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소리의 발생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도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으로부터 여러 개의 울음소리가 하나둘 피어난다.
어둠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어둠 속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극에 달했다.
[크아아아아!]
포효하며 다가오는 것은 썩어 문드러진 시체였다.
저런 걸 보고 누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
미리 준비해 둔 계획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하얘졌다.
저런 게 나올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글로 읽는 것과 현실로 마주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비켜!”
혼비백산해 달아나던 누군가가 멍하니 서 있는 시현의 어깨를 강하게 밀었다.
그러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현은 타이어에 바람이 죄다 빠진 차 뒤로 몸을 숨겼다.
“으아아아악!”
“미친, 저게 뭐야! 좀비? 진짜 좀비야?”
썩은 시체.
흔히 말하는 좀비와 맞닥뜨린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도시 곳곳에서 좀비와 생존자 간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그것들은 사방에서 포위하듯 덮쳐 왔다.
좀비의 속도가 그렇게까지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러진 발목을 끌며 느릿느릿 접근해 오는 것도 아니다.
좀비들은 달렸다.
발이 느린 자, 첫 번째 재앙으로 부상을 입은 자, 노약자나 어린아이 등은 얼마 못 가 좀비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붙잡힌 자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콰직. 우드득!
“끄아아아아!”
산 채로 살점을 뜯어 먹히는 고통에 내지른 비명이 도시 전체에서 들려왔다.
어디까지가 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 등장한 것은 좀비만이 아니었다.
검은 털을 가진 늑대가 도로를 질주했으며, 펼친 날개가 2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박쥐가 인간을 낚아채며 뇌수를 빨아 먹었다.
원작에서는 저 괴물들을 두고 악마라 칭했다.
사람을 사냥하고 그 시신으로 배를 채우는 괴물이라니.
누가 처음 명명했는지 나타나지는 않지만 굉장히 잘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콰앙!
굉음과 함께 시현이 기대어 있던 차량의 윗부분이 크게 찌그러졌다.
거대한 박쥐가 뇌만 빨아 먹고 남은 시체를 떨어뜨린 것이다.
시체가 굴러서 시현의 눈앞에 떨어졌다.
젊은 여성이었다.
머리에 뚫린 커다란 구멍과 기형적으로 꺾인 팔과 다리.
공포와 절망으로 물든 얼굴.
호흡이 몇 배나 거칠어졌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진정해. 침착하자.’
지금은 턱 밑에 칼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정신을 놓으면 저기 굴러다니는 시신의 행렬에 동참하게 될 게 분명하다.
Re write는 참가자라 해서 목숨을 여러 개 제공하지 않는다.
시현은 피가 나도록 혀를 깨물며 억지로 정신을 붙들었다.
극도의 혼란 상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니 굳어 있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도 없잖아. 일단 이동해야 해.’
악마가 들끓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은신처가 필요했다.
욕심 같아서는 초반부의 가장 비중 있는 에피소드의 무대가 되는 LT마트로 향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괜히 욕심 부리다 악마에게 둘러싸여 한 끼 식사가 되고픈 마음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고이 접은 시현은 차선책을 골랐다.
‘생명의 탑에서 만날 수 있는 이채연은 자타 공인 생존의 프로야. 만약 그녀와 합류가 가능하다면 내 생존율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추격자 이채연.
그녀는 Re write에서도 나름 이름을 날리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다.
칭호에 어울리게 추격, 은신, 암습에 특화된 그녀와 함께라면 가장 힘겨운 초반부를 그나마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결정을 내린 시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곤 땅을 박찼다.
몸을 숨겨 주던 엄폐물 밖으로 벗어남과 동시에 검은 늑대 하나가 시현을 포착했다.
[크아아아!]
검은 늑대가 울부짖자 물고 있던 무언가가 떨어졌다.
찢어진 정장 바지를 걸치고 있는 남자의 하반신이었다.
어디에도 상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늑대의 입가에 붉은색이 흥건했다.
“망할.”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맞서 싸운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2년 전.
입대를 고민하던 시현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각오의 일환으로 해병대를 선택했다.
