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2화 (2/225)

[2화]

“게임?”

영문을 알 수 없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사전 예약한 게임의 출시를 예고하는 메시지인가 싶었으나, 애초에 시현은 모바일 게임을 하지 않는다.

사전 예약 또한 해 본 적 없고 말이다.

그냥 광고 같은 것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려던 시현은 아직 미독의 메시지가 몇 개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같은 번호로부터 온 메시지다.

—본 게임을 위한 규칙입니다.

1. Re write는 동일 제목을 가진 소설의 리메이크를 작성하는 게임입니다.

2. 승리를 위해 참가자는…….

—다운로드 폴더 안에서 원작을 확인해 주세요.

—기한 내에 초대장을 파기하지 않았으므로 초대를 수락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참가자 윤시현을 환영합니다.

—참가자 특전을 부여합니다. 규칙을 확인해 주세요.

상당한 길이를 자랑하는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시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나 그 남자한테 번호 알려 준 적 없는데?”

이렇게 날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한 줄기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흐르다 액정에 떨어졌다.

결국 메시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오전 아르바이트는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주문은 틀리기 일쑤였으며,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아 점장에게 핀잔까지 들었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시현의 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번호로 온 메시지야 개인 정보가 마음대로 팔리는 시대이니 그렇다고 쳐.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술집에서 세윤이랑 한 대화를 엿들은 걸로 알아낼 수 있어.’

하지만 그 두 가지가 합쳐졌다는 게 문제였다.

더군다나 다운로드 폴더 안에 Re write라는 제목의 텍스트 파일까지 들어 있다.

혹시 몰라 공중전화를 이용해 메시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없는 번호’라는 답이 돌아왔다.

온몸에 송충이가 기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아니, 진짜 어떻게 한 거냐고. 미치겠네. 어제 너무 마신 건 맞지만 필름이 끊긴 건 아닌데.”

개인 정보가 팔린 정도가 아니다. 아주 통째로 털렸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뭔가 직접적으로 손해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번호를 누르기가 꺼려졌다.

애초에 시현은 잃을 게 없는 상황이었다.

통장 잔고는 사기꾼마저 눈물을 뿌리며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입금을 해 줄 수준으로 텅 비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남자의 목적은 대체 뭐야?’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규칙이 담긴 장문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런저런 잡다한 내용이 많았지만 주인공이 되어 소설의 완결을 찍는다는 영문 모를 내용이 메인이었다.

시현이 원했던 정보는 달리 없었다.

“아니면 이쪽인가?”

혹시 몰라 바이러스 검사까지 끝마치고 텍스트 파일을 열었다.

그러나 텍스트 파일에서도 시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안에는 그저 장편의 소설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정훈. 나이는 26세. 매일같이 가난과 일에 치여 사는 인생. 그러던 어느 날 정훈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흐음……. 오호……. 헉!’

시현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나도 모르게 읽고 있었어.”

원하는 정보가 있나 확인만 해 볼 심산이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텍스트 파일에서도 그가 얻은 건 없었다.

“흠……. 뭐, 별일이야 있겠어?”

손해를 본 것도 없고, 애초에 가진 게 없어 잃을 것도 없다.

머리가 아프도록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시현은 생각을 포기했다.

침대에 드러누운 시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6시.

평소라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어제부로 시현은 저녁 타임에 뜻하지 않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아직 구하지 못했으므로 시간이라면 차고 넘친다.

“할 것도 없는데 조금만 더 읽을까? 달리 문제도 없어 보이고.”

가만 생각해 보니 집안 형편이 기울기 전, 소설은 시현에게 있어 몇 안 되는 소소한 취미 중 하나였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 잊고 있었을 뿐이지.

그런 이유로 시현은 날짜가 바뀔 때까지 Re write라는 제목의 소설에 집중했다.

남자와 메시지에 대한 경계심은 뒷전으로 미뤄 둔 채 말이다.

* * *

시현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는 늘 똑같은 반복이었다.

그러나 그날, 정체 모를 남자를 만난 이후부터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생각보다 재밌네.’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시현의 눈동자에 화면 가득 빼곡하게 자리한 글자들이 비추고 있었다.

짬짬이 시간이 날 때마다 Re write를 읽는 것.

그게 시현의 일상에 끼어든 새로움이었다.

소설의 장르는 판타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정훈이라는 남자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었다.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정훈이 영웅적 면모도 보이지만 실수와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가진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소설의 분량이 결코 적지 않다는 거다.

화요일부터 시작해 매일 저녁 두 세 시간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데, 절반조차 채 읽지 못했다.

