둥지였다.

건물 전체를 검은빛의 찐득한 액체가 뒤덮고 있으며, 보고만 있어도 혐오감이 올라오는 수포가 살아 있는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악마의 둥지가 존재한다.

둥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안에는 수많은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

시현이 며칠 밤낮을 꼬박 새워도 전부 처리하지 못했던, 이빌 보아의 둥지처럼 말이다.

둥지는 황금이 기다리는 땅이다.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긁어모을 수 있으며, 둥지를 완전히 파괴하는데 성공할 경우 특별한 보상까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장소이기도 하다.

지상에 나와 인간을 사냥하는 악마는 전체의 1할도 채 되지 않는다.

시현이 이빌 보아의 둥지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은 것도 어디까지나 이빌 보아가 동면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둥지에 들어선 즉시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독에 찌들어 살점마저 녹아내렸을 것이다.

“만약 민서라 씨가 둥지의 공략을 생각하고 계신 거라면 저는 빠지겠습니다. 물론 나연이도요.”

“잠깐만요. 우리 저쪽 가서 이야기해요.”

민서라는 시현의 입을 틀어막고 외진 곳으로 끌고 갔다.

시현이 언성을 높일수록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불안감은 불필요한 실수를 낳는다.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골목길에 도착하고 나서야 민서라는 입을 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현 씨에게는 미리 이야기해 둘 걸 그랬네요.”

“솔직히 말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민서라 씨는 도박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에요, 시현 씨. 우리 전부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게요. 제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민서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Re write의 참가자들은 제 인생을 다시 쓰기 위해 1/66.6의 확률에 도전하는 불나방들 아니던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니에요. 제가 애들 목숨을 노잣돈으로 사용하는 무뢰배로 보이셨나요?”

“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며칠 전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 D마트에 온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뭘 본지 아세요?”

“글쎄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민서라가 속삭였다.

“검은 묘목이요.”

“……!”

시현은 기함했다.

이 세상은 RPG게임이 아니다.

허공에서 몬스터가 리젠되는 것처럼 악마가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외형과 성질, 이름 탓에 오해하기 쉽지만 악마는 어디까지나 생물이다.

당연하지만 악마의 무리가 있으면 그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또한 존재한다.

보통의 개체보다 강하고, 덩치도 크며 생식 기능까지 가지고 있는 우두머리는 여왕이라 불린다.

여왕은 평생에 한 번 여왕이 될 수 있는 개체를 낳는다.

한 무리에서 두 마리의 여왕이 공존할 수는 없으므로 새로운 여왕은 성체가 되면 자신의 짝과 함께 무리에서 독립한다.

그리고 새로운 둥지를 만든다.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여왕은 해당 장소를 악마가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악마의 씨앗을 심는다.

씨앗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가진 검은색의 묘목이 자라며, 묘목은 약 1주에서 2주 사이의 시간에 걸쳐 일정 지역을 오염시킨 후 자취를 감춘다.

그 오염된 구역을 두고 둥지라 칭하는 것이다.

즉, 민서라가 묘목을 발견했다는 건 둥지가 막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로부터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악마의 알이 잔뜩 있지 않을까요? 알을 지키는 병사는 당연히 없겠고, 산란을 통해 힘이 많이 약해진 여왕과 그 짝만이 둥지를 지키고 있겠네요.”

“…….”

“물론 당장 공략하자는 건 아니에요. 둥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고, 현재 전력으로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공략을 시도할 생각이에요.”

귀가 솔깃해졌다.

악마의 둥지가 위험한 이유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악마들이 들끓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둥지에 있는 악마가 기껏해야 칼을 들이밀어도 저항할 수 없는 미성숙한 개체라면? 아직 부화조차 못 한 알이라면?

시현은 웃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D마트는 이빌 보아의 둥지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의 땅이다.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오히려 이런 좋은 기회를 공유해 준 민서라에게 감사하다며 절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다.

“알겠습니다.”

* * *

마트의 내부는 생각 이상으로 엉망이었다.

대부분의 진열대나 물품들이 바닥을 구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봤던 보랏빛 수포가 곳곳에 눈에 띈다.

“자, 일단은 1층을 조사해 보도록 하자. 어떤 악마가 있을지 모르니까 최소한 2인 1조로 활동해야 해.”

“네!”

민서라의 지시에 학생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에서 보였던 희희낙락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나연을 포함한 일행 전부가 1층의 탐사를 시작하자 민서라가 시현을 보며 위를 가리켰다. 함께 2층을 확인해 보자는 소리다.

보아하니 1층에는 위험한 게 없어 보였기에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2층이라 해도 1층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벽면을 덮고 있는 수포가 1층보다 더 많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정도랄까.

어쩌면 이 둥지가 초소형 악마의 둥지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좁고 어두운 곳, 쥐구멍 사이즈의 공간까지 빠뜨리지 않고 철저하게 탐색했다.

어떤 악마가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 허술하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층, 3층,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4층까지, 철저하게 확인했으나 악마는 고사하고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것이라고는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수포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뿐이다.

“이상하네……. 왜 둥지가 비어 있는 걸까요?”

걸음을 멈춘 민서라가 중얼거렸다.

시현 역시 같은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전체를 둘러봤는데도 악마를 단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왕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건 명백히 이상해요.”

여왕의 역할은 지배와 번식.

알을 낳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여왕뿐이기 때문에 여왕은 둥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샅샅이 뒤져도 여왕은 고사하고 그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꽝을 뽑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혹시 버려진 둥지가 아닐까요?”