힘든 훈련을 이겨 낼 수 있다면 앞으로 있을 인생의 역경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그런 치기 어린 마음에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침과 땀을 흘리며 격하게 후회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지독한 훈련을 견뎌 내고 무사히 전역한 시현은 싸움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이지.
인류가 갈고닦은 무술은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을 상대로 가정해 만들어진 것이다.
존재부터가 비상식적인 악마를 상대로는 죄다 무용지물이다.
그는 달렸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런 정신머리로도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게 용할 정도다.
“어어어?”
그의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한 남자가 돌이라도 밟은 건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시현을 쫓던 검은 늑대는 곧바로 목표를 변경해 남자를 덮쳤다.
사자만 한 덩치가 남자를 짓눌렀다.
“끄아아아! 사, 살려 줘……!”
남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애처롭게 뻗은 남자의 손이 시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처럼 꼭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남자의 손을 매정하게 쳐 내지 못한 시현은 결국 멈춰 서고 말았다.
검은 늑대가 두렵다.
그런데도 반사적으로 남자를 돕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알림>
모래시계가 뒤집혔습니다.
다가올 종말에 대비하세요.
남은 시간 : 2개월 1일 23시간 51분.
허공에 나타난 청색의 문자가 시현의 손을 멈칫하게 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미 종말이 도래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라며 불평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을 읽은 시현은 알고 있었다.
진짜 재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앞으로 2개월 후 진짜 재앙이 시작될 것이고, 지금은 그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주어진 준비기간인 것이다.
일종의 튜토리얼 같은 시기다.
튜토리얼치고는 생존 난이도가 극악을 자랑하지만 말이다.
“끄아아악!”
“……!”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시현은 정신을 차렸다.
그가 청색의 메시지에 시선을 빼앗긴 건 찰나라 봐도 무방할 만큼 짧았다.
그러나 그 찰나는 남자의 생사를 갈라 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늑대의 이빨이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다량의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눈을 부릅뜨고 몸을 펄떡이던 남자가 이내 미동조차 하지 않게 됐다. 죽은 것이다.
뻗었던 손이 애꿎은 허공을 그러쥐었다.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시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왜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냐고 탓하는 것 같았다.
“…….”
죽음.
그 섬뜩하기 그지없는 단어가 덩치를 부풀리며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살리느니 마니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건 어리석은 사치고, 멍청한 고민이다.
제 한 목숨 건사하는데 매진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저기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망설이지 않았다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웃기지도 않는 망상이다.
기껏해야 검은 늑대의 포만감만 두 배로 늘어났겠지.
“젠장!”
이를 악문 시현은 등을 돌려 달아났다.
‘죽고 싶지 않아.’
시현의 눈앞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힘없이 쓰러졌다.
노인을 향해 썩은 시체가 달려들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시체를 응시하던 노인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시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못 본 척해.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누굴 돕겠다는 거야? 여기가 현실이 아닌 소설이란 걸 기억해.’
거대한 박쥐의 날카로운 발톱이 대학생 남성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박쥐가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공중으로 낚아채려 했으나 남자의 다리에 한 여성이 매달렸다.
“오빠!”
“너라도 도망쳐!”
매달린 여성의 주변으로 썩은 시체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여성은 남자의 다리를 끝내 놓지 않았다.
강하게 깨문 시현의 아랫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정신 차려, 윤시현. 여기는 소설 속의 세계다. 저들은 사람이 아니야. 소설의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야.’
눈앞의 지옥을 외면하기 위해 시현은 자신이 현실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떠올렸다.
60억.
현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돈 속에 파묻혀 헤엄을 쳐도 될 만큼 엄청난 거금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굳이 과거로 돌아가 틀어진 인생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수준의 거금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을 살 수도 있고.
차를 살 수도 있고.
떨어져 지내던 부모님과 함께 살 수도 있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지금까지 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즐기며 살 수 있다.
현실적 이유로 손에서 놓아 버렸던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도 가능하다.
그를 위해서라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외면해야만 한다.
