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으아아악! 예인이는 내가 원작에서도 가장 아끼는 애였는데!
—정해수를 초반에 제거할 수 있어서 기뻐했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동생을 잃은 한기훈이 제 역할을 해낼 리가 없고. 망했네.
댓글에 한예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속출했다.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훈과 한씨 남매를 동시에 영입하려 했는데. 한예인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죽는다고?’
원작이 개악되었다.
그녀 덕분에 생존자들의 태반이 무사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이 죽었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구출해 준 시현에게 감사하는 한편, 한예인의 죽음에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저 살겠다고 한예인 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한 그들의 눈물이 시현에게는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어쩌실 생각이에요?”
가까이 붙은 이나연이 소곤거렸다.
필사적으로 소리를 낮추는 게 한기훈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어쩌긴. 어떻게 된 건지 조사해야지.”
“조사요? 악마의 대규모 습격이 원인이니 불행한 사고……. 재앙 아닌가요?”
누구라도 이나연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악마가 인간을 습격하는 데는 달리 이유가 없으니까.
문을 열어 주지 않은 2층의 생존자들을 비난할지언정, 모두가 불행한 사고로 납득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곳에 시현이 없었다면 말이다.
“아까 살짝 봤는데 1층에 최소 다섯 종류나 되는 악마의 흔적이 있었어. 좀비, 검은 늑대, 거대 박쥐, 돌두꺼비, 야광조. 스치듯 본 게 그 정도니 아마 더 많은 종류의 악마가 공격해 왔을 거야.”
“그게 문제가 되나요?”
“너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악마가 무리 짓고 있는 장면을 본 적 있어?”
“으음…….”
이나연은 검지로 양쪽 관자놀이를 짚으며 기억을 떠올렸다.
“아! 좀비랑 검은 늑대요! 늘 같이 다니던데.”
“좀비의 경우 지능이 극단적으로 낮아서 검은 늑대나 거대 박쥐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거지, 같은 무리라 보기 어려워.”
“그렇다면……. 달리 없네요.”
“맞아. 없어.”
악마는 두려운 존재다.
하지만 악마가 결국 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악마는 결코 다른 종과 무리 짓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엄연히 먹이 사슬이 존재하며 활동 영역이 있다.
물론 인간이라는 손쉬운 사냥감이 있기에 간혹 서로를 발견하고도 간섭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대개 악마는 마주치면 약한 쪽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거나 힘이 비등할 경우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싸운다.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여러 종류의 악마가 무리를 지어 습격을 해 오는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것이다.
‘여러 종류의 악마가 무리 짓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명령.’
악마의 위에 서는 상위의 존재로부터 명령이 있을 경우, 악마는 먹이 사슬을 무시하고 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악마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는 아직 등장할 때가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신혈. 나는 아마 이쪽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어.”
“신혈이요? 그게 뭐예요?”
“구루벨의 축복을 받은 구원자는 신혈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어. 그자의 몸에 흐르는 피는 악마를 강하게 유혹해.”
나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줬다고 생각했지만 이나연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그 설명만으로는 감이 안 잡혀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마트의 1층에 신혈을 뿌렸다고 가정해 보자. 신혈의 향기는 수 초 내로 반경 수 킬로미터에 퍼져 나가. 향을 감지한 악마들은 종류 무관하게 눈을 뒤집고 신혈이 뿌려진 장소로 달려올 거야. 그리고 신혈을 탐하겠지.”
“…….”
그제야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지 이나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뿌려진 신혈이 누군가의 배 속으로 들어가거나 향이 옅어지고 나면 그제야 악마는 이성을 되찾아.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걸, 눈앞에 먹이가 있네? 그때 악마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먹이를 노리고 달려들겠죠.”
“바로 그거야. 사건 당시를 포함해 최근 외부인의 유입이 없었고, 정수혁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민성찬이 부자연스러운 이유를 대며 1층에 방문했어.”
그뿐이랴.
이나연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신혈의 존재를 알고 그를 이용할 수 있는 자는 참가자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건 불행한 사고가 아니라 참가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나연아, 도대체 누가 신혈을 뿌렸을까?”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나연이 머릿속으로 누구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는지는 안 봐도 훤했다.
정수혁이다.
시현은 원작의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빠른 성장을 도모하고 이나연이라는 장래가 보장된 동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원작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건 시현뿐만이 아니다.
다른 참가자들 또한 원작을 알고 있으며 활용하고 있다.
정수혁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지식을 유효하게 활용할 줄 아는 건 아니지.’
정수혁이 마트를 거점으로 삼은 이유는 한씨 남매와 원작의 주인공인 정훈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수혁은 원작의 지식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했다.
인간관계나 사람의 성향 따위를 무시하고 이익만을 쫓았다.
