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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9화 (19/225)

[19화]

바리케이드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지만 원작에 나타난 것보다 시기가 한참 빠르다.

뿐만이 아니다.

열심히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는 생존자들 근처에 지시를 내리는 자들이 보였다.

어설프게나마 지휘 체계까지 형성된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참가자가 있나 보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선객이 있었다.

원작의 정보를 살리는 건 시현만의 특권이 아니다.

생명의 탑에서 누군가가 이채연을 미리 채간 것처럼 말이다.

참가자로 인해 계획이 틀어질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당황스럽지도 않다.

“참가자요? 그게 뭐예요?”

시현의 혼잣말에 이나연이 머리를 불쑥 들이밀며 끼어들었다.

“그런 게 있어.”

아직 이나연에게 거기까지 정보를 알려 줄 단계는 아니다.

‘은근슬쩍 섞여 들어서 정훈의 합류까지 입지를 다지려 했는데, 방법을 바꿔야겠어.’

예상이 조금 틀어지기는 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포기하기에는 마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아쉽다.

시현은 머릿속에 있던 기존의 작전을 살짝 수정했다.

“나연아, 나랑 스마트폰 좀 잠깐 교환하자.”

“스마트폰은 왜요? 어차피 전화나 문자도 안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나연은 순순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건넸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후 스마트폰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희망 때문이다.

언젠가 통신이 복구되면 구조를 요청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근거고 뭐고 없는 막연한 희망 말이다.

그녀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시현은 자신의 것을 그녀에게 넘겨줬다.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지? 지금부터 너한테 작전을 알려 줄 테니까 잘 들어.”

“작전이요?”

시현은 그녀에게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계획을 상세히 전달했다.

가끔 되묻기는 했지만 이나연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해력과 암기력을 과시했다.

“완전히 이해했어? 조금이라도 수상한 부분이 있으면 안 되니까 다시 한번 복습할까?”

“오빠, 제가 학점은 B-에서 C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만 암기력만큼은 자신 있어요.”

“이거 어쩌냐. 학점을 들으니까 영 신뢰가 안 생기는데.”

그래도 지금은 이나연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준비는 끝났다.

시현은 오토바이를 끌고 마트로 향했다.

“멈춰!”

바리케이드를 만들던 생존자 중 한 사람이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여기는 이미 만원이다. 다른 곳으로 꺼져. 나눠 줄 식량이나 물 따위는 없어.”

근육질에 험악한 인상이 돋보이는 남성이 표정을 확 구기며 파리를 쫓듯 손짓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접근해 온 방문객이 제법 많았는지, 그 행동에 일말의 죄악감도 없었다.

느껴지는 건 익숙함뿐이다.

“요 며칠 괴물들을 피해 다니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잤습니다. 선처 좀 부탁드려요.”

시현은 얼굴 표정에 최대한 간절함을 담으며 말했다.

보통이라면 연민을 느껴서라도 고개를 끄덕일 법하지만.

“안 돼. 돌아가.”

남자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시현은 이나연에게 신호를 줬다.

고개를 끄덕인 이나연은 시현에게 건네받은 대본대로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 씨! 그러니까 내가 얌전히 그 여자 집에 있자고 했잖아!”

언성을 높이며 시현의 어깨를 잡고 볏단을 털듯 탈탈 털어 댔다.

그리고 시현은 찌질한 대학생을 연기했다.

“하지만 좀비가…….”

“좀비 한 마리 기어 들어온 게 무서워서 꽁지 빠지도록 도망을 가냐?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 산더미처럼 남아 있는 물이랑 식량만 있으면 두 달은 족히 버틸 수 있는데!”

“무서운 걸 어떻게 해.”

“어휴. 등신!”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운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이나연의 연기는 뛰어났다.

흔히 말하는 메소드 연기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런지 어깨를 흔드는데 가감이 없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그러다 이 정도로는 모자라다 여겼는지 등짝에 스매싱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야, 적당히 해.’

시현은 이나연에게 신호를 줬다.

맡겨만 달라며 고개를 끄덕인 이나연은 어째서일까.

팔로 시현의 목을 두르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귀청이 찢어지도록 언성을 높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신호를 반대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망할.’

그래도 효과는 탁월했다.

“집에 식량을 가지고 있다고?”

남자의 눈에 탐욕이 일었다.

이런 시국에 식량과 물은 얼마든지 있어도 부족한 법이다.

“아, 네. 좀비 한 마리가 기어 들어오는 바람에 당황해서 도망치기는 했는데. 집에 두 사람이 두 달은 버틸 만큼 식량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시현의 집에는 그 흔한 참치 통조림, 맛김 한 통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오면서 편의점에서 챙겨 온 식량이 가득 담긴 빵빵한 배낭이 시현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 가만 생각해 보니 위기 상황에 같은 인간끼리 서로 돕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아, 난 민성찬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민성찬이라 소개한 남자는 결국 미끼를 물었다.

