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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31화 (31/225)

[31화]

“스파이크 트랩?”

햇빛을 반사해 흑색의 가시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브레이크를 당기기도 전에 오토바이의 바퀴가 스파이크 트랩을 밟았다.

날카로운 금속 가시에 고무 타이어가 터지며, 두 사람을 태운 오토바이는 도로 위에 미끄러졌다.

“와아아아악!”

여성스럽지 못한 비명이 배후로부터 들려왔다.

“망할!”

어떻게든 바로 세우려 했으나 결국 오토바이는 쓰러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성수대교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비록 몇 바퀴나 바닥을 구르기는 했어도 외피 덕에 상처 없이 무사히 착지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철컥.

하지만 달갑지 않은 소리와 함께 차가운 무언가가 시현의 머리에 겨눠졌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것의 정체는 총구였다.

“움직이지 마. 허튼수작 부리면 방아쇠를 당길 거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이거 모델건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총이야.”

어느새 몰려든 다섯 명의 남자가 시현을 포위하고 있었다.

모두가 군복을 걸쳤으며, 세 명은 K2 소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일단 가방부터 내려놔.”

총을 든 남자가 더욱 가까이에 총구를 들이밀며 시현을 협박했다.

언제라도 탄을 발사할 수 있게 남자의 검지는 방아쇠에 올려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시기에 한강 다리에 진을 치고 약탈을 일삼는 놈들이 있었지. 조금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시현은 이들의 정체를 단번에 간파했다.

약탈자들.

식량이나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주저 없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하는 그들은 이름만큼이나 악랄하기 짝이 없는 세력이다.

외피를 사용하는 2레벨 구원자가 적은 초창기에 총기로 무장한 약탈자들은 자타 공인 최강이자 최악의 세력으로 군림했다.

‘요즘 나보다 약한 놈들만 때리고 다녀서 그런지 너무 자만했어.’

조금만 신중했어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만은 독이건만, 저도 모르는 사이 목구멍을 열고 독을 들이붓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분개한 시현은 이를 갈았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외피를 가진 자신이라면 모를까, 아직 1레벨 구원자에 불과한 이나연에게 총은 치명적인 무기다.

그녀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는 총구 탓에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초조함에 아랫입술을 씹던 이나연이 시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현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가방부터 내놓으라고! 안 되겠다. 일단 제압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간부가 지시를 내렸다.

고개를 끄덕인 상병이 시현의 복부에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자세가 불안정하게 쓰러진 시현에 사정없는 발길질이 쏟아졌다. 고통은 전혀 없었지만 불쾌한 감각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얌전히 따르는 척하다가 기회를 노려야 하나?’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찰나, 차가운 금속 소리와 함께 눈앞에 무언가가 던져졌다.

FPS 게임에서 본 적 있는 물건이다.

“……연막탄?”

촤아아악!

원통에서 대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와아아악! 이, 이게 뭐야? 앞이 안 보여!”

“이런 빌어 처먹을! 또 임태연 그 자식인가…….”

병사들은 짙은 연막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뭔지 모르겠지만 기회다!’

판단을 마친 시현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흑도를 휘둘러 자신에게 발길질을 해 대던 병사를 빠르게 제압했다.

“으아악! 팔, 내 팔!”

어깨와 팔을 얻어맞은 병사는 무기를 떨어뜨린 채 눈물을 쏟았다.

빈틈투성이다.

‘마무리할까?’

지금이라면 간단하게 그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가 아님을 깨닫고 몸을 돌렸다. 이나연을 겨누고 있던 병사가 당황한 나머지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른다.

시현은 연막을 뚫고 달렸다.

희뿌연 연막 사이로 희미하게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시현은 있는 힘껏 흑도를 휘둘렀다.

흑도는 상대방의 우측 팔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끄아아악!”

비명과 함께 상대방이 바닥을 뒹굴었다.

마무리를 위해 상대방에게 접근한 시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아무리 연막이 짙어도 코앞에 있는 인물의 이목구비까지 감춰 주지는 못한다.

쓰러진 상대는 병사가 아니었다.

팔을 붙잡은 채 거품을 물고 있는 이는 기껏해야 1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왜소한 체구의 남성이었다.

“오빠? 도대체 왜…….”

남성의 옆에는 당황한 이나연이 크게 뜬 눈을 깜빡이고 있었고, 발치에는 정신을 잃은 병사가 제압되어 있었다.

“아!”

그제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약탈자들에게 제압된 시현과 이나연을 구하기 위해 연막을 던진 주인공일 것이다.

아마도 연막을 던진 후 곧바로 진입해 이나연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를 제압하고 그녀를 구했을 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시현이 뛰어든 것이다.

“……사고 쳤네.”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방금 그 비명 뭐야?”

“소대장님! 이쪽에 진철이가 쓰러져 있습니다! 망할, 그 새끼들 다 죽여 버릴 거야!”

