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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34화 (34/225)

[34화]

퍼억!

리퍼의 꼬리가 시현을 강하게 가격했다.

사정거리가 길고 시야 밖에서 기습적으로 가해지는 꼬리 공격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강한 충격에 허공을 난 시현은 도로의 난간에 처박히고 말았다.

철제 난간이 크게 휠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런…….”

등과 허리에서 통증이 일었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외피가 찢어진 것이다.

외피가 회복될 때까지 적어도 하루는 꼬박 소요될 터, 그때까지 시현의 내구도는 일반적인 생존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시현은 도망가거나 하지 않았다.

‘거의 다 됐어.’

단검을 강하게 쥔 시현은 몸을 일으켰다.

리퍼는 몸을 회전시키며 꼬리를 휘둘렀다.

꼬리가 도로를 때리자 아스팔트 파편이 시현을 노리며 빠르게 날아왔다.

‘이제부터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치명상이다.’

시현은 이를 악물고 전탄 회피에 성공했다.

그런 시현을 기다리는 것은 리퍼의 손톱이었다.

단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 냈으나 근력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콰앙!

흘려보낸 리퍼의 손톱이 바닥에 박혔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길게 손톱자국을 내며 아스팔트를 파냈다.

“허억……. 허억…….”

시현은 거친 숨을 토했다.

만약 공격을 흘려내지 못했다면 바닥에 처박힌 채 목이 꺾였을지도 모른다.

공격을 흘려보낸 팔이 저렸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았다.

‘막는 것도 안 돼. 회피밖에 답이 없어.’

리퍼가 쉬지 않고 시현을 몰아붙였으나 그는 뒷걸음질 치며 회피에 전념했다.

그러던 도중 시현의 등이 난간에 닿고 말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된 것이다.

콰앙!

이어진 리퍼의 공격을 단검으로 막았으나, 결국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고 말았다.

떨어진 단검이 애처롭게 바닥을 굴렀다.

누가 봐도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키아아아아!]

리퍼는 목을 울리며 기쁨을 표현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지 바로 끝을 내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궁지에 몰린 사냥감을 농락했다.

이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시현의 죽음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리퍼의 눈에 비친 시현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 거리라면 빗나갈 일도 없겠지.”

시현이 손을 뻗자, 손바닥이 리퍼의 가슴에 닿았다.

“폭풍.”

콰아아아!

그의 손끝에서 쏟아진 날카로운 폭풍이 리퍼의 전신을 난자했다.

[……!]

리퍼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조차 바람이 내는 굉음에 파묻히고 말았다.

두르고 있던 외피를 사정없이 찢어발기고 리퍼를 넝마로 만들었다.

사정없이 핀 튀가 시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적셨다.

제로 거리에서 발현된 에르의 권능은 결국 리퍼를 무릎 꿇렸다.

쿵!

[키이이이…….]

쓰러진 리퍼가 혀를 내민 채 헐떡였다.

흉포한 기세는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처량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현이라 해서 정상인 건 아니었다.

“끄아아아……. 이래서 이건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마어마한 두통의 원인은 과도한 정신력의 고갈이다.

도끼로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면 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폭풍이 빗나가기라도 했다면 시현은 무력하게 리퍼의 점심 식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중형 악마를 일격에 빈사 상태로 만들다니. 역시 에르의 권능이네.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어.”

역시 원작에서 많은 구원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한 에르의 권능다운 위력이었다.

인간을 한순간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의 폭풍은 중형 악마인 리퍼가 상대여도 유효했다.

“그래도 소모 값을 줄이지 않으면 써먹기 힘들겠어.”

탈진 상태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소요됐다.

만약 도중에 좀비 한 마리라도 나타났다가는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얼마 전에 루스의 낙인을 가진 물고기로 몸보신을 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빠른 회복력 덕에 시현은 얼마 안 가 무사히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아직도 살아 있네.”

굉장히 질긴 생명력을 지닌 리퍼는 아직까지도 명줄이 붙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롭기는 하지만 말이다.

시현은 지금까지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장비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어서 온몸이 바람 맞은 잔가지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피가 나도록 입술을 씹으며 조정 간을 단발에 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쏘아진 총알이 리퍼의 머리에 파고들었다.

그 반동에 엉덩방아를 찧을 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총알은 리퍼의 단단한 두개골을 뚫지 못했다.

다시 몸을 일으킨 시현은 방법을 바꿨다.

