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1화]
“단순한 과로입니다. 푹 쉬면 괜찮아지실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은 백의의 의사에게 시현이 허리 숙여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병원의 대리석 바닥을 응시하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가슴이 철렁했다.
머리가 멍해지며 어찌해야 할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의사로부터 안심해도 좋다는 말을 들으니, 그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며칠 정도는 입원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환자분께서 계속 퇴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셔서…….”
의사는 난감한 듯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가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는지 알고 있는 시현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병원비는 제가 미리 낼 테니 건강해지실 때까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약속대로 병원비를 미리 지불한 시현은 그제야 아버지의 병실로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죽은 듯 누워 있는 빼빼 마른 중년인의 안색의 새하얗다.
또한 살이 없어 앙상하게 느껴지는 손을 잡으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손이 시현의 손을 감쌌다.
“시현이냐?”
겨우 내뱉는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응, 과로라면서? 며칠 입원해야 한대.”
“몸이 조금 피곤한 것뿐인데 그게 뭐 대수라고 입원씩이나. 그럴 돈 없다.”
“병원비는 다 냈어. 그리고 전에도 말했잖아. 일 좀 줄이라고. 나도 알바하고 있으니까 내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어.”
“하지만…….”
“괜찮다니까.”
어째서 아버지가 과로로 입원할 만큼 제 몸을 깎아 내고 있었는지, 시현은 자식이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5년 전.
집안 형편이 크게 기울었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작은 규모로마나 운영하던 사업이 쫄딱 망하고 빚더미 위에 앉게 된 것이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 잘 만나 편하게 살던 시현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시기이기도 하다.
한평생 사무실에만 앉아 있던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몸을 쓰는 일에 뛰어들었다.
빚을 갚는 와중에도 시현을 대학에 보내고, 생활비까지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몸을 혹사시켜야 했을지 안 봐도 훤했다.
“미안하다.”
아버지는 사과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만큼 가슴 아픈 게 또 있을까.
그런 말보다는 앞으로도 같이 잘 해 나가자는 말이 듣고 싶었다.
“못난 아빠라 정말 미안해.”
끝까지 사과만 하던 아버지는 지치신 건지 잠들어 버렸다.
시현은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한참이나 지켜보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병실을 나왔다.
“어머, 우리 아들. 언제 왔니?”
때마침 병실 앞에서 어머니와 마주쳤다.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아버지 때문인지 눈시울이 붉었다.
“30분 정도 됐어.”
“그런데 벌써 가려고? 조금 더 있다 가지.”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보내려니 무척 아쉬웠는지 어머니가 시현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손을 잡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오늘 보니 어머니의 손이 이렇게 거칠어졌구나.
가슴이 먹먹했던 시현은 시선을 회피하고 말았다.
“얼굴 봤으니까 가 봐야지. 오늘 아르바이트 못 뺄 거 같거든. 엄청 바빠서.”
“그러니? 아쉬워서 어쩌니.”
“다음 주에 시간 내서 집에 한 번 들를게.”
웃으며 어머니를 안아 준 시현은 병원을 빠져나왔다.
낡은 코트는 다가오는 겨울을 알리는 찬 바람을 제대로 막아 주지 못했다.
“에잇, 까짓것 내가 지금보다 더 잘 벌면 되지!”
시현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곤 우중충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 시도했다. 하지만.
—시현아, 네 형편은 나도 잘 아는데, 요즘 시국이 좀 그렇다 보니 손님들이 없어서……. 아무래도 그만 나와 줘야 할 거 같아. 미안하다.
진동음과 함께 도착한 문자는, 겨우 딛고 일어서려던 시현을 대차게 걷어차 버렸다. 여태껏 마셔 본 적 없는 술이 절실하게 생각날 정도로.
* * *
“그렇게 됐다.”
소주가 가득 담긴 잔을 든 시현은 오늘 낮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전했다.
잘 익은 고기를 뒤집던 박세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술, 담배를 사절하던 윤시현이 술 좀 마시자기에 뭔 일인가 싶었는데. 그래, 실컷 마셔라. 오늘은 내가 사마.”
“오, 감사.”
역시 친구 하난 잘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쓰기만 한 음료를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마시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억지로 잊고 싶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시현은 이곳저곳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따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느라 공부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공부에 몰두했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동안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기에 1년은 기초를 쌓기에도 부족할 뿐이었다.
지방대 학생증이 최하위권이기는 해도 인서울로 바뀐 게 그나마 노력이 빚어낸 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다.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공부를 열심히……는 안 하겠구나.”