그럴싸한 의심을 해 봤으나 민서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걸 의심해 봤는데 전에 발견했던 검은 묘목이 보이지 않아요. 둥지화가 끝났다는 증거죠.”

그녀의 말대로 검은 묘목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으며, 둥지의 오염화는 100% 진행되었다.

본래라면 둥지 가득 막 부화한 악마의 새끼, 혹은 깨어나기 직전의 알들로 도배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흐음…….”

심각한 얼굴을 한 시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꿈틀.

‘……어?’

고민에 빠져 있던 시현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불에 탄 듯 새까맣게 물든 벽면에 달라붙은 수상쩍은 수포.

그것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꿈틀거린 것이다. 마치 제가 살아 있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어쩌면…….”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단검을 꺼낸 시현은 벽에 붙어 있는 수포로 다가갔다.

뭘 하나 싶었던 민서라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시현은 수포를 크게 베었다. 그러자 역한 냄새와 함께 끈적이는 누런빛의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어찌나 역한지 냄새만으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다.

철퍼덕.

액체와 함께 쏟아진 무언가가 지면에 충돌했다.

[키이에에에!]

점액에 싸여 허우적거리는 자그마한 생명체의 정체는 악마였다.

길쭉한 팔다리와 꼬리, 마름모 모양의 머리.

아직 뼈가 가죽을 뚫고 나오지는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악마의 정체를 유추하기에는 충분했다.

“여기는 리퍼의 둥지였군요.”

중얼거리는 민서라의 음성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엿보였다.

그만큼 리퍼는 위험한 악마다.

시현도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얼마 전 리퍼와 싸워 승리했다고 하지만 정말 간발의 차였다.

만약 사소한 실수라도 있었다면 지금쯤 시현은 이 장소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민서라의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수많은 수포들이 보인다.

“알이 없는 게 아니라 저 수포들이 죄다 알이었다니.”

그 음성은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딱딱하다.

이곳이 중형 악마인 리퍼의 둥지임이 판명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저 수많은 수포에서 일제히 리퍼의 새끼가 부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캬아아아악!]

아주 먼 곳에서 악마의 괴성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창가로 향했다.

저 멀리,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리퍼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의 리퍼보다 덩치가 배는 더 커다랗다.

“저놈이 여왕이군요.”

“그런데 어째서 둥지 밖으로 나가 있는 걸까요? 여왕이 둥지를 놔두고 밖에 돌아다니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그건……. 짐작 가는 게 있습니다.”

시현은 얼마 전 쓰러뜨렸던 리퍼를 떠올렸다.

그놈이 저기서 울부짖고 있는 여왕의 짝이었을 것이다.

곧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먹이를 구하던 리퍼는 시현에게 목숨을 잃었다.

새끼들이 부화하기도 전에 먹이를 가져다줄 짝을 잃은 여왕은 어쩔 수 없이 무방비한 알을 방치한 채 둥지 밖으로 나가야 했을 테고 말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얼추 맞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단 준비를 서두르죠.”

창가에 선 두 사람을 눈에 담은 리퍼가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확인한 시현이 말했다.

머지않아 마트의 1층 바닥을 뚫고 놈이 등장할 것이다.

“준비라니요? 설마 리퍼 퀸이랑 싸우시려고요?”

민서라가 펄쩍 뛰었다.

중형 중에서도 위험하기로 둘째가라면 손꼽히는 리퍼의 둥지라니, 상식적으로 달아나는 게 맞다.

그녀가 세운 둥지 토벌 작전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만만한 악마일 경우에 한정하는 작전이었으니까.

그러나 시현은 웃기만 할 뿐,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서라 씨.”

시현이 웃었다.

“고작 리퍼입니다.”

“……네?”

민서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작 리퍼요? 고작? 고자아악?”

리퍼가 어떤 악마인가.

이렇다 할 약점도 없는 주제에 근력도 강하고 민첩한 데다 방어력까지 두루 갖춘, 중형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으뜸가는 악마 아니던가.

중형과 1:1이 가능한 3레벨 구원자조차 리퍼라면 치를 떨 정도다.

그런 걸 두고 고작이라니.

“뭐 잘못 드셨어요?”

신랄한 비판에도 시현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리퍼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리퍼라 다행이라니……. 하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일단 다른 애들의 의견도 들어 보도록 하죠.”

두 사람은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조사를 끝내고 모여 있던 일행에게 시현이 직접 리퍼 퀸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에 대해 일행이 보인 반응은 한결같았다.

“리퍼라면 그때 그 괴물이잖아요! 저를 죽이려 했던 그놈!”

“중형 악마랑 싸우겠다니……. 얼마 전에 학교에 쳐들어온 중형 악마를 쫓아내는 데만 스무 명이 넘게 죽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사냥해요?”

“누나, 저 깜빡하고 가스 불 안 끄고 온 거 같은데, 먼저 가 봐도 돼요?”

싸우기도 전에 이미 전의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자그마치 중형 악마다.

3레벨은 되어야 겨우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강대한 악마.

이제 겨우 각성을 마친 햇병아리들이 아무리 모여 봐야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 중형 악마의 습격을 받은 일행은 중형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기에 도망만이 살 길이란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자신은 없어. 그냥 여기 시현 씨가 자신 있다니까 너희한테도 의견을 묻는 거지. 남을 사람은 남고,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도 좋아.”

민서라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

제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스스로가 선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결과, 일부는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아무리 강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하지만 이 세상이 게임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은 귀한 법이다.

시현은 남아 있는 이들의 면면을 스윽 훑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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