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 세상의 화폐는 사용할 수 없다.
즉, 버려진 은행을 털어 대량의 화폐를 확보한다 해도 무의미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었던 시현은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거기에 적힌 금액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소지 금액.
6,000,032,500원.
자연히 주머니에 손이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손에 딸려 나온 것은 예의 복권이다.
손이 떨렸다.
이딴 세상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여겼던 복권은 구원의 빛이 되었다.
더군다나 세금 같은 걸로 떼어 먹는 일 없이 60억이 고스란히 품으로 들어온 것이다.
“대박…….”
카탈로그를 훑어보는 시현의 눈이 반짝였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 군침이 흐를 것 같았다.
목록에 있는 보물들은 가장 값싼 것도 구원자의 강함을 한 단계 끌어 올려 주는, 그런 지고의 보물들뿐이다.
그만큼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60억이 있으면 최소 10개의 보물을 구매할 수 있을 터.
그 정도면 원작에서도 날고 기던 영웅들은 가볍게 찍어 누를 수 있다.
“평소에 착하게 살았더니, 내게도 이런 행운이 오는구나.”
시현은 카탈로그를 쭉 훑었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
<아르하의 낙인 — 30억>
물건의 정체는 무려 낙인이었다.
기본적으로 소지할 수 있는 낙인의 개수는 한 사람에 하나만.
그 이상을 소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원작에서도 두 개의 낙인을 가졌던 인물은 주인공인 정훈 한 사람뿐이었다.
다시 말해, 아르하의 낙인을 구매한다면 시현은 원작의 주인공에게만 주어졌던 특혜인 두 번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만큼 비싸기는 하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를 증명할 터.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 구매하시겠습니까?>
값이 억 단위라서 그런가.
무려 구매 확인 버튼까지 나왔다.
그것만 나왔으면 아마 아무 문제없었을 것이다.
<경고 : 블랙마켓에서 소모한 금액만큼 소지 중인 물건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
경고 메시지를 본 순간 손가락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아르하의 낙인을 구매하면, 이 60억짜리 복권이 30억 짜리로 둔갑한다 이거지?”
충격이었다.
무료 배포인 줄 알았던 게임이 알고 보니 데모 버전이었고, 더 이상 진행하려면 본편을 결재하라는 메시지를 본, 그런 종류의 충격 말이다.
시현은 고민했다.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중에 있는 복권은 현실에서 시현의 인생을 성공 가도로 이끌어 줄 소중한 물건이다.
가능하다면 한 푼도 깎아 먹고 싶지 않았다.
승리 후를 생각한다면 여기서는 돈을 아끼는 게 최상이다.
게임에서 이겨 현실로 돌아가도 돈이 없으면 그의 인생은 여전히 불행한 채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 해.’
시현은 블랙마켓 표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았지만, 다른 참가자는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차이는 보통의 방법으로는 메우기 힘들 것이다.
물론 게임에서 우승을 하면 그냥 현실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원하는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즉, 복권의 당첨 번호를 발표하기 직전으로 돌아가 새로 복권을 구매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러나 그렇게 구매한 복권의 당첨 금액이 60억이 아닌 30억일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이 게임 자체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신적 존재들에 의한 것 아닌가.
그들에게 그 정도 조작은 일도 아닐 것이다.
‘여기서 남겨 먹는 만큼이 내 당첨금이 된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손발이 마구 떨렸다.
“아, 싫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니까 쓰고 싶지 않아.”
생존을 위해서라도 투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억 단위로 깨질 것을 생각하니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피와 살이 뜯겨 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세상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생존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 60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숫자일 뿐이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
시현은 눈을 딱 감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아르하의 낙인 구매 완료>
<참가자 윤시현의 소지 금액 : 3,000,032,500>
맨 앞의 숫자가 6에서 3으로 바뀌었다.
“으흑.”
눈물이 나왔다.
어릴 때 애정을 쏟아부어 기르던 햄스터가 죽었을 때처럼 말이다.
어찌 되었건 구매는 마쳤다.
그리고 시현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화악!
등 쪽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열기가 느껴졌다.
언제까지 찌질하게 눈물만 쏟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슬픔을 박차고 일어선 시현은 거울을 찾았다.
당연하지만 폐허가 된 도시에서 거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시현은 윗부분이 싹 날아가고 1층에서도 극히 일부만 남아 있는 상가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만다행히 화장실의 거울은 다소의 균열이 있을 뿐 사용에 지장은 없었다.