리퍼의 가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갈비뼈 사이를 노릴 생각이었다.

요란한 화약 소리와 함께 리퍼의 몸속으로 총알이 파고들었다.

한 발로는 부족했다.

두 발.

세 발.

네 발째가 되어서야 총알이 심장에 도달했다.

리퍼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혹시 몰라 한 발을 더 쏴 봤지만 리퍼는 고통에 포효하지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됐다!”

희열이 전신을 감쌌다.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편법 없이 중형 악마를 토벌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자랑해도 좋을 업적이다.

그 증거로 조금 전부터 붉은 문자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 성공했군요. 역시 유망주다워요. 하지만 조금 무모한 면도 있네요.

—나는 소현이 일편단심이었는데 요즘은 이쪽 소설도 흥미로워.

그들 모두가 시현이 세운 업적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관심 종자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고생 끝에 리퍼를 토벌하는데 성공한 지금 만큼은 그들의 관심과 감탄이 시현을 즐겁게 했다.

* *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요! 형님은 제 영웅이십니다. 앞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물어보면 형님의 이름을 댈게요!”

남학생은 전심전력을 다해 감사를 표했다.

남학생의 이름은 김선빈이었다.

딱히 자기소개를 한 건 아니지만 명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김선빈, 분명 원작에서 본 거 같은데.’

오래지 않아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본래라면 기억하지 않았을 이름이지만 그가 신호석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 기억이 났다.

그는 신호석의 오랜 친구로, 제 어머니를 구하러 가는 신호석을 돕기 위해 같이 학교에서 나왔다.

하지만 좀비 무리를 피해 달아나는 도중 신호석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 후에도 김선빈은 복귀하지 못했다고 한차례 언급되었을 뿐, 이후로는 쭉 등장하지 않는다.

‘복귀하지 못한 이유가 리퍼 때문이었구나.’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학생의 미래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꿨다.

그리 생각하니 리퍼와의 싸움을 통해 누적된 노고와 피로가 어느 정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리퍼한테 잡힌 거야?”

“좀비들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데 차에 기름이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 차가 있어? 상태는 어때. 멀쩡해?”

기대조차 없었던 이동 수단의 등장에 시현이 눈을 빛냈다.

성수대교를 건너기 전까지만 해도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을 누비던 시현이다.

부지불식간에 뚜벅이가 되어 그렇지 않아도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이동 수단의 등장이라니, 욕심이 났다.

“멀쩡하기는 해요. 기름이 다 떨어져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리퍼한테 잡히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면 기름만 찾으면 되겠네. 그거 경유차야? 아니면 휘발유?”

“경유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형, 부탁드릴 게 하나 있는데…….”

김선빈이 쭈뼛거리며 눈치를 봤다.

도움을 받은 주제에 부탁하려니 양심에 가책을 느낀 게 분명하다.

“뭔데?”

시현은 김선빈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김선빈이 입을 열었다.

“사실 신호석이라고, 제 친구가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제 차를 선물로 드릴게요. 보아하니 관심 많으신 거 같던데.”

“아아…….”

무심결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아직 미성년인데도 불구하고 친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가난을 핑계로 인간관계를 소홀히 했던 시현으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친구라 하니, 현실에 두고 온 박세윤이 떠올랐다.

‘세윤이라면 어쩌면……. 그러고 보니 그놈이랑 저녁 약속 잡았는데.’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그리운 감정을 고이 접어 정돈한 시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신호석의 구출은 시현의 목표이기도 했다.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약속은 꼭 지킬게요.”

“차는 됐으니까 학교까지만 태워 줘.”

“네? 고작 그 정도로…….”

“됐다니까.”

여기서 입 쓱 닫고 추가 보수를 냉큼 받아먹기에는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런 시현의 속내를 알 리 없는 김선빈은 감동에 젖은 눈으로 앞서 걷는 시현의 뒷모습을 쫓았다.

“저뿐만 아니라 제 친구까지 구해 주시면서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으시다니…….”

조금만 더하면 눈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을 기세다.

그러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던 시현은 그의 작은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임태연이 신호석을 구하고자 하는지 이유를 못 물어봤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문득 생겨난 의문이었다.

대게 참가자가 큰 손해를 감수하고 등장인물을 구하는 이유는 대상에게 은혜를 입히기 위함이다.

시현이 이나연에게 그랬듯이 능력과 인성이 입증된 등장인물의 호감을 사 아군으로 영입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신호석은 그리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다.