조금 전에 본인의 입으로 내린 축객령을 까맣게 잊었는지 태도가 호의적이다.

물론 여전히 두 눈에는 숨기지 못한 탐욕이 일렁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시현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해서 낚시가 끝나는 건 아니다.

건져 올리기 전에 방심했다가는 줄을 끊고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민성찬과 달리 누가 봐도 의심할 구석이 하나 없는 완벽한 미소였다.

이나연도 활짝 웃었다.

“그렇죠. 같은 인간끼리 돕고 살아야죠. 이 오빠랑은 다르게 아저씨는 남자답네요. 엄청 멋있어요!”

“그, 그래? 사실 그런 말 자주 듣기는 해.”

“지……인짜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는 무너지려는 미소를 애써 유지했다.

“지랄 말라고 할 뻔했네.”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에 시현이 슬쩍 눈치를 줬다.

구원자인 시현조차 겨우 들렸을 만큼 작은 소리였으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주인에게 잔뜩 혼이 난 강아지처럼 이나연은 울상이 되어 축 처졌다.

‘생각보다 멀쩡하지는 않네.’

시현은 다른 참가자의 손길이 닿았을 마트를 확실하게 살폈다.

마트 내부의 상태는 처참했다.

진열대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고, 쓰레기 따위가 대충 버려져 있다.

담요 따위를 두르고 쭈그려 앉아 있는 몇몇 생존자들이 보인다.

그들은 추위에 떨고 있었으며,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식량은 충분히 있을 텐데도, 저런 상태라…….’

“자자, 이쪽으로 와. 손님을 이런 곳에 방치할 수는 없지.”

민성찬은 시현을 2층으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는 멈춰 있으며 비상구는 의도적으로 막아 두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전부였다.

에스컬레이터 입구는 무기를 든 남자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었다.

“누구야?”

“손님.”

근육질 남자의 말에 입구를 지키던 남성이 히죽 웃으며 길을 터 줬다.

2층은 1층과 비교해 상황이 많이 달라 보였다.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눈에 보이는 생존자들은 두꺼운 이불과 많은 식량이 배급되어 있었다.

얇은 옷을 껴입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떨던 1층의 생존자들이 떠올랐다.

그들과 비교하니 천당과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

‘설마 계급을 나눈 건가?’

굉장히 불쾌한 광경이었으나 시현은 감정을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민성찬은 시현을 2층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공간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주인 없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자, 너희는 여기를 사용하면 돼.”

“감사합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 드려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

가식으로 무장한 민성찬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1층의 사람들과 2층의 사람들. 어째서 이렇게 형편이 다른 건가요?”

“아아, 그것들?”

그는 표정을 구기며 짧게 자른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얼마 전에 악마가 공격해 왔어. 다 같이 힘을 합쳐 싸운 덕에 겨우 물리칠 수 있었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 건지 민성찬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는지 머리를 긁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식량과 물을 축내기만 할 뿐, 악마가 쳐들어왔을 때 숨거나 도망친 악질적인 놈들이야. 때문에 리더의 지시를 따라 1층으로 쫓아낸 거고.”

“리더요?”

“아마 곧 만나 볼 수 있을 거다. 우리들의 리더를.”

그 순간에 민성찬이 지은 미소에 비열함이 섞여 든 것을 시현은 놓치지 않았다.

리더라는 존재를 향한 강한 신뢰 때문일까.

더 이상 민성찬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 * *

민성찬의 말대로 시현은 금방 리더라는 작자와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나연도 함께 불렸으나 그녀는 시현에게 전권을 맡기고 참가하지 않았다.

애드리브가 필요한 상황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시현의 조치였다.

무엇보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나연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유명하다.

가급적이면 그녀가 노출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마트에서도 최심부.

가장 안전한 장소라 할 수 있는 곳에 누군가를 위한 개인 룸이 만들어져 있었다.

방의 주인이 시현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부족하나마 이곳 마트의 리더를 담당하고 있는 정수혁이라고 합니다.”

첫인상은 동네 아저씨와 같은 푸근함이었다.

흰머리가 몇 가닥 보이는 나이에 통통한 체형을 가졌으며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신장은 상당히 작은 편이다.

“하룻밤 머무는 것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시현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가 오간 후, 본격적으로 담화가 시작되었다.

말이 좋아 담화이지, 실상은 서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자그마한 전쟁터나 진배없었다.

먼저 칼을 뽑아 든 이는 정수혁이었다.

