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만족스러운 반응을 이끌어 낸 시현은 미소 지었다.
“반대편 건물에서 제법 많은 걸 봤습니다. 어떤 남자가 그쪽을 살리려다 땅에서 나온 거대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거랑, 어떤 여성분이 807호 남자한테 살해당하는 것까지.”
신뢰를 얻기 위해 약간의 거짓을 가미한다.
양심이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표정에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다.
방범창에 이마를 기댄 시현이 속삭였다.
“저는 그쪽의 복수를 도울 방법을 가지고 있어요. 저를 위해 일해 준다면, 저 역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이나연의 대답은 빨랐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한차례 쓰러지기는 했으나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 나와 문을 열고 시현의 손을 붙잡았다.
“뭐든지 할게요!”
그녀의 대답에 처음으로 생기가 느껴졌다.
* * *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목표가 생겨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 이나연은 시현이 준 식량을 먹다 말고 질문을 던졌다.
경이로운 친화력을 가진 그녀는 마치 10년을 알고 지낸 사이처럼 시현을 대했다.
덕분에 시현 역시 부담 없이 이나연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으, 냄새. 누가 보면 마녀가 연금술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시현은 커다란 냄비에 아까운 물을 대량으로 쏟고 무언가를 집어넣고 있었다.
그것이 1층에서 사냥한 이빌 보아의 독샘이라는 것을 알 리 없는 이나연은 지독한 냄새에 그저 코를 막고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열에 강한 이블 보아의 독이 풀어질 때마다 투명하던 물색이 서서히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독을 만드는 중이야.”
“독이요? 제가 아는 그 독?”
“응, 몸속에 한 방울만 들어가도 사람을 즉사시킬 수 있는 맹독.”
살벌한 단어의 등장에 그녀가 흠칫 몸을 떨며 코를 틀어막았다.
“기화해서 몸에 들어갈 일은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전혀 안심이 안 되는데요. 실수해서 튄 한 방울이 눈이나 입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
그녀는 최대한 시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현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독의 제작에 열중하고 있었다.
휴대용 가스버너로 물을 졸이며 계속해서 독과 물을 추가했다.
그것을 반복할수록 독의 농도는 짙어졌다.
“오빠는 그걸로 그 거대한 괴물을 잡을 생각이에요?”
“응, 먹이기만 하면 되니까 어려울 것도 없어.”
“어떻게 먹이려고요? 그 괴물이 마시라고 해서 넙죽 받아 마시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식욕을 돋울 만큼 냄새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저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먹어요.”
“다 방법이 있지. 누군가에 의해 검증된, 아주 확실한 방법.”
“흐음…….”
쭈그리고 앉아 무릎에 턱을 괸 그녀는 냄비에 추가로 부어지는 생수 한 통을 보며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독을 투하한 시현은 불의 세기를 줄이고 뚜껑을 닫았다.
몸을 일으킨 시현은 현관으로 향했다.
“자, 독이 거의 다 준비됐으니 메탈 웜이 환장할 만한 미끼를 잡으러 가자.”
“미끼요?”
“807호에 서식하고 있는 싱싱하고 팔팔한 미끼.”
“……네?”
멍한 얼굴을 하는 이나연을 데리고 807호 앞에 도착한 시현은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릴 낌새는 없다.
그러나 구원자의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문에 부착된 작은 렌즈로 바깥을 엿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시현은 웃었다.
이 신중하고 겁 많은 고기를 낚아 올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식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약품을 가지고 계신다면 교환하지 않겠습니까? 제 동생이 많이 아파요. 부탁드립니다.”
807호에 거주하는 38세 독신남 박회성.
그는 어떠한 약품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식량이 부족한 그는 반드시 문을 열고 시현을 맞이해 줄 터였다.
며칠 전 이나연의 모친에게 그러했듯, 시현을 죽이고 식량을 빼앗기 위해.
끼이익.
문이 살짝 열렸다.
“들어와. 원하는 약을 찾으려면 시간이 조금 걸려.”
문틈으로부터 거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걸까.
