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신호석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처형장으로 진입했다.
그의 권능이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는 것이기에 어려울 건 없었다.
그곳에서 신호석은 자신의 어머니 외에 한 사람을 더 만나게 된다.
그녀가 바로 김다혜.
신호석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같은 학교의 3학년생이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굶주린 좀비들은 계속해서 처형장 문을 두드렸고, 특히 밤 시간을 버텨 내기엔 신호석의 능력이나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지옥과도 같았던 하루를 가까스로 버텨 낸 신호석은 고민 끝에 탈출을 계획한다.
머리가 좋은 김다혜가 신호석의 능력을 적극 이용한 작전을 짰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세 사람 모두 무사히 좀비 무리를 뚫고 탈출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계획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란 긴장과 공포 속에서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김다혜는 예정에 없던 존재의 난입으로 인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실수로 인한 대가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김다혜는 자신의 실수로 인한 대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신호석의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신호석은 매일 밤 살심에 시달릴 정도로 김다혜를 증오했다.
그리고 복수를 결심했다.
그러나 처세술이 뛰어난 김다혜는 역으로 신호석을 몰아넣었다.
복수에 눈이 멀어 있던 신호석은 이렇다 할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학교에서 고립돼 종래에는 추방되었다.
자신의 복수를 방해하는 학교마저 증오하게 된 신호석은 결국 학교 전체를 지옥으로 만드는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휘말리게 한 것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원인 제공자인 김다혜가 아니었다면 신호석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도 없었다지만, 그래도 시현이 보기에는 김다혜나 신호석이나 그놈이 그놈이었다.
복수에 무고한 자들이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김다혜가 누군데요? 형님, 혹시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김선빈이 설명을 요구했다.
말은 안 했지만 이나연도 호기심이 동했는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임태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귀찮기는 하지만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게으름 때문에 브리핑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다혜가 누구냐면…….”
“천하의 나쁜 놈이죠!”
막 설명을 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쳐 죽이고 뼈와 살을 분리해 악마들의 먹이로 던져 줘도 시원찮을 인간이요!”
오금이 저리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던 임태연이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그에 따른 괴리감이 임태연의 인상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시현과 달리 임태연은 노골적으로 신호석을 지지했다.
“그보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일이 잘 안 풀려서 조금 늦어 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별일은 없으셨나요?”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뙤약볕에 눈이 녹듯 표정에서 살벌함을 녹여 없앤 임태연이 반갑게 웃었다.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별일도 없었고요. 그보다 그 준비라는 것은 다 끝내셨습니까?”
“물론이죠.”
의미심장하게 웃은 임태연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난생처음 보는 기묘한 문자가 몇 개 적혀 있는 반지였다.
재질은 알 수 없으며 오래된 유물을 발굴해 놓은 것처럼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임태연은 반지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대하듯 하고 있었다.
“사실 이걸 찾으러 갔었습니다. 위험한 일을 해 주는 동료에게 줬던 물건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현님께 드릴 보수가 이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거든요.”
“어디까지나 은혜를 갚는 것뿐이니 보수는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에이, 2레벨 구원자인 데다 랭커를 고용하는 건데 어떻게 그래요. 게다가 2레벨이면 성수대교에서 제 도움도 필요 없으셨을 텐데. 괜한 오지랖이었죠. 부끄럽네요.”
“아니요. 굉장히 도움이 됐습니다만…….”
“자자, 그러지 말고 받아 두세요. 안 그러면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결국 임태연은 반강제로 반지를 시현에게 쥐여 주었다.
손바닥 위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단순한 장식품은 아닌 거 같고. 이 반지의 정체가 뭡니까?”
“생명의 부적입니다.”
“생명의 부적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체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생명의 부적이라니,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심장이 관통당한 치명상조차 회복시킬 수 있는 보물이 아닌가.
1회용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여벌의 목숨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경이로운 물건이다.
“운이 좋아서 대량의 토큰을 구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 선점했죠.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이게 마음에 안 들면 참가자 실격이죠.”
추측이지만 생명의 부적을 미끼로 내건다면 옆에 있던 동료의 등에 칼을 꽂아 넣을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귀중한 보물이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제 2레벨 구원자이신 시현님이 신호석과 그의 어머니를 구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실 테니까요.”
신호석 하나를 구하자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지 말이다.
