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시현은 이 카페에서 1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카운터에 시현이 처음 보는 여성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된다.
‘원래 이 시간대는 사장님이 계시는데. 새로 알바를 쓰시는 건가? 그런 말은 없었는데…….’
혹시나 해서 스마트폰을 확인해 봤으나 달리 연락이 온 것은 없었다.
이럴 때는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다.
“알바 때문에 그런데 혹시 사장님 출근하셨나요?”
“전데요?”
“네?”
“제가 여기 사장이에요. 아, 혹시 아르바이트 면접 때문에 오셨나? 약속 시간은 2시였던 걸로 아는데요.”
“제가 아는 사장님은 중년의 남성분이신데. 그리고 여기서 아르바이트한 지 1개월이 넘었고요.”
시현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에 불신과 의심이 깃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여기서 10년째 장사하고 있어요. 그쪽은 본 적도 없고. 잘못 찾아오신 거 아닌가요?”
“……?”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다.
식은땀이 흘렀다. 더 이상 의심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한 시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행히도 시현은 카페 사장의 번호를 알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머리가 멍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문자를 주고받았건만 없는 번호라니?
재차 확인해 봤으나 번호를 착각한 것도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백일몽이라도 꾸는 것 같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상을 감지한 시현은 전화부에 등록되어 있는 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한 표정에 인자한 성격을 가진 대학 교수님.
슬슬 얼굴이 그리운 고등학교 동창들.
방학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을 대학 동기들.
그리고 박세윤.
반응은 한결같았다.
없는 번호이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심지어는 부모님까지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저 꿈으로 치부하기에는 느껴지는 모든 육감이 너무도 생생했다.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노선이 이상해. 생전 처음 보는 번호뿐이야. 게다가 BBC 전속 광고 모델은 박하림 아니었어? 그런데 웬 이상한 남자가 광고하고 있지?’
그야말로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평행 세계처럼 비슷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른 세계 말이다.
마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방황하던 시현의 눈앞에 그것이 나타났다.
<현 시간부로 참가자 윤시현의 Re Write가 연재됩니다.>
허공에 떠 있는 그것의 정체는 붉은색의 반투명한 문자였다.
이렇게나 자기주장이 강한데 거리를 오가는 사람 중 누구 하나 시선을 주는 이가 없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Re write라면 설마…….”
시현은 스마트폰을 조작해 예의 메시지를 불러왔다.
거기에 명시되어 있는 게임의 이름도.
원작의 이름도 Re write였다.
거기에 적힌 몇 개의 룰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1. Re write는 동일 제목을 가진 소설의 리메이크를 작성하는 게임입니다.
2. 모든 참가자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게임을 진행합니다.
게임.
참가자.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규칙.
시현이 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별개의 세계.
모든 단서들이 하나의 정답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여기는 소설 속의 세계인 건가?’
증거는 못 찾는 게 어려울 만큼 차고 넘쳤다.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적색의 문자 또한 증거 중 하나였다.
혹시 몰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문자가 보이느냐 질문했다가 미친 놈 취급까지 받았다.
이성이 속삭였다.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망가진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게임의 존재는 진실이었다고.
그러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문 시현이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하필이면…….”
눈동자뿐 아니라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60억짜리 복권이 비명을 지르며 구겨졌다.
“이건 아니지. 난 이미 60억을 손에 넣었단 말이야. 이미 인생 역전에 성공한 마당에 이딴 게임에 참가할 이유가 없다고! 돌아갈래! 돌아가게 해 줘!”
억울했다. 너무도 억울한 나머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어째서 진즉에 초대장을 찢어 버리지 않았을까.
어째서 한순간이나마 남자의 말에 혹하고 만 것일까.
깊은 후회가 어깨를 짓눌렀다.
만약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지금 닥쳐온 비현실을 기회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라지 않는가.
뭐가 되었건 얼마든지 발버둥 쳐 줬을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이미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위험을 동반하는 기회에 목숨 걸 필요가 전혀 없다.
복권과 초대장.
사이즈도 비슷한 두 장의 종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상반됐다.
하나는 시현의 인생에 꽃길을 펼쳐 주었고, 다른 하나는 그 길을 잘라 버렸다.
“젠장!”
시현은 달렸다.
그것은 현실 도피에 가까웠다.
자신의 눈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적색 문자로부터 달아나려 했다.
이 문자가 자신을 나락으로 끌어당기는 사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적색의 문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현의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마치 이 게임을 계획한 인외의 존재가 시현에게 도망갈 수 없다고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악!”
결국 비명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 * *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인처럼 날뛰던 시현은 누군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주의를 받은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돌아간다. 반드시 돌아간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돌아간다.”
그는 주문처럼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쪽쪽 빨아 대는 시현의 표정은 당장 사람 하나 잡을 듯 살기등등했다.
근처 자리에 앉으려던 여성이 화들짝 놀라며 다른 자리로 이동했을 정도다.
아무리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임이라지만, 이미 성공을 향한 반석을 얻은 시현에게는 불필요한 기회다.
즉, 그의 목표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그것뿐이다.
‘내가 아는 현실로 돌아가는 방법은 현재로서 하나뿐이야.’
Re write.
붉은 문자는 게임이라 표현했지만 메시지로 보내진 자료를 읽은 시현은 이렇게 평가했다.
게임이라기보다는 생존과의 싸움이라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존을 위한 규칙은 간단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영웅적 행보를 선보이며 소설을 완결 짓는 것.