이나연이 무의식적으로 시현의 소매를 잡았다.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떨림이 소매를 타고 전해져 온다.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인 시현은 살며시 그녀의 손을 밀어냈다.
그리고 살짝 열려 있던 문을 열어 젖혔다.
그 순간.
“뒈져어어어어!”
식칼을 든 남자가 달려들었다.
이나연의 비명이 울렸다 싶은 순간, 시현은 박회성의 손목을 붙들었다.
“어어?”
꼼짝도 하지 않는 자신의 손을 보고 박회성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대로 팔을 뒤로 꺾자 박회성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며 떨어뜨린 식칼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거 놔! 아파, 아프다고!”
“아마 너한테 찔린 나연이의 어머니가 더 아프지 않았을까?”
“저 여자가 설마 802호……. 날 속였구나! 비겁하게 사람을 속여? 네 어미가 그렇게 가르치디? 널 보니 네 부모 수준도 알 만하다!”
추하고 더러운 말을 쏟아 내는 입이 눈을 찌푸리게 한다.
제압만 해서 이나연에게 넘길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변했다.
화가 났다.
조금이라도 뉘우치는 기색이 있었으면 망설일 뻔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우득.
박회성의 손가락 하나가 기형적인 방향으로 꺾였다.
“끄아아아악!”
박회성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시현은 박회성을 단단히 속박한 채 놓아주지 않았다.
흘러내린 눈물과 콧물이 지저분하게 자란 그의 수염을 적셨다.
“우리 초면이잖아요. 서로 말은 예쁘게 해야지. 안 그래요?”
웃으며 두 번째 손가락을 꺾는다.
“꺼어어억! 죄, 죄송……. 제가 죽을죄를…….”
겨우 손가락 두 개에 고압적인 태도를 집어치운 박회성이 바닥에 엎드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강약약강의 표준과도 같은 인간이다.
“그렇게 말하니 얼마나 듣기 좋아요. 그래도 제 어머니를 욕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손가락 하나만 더 내주시죠.”
“미, 미친……. 아아아악!”
“그리고 적반하장이라는 말 알아요? 모르면 가르쳐 드릴게요. 교육비로 손가락 두 개면 됩니다.”
“으허어어억!”
결국 박회성은 비명을 지르다 정신을 잃었다.
“……오빠.”
시현을 부르는 이나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너무 과했나 싶어 이나연의 얼굴을 살핀 시현은 괜한 기우였음을 깨닫고 슬쩍 웃었다.
그녀는 고통에 허우적대는 원수의 얼굴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 * *
“고마워요. 덕분에 속이 조금은 후련해졌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었지만 이나연의 눈가에 물기가 촉촉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가 가진 응어리는 전혀 사라지지 않은 듯 보였다.
원수를 갚는다고 죽은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시현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박회성을 짐짝처럼 들쳐 멨다.
“그러면 슬슬 출발하자.”
“준비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하지 않았어요?”
“독극물이 식는 걸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이놈을 보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여서.”
잠시 802호에 들른 시현은 독극물이 담긴 냄비를 손에 넣었다.
독극물은 냄비마저 녹여 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꺼림칙한 색이 되어 있었다.
103동을 완전히 빠져나온 시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꽉 막힌 지저에서 살다시피 며칠을 보냈기 때문인지 햇살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졌다.
이나연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며칠 전과 비교해 확연하게 수가 늘어난 철 십자가 때문이었다.
들쳐 메고 있던 박회성을 바닥에 내던진 시현은 뺨을 때렸다.
“으으으으…….”
신음을 흘리며 깨어난 박회성이 시현을 알아보자 곧바로 눈물을 쏟았다.
“사,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부탁이니까 목숨만은…….”
“에이, 사람이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래요. 아저씨는 나연이의 어머니를 죽였잖아요. 고작 며칠의 식량 때문에.”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굶어 죽을 판국이었다고. 원래 사람이란 게 다 그런 거잖아. 그래도 정말 후회 많이 했어. 뉘우쳤다고! 그러니까 제발…….”
“정 그러시다면 기회를 드릴게요. 이거 마셔요.”
독극물이 담긴 냄비를 건넸다.