“아까 물어보는 걸 깜빡했는데, 임태연 씨는 왜 신호석을 구하려는 겁니까?”
“으음……. 말씀드리면 바보 같다고 놀리실지도 모르는데.”
잠시 말을 멈춘 임태연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이나연과 김선빈에게 시선을 줬다.
다행히도 이나연은 눈치가 빨랐다.
하지만 김선빈은 아니었다.
멀뚱멀뚱 서서 눈싸움을 하던 김선빈은 결국 이나연에게 귀를 잡힌 채 강제로 끌려갔다.
겨우 보안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임태연이 말을 이었다.
“사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어요. 이 신호석이라는 캐릭터, 나랑 처지가 굉장히 비슷하다고.”
“……?”
“시현님은 이 게임에서 승리하면 어느 때로 돌아가실 건가요? 사실 지금 순위만 유지하면 시현님은 승자가 되시는 거잖아요.”
그의 말대로다.
소설이 끝날 때 상위 열 명은 승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시현은 그 열 명 안에 포함되어 있다.
지금의 순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글쎄요. 고민 중입니다.”
아무리 도움을 주고받았다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알릴 내용이 아니었기에 시현은 얼버무렸다.
반면, 경계심이란 게 없는지 임태연은 자신의 개인 정보까지 아낌없이 공개했다.
“지금은 까마득하게 멀어 보이지만 만약 제가 승리한다면,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로 돌아갈 거예요. 그리고 미래를 바꿀 겁니다.”
전혀 바보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참가자는 누구나 개인적인 사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이유도 있을 것이고, 이런 게임에 목숨 걸기를 주저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참가자가 자신과 유사한 형태의 아픔을 겪은 작중 등장인물에게 몰입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작중 인물을 구원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런 이유라면 설사 보수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도와주고 싶었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시현에게 충분히 먹혀들었다.
“알겠습니다. 처형장에 있는 사람들을 반드시 구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두 사람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이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며 말이다.
* * *
다음 날 아침.
날이 밝는 대로 시현은 준비에 착수했다.
악마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밤 시간을 피하기는 했으나 수가 많다 보니 적잖이 긴장감이 느껴졌다.
“형님, 제가 뭐 도울 일은 없을까요?”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기 뭣했는지 김선빈이 빈손을 꼼지락거리며 다가왔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아…… 네.”
간만에 어머니께 효도 한 번 해 보려다가 퇴짜 맞고 시무룩해진 아이처럼 김선빈은 한껏 풀이 죽었다.
“그러면 저희는 약속한 장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임태연은 그런 김선빈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힘든 일은 시현에게 맡겨 두고 저만 편히 쉬겠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엄연히 작전의 일환이었다.
“오빠, 저는 준비 끝났어요!”
이나연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팔에 청 테이프를 둘둘 감고 있었다.
비장한 얼굴로 뼈 소리를 내는 게 좀비가 아니라 누구 하나 담그러 가는 사람 같았다.
“그런 거 없어도 넌 구원자라 감염 안 되는데. 물리면 아프기는 하지만.”
“전에 영화에서 본 건데 갑자기 생각나서 한 번 해 봤어요. 배경이 전철 안이었으면 딱 좋았을 텐데……. 그보다 언제 시작할까요?”
“지금.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이거 받아.”
시현은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생명의 부적을 이나연에게 건넸다.
외피를 사용할 수 있는 시현과 달리 1레벨 구원자인 그녀는 소형 악마의 공격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나연은 시현이 얻은 최초이자 최고이며 유일한 패로, 쉽게 잃을 생각은 없었다.
“네가 2레벨 구원자가 될 때까지 빌려 줄게.”
“오…….”
반짝이는 눈으로 반지를 살피던 이나연이 왼손 약지에 반지를 착용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날짜는 언제로 잡을까요?”
“그거 임태연 씨한테 받은 건데.”
“에라이.”
입술을 비죽 내민 이나연은 자신의 흑도를 꺼내 들며 찌그러진 버스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바글거리는 좀비들이 보였다.
아침이라 행동이 굉장히 둔함에도 불구하고 위압감이 상당하다.
보통의 20세 여성이라면 겁을 집어먹을 법도 하건만, 흘러내린 앞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긴 그녀는 오히려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
“시작할게요.”
호흡을 길게 끊은 이나연이 흑도를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
발생한 폭풍이 광범위하게 악마들을 찢어발겼다.
[크아아아!]