“엄마아아아아!”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머리 없는 시체 옆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향해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접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형견만 하던 그림자가 점점 덩치를 부풀리더니, 이내 성인 남성만 하게 되었다.
그림자가 좌우로 쩍 벌어지며 붉은 잇몸과 여러 겹의 이빨이 드러났다.
커다란 입이 아이를 단번에 집어삼키려던 찰나, 시현이 아이를 낚아챘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들은 그저 소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이름조차 없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지금 이들이 죽는 것도 소설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과정에 불과하다.
지금의 상황을 보다 절망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다.
아이가 악마에게 잡아먹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을 심산이었다.
자신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일절 삼가야 한다.
그런데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어째서 이런 돌발적인 행동을 취한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크아아아!]
먹잇감을 놓친 악마가 분노하며 시현의 뒤를 쫓았다.
속도를 높여도 고집스럽게 쫓아왔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악마의 고성이 겹쳐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토큰 한 개가 지급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갑작스레 나타나 시야를 방해하는 청색의 메시지까지.
“저리 비켜!”
시현은 반사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히끅!”
목이 찢어지도록 울던 아이가 놀라 울음을 그쳤다.
끌어안은 몸을 통해 아이의 떨림이 전해졌다.
“아니, 이건……. 미안해. 너한테 한 말이 아니야.”
시현은 나지막이 사과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괜한 화풀이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저 두 눈을 꼭 감고 시현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 * *
시현은 아이를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생명의 탑을 향해 달렸다.
집착이 강한 그림자 악마는 여전히 시현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이 느껴질 때 즈음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까지만 가면 살 수 있어!’
숨이 턱까지 차올랐으나 시현의 표정은 밝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의 무대가 되는 만큼, 저곳에는 어느 정도 생존자들이 모여 있으리라.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끈질기게 뒤를 쫓는 악마 한 마리쯤은 어렵지 않게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게 뭐야…….”
어째서일까.
뻥 뚫려 있어야 할 빌딩의 입구에 가구들이 쌓여 있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게 아니라 가구끼리 줄로 묶어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았다.
악마의 침공을 막기 위해 인간들이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다.
“말도 안 돼. 벌써 바리케이드가 있다고?”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소형 악마의 침입을 막는데, 이보다 효율적인 장치는 많지 않다.
문제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아포칼립스가 발생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예견한 것 같은 대처 속도가 아닌가.
오히려 아포칼립스 이전에 작업을 시작했다고 의심해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다른 참가자가 있구나.”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Re write의 참가자는 시현, 한 사람만이 아니다.
원작이라는 예언서를 통해 미래를 미리 엿본 사람이 무려 666명이나 된다.
그들 모두가 자신을 위해 지식을 사용하려 들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 종종 있을 터, 하나하나 당황해서는 끝이 없다.
“어쩔 수 없나.”
이제 와서 다른 곳으로 향하기에는 늦었다.
그림자 악마는 이미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이를 악문 시현은 각오를 다졌다.
가만히 앉아 악마의 거대한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느니 처절하게 저항할 심산이었다.
바리케이드에 작은 틈이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시현은 무리겠지만 몸집이 작은 아이라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터였다.
틈을 통해 바리케이드를 넘어간 아이는 불안한 얼굴로 손을 뻗어 왔다.
“아저씨는요?”
“난 괜찮으니까 위로 올라가. 4층 소아과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거야. 도움을 요청해 줘. 할 수 있지?”
“…….”
시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저러다 구르면 어쩌나 싶을 기세로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보낸 시현은 근처에서 무기로 쓸 만한 것을 찾았다.
마냥 낙천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다.
목숨 걸고 타인을 구하기 위해 선을 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몸소 체험했으니까.
그러나 형편 좋게 무기가 널려 있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일단 주인공이니, 그 정도 우연은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투덜거리던 시현이 무기로 택한 것은 주먹만 한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사실상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
[크그그극.]
그사이 시현을 따라잡은 그림자 악마가 웃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림자 악마의 신체 곳곳에서 눈동자를 연상케 하는 적색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