‘어머니를 잃은 신호석은 복수에 미쳐 날뛰다가 다른 생존자들에게 배척받게 돼. 복수 대상의 계략에 넘어가 복수는 화려하게 실패하고 학교에서 쫓겨났으며, 종래에는 학교의 바리케이드를 부숴 먹어 학교를 위험에 빠뜨린 멍청한 인간. 그게 신호석이야.’

그렇다면 임태연은 무슨 이유로 신호석을 구하려는 것일까.

아쉽게도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은 지금 옆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까지 가고 싶어졌다.

그곳에 가야만 임태연을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 * *

목적지인 처형장까지의 거리가 그렇게까지 먼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걸어서 가려니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중간 중간 악마의 습격이 있어 몇 번이고 걸음이 지체되고 말았다.

시현이 처형장 인근에 도착했을 때는 별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여기부터는 위험해요.”

한 번 와 본 길이기에 길 안내를 하던 김선빈이 말했다.

“저기 코너를 돌면 버스를 이어 붙여 만든 울타리가 있는데, 안쪽에 좀비가 쫙 깔려 있거든요. 게다가 망할 약탈자 놈이 순찰을 돌기도 하고요.”

균열이 가득하고 이상한 식물에 잠식당한 건물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선 김선빈의 호흡은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그에게 있어 악마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 악마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글거리는 장소가 아닌가.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

“어디 보자.”

시현은 살짝 고개를 빼서 상황을 확인했다.

김선빈의 말대로 커다란 버스를 메인으로 다양한 차량과 컨테이너를 모아 만든 울타리가 보였다.

[으어어어어…….]

울타리 안팎으로 수많은 좀비가 멍청한 소리를 흘리며 목적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울타리 너머 붕괴한 건물들 가운데서 유난히 멀쩡해 보이는 건물이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처형장이다.

마치 망망대해 위에 오롯이 떠 있는 뗏목을 보는 듯 위태로워 보였다.

문제는 좀비뿐만이 아니었다.

크기가 2미터는 될 법한 식인 식물이 도처에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썩은 시체일 뿐인 좀비에게는 반응하지 않고 있지만, 가까이 가면 줄기를 뻗고 주둥이를 벌리며 포식을 준비할 거다.

저걸 뚫고 생존자가 탈출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그리고…….’

살짝 눈을 돌리면 컨테이너 박스 위에 감시탑이 보였다.

급하게 쌓아 올려 허술한 구석이 역력한 감시탑 주변에 다섯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저놈들까지 고려하면 구원자 한둘로는 부족하지. 어째서 처형장에서 살아 도망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지, 눈으로 보니 알겠네.’

“형님, 가능할 거 같아요? 막상 현장을 보니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 아닐까 싶네요.”

“가능이야 하지. 문제는 저놈들을 전부 소탕하려면 하루 이틀로 끝날 거 같지가 않다는 거야.”

좀비의 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많았다.

하나하나 상대하다가는 끝이 없다.

이나연의 권능을 사용하면 단번에 대량의 좀비를 학살할 수 있지만, 폭풍은 강한 위력에 비례해 소모 값이 큰 권능이다.

소모 값에 페널티가 없는 이나연조차 하루 두 번, 무리하면 세 번은 사용이 가능할 정도다.

모방을 사용한 폭풍은 시현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므로 현명한 수단이 아니다.

‘울타리를 부숴서 악마들을 밖으로 빼낼까?’

당장의 목적만 생각하면 제법 괜찮은 수단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악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 주변에는 하루하루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하는 생존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만약 울타리 안에 있는 대량의 악마를 풀어 버리면 그들 중 상당수가 악마에게 사냥당하고 말 것이다.

울타리 안의 악마는 그 안에 있는 게 좋으리라.

“아무래도 길을 뚫어서 안의 사람들만 데리고 나오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것 같아. 세 사람 정도야 문제없겠지.”

“세 사람?”

“세 사람이요?”

시현의 말에서 오류를 발견한 김선빈과 이나연이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구해야 하는 사람은 신호석과 그 어머니.

당연히 세 사람째는 고려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말 안 했구나. 지금 처형장에 있는 사람은 세 명이야. 신호석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든 시현이 한 사람을 언급할 때마다 손가락 한 개씩 굽혔다.

마지막 검지 하나가 남았을 때, 시현의 표정이 미미하게 구겨졌다.

“김다혜.”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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