거울 앞에 선 시현은 상의를 벗었다.
거울에 비춰진 시현의 등에는 또 하나의 선명한 낙인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아르하의 낙인…….”
남들은 갖지 못한,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유일무이의 보물.
이것이 다른 참가자들과 시현의 사이에 압도적인 격차를 만들어 줄 것이다.
<두 번째 낙인의 개화를 위해서는 추가로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목표 : 100개의 댓글을 확보하라.>
<윤시현의 Re write 4화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을 확인하시겠습니까?>
“…….”
경시할 수 없는 알람이 도착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종이책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소설에는 백이면 백, 댓글 기능이 존재한다.
그리고 댓글은 작가와 독자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소통 창구다.
윤시현의 Re write에서 시현은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작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가느냐를 결정하는 게 오로지 시현의 몫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있고, 소설이 있으면 독자도 있기 마련.
그렇다면 작가와의 소통을 원하는 독자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이 댓글을 작성한 독자의 정체다.
‘단순한 인간? 나에게 게임의 초대장을 보낸 신적 존재? 아니면 다른 참가자들인가?’
온갖 가능성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현은 떨리는 손으로 확인 버튼을 누른다.
어느새 완성되어 있는 소설의 4편이 열람되며 하단에 있는 댓글창이 메인으로 올라왔다.
지금까지 시현이 확인하지 못했을 뿐, 댓글은 한참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다.
—얘가 걔야? 초대장을 받은 날 구매한 복권이 60억에 당첨됐다는 친구. 두 개의 행운이 겹쳐 불행이 되어 버렸네.
—불행? 아니지. 엄청난 행운이지! 60억이면 블랙마켓에서 마음대로 보물을 골라잡을 수 있는데!
—심지어 첫 번째 낙인은 그놈이 찍은 낙인임. 이거 대박임.
—와, 600위 언저리면 아무도 기대 안 하던 말단이잖아. 이런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 구독합니다.
—1. 방금 퀘스트 뜸. 지금부터 100개니까 알아보기 쉽게 매 댓글마다 숫자를 붙이자고.
—2. 이런 식으로 말이지?
이름도, 닉네임도 없이 떡하니 문장만 담겨 있는 댓글들이 다수 보인다.
내용을 보아하니 이들이 자신을 이 세계로 끌어들인 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인류에게 축복을 부여함으로써 구원자로 각성시키는 자들이기도 하다.
신.
아니면 그에 준하는 존재.
그 외의 단어로는 이들에 대해 설명할 방도가 없다.
‘욕이라도 하면 속이 시원할 거 같은데.’
그러나 지금은 참았다.
두 번째 각인을 개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험치를 먹이는 게 아니라 100개의 댓글이 필요하다.
괜한 짓거리를 했다가 저들이 삐쳐서 댓글이 안 올라오기라도 하면 30억은 그대로 공중 분해되어 버린다.
그뿐이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저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구독자를 늘려야 한다.
저들은 갑이고, 시현은 을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참아야지.
적어도 Re write가 완결되는 그 순간까지는 말이다.
* * *
시현은 먹이를 찾는 세렝게티의 하이에나처럼 설렁설렁 거리를 걸었다.
새로이 얻은 힘을 시험해 볼 적당한 상대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트롤이라는 상위 포식자가 사라진 거리에는 악마가 발에 차일 만큼 넘쳤다.
딱히 시현이 찾지 않아도 상대측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검은 털을 가진 이형의 늑대 두 마리가 골목길에서 빠져나오며 시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신선한 사냥감의 등장에 기뻐하듯 기다란 혀로 입가를 핥아 댔다.
자연히 포스트 아포칼립스 첫날.
뿌리칠 수밖에 없었던 남자의 손이 떠올랐다.
다른 게 있다면 그날의 시현은 무력했으나,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검은 늑대 두 마리면 딱 적당하네.”
검은 늑대는 소형 악마다.
정면으로 맞붙을 경우 인간의 승산은 그리 높지 않다.
이미 중형 악마인 트롤을 사냥한 시현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생거미를 이용했기에 가능한 요행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에 한해서의 이야기다.
지금의 시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각성을 마친 구원자.
악마의 사냥감이 아니라 악마를 사냥하는 사냥꾼인 것이다.