딱 봐도 수상한 액체임을 깨닫자 박회성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말없이 식칼을 꺼내 들며 웃는 시현으로 인해 강제로 독극물을 들이켰다.
“커헉!”
맛은 물론이거니와 식히지 않아 끓는 액체를 삼키는 것은 상당한 고문이었다.
견디다 못한 박회성은 입안에 있는 것을 뱉어 내려 했다.
하지만 가만히 두고 볼 시현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흘리면 죽일 겁니다. 나머지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아주 천천히, 잔혹하게. 그러고 보니 손톱 밑에 바늘 찌르는 고문. 한 번 해 보고 싶었어요.”
“꿀꺽꿀꺽!”
겨울바람보다 차가운 속삭임에 박회성은 독극물이 생명수라도 되는 양 마셨다.
결국 박회성은 내용물을 전부 마시는데 성공했다.
시현은 눈물을 쏟으며 거칠게 숨을 토하는 박회성의 등을 걷어찼다.
“끄윽!”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박회성을 향해 시현은 부질없는 희망을 안겨 줬다.
“술래잡기할 줄 알죠? 최선을 다해 도망가요. 만약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신다면 더 이상 쫒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으아아아!”
박회성은 부러진 손가락과 화상을 입은 입안과 식도의 고통조차 무시하고 최선을 다해 달렸다.
다른 건 몰라도 생존을 위한 욕망만큼은 본받을 만한 남자였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박회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시현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술래는 내가 아니지만.”
[쿠오오오오!]
바닥을 뚫고 메탈 웜이 등장했다.
수면을 뚫고 올라온 돌고래가 조련사가 던진 먹이를 허공에서 낚아채듯, 메탈 웜은 박회성을 집어삼켰다.
메탈 웜이 훑고 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굳건하게 대지를 박차고 나아가던 박회성의 두 다리.
그리고 살아남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머리였다.
“오빠……. 정말 가능하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독으로 어떻게 해 볼 사이즈가 아닌 거 같은데.”
뒤에 매달린 이나연이 그의 옷자락을 강하게 쥐었다.
“괜찮아. 검증된 방법이니까 걱정할 거 없어.”
[쿠오오오!]
시현을 알아보기라도 한 건지 메탈 웜이 흉포하게 울부짖었다.
고고고고.
땅이 울렸다.
‘메탈 웜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땅이 울렸다는 것은…….’
시현은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이나연의 손목을 붙잡고 달렸다.
“어어어?”
영문도 모르고 따라 달리게 된 이나연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순간.
콰직!
땅에서 솟구친 철 십자가가 불과 수 초 전 두 사람이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철 십자가에 신체 어딘가가 뚫렸을 것이다.
“……”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이나연이 입을 벙긋거렸다.
“오, 오빠. 괜찮은 거 맞죠. 오빠가 만든 독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죠? 제발 맞다고 해 줘요.”
“괜찮아. 독은 이미 퍼지고 있을 거야.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오오?!”
이나연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은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방법으로 정해수는 메탈 웜을 죽였다.
동일한 수단으로 함정을 팠는데 통하지 않을 리가 없다.
100% 확실한 방법일 텐데, 겉으로 티가 나지 않으니 괜한 불안이 생긴다.
‘흔들리지 마. 성공할 수 있어.’
시현은 짧게 호흡을 끊으며 남아 있던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 냈다.
“그보다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해.”
“넵.”
그녀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키아아아!]
회심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욱 분개한 메탈 웜이 전력투구를 해 왔다.
하지만 메탈 웜은 절반도 채 달리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졌다.
쿵!
[키엑?]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한 메탈 웜이 당황해하는 게 훤히 보였다.
“거 봐. 된다니까?”
“오오……. 오오오!”
작전은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있지만 메탈 웜은 서서히 죽음을 향해 질주할 것이다.
몸놀림은 둔해졌고, 독으로 인해 발생한 어지럼증이 메탈 웜의 명중률 또한 앗아 갈 터다.
시현은 양손에 식칼을 들고 이자프의 권능을 둘렀다.
가만히 둬도 죽어 나갈 놈이지만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메탈 웜의 경험치가 갖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유효타를 넣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메탈 웜이 줄 막대한 양의 경험치는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 독을 먹인 박회성의 차지가 된다.