“무턱대고 쏘지 마! 전에도 비슷한 상황 있었잖아. 마구잡이로 쏘다가 우리 팀에서 수호 죽은 거 기억 안 나?”

연막 속에서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연막의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으니 일단 빠져나간 후 연막을 포위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듯 소위는 당황하지 않고 병사들을 지휘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저들에게 둘러싸이고 마니, 일단은 이 장소를 벗어나야 했다.

시현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고통에 신음하는 남성을 들쳐 업었다.

“나연아, 달릴 수 있지?”

“네!”

시현은 병사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반대 방향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배후에서 이나연이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의 말대로 연막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마저도 강한 바람에 의해 빠르게 흩어지고 있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시현은 무턱대고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성수대교 인근의 공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시현은 걸음을 멈췄다.

“흐아……. 흐억……. 주, 죽겠다. 이러다 죽겠어.”

체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쓴 이나연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주위를 한 번 둘러봤으나 약탈자들이 뒤를 쫓는 기색은 없었다.

무사히 따돌린 것이다.

“내려 주세요.”

귓가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시현은 남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지간히도 고통스러운 건지 남자는 맞은 부위를 감싼 채 울먹이고 있었다.

커다란 눈에 맺힌 눈물방울과 온몸을 흠뻑 적시는 식은땀을 보고 있자니 양심에 느껴지는 가책이 장난이 아니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사과하는 게 상책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물론 입으로만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꼴이 되었습니다만, 이걸 사용해 주세요. 치료와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될 겁니다.”

시현은 소지하고 있는 A형 치료제 중 하나를 남자에게 건넸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유리병에 찰랑이는 붉은 액체를, 남자는 기꺼이 마셨다.

“후우……. 이제 좀 살 거 같다. 죽는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치료제가 몸에 돌기 시작한 것인지 남자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나저나 두 분 다 고생하셨네요. 하필이면 약탈자들. 그 더러운 진철중의 개들한테 걸려 가지고.”

그 한마디로 시현은 남자의 정체를 파악했다.

‘참가자군.’

의심이 아닌 확신이었다.

애초에 참가자가 아닌 이상 약탈자들의 리더인 진철중의 이름을 알고 있을 리 없다.

남자 역시 시현이 참가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선행을 베풀었는데 토큰을 획득했다는 알람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오로지 하나, 상대가 참가자일 때뿐이니까.

“어……. 음……. 임태연이라고 합니다. 스무 살이고, 짐작하셨겠지만 참가자입니다.”

눈치를 보던 임태연이 먼저 손을 뻗었다.

“윤시현. 참가자입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면서도 서로를 향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지쳐 쓰러진 채 헐떡이던 이나연만이 ‘참가자? 그게 뭔데?’라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제야 임태연이 이나연에게 시선을 줬다.

“그쪽 여성분도 참가자이신가요?”

“아니요. 저는 이나연인데요.”

“이나연? 설마……!”

그녀의 이름을 들은 임태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당연한 반응이다. 원작을 읽은 참가자라면 이나연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마트에서도 이나연과 정수혁이 마주치지 못하게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시현을 바라보는 임태연의 시선이 바뀌었다.

지금까지가 평범한 참가자를 보는 시선이었다면, 이제는 능력 있는 참가자를 보는 시선이다.

“저기요, 시현님!”

“……님?”

“혹시 퀘스트 하나 해 볼 생각 없으세요?”

조금 전까지 눈앞의 참가자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망설이던 그 남자와 동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임태연의 태도가 변했다.

무언가 원하는 게 있는지 굉장히 적극적이다.

“아, 퀘스트라 해서 뭐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니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돼요. 시현님 정도로 능력 있는 분께는 어렵지 않은 일이고, 물론 보상은 두둑하게 챙겨 드릴 겁니다.”

“도움을 받은 입장이기에 가능하면 도와드리고 싶지만, 일단 들어보고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나연이는 다 쉬었으면 주변 경계 좀 부탁할게.”

사실을 말하자면 괜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다른 참가자에게 빚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임태연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 그 은혜는 최대한 빨리 돌려주는 게 제일이다.

뻔뻔하게 없었던 일로 치부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나연이 자리를 비우는 것을 확인한 임태연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신호석, 그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신호석?”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러나 임태연이 추가 설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작의 등장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듣자마자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크게 비중이 없는 엑스트라라는 뜻이고.

잠시 고민하던 시현은 기억의 저편에 파묻혀 있던 신호석이라는 이름을 가까스로 발굴해 낼 수 있었다.

주인공 정훈의 두 번째 에피소드의 무대였던 장소.

학교에 소속된 등장인물로, 에피소드에서 나름 비중이 있던 남학생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가 안 좋은 방향으로 활약을 했다는 거다.

“신호석이라면 의도적으로 학교의 바리케이드를 파괴해 악마들을 안으로 끌어들인 빌런이었죠?”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신호석이 불쌍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불쌍하다고요?”

그는 그 평화롭던 학교에 수많은 죽음을 불러온 빌런이다.

그런데 불쌍하다니?