구조파를 배척할 경우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한씨 남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정수혁은 한씨 남매와 대립하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아도 규모가 작은 마트의 세력은 양분됐다.
각성을 마치고 구원자로서 무력을 선보이며 두 사람을 끌어안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무력에 굴복할 인간이 아닌데, 정수혁은 그걸 몰랐다.
정수혁은 한씨 남매의 무력을 원했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립의 골은 깊어졌다.
골을 다시 메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홧김에 일을 저지른 거겠지.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인지도 모르고.’
평생토록 자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시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웬 멍청한 놈 때문에 일을 다 말아 먹었다 생각하니 속에서 열이 났다.
물끄러미 시현을 응시하던 이나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지금 정수혁을 처리하러 가실 건가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 전에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확인하고 싶은 거요?”
“정수혁의 권능이 무슨 계열이게?”
“그거야 방어 계열……. 아!”
이나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 전.
한씨 남매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생존자들로부터 존경 어린 시선을 받고 싶었던 건지, 정수혁은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권능을 피력했다.
위성처럼 주변을 돌며 사용자를 보호해 주는 정사각형의 방패.
그것이 정수혁이 가진 권능이었다.
즉, 그가 가진 권능은 신혈이 아니다.
“도대체 신혈을 어떻게 구한 걸까? 그게 궁금해서 미치겠어. 구루벨의 축복이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럴 리가 없다고 끊임없이 되뇌었으나 자꾸만 그 빌어먹을 남자, 쳐 죽여도 시원찮을 이한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음……. 그런데 오빠, 과연 그 사람이 쉽게 정보를 넘겨줄까요?”
“당연히 안 넘겨주겠지. 그래서 권능을 사용할 거야.”
시현에게는 처형자 외에도 두 번째 권능이 있다.
타인의 능력을 카피할 수 있는 권능, 모방이었다.
시현은 모방을 이용해 두 개의 권능을 저장해 두었다.
하나는 이나연이 가진 폭풍.
다른 하나는 사망한 정해수가 가지고 있던 연기자다.
연기자 권능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마트에 잠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잠입에 성공했다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정수혁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막 들어온 신입에게 중요한 정보를 내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입임에도 정수혁의 신임을 살 수 있는 사기성 짙은 인물을 시현은 알고 있었다.
‘정수혁은 한씨 남매를 영입하려다 실패했어. 그런 정수혁 앞에 원작의 주인공인 정훈이 나타난다면?’
뻔한 이야기다.
정수혁은 정훈을 영입하기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려 할 것이다.
신혈에 대한 정보야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 * *
다음 날.
이른 시간부터 한기훈이 시현을 찾았다.
“나연이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듯했으나 여전히 한기훈의 눈가에는 오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슨 부탁이냐면…….”
“알겠습니다.”
“내가 그……어?”
“알겠다고요. 그 부탁 흔쾌히 들어 드려야죠.”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만.”
어처구니가 없었던 한기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뒤통수만 벅벅 긁어 댔다.
그러나 시현은 바보가 아니다.
정수혁의 계략으로 동생을 잃은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굳이 그의 입을 통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다.”
피식 웃은 한기훈이 시현의 어깨를 손등으로 가볍게 쳤다.
그 나름대로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일단 소매를 걷어 보실래요?”
시현의 요구에 한기훈은 의아해 하면서도 순순히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터질 듯한 팔 근육에 달라붙듯 새겨져 있는 낙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악마들을 상대로 도망가지 않고 착실하게 교전한 덕분인지 낙인은 빛나고 있었다.
“보아하니 각성까지 얼마 안 남은 것 같군요.”
“너 혹시 이 문신에 대해 알고 있어? 그날, 그러니까 종말의 날 이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생긴 건데. 나 말고 예인이도 가지고 있었어.”
“물론 알고 있죠. 한기훈 씨는 제가 악마들을 처치할 때 사용한 힘. 그게 사람이 단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게 가능할 리 없지.”
한기훈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한평생을 근육의 성장에만 사용한다 해도 시현이 보여 준 수준의 힘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힘이다.
“그러고 보니 정수혁. 그놈도 어느 날 갑자기 그 둔해 빠진 몸에 맞지 않는 힘을 얻었지. 이상한 초능력도 사용했고. 신의 축복이니 뭐니 해서 헛소리로 치부했는데 설마…….”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입니다.”
보다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 시현은 권능을 사용했다.
그의 손에 들린 식칼에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는 것을 확인한 한기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멸망한 세상에 신의 힘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그 축복이란 걸 받으면 나도 너나 정수혁, 그 인간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그리고 한기훈 씨는 낙인이라는, 권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죠. 그러니까…….”
“꾸준히 악마를 사냥하면 오빠처럼 강한 힘을 가진 구원자가 될 수 있어요!”
“…….”
대체 언제부터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걸까.