[우어어어!]
좀비, 검은 늑대 할 것 없이 악마들이 몰살당했다.
썩은 살점과 핏방울, 내장들이 허공으로 솟구치다가 피의 비가 되어 바닥을 붉은색으로 적셨다.
징그럽기 짝이 없는 장관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피의 길은 건물의 정문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됐다! 이제 앞으로……. 어?”
기쁨의 환성을 지르던 이나연은 덮쳐 오는 어지럼증을 참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빠르게 달려간 시현은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이나연의 신체를 받아 들었다.
가만뒀으면 얼굴부터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괜찮아?”
“괜찮……지 않아요. 전혀 안 괜찮아. 죽을 거 같아.”
울상이 된 이나연은 앓는 소리를 냈다.
신체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것인지 시체처럼 축 늘어져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머리 아파……. 이거 두통 장난 아니에요. 유압프레스로 머리를 양쪽에서 누르는 거 같아.”
이나연은 이번 일격에 남아 있는 정신력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다 썼다.
위력만 놓고 보면 으뜸이라 언급되는 폭풍을 어제 한 번 사용했고,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한 번 더, 전력을 다했다.
강한 위력의 권능은 그만큼 막대한 양의 정신력을 소모한다.
정신을 잃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예정과 조금 다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현은 그녀를 등에 업었다.
“조금만 참아.”
시현은 멀리 보이는 처형장의 정문을 향해 달렸다.
[크아아아아!]
이나연의 권능은 어디까지나 길을 뚫었을 뿐 모든 악마를 토벌한 건 아니었다.
그들을 발견한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소리 없이 민첩하게 접근해 오는 검은 늑대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왼손으로는 이나연이 떨어지지 않게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흑도를 휘둘러 악마들을 처리했다.
구원자이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신체가 크게 흔들리는 건 불가피했고, 그럴 때마다 이나연은 곡소리를 냈다.
어떻게든 현관에 도달한 시현은 그 옆에 있는 외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김선빈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어쩌면 내부의 사람들이 경계하느라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한 시현은 김선빈의 이름을 꺼내 들었다.
다행히도 그 이름은 효과가 있었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후드를 입은 남학생이 문을 열었다.
“선빈이, 걔 아직 살아 있어요? 무사해요?”
얼굴 가득 담겨 있는 걱정만으로도 남학생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신호석.
김선빈의 친구이자 임태연이 구원하고자 했던 등장인물이었다.
* * *
[키아아아아!]
눈앞에서 시현을 놓친 좀비들은 광분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로막는 문을 부수기 위해 마구 팔을 휘둘러 댔다.
그러자 두꺼운 철문이지만 좀비의 힘에 의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경첩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비명을 질렀다.
시현은 온몸의 체중을 더해 문을 막았다.
당장 문을 두드리는 좀비를 처치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장 문 앞의 좀비를 처치한다 해도 그 뒤에 줄을 서고 있는 다른 놈이 문을 두드릴 터라, 무의미한 소모전만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게 낫다.
어차피 좀비의 기억력은 길지 않다.
“잠시만 버텨 주세요! 문을 막을 가구를 가지고 올게요.”
집 안에는 세 사람이 존재했다.
신호석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단발에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는 여학생인 김다혜다.
세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여 무거운 가구들을 옮겼다.
가구를 이용해 현관을 틀어막고 버티니 서서히 현관을 두드리는 힘이 약해졌다.
자신들이 무엇을 쫓고 있었는지, 왜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인지 그새 잊어버린 것이다.
겨우 공세를 막아 내는데 성공한 시현과 신호석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관이 뚫릴 뻔했네요.”
“미안. 도움을 주려고 왔는데 오히려 민폐를 끼쳤네.”
“괜찮아요. 안 뚫렸으면 된 거죠.”
마음 착한 신호석은 이런 상황인데도 싫은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성품이 착하다 말하는 사람도 살아남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하는 세계이건만, 아직도 이런 순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호석의 인성이 얼마나 올곧은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복수를 위해 학교의 바리케이드를 부순다니, 믿기 어려운 변화다.
“그런데 선빈이는……. 아, 그보다 먼저 자기소개가 우선이겠죠. 신호석이라고 합니다. 고3이고요. 이쪽은 저희 어머니고, 이쪽은…….”
“이 개자식아!”
돌연 욕설과 함께 시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이 날아왔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