그리고 많은 수의 구독자와 조회를 확보하는 것으로 순위를 높이는 것.
얼핏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두 가지 문제가 걱정이었다.
하나는 경쟁자의 존재다.
이 게임에 참가한 사람은 시현 혼자만이 아니다.
조금 전부터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적색의 문자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윤시현의 Re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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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려면 이들 전부를 제치고 10위권 내에 진입해야 해. 1위에게는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진다지만 거기까지는 관심 없고…….’
만약 10위권 내에 진입하게 된다면 그 보상으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냥 돌아가기만 해서는 보상이 되지 않는다.
규칙에 의하면 10위권 내에 진입한 참가자는 원래의 세계에, 원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인생은 선택과 후회의 반복이다.
그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텐데.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이런 망상을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메리트니까.
바보라도 자신의 인생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비틀 수 있을 터다.
그렇기에 남자는 이 게임을 기회라 칭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논리는 Re write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참가자들은 원작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파악하고 있다.
그 지식을 이용해 보통의 등장인물보다 앞서갈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들을 제치고 10위 내에 진입하는 건 여간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Re write의 장르가 판타지라는 것이다.
이미 원작을 반 이상 읽은 시현은 이 소설 속 세상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곳인지를 알 고 있었다.
‘완결 이전에 내 목숨 부지하는 것조차 벅차겠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해.’
무계획적으로 움직이다가는 첫날조차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작의 존재다.
사실상 이 세계의 미래가 적힌 예언서라 봐도 무방한 원작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 위험에 대처하는 게 가능하다.
시현은 주변을 살폈다.
원작의 지식을 이용하기 전에 하나라도 좋으니 단서가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버스 정류장 이름이 영진교회 사거리잖아. 이 근처에 생명의 탑이 있었지?”
생명의 탑.
1층에 약국이 자리하고 있으며, 2층부터 6층까지 다양한 병원이 자리하고 있는 빌딩의 별명이다.
원작에서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다뤄진 장소이기도 했다.
“생명의 탑이라면 안전해. 이채연이었나? 그 여자도 있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장 베스트는 LT마트야.”
LT마트라 하면 참가자 대부분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장소일 것이다.
원작의 주인공 정훈이 본격적으로 활약을 시작하는 첫 번째 무대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LT마트까지 가고 싶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아포칼립스가 언제 시작되느냐가 관건인데…….”
쿵!
돌연 강한 진동이 한차례 땅을 뒤흔들었다.
“아, 지금이구나.”
어쩜 이리 타이밍이 딱 들어맞는 건지.
시현은 마음의 준비를 서둘렀다.
이는 예정된 재앙이다.
당연하지만 진동은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쿠구구궁!
대규모 지진이라도 발생한 듯 대지가 흔들렸다.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벅찰 만큼 진동이 강렬했다.
“어어어!”
“꺄아아!”
갑작스러운 지진에 당황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사람도 있고, 당황해서 무작정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다.
무리하게 움직이다 넘어져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여유가 없는 것은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와아아악!”
결국 비명이 터져 나왔다.
땅울림이 더욱 거세진 결과, 땅이 갈라지고 그 위의 건물이 붕괴했다.
갈라진 땅은 도로를 거닐던 수많은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으며 수많은 불기둥이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초고열의 불기둥에 타 죽은 이는 재조차 남기지 못했다.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라는 단어로 지금의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를 위해서는 먼저 세상이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
엉덩방아를 찧은 시현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멸망하는 세상을 지켜봤다.
키이이잉―.
굉음이 울리고 하늘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더니 돌연 태양이 사라졌다.
그리고 핏발이 선 거대한 눈알이 태양이 있던 자리를 대신했다.
유례없던 대규모 지진조차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하늘의 눈동자에서 보라색 빛이 쏟아졌고, 견딜 수 없는 수마가 덮쳐 왔다.
시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주변에서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이 한 손에 꼽힐 수준으로 적어졌을 때, 시현의 의식도 깊은 어둠에 잠겨 들었다.
* * *
툭.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현은 자신의 뺨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잿빛의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몽롱함에 취해 깜빡이던 그의 눈이 돌연 동그래졌다.
“아.”
용수철처럼 튕기며 몸을 일으킨 시현은 주변을 둘려봤다.
그리고 신음했다.
기절하기 전과 비교하니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여기저기 반파된 건물과 그 잔해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으며, 도로는 뒤집어지고 갈라진 틈으로 흙이 보였다.
그뿐이라면 사상 초유의 지진이 발생했거니 정도로 생각했을 거다.
문제는 건물이나 도로를 덮고 있는 정체불명의 식물과 불그스름한 고깃덩이들이었다.
마치 촉수처럼 생긴 기이한 식물들이 제멋대로 일대를 휘감고 있었으며,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맥동하는 고깃덩이들이 만물을 뒤덮고 있었다.
대지에는 피처럼 붉은 물줄기가 흘렀다.
묘한 색조의 꽃들이 곳곳에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앙에 휘말려 죽은 사람들의 시신 일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우욱!”
너무도 역겨운 광경에 토악질이 나왔다.
숨 쉬는 게 괴로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으아아……. 이게 대체 뭐야?”
“꿈이야? 이거 꿈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핸드폰도 안 터져!”
곳곳에서 패닉에 빠진 사람들의 울먹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들 중 태반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횡설수설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소수의 냉정함조차 이어지는 두 번째 재앙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우어어어어…….]
감각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음성이 낮게 들려왔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