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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7화 (7/225)

[7화]

지금까지 쭉 가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사의 손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영화도 아니고 좀비에게 물렸다고 똑같은 좀비가 되다니. 말도 안 되지 않아요? 공상이랑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걸까요? 사람들도 참 순진하다니까.”

시현에게 동의를 구하는 의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표정한 시현을 담고 있는 눈동자에 붉은빛이 맺혔다.

‘그러면 그렇지.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 주던 이유가 있었구나.’

쓴웃음이 지어졌다.

조금 감동했는데.

“쿨럭!”

쉬지 않고 떠들어 대던 의사가 기침을 했다.

그러자 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손바닥에 고인 피를 응시하는 의사의 동공과 손발이 떨렸다.

마치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의사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부정했다.

그러나 시현은 알 수 있었다.

그가 겪고 있는 모든 증상이 감염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감염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으며, 실시간으로 의사의 뇌는 잠식당하는 중이었다.

“왜 나만……. 끄어억!”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운 건지 그의 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피거품을 토하는 그의 입술이 갈라지고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혈관은 피부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는 이채연이 어떤 남자를 위험에서 구하는 묘사가 있었지. 그 남자가 이 의사였구나.’

원작대로 흘러갔다면 그는 이채연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이 아주 조금 비틀어진 것만으로 의사는 감염되었다.

앞으로도 666명의 참가자가 일으킨 바람은 커다란 태풍이 될 터였다.

“그래도 서윤이가 없는 곳에서 변이가 시작된 건 다행인가?”

갓 변이를 마친 하수인은 악마와 비교하면 굉장히 약하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가 돌연 악마로 변이했다고 그 목을 졸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만약 소아과에서 변이가 시작됐다면 틀림없이 한둘은 물렸을 것이다.

그자가 또 하수인이 되고, 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고.

악순환이 발생해 모든 사람이 죽거나 하수인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물론 시현이라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역시 21세기 사회를 살아가던 평범한 인간.

마음에 안 드는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인을 경험해 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해.’

고통에 눈물이 나올 만큼 강하게 입술을 씹었다.

이따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싫어도 익숙해져야 한다.

시현은 피부과 밖으로 나가는 문을 걸어 잠갔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하나, 혹은 둘의 하수인이 피부과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아, 아니야. 이건, 이건……!]

이윽고 목소리까지 변했다.

쇠를 긁는 듯한 불쾌하고 갈라지는 음성.

의사의 눈이 시현을 응시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변화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시현은 시선을 외면했고, 의사는 절망했다.

그 절망이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이성을 놓게 만들었다.

[키아아아악!]

더 이상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체내의 모든 세포가 인간의 것에서 악마의 것으로 바뀌어 버린 하수인일 뿐.

괴성을 지른 하수인이 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현은 당황하거나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의사의 손목을 잡아 뒤쪽으로 꺾었다.

우드득!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고통을 참지 못해 바닥에 쓰러지며 제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하수인은 제 팔을 탈골시키며 몸을 돌려 시현의 목덜미에 이를 꽂으려 했다.

그보다 먼저 하수인의 목을 잡고 바닥에 내쳤다.

제압에는 성공했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하수인은 계속해서 괴성을 내지르며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다.

지금이야 꽉 붙들고 있다지만 하수인의 힘이 상당했다. 언제 위치가 바뀔지 모르는 상황.

그 전에 끝을 내야 한다.

시현은 한 손에 쥐어지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주워들었다.

손이 떨렸다.

“죄송합니다.”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콰직!

끔찍한 감각이었다.

한 번으로는 불안이 남아 몇 번이고 행위를 반복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하수인을 뒤로한 시현은 피부과 구석으로 향했다.

도중에 발에 치이는 복권을 주웠다.

쭈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는 이제 구겨짐에 더해 타인의 피까지 묻은 복권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애써 태평함을 연기하려 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첫 번째 살인이다.

오늘의 기억은 평생토록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알고는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십, 수백 번의 살인을 해야 한다.

그때마다 이렇게 무너져서는 버텨 낼 재간이 없다.

삼 일.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가 달라진다는 것을 시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뚜렷한 목표가 필요했다.

* * *

“…….”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시현은 늘 그랬던 것처럼 가장 먼저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본다.

피폐해졌으나 여전히 변함없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됐다.”

길었던 사흘이 지났다.

매일 밤낮 가리지 않고 불안에 떨며 지내던 날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감동에 겨워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다.

“혹시 몰라 반나절 정도 더 있었으니까 이제 감염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시현은 스스로를 가둔 감옥 같았던 병원 문을 열었다.

병원에 있던 봉투를 이용해 포장해 놓은 의사의 시신은 복도 한구석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시신에 한 번 시선을 준 시현은 눈을 돌려 복도로 나갔다.

다시는 이 장소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 소아과로 들어가니 마찬가지로 초췌한 몰골의 생존자들이 보였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 그런지 꼴이 말이 아니다.

그들은 시현을 보고는 귀신이라도 만난 듯 기겁했다.

겁먹은 아이를 다독이던 중년인이 눈을 부라렸다.

“여,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나가!”

판에 박힌 듯한 반응이었다.

“잠복기인 사흘 동안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안하시다면 그건 그쪽이 감안하실 문제인 거 같은데. 아닌가요?”

즉, 불만 있으면 네가 나가라는 의미였다.