시현은 정면을 향해 쏘아지듯 돌진했다.
검은 늑대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지금껏 그들이 본 인간들은 마주치면 당연하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급급했다.
설마하니 역으로 달려들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터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크아앙!]
검은 늑대가 이와 잇몸을 드러내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강한 다리 힘을 이용한 도약력은 검은 늑대의 특징이다.
보통이라면 중력이 더해진 검은 늑대의 체중에 짓눌려 저항조차 못 하고 목을 내주고 만다.
그러나 시현은 사냥꾼이다.
사냥감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는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
그가 왼손을 올려 쳤다.
강한 힘이 담긴 왼손이 크게 벌어졌던 검은 늑대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했다.
[……!]
호쾌한 도약이 무색하게 검은 늑대는 추락하고 말았다.
검은 늑대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휘둘러진 회칼이 검은 늑대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괴로워하며 뒷걸음질 치는 검은 늑대를 추격한 시현이 목덜미를 연달아 2회 찔렀다.
마지막 일격은 상당히 깊었다.
회칼을 뽑자 진득한 혈액이 칼날에 잔뜩 묻어나왔다.
촤악!
혈액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검은 늑대를 보호하듯 다른 개체가 앞을 가로막는다.
‘저건 가만히 놔둬도 과다 출혈로 죽을 거야.’
냉정하게 파악을 마친 시현은 목표를 눈앞의 새로운 개체로 변경했다.
동료가 당해 화가 난 건지 기세가 상당히 흉흉하다.
‘지금쯤 호흡이 거칠어졌어야 정상인데, 아직 멀쩡해. 확실히 신체 능력은 향상됐어. 그렇다면 다음에는 권능을 시험해 봐야지.’
시현은 피 묻은 칼을 앞으로 내밀었다.
동료에게 상처 입은 무기를 보자 검은 늑대가 참지 못하고 내달렸다.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시현은 당황하지 않고 나지막이 한마디를 읊조린다.
“처형.”
<이자프의 권능 ‘처형’이 발동됩니다.>
<대상의 성향이 ‘악’입니다. 신체 능력과 무기 공격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상처를 입힐 경우, 악즉참 효과가 발동합니다. 생명력에 비례한 강한 일격을 가합니다. 이후 상대를 쇠약 상태에 빠뜨립니다.>
허공에 청색의 문자가 나타남과 동시에 앞으로 내민 칼날에 검은 기류가 휩싸였다.
“이게 뭐야…….”
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자프의 축복.
원작에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기에 별다른 특징도 없는 구닥다리 권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강한 권능이다.
검은 늑대가 들이민 주둥이가 코앞까지 도달했다.
“이런…….”
문자를 읽느라 반응이 늦고 말았다.
몸을 크게 비틀었으나 공격의 일부를 허용하고 말았다.
촤악!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일반인이었으면 어깨가 날아갔을 테지만, 신체 능력이 강화된 시현이 입은 부상은 고작 생채기였다.
심지어 정화 효과로 감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한 사실들은 시현을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줬다.
스걱.
검은 늑대의 옆구리에도 상처가 만들어졌다.
상처는 길지만 얕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결코 얕지 않았다.
푸확!
[깨앵!]
상처로부터 대량의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효과가 발동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흉포하던 검은 늑대가 늙고 쇠약한 것처럼 비틀거리다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어째서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몇 번이고 일어나려 했으나 결국 대량의 피를 토하며 실패하고 말았다.
“후우.”
길게 숨을 토한 시현은 발밑을 구르는 검은 늑대들을 응시했다.
출혈 과다로 죽어 가는 그들의 남은 삶은 그리 길지 않다.
하나 시현은 이들에게 남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앗아 갔다.
푹. 푹.
두 번의 칼질.
정확하게 급소를 노린 공격에 검은 늑대들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졌다.
영화에서 보면 죽였다고 생각한 적에게 뒤통수를 맞는 장면이 흔하게 나오지 않는가.
그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마무리 작업을 마친 시현의 입가에는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맺혀 있었다.
각성은 성공했고, 힘의 실험 역시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로써 시현의 생존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봐도 무방하다.
손에 묻은 피를 검은 늑대의 털에 대충 닦아 내고 있을 때였다.
<축하합니다! 윤시현의 Re write가 순위권에 접어들었습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