“부하가 말하기를 집에 상당한 양의 식량을 쌓아 두고 계신다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보통 그 정도 식량을 비축해 두는 일은 없지 않나요? 굉장히 특이하시네요.”

그의 말대로 먹을 것, 특히 유통 기간이 긴 식품을 평소 대량으로 쌓아 두는 일반 가정집이 얼마나 되겠는가.

세상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던 참가자라면 모를까.

그는 시현을 참가자라 의심하고 있었다.

원작에는 오토바이를 탄 남녀의 합류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 테니 당연한 의심이다.

“시현 씨는 혹시 참가자라는 단어를 알고 계신지요?”

심지어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솔직하게 말하고 협력을 구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참가자끼리의 협력은 어렵다.

시현이 참가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정수혁은 배척하려 하거나 이용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정수혁을 속일 수 있다면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원작에 엑스트라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묘사되지는 않아. 즉 시나리오만 잘 쓰면 얼마든지 속여먹을 수 있어.’

당연히 의심이 있을 거라 생각한 시현은 마트에 진입하기 전 급하게나마 계획을 구상해 두었다.

덕분에 망설임 없이 다음 대사를 읊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집은 제 집이 아닙니다.”

“시현 씨의 집이 아니라고요?”

“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 안에 대량의 식량을 쌓아 두고 계시더라고요. 마치 아포칼립스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100% 꾸며 낸 말이 아니라 민서라와 있었던 일을 교묘하게 각색해서 풀어냈다.

그것이 시현의 말에 신빙성을 높여 주었다.

“그분은 괴물들을 사냥하겠다며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청산유수처럼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말끝을 흐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효능은 탁월했다.

“흐음…….”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정수혁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시현이 말한 여성이라는 존재를 참가자라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 대가로 자신을 향한 정수혁의 경계도가 한 단계 낮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는 않았다.

“시현 씨, 괜찮으시면 마트에서 함께 생활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제안을 해오는데도 눈빛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하나 시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오히려 기뻐 펄쩍 뛰며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눈가에는 감동의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걸 보고 누가 연기라 생각하겠는가.

시시각각 정수혁의 얼굴에서 의심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전에, 세력원들이 반드시 지켜 줘야 할 규칙이 있으니 한 번 읽어 보시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빼곡하게 문자가 적힌 종이가 내밀어졌다.

썩 깔끔하지 못한 필체로 규칙이 적혀 있었다.

대개는 싸움이나 살인, 도둑질 등을 금하는 등 집단생활에 필요한 항목들이다.

하지만 몇 개인가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규칙 3. 외부에서 구해 온 식량 중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양은 2할로 제한한다. 나머지는 공용 창고에 수납한다.>

<규칙 5. 공용 창고에 있는 식량은 간부들이 관리한다. 식량은 마트의 거주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

<규칙 6. 유사시에 마트의 거주자들은 악마와의 전투에 참가해야 한다.>

‘벌써 규칙까지 만든 건가? 마트를 수중에 넣으려고 사전 준비를 제대로 했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식량을 손에 쥐고 사람들을 관리하겠다는 소리다.

현명하지만 불쾌한 방식이다.

“이걸 보고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시현 씨를 환영하겠습니다.”

“아……. 그…….”

이미 답은 나와 있지만 시현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6번 수칙을 몇 번이고 확인하며 영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뜻 수락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시현 씨, 저희 일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서 정수혁은 한 가지 더 추가적인 요구를 해 왔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재출해 주시겠습니까?”

“스마트폰을요?”

“네, 부탁드립니다.”

그가 자연스레 두툼한 손을 내밀어 왔다.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위한 그럴싸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굉장히 노골적이네.’

그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시현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상대가 참가자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메시지와 원작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정수혁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애초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마트에 진입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에 대한 대처를 게을리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서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물건인데, 왜 필요로 하시는지……. 일단 달라고 하시니 드리겠습니다.”

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건넸다.

자신의 것이 아닌, 사전에 미리 교환한 이나연의 것을.

세상이 이 지경이 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이나연의 핸드폰은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스마트폰을 실행시켜 이것저것 확인해 보던 정수혁의 얼굴에서 완전히 의심이 걷혔다.

정수혁이 찾는 것은 참가자라면 응당 가지고 있을 문자 내용과 원작 파일이었다.

그러나 시현이 건네준 것은 자신이 아닌 이나연의 스마트폰.

참가자에 대한 정보가 있을 리 없다.

“시현 씨는 옷과 화장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군요.”

“요즘은 남자도 꾸미는 시대 아닙니까. 뭐……. 세상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딱히 쓸모도 없게 되었지만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로 시현 씨는 저희 마트의 일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수혁의 얼굴에서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음이 아플 정도로 속이기 쉬운 사람이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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