만약을 위해 사흘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소모했다.

그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경쟁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은 벌써 몇 발자국이나 앞서 걷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사흘이라는 시간을 따라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태도를 보이니 이해를 떠나 말이 좋게 나올 리가 없다.

가시가 섞였으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남자는 할 말을 잃고 아이 곁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나 쓸데없는 사족을 하나 붙였다.

“살인자 주제에.”

감염되어 하수인이 되어 버린 의사를 죽인 것을 걸고넘어지려는 것이다.

그에 시현은 웃음으로 대꾸했다.

“만약 그쪽도 좀비에게 물리면 얼마든지 저를 찾아 주세요.”

“이익……!”

분에 찬 듯 주먹을 쥔 남자가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씩씩거리며 콧김만 내뿜을 뿐 이렇다 할 행동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원체가 그런 남자다.

“아저씨!”

이서윤이 방긋 웃으며 시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반겨 주는 이서윤이 반가운 건 시현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아니, 못 지냈어요.”

“왜?”

“언니가 나가서 안 돌아와요. 금방 온다고 했는데. 벌써 한 밤 지났어.”

“아아…….”

그제야 소아과에 민서라가 없음을 깨달았다.

민서라는 자신의 낙인을 개화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악마를 사냥하러 나섰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다면, 예상할 수 있는 결과는 하나뿐이다.

사냥꾼이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같은 신세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

시현은 자신의 순위를 확인했다.

666명 중 623위.

요 사흘 동안 시현의 순위는 바닥 모르는 늪처럼 추락하기에 급급했다.

커트라인인 10위권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프로 표기하면 분명 수직으로 낙하하는 곡선을 보여 줬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주인공을 보고 싶어 하는 독자는 없으니까.

그나마 623위에서 멈춘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이를 보며 시현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서 멈춘 것이라고 직감했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지만 경험 없이 지식만으로 666명의 참가자 전원이 생존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즉, 나는 가장 밑바닥이라는 소리지. 이 순위를 어떻게든 끌어 올려야 해.’

연재 초기는 순위 변동이 가장 쉬운 시기다.

누적된 조회 수가 적어 적은 유입만으로 순위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격차를 뒤집기 힘들게 될 것이다.

똑같은 날짜에 연재를 시작했으나 100과 1의 조회 수를 가진 소설 중 신규 독자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뻔하다.

‘위험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겠어.’

창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시현은 1층으로 향했다.

“아저씨, 어디 가요?”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무시한 이서윤이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따라붙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서도 위험한 밖으로 이서윤을 데리고 돌아다닐 수는 없다.

“잠깐 나갔다 올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뺨에 바람을 잔뜩 넣은 이서윤은 꽉 잡은 시현의 소매를 놓아주지 않았다.

“언니도 그랬어요. 금방 온다고. 근데 안 왔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다.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으나 자신을 위해, 나아가서는 이서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시현은 이서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돌아오겠다고 약속할게. 만약 약속을 어기면…….”

“어기면?”

“그때는 서윤이가 해 달라는 거 뭐든지 해 줄게.”

“……진짜?”

“응.”

“다시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면 안 나갈 거예요?”

“응, 약속할게.”

그제야 옷자락을 잡고 있는 이서윤의 힘이 약해졌다.

노부부에게 이서윤을 맡긴 시현은 1층으로 향했다.

바깥으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창문 앞에 서니 보이는 건 높은 담과 그곳을 덮고 있는 담쟁이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원자가 돼야 해. 그래야 다른 참가자들을 제치고, 게임에서 승리해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 여기서 나아가지 못하면 죽거나 평생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아가야 해.’

지난 삼 일.

시현이라고 해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니다.

망가진 멘탈을 보수하고.

원작을 읽고.

각오를 다지고.

미래를 설계했다.

창틀을 넘는데 망설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창을 넘어가자 코를 찌르는 피 냄새가 지옥에 돌아온 시현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 * *

망가진 건물의 벽을 이용해 몸을 숨긴 시현은 거리의 모습을 살폈다.

끔찍한 고깃덩이가 뒤덮은 도로 위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악마들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

그 많던 악마들도 달아난 사람들을 쫓아간 것인지 도로는 한산해 보였다.

물론 악마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두운 것을 좋아하고 어둠에서 힘을 얻는 악마들은 필히 건물 내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힘이 약한 것들은 오매불망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어디에나 위험은 도사리고 있었다.

“각성을 위해서는 악마를 사냥해 경험치를 벌어들어야 하는데. 어째 한 마리도 안 보이냐?”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경쟁자들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탁.

건물 잔해에서 벗어난 시현이 도로에 첫발을 내딛었다.

끈적이는 무언가가 신발 밑창에 달라붙었다.

“이건…….”

덜 마른 피와 고깃덩이.

그리고 그것과 엉켜 있는 흰색의 무언가.

흰색의 무엇이 거미줄처럼 인근의 도로와 벽면에 가득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건물을 노란색의 기괴한 포자가 뒤덮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생거미가 둥지를 틀었나 보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시현은 악마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파악했다.

악마가 등장하는 부분은 시간을 들여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덕분일까.

눈을 감으면 원작에서 습득한 기생거미의 정보가 빠르게 떠올랐다.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도 함께.

‘기생거미를 이용하면 순위를 단번에 끌어 올릴 수 있을지 몰라.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해.’

뜻하지 않은 행운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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