어차피 공중 분해될 거라면 자신이 취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오빠, 설마 저거랑 싸우려고요?”
기겁한 이나연이 그를 말렸다.
생명의 은인이자 양친의 원수를 갚아 준 시현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놈을 죽여서 네 아버지의 복수를 대신해 주면 나를 위해 뭐든 할 거라고 했지?”
“그랬죠. 뭣하면 각서라도 써 드려요?”
“그렇다면 잘 봐 둬. 앞으로 너도 저런 것들이랑 싸워야 하니까.”
“와, 그런 건 전혀 예상 못 했는데.”
경악한 나머지 표정이 굳어 버린 이나연을 뒤로한 시현은 땅을 박찼다.
[크아아아!]
메탈 웜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시현을 집어 삼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피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움직임을 둔하게 한다.
크게 몸을 던져 공격을 회피한 시현이 메탈 웜에게 식칼을 박아 넣었다.
까앙!
불꽃이 번뜩이며 시현의 검이 튕겨 나갔다.
‘외피는 내부를 진탕으로 만들어 놓은 독 때문에 사용할 수 없을 거야. 그렇다면 순수하게 비늘의 강도가 이 정도인 건가?’
이자프의 규칙은 메탈 웜을 악으로 지정했다.
시현의 신체 능력은 월등하게 상승했으며 무기 공격력 또한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격력은 중형 악마인 메탈 웜의 비늘을 꿰뚫을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쾅! 콰앙!
정확한 공격이 어렵다고 판단한 메탈 웜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시현에게는 오히려 무분별한 발버둥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메탈 웜의 거구에 스치기만 해도 인간 따위는 쥐포처럼 납작해지고 말 테니까.
‘약한 곳……. 배? 다리? 아니, 어차피 부위가 어떻든 전부 금속 비늘로 덮여 있어.’
필사적으로 공격을 회피하면서도 시현은 기회를 노렸다.
목숨을 건 기다림 끝에 시현은 겨우 기회를 잡아낼 수 있었다.
[캬아아아!]
몸을 일으킨 메탈 웜이 크게 포효했다.
우렁찬 포효로 기선 제압을 시도하는 건 악마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때 드러난 붉은 입속을 본 순간, 시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식칼을 내던졌다.
아무리 튼튼한 악마라도 안쪽까지 단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식칼은 메탈 웜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제발…….’
시현은 간절함을 담아 기도했다.
[꾸엑. 꾸에에엑…….]
피를 토하는 메탈 웜을 보며 시현은 소리 없는 환성을 내질렀다.
기대했던 대로 식칼은 메탈 웜의 입천장을 뚫는데 성공한 것이다.
시현이 노린 것은 경험치를 얻기 위한 최소 조건인 대미지를 주는 것.
이로써 메탈 웜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이랴.
이빌 보아의 독에 이어 권능에 의한 쇠약 효과까지 들어갔다.
결국 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약화된 메탈 웜은 쓰러지고 말았다.
육중한 육체가 놀이터를 깔아뭉개며 자욱하게 모래 먼지가 일었다.
“말도 안 돼……. 이 큰 괴물이 겨우 냄비 하나에 담긴 독 때문에 죽다니.”
다 죽어 가는 메탈 웜을 보고 겨우 용기가 난 건지 이나연이 다가왔다.
그녀는 어디서 주워 온 나뭇가지로 메탈 웜의 등딱지를 쿡쿡 찔러 보며 경악과 질색을 반복했다.
[키이이익…….]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듯 메탈 웜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이 메탈 웜의 마지막 움직임이었다.
더 이상 메탈 웜은 움직이지도, 호흡을 위해 숨을 들이쉬지도 않았다.
“됐다…….”
또다시 중형 악마를 사냥했다.
희열이 온몸을 채운다.
숨이 가쁨에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깨에 있는 낙인에서 빛과 함께 기분 좋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자프의 각인. 2차 해금 완료.>
<이자프의 축복을 받아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권능의 상승을 통해 ‘외피’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감격의 순간이 도래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