분명 이유가 있을 테지만 시현의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신호석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자세히 읽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군요.”

“으음…….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신호석의 어머니 때문이죠. 신호석의 어머니가 지금 약탈자들이 만든 처형장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아!”

처형장.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비로소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약탈자들은 약탈 행위를 함에 있어서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는다.

식량과 물자는 물론 생존자가 입고 있는 옷가지까지 약탈하며 저항할 경우,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생존자를 상품으로 취급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약탈자들은 배신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약탈자들의 리더 진철중은 본보기를 위해 처형장을 만들었다.

구조는 간단하다.

특정 건물의 주변에 먹이를 뿌리는 것으로 악마들을 모이게 만든다.

그다음 버스나 대형 트럭, 컨테이너 박스 등을 이용해 울타리를 쳐서 모여든 악마가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해당 건물은 악마를 이용해 배신자를 가둬 두는 감옥이 되는 것이다.

배신자는 들끓는 악마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식수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결국 견디다 못 한 배신자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건물을 벗어나 살길을 도모한다.

그리고 열이면 열, 악마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악마에게 산 채로 뜯어 먹히는 모습을 보며 약탈자들의 세력원들은 뇌리에서 배신이라는 단어를 싹 지워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붙은 이름이 처형장이다.

“신호석의 어머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초기. 약탈자들이 그렇게 악랄한 집단인지 모르고 생존을 위해 몸을 의탁했습니다. 실상을 알고 난 후 몸을 빼려 했으나 붙잡혀서 처형장에 가둬지게 됐죠.”

“그렇다면 신호석의 어머니를 구출하시려는 겁니까?”

“네, 성공하면 신호석이 빌런이 되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임태연에게서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처형장의 생존자를 구출하는 건 구원자라 해도 혼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처형장 안에 있는 악마들도 문제지만, 처형장의 울타리 주변에서 약탈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이 있으십니까?”

“네, 일단 LT마트에 갈 생각입니다. 그곳에서 정훈과 한씨 남매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고요. 정의감이 투철한 그들이라면 흔쾌히 도와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적절한 보수도 준비했고요. 거기에 시현 씨가 저를 도와준다면 신호석의 어머니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 거예요.”

“LT마트라…….”

아는 이름이 나왔기에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대한민국 땅에 LT마트는 다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임태연이 말하는 LT마트는 주인공인 정훈이 있고, 그를 돕는 한씨 남매가 진을 치고 있는 그 LT마트다.

하지만 지금의 LT마트는 임태연의 요청을 들어줄 능력이 없다.

“LT마트에는 임태연 씨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혹시 지금까지 LT마트에 계셨나요?”

“네, 때문에 정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수혁이라는 참가자로 인해 한예인이 사망했으며, 한기훈의 인격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정훈은 도중에 누가 채 간 건지 LT마트에 합류하지 않았고요.”

“……그렇군요. 이제 어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임태연은 크게 절망했다.

LT마트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신호석의 어머니를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럴싸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임태연은 죽을상을 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임태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시현이 결단을 내렸다.

그가 있었기에 무사히 약탈자들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임태연 씨, 굳이 LT마트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

“네?”

임태연이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혹시라도 다시 되묻는 일이 없도록 시현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다.

“지금 인원으로 해결하도록 하죠. 보수도 필요 없습니다. 저 역시 임태연 씨에게 도움을 받았고, 실수로 상해까지 입혔으니까요.”

“하지만…….”

도와주겠다는 데도 임태연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LT마트의 세 명을 끌어들여 여섯이 뭉쳐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걸 고작 셋이서 해결한다?

성공은 고사하고 사망자가 나올 거라고 임태연은 생각했다.

약탈자들의 전력과 처형장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참가자라면 누구나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달랐다.

“괜찮습니다. 신호석과 그 어머니, 두 사람만 구해 오면 되는 일이잖아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 네.”

임태연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어디까지나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임태연에게는 주제도 모르는 허세로 보였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시현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게다가 나연이가 가진 권능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아! 에르의 권능!”

그제야 임태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못 미더웠던 시현이 이나연에게로 향하는 순간 극도의 신뢰로 바뀌었다.

“그렇군요! 그 천살성 이나연이 메인이 되어서 좀비들을 소탕해 준다면 두 사람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역시 시현님, 대단해요!”

어째서일까.

분명 임태연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계속 뒤통수만 보였다.

그의 시선은 시현이 아닌 이나연에게 못 박혀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가 시현을 ‘시현님’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원작에서 최강의 반열에 오른 이나연을 영입했기 때문에 그리 부르는 것뿐이다.

별거 아닌 일인데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래도 임태연 씨가 착각하고 계신 거 같은데.”

“네?”

“제가 메인입니다.”

“……네?”

“제가 주인공, 쟤는 조연.”

“아, 네. 물론이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임태연의 시선은 이나연을 향해 있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임태연에게 똑똑히 알려 줄 필요가 있을 듯싶었다.

자신이 쓰고 있는 Re write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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