오늘이 벌써 일요일 아침인데 말이다.

주말이라 해서 시현의 일상이 무언가 특별해지는 건 아니다.

“또 알바 가야 해.”

시현이라고 해서 이런 일상이 지겹지 않을 리 없었다.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정한 연인.

양쪽에 부모의 손을 잡고 한껏 신이 난 아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가는 젊은 부부.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제각각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다.

“나도 여유를 즐기면서 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생활비가…….”

지독한 슬픔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배를 곯지 않으려면 일을 해야지.

여유 역시 돈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일 뿐이다.

외투를 걸친 시현은 원룸을 나섰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시린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무언가가 만져졌다. 처참하리만치 구겨진 종이였다.

초대장.

그리고 복권이었다.

“아.”

그제야 자신이 며칠 전 감성에 취해 복권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도 기껏 샀는데 확인은 해 보는 게 맞겠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번호를 맞춰 보는 것 자체가 복권의 재미라고 했던 박세윤의 말이 떠올랐다.

원룸을 벗어나 내리막길을 걸으며, 시현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복권 사이트에 접속했다.

어차피 빗나갈 거 기대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번호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기대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도 일치하는 번호가 많아질수록 흥분에 체온이 높아졌다.

‘넷, 다섯, 여섯. 응?’

뭔가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한 시현은 다시 한번 번호를 확인했다.

무언가의 실수가 아니었다.

“으으으응?”

액정에 뜬 번호와 종이에 적힌 번호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이게 무슨 소리지?’

정체 모를 소리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게 자신의 심장 소리라 깨닫는 순간, 시현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손이 수전증과 다한증이 겹쳐 발생한 것처럼 미친 듯 떨리고 땀을 뿜어 댔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으며,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저기……. 괜찮으세요?”

격하게 몸을 떠는 시현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걸까.

조금 뒤에서 걷던 중년의 여성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부자연스럽게 복권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시현은 도망치듯 내리막길을 달렸다.

‘잘못 본 게 아니야.’

기적이 일어났다.

보너스 번호 빼고 여섯 개가 전부 일치했다.

1등.

몇 번을 확인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결코 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1등이다.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여섯 개의 번호를 전부 일치시킨 것이다.

피가 끓다 못해 죄다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던 시현은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 앉았다.

엉덩이를 타고 전해지는 차가운 느낌이 뇌까지 잠식했던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진정하자. 일단은 당첨금. 당첨금이 얼마인지 확인해야 해. 아니, 이놈의 손가락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손이 떨리는 바람에 당첨금을 확인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1등이라 해도 당첨 인원에 따라 당첨금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당첨금을 확인했다.

‘당첨자 수가 겨우 셋? 그리고 당첨금은 60…… 허억!’

너무 놀라 숨 쉬는 방법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감정은 한계까지 고조되었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번 회 차 당첨금이 역대급이라며 떠들고 있었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가 세 명뿐인 당첨자를 부러워했다.

그 중에는 같이 복권을 산 박세윤 또한 존재할 것이다.

인생은 한 방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일발 역전으로 시현은 요 몇 년 사이 인생을 짓누르던 가난을 떨쳐 냈다.

지독한 가난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구름 위를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게임 시작까지 앞으로 27시간 남았습니다.

“……응?”

그 순간 도착한 메시지가 시현을 단번에 현실로 끌어내렸다.

번호 확인을 위해 액정을 보고 있어서 회피조차 시도해 보지 못하고 직격 당했다.

‘설마 그 남자, 내가 복권에 당첨될 거라는 걸 알고?’

오죽했으면 그런 의심암귀까지 생겼다.

물론 시간상 복권의 구매가 나중이었기에 빗나간 의심이었지만 말이다.

“…….”

자연스레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승자에게는 그만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무려 과거로 회귀해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다는 경이로운 혜택을 말이죠.”

당연하지만 상식인인 시현은 남자의 헛소리를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다’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의 시현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었고, 위험을 무릅쓰는 한이 있더라도 인생을 다시 쓰고 싶다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생겼다.

‘남은 시간 27시간…….’

마냥 기뻐야 할 날이지만 시야가 흐릿한 와중에도 보였던 남자의 미소가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 * *

“걱정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해야 할 일을 하자.”

시현은 살면서 처음으로 아무 이유 없이 아르바이트를 쉬었다.

물론 전화로 양해는 구했지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려 60억이라는 거금에 당첨됐는데.

그렇다면 시현이 해야 할 것은 하나.

온 힘을 다해 오늘의 행운을 자축하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었다.

설마 자신이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1등에 당첨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할 게 어디 있겠는가.