불쑥 끼어든 이나연이 마지막 대사를 멋지게 가로챘다.
모처럼 아는 내용이 나와 입이 근질거렸던 모양이다.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굳이 걸고넘어질 만큼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아까 조건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적어도 정수혁과 동급의 힘을 얻는 것. 그게 제가 거는 조건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으니까요.”
“요약하자면 악마를 사냥해라 이 말이지? 그 각성인가 뭔가를 마칠 때까지.”
자신의 낙인을 응시하는 한기훈의 눈동자가 불꽃이라도 품은 듯 일렁거렸다.
“잠시 나갔다 오마.”
목표가 생긴 한기훈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와도 같았다.
역을 벗어나는 한기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현은 대뜸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잠깐 다녀올게. 혼자 보내려니까 영 불안하네.”
한기훈의 각성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사람은 무리를 하게 되는 법이다.
본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기훈이 죽게 놔둘 수는 없으니 뒤를 봐줘야지 어쩌겠는가.
“오빠도 은근히 누구 보살피는 거 좋아한다니까.”
이나연은 바늘 가는데 실 가듯 자연스럽게 시현의 뒤를 따라갔다.
* * *
신혈의 여파 때문인지 역 주변에는 악마가 넘쳐났다.
덕분에 한기훈은 악마를 찾아 헤매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경험치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손등의 낙인이 당장이라도 개화할 듯 찬란하게 빛났다.
하지만 먼저 임계점에 도달한 낙인은 따로 있었다.
손가락만 빨고 있기도 뭐해 좀비 한 마리를 붙잡고 기술 연습을 하던 이나연의 낙인이다.
“어? 이게 다 뭐야? 웬 파란색 문자가 허공에…….”
그녀가 마무리 일격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으스러뜨린 순간, 화들짝 놀란 이나연이 부자연스럽게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오래도 걸렸네.”
그 모습을 보고 시현은 남몰래 환희를 터뜨렸다.
어지간히도 질질 끌던 이나연의 각성의 순간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옷 위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이나연의 낙인이 빛을 뿜어냈다.
“축하해.”
시현이 축하의 말을 건네자 이나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오빠! 드디어 성공했어요! 설마 마지막 한 마리가 부족해서 각성을 못 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딱 한 마리만 더 잡아 놓을 걸 그랬어요.”
축복의 효과 덕에 이나연은 이제야 미인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미모를 되찾았다.
머릿결은 찰랑거리고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끈하다.
분명 각성의 빛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 후광이 비춰지는 듯했다.
“지금이라면 악마가 떼로 몰려와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아요.”
강인해진 신체 능력 덕분에 이나연은 과도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당장이라도 힘을 사용해 보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표정이었다.
신체를 휘감는 고양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만능감.
그녀가 어떤 기분인지 시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연대 아파트에서 그녀의 권능을 모방했을 때 직접 느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기다려.”
다급히 손을 내민 시현이 막 악마를 향해 권능을 토해 내려던 이나연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왜 그래요? 제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해 보고 싶은데…….”
“한기훈 씨가 아직 각성하지 못했잖아. 네가 권능을 사용한 순간 정면의 악마들이 깔끔하게 소멸할걸? 다음 사냥감 찾는 것도 일이야.”
“아앗! 그것도 그러네요.”
그녀는 시현의 말에 긍정하면서도 퍽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 아쉬우면 내가 상대해 주고.”
“아니, 그건 좀……. 와아! 아저씨, 파이팅!”
들끓는 만능감을 완벽하게 잠재우는데 성공한 그녀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한기훈을 응원했다.
뒷덜미를 당기는 시현의 힘을 체감하고 깨달은 것이다.
각성을 했어도 시현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고.
“으아아아!”
폐를 쥐어짜 내듯 고성을 내지른 한기훈의 주먹이 검은 늑대의 두개골을 강타했다.
상당한 충격이었을 텐데도 검은 늑대는 물러서지 않고 이를 들이밀었다.
보통이라면 감염이 두려워서라도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없는지 한기훈은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이빨을 회피한 그가 손을 뻗어 검은 늑대의 머리채를 잡고 강하게 휘둘렀다.
[깨갱!]
인간 같지도 않은 괴력에 검은 늑대가 배를 드러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검은 늑대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한기훈은 사정없이 머리를 난타했다.
그냥 막 휘두르는 게 아니라 한 방 한 방에 분노와 온 힘을 다한 혼신의 일격이었다.
피가 튀고 부러진 이가 날아올랐다.
뇌를 때리는 충격의 연속에 허우적거리던 검은 늑대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헉……. 헉…….”
한기훈은 야차와도 같은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 새로운 사냥감을 찾는 그였으나, 애석하게도 낙인은 더 이상 악마를 사냥할 필요가 없다고 고해 왔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