책상 앞에 앉은 시현은 싸구려 수첩에 앞으로의 미래를 그렸다.

하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우선은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지. 종일 아르바이트만 하느라 성적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시현은 원하는 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첩 위를 끄적이던 볼펜이 잠시 질주를 멈췄다.

막상 하고 싶은 걸 생각해 보니 좀처럼 떠오르는 게 없었다.

무엇을 추가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타이밍 좋게 옆집 커플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기입할 게 생겼다.

“방음이 잘 되는 곳으로 이사 가야겠어. 아! 이번에 집에 가면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말씀드려 볼까?”

자연히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생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자연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져 온다.

외동인 데다가 난산 끝에 낳은 아들이라 과분할 만큼 사랑을 받고 살았는데.

이제라도 효도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당장 생각나는 건 없네. 급할 것도 없으니 천천히 하고. 일단은…….”

시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르지만 아침을 걸러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어제까지의 시현이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라면을 끓이기 위해 물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더 이상 내일 끼니를 걱정하며 라면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가난한 대학생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부러워할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뿐이다.

“좋아. 오늘은 사치를 부리자.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그가 선택한 사치란 다름 아닌 치킨이었다.

가끔 이용하던 가성비 좋은 브랜드가 아닌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비싼 놈이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치킨을 앞에 두니 자연스럽게 침이 고였다.

“이제 곧 수십억이 생길 텐데, 뭐가 걱정이야!”

한입 크게 베어 무는 순간 입 안 가득 행복이 퍼졌다.

‘역시 비싼 건 비싼 값을 하는구나.’

거기에 차갑고 탄산이 가득 든 콜라 한 모금.

여기가 천국이 아니라면 어디가 천국이란 말인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띤 시현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한 번의 행운 덕에 그동안의 불운이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누가 그랬던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라고.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였어.”

열아홉 살 이후 시현이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돈 때문에 쥐고 있던 행복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돈 때문에 행복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1등에 당첨됐다고 하면 엄마 아빠 엄청 놀라겠지? 우리 엄마 막 쓰러지는 거 아니야?”

힘든 시기는 이제 다 지나갔다.

남은 건 꽃길만 걸을 차례다.

* * *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평소라면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출근 준비를 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전날 느꼈던 기쁨은 날이 바뀌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온몸을 휘감았던 흥분과 열기는 아직도 잔재가 남아 있다.

그 때문일까, 외출을 준비하는데 저도 모르게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게 된다.

“60억이라……. 으흐흐, 내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억누르려 해도 자꾸만 바보 같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거금이 자신의 통장에 들어올 거라 생각만 해도 행복이 느껴졌다.

시현은 구겨진 자국이 여실히 남아 있는 복권에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고작 종이 한 장이 이리도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 맞다.”

다 해진 겉옷을 걸친 시현은 박세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아침? 이제 곧 12시인데?”

[아침이네. 굉장히 이른 아침.]

“아, 그러냐. 그보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밥이나 먹자.”

[바쁜데. 게임해야 해. 오늘 경험치 두 배 이벤트 있는 날이야.]

“헛소리 말고, 7시까지 그때 갔던 술집으로 와. 내가 살게.”

[월급 들어왔냐?]

“그거보다 더한 일이 있었지.”

[더한 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는데. 그때 산 복권이라 당첨됐을 리도 없…….]

뚝.

“뭐야, 왜 이래?”

시현이 현관을 벗어나는 순간 돌연 통화가 끊겼다.

실수로 통화가 끊어진 건가 싶어 전화를 걸었는데 박세윤은 받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됐나?”

문제가 해결되면 박세윤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시현은 발걸음도 가볍게 현관을 나섰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집 근처 담벼락 밑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쓰레기 더미도 예쁘게 보이고, 옆집 커플이 싸우는 소리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렸다.

높은 하늘에 걸린 구름, 버스 정류장까지 이어지는 거리의 풍경.

오죽했으면 커브길 볼록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조차 잘생겨 보일 정도다.

골목을 벗어난 시현은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오늘 알바 그만둔다고 말씀드린 후, 한 일주일 정도면 알바생 새로 뽑으시겠지? 점장님께는 받은 게 많으니 폐가 되지 않게 그때까지만 일해야지. 조금 일찍 끝내 달라고 부탁드리고……. 은행에 가자!’

드디어 오늘이다.

앞으로 수 시간 후면 자신의 통장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오게 된다.

벌써부터 희열에 몸이 떨렸다.

시현은 기분 좋은 미래를 그리며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낭랑한 방울 소리와 함께 자신을 반기는 점원의 미소에, 시현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어?”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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