“어? 왜?”
“사기꾼 놈을 잡아 족치면 해결되는 문제니까.”
“맞네. 그게 빠르고 확실하네.”
과거로 돌아가다니.
가능할 리 없는 이야기이기에 두 남자는 그걸 화제로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취기가 돌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흔들렸으며, 몸에 열기가 갇혀서 맴도는 것처럼 체온도 상승했다.
“시현아, 너 오늘 알바는 쉬냐?”
“내일도, 모래도, 쭉 쉴 거 같다. 잘렸거든.”
“그러냐. 백수된 거 축하한다.”
“안타깝게도 평일 오전 알바랑 주말에 두 개 남아서 백수는 아니야.”
“뭔 놈의 알바를 그렇게 많이 하냐. 하나를 잘렸는데도 아직 세 개가 남아 있다고? 사람인가?”
“개강하면 평일 오전은 빼야지. 어쨌거나 그리되었으니 오늘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달리는 거 가능.”
“지금이 딱 그 정도인 거 같은데? 너 막 혀 꼬부라진다.”
“전혀 안 취했어.”
“취한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고는 하지.”
처음 술을 마시는 사람이 으레 하는 실수가 자신의 주량을 모르는 상태에서 멋모르고 들이붓는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현이 딱 그랬다.
알딸딸하면서도 묘하게 기분 좋은 게 안주도 없이 계속해서 술잔을 넘기게 된다.
“나 화장실 좀.”
박세윤이 자리를 비웠다.
배를 잡고 있는 걸 보니 금방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혼자 얌전히 자작을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새 박세윤이 돌아온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캐주얼한 차림의 박세윤과 달리 상대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으나 시야가 어지러워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안 사요.”
상대를 잡상인이라 치부한 시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상대는 살짝 미소 지을 뿐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친구분과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으시다고.”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꽃피우기 위한 무의미한 화제 중 하나일 뿐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허황된 망상일 뿐이니까.
그러나 이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귀찮기도 하고 잡상인에게 할 만한 말도 아니다.
‘잡상인을 상대할 때는 무시가 최고지.’
철저한 무시를 전략으로 택한 시현은 묵묵히 술잔을 넘기기 시작했다.
상대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포기하고 떠날 법도 하건만.
아쉽게도 남자는 보통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은 상대였다.
“사실 저는 스카우터로서 당신을 어떤 게임에 초대하려고 이곳에 온 것입니다. 굉장히 위험하고 죽음이 동반되는 게임입니다만, 승자에게는 그만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남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철저하게 무시하려 했는데 목소리가 매력적이라 그런지, 술집 특유의 소음 속에서도 때려 박듯 귓가에 꽂혀 들었다.
“무려 과거로 회귀해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다는 경이로운 혜택을 말이죠. 기막힌 우연 아닌가요? 때문에 무심코 두 분의 이야기를 엿듣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담담하게 읊조렸다.
듣고 있자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냥 평범한 잡상인인 줄 알았는데 ‘도를 아세요?’ 이상으로 위험한 놈이었다.
“당신에게는 자격이 있습니다. 이거 아무에게나 드리는 기회가 아니니 잘 생각해 주세요.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기회입니다. 여기 초대장을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검은 편지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굉장히 공들였구나 생각될 만큼 장식이며 재질이 고급스러웠다.
“게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메시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걸 확인한 후에도 생각이 없으시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초대장은 오늘 자정이 지나기 전에 폐기해 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믿고 안 믿고는 자유입니다. 불참하신다면 초대장은 다른 분께 전송되며 오늘 저와 나눈 대화는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끝까지 되도 않는 헛소리를 남긴 남자는 미소와 함께 술집을 벗어났다.
남겨진 시현은 남자가 두고 간 초대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의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라…….”
그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고민들을 전부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달에 한 번 만날 때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가 아니라 늘 그랬듯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아버지와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매일같이 남의 빌딩을 청소하러 다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매일매일 아르바이트에 시달리지도 않을 것이며, 돈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장래 희망도 계속해서 쫓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손에서 놓아야 했던 것들을 모조리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 부질 없는 망상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눈 딱 감고 목숨 한 번 걸어 보는 건데.”
그 때문일까, 차마 찢어서 버리지 못한 초대장을 테이블 위에 방치해 두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말이 진실이었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와, 세상에. 그새 혼자서 반을 비운 거야? 독한 놈.”
화장실에서 돌아온 박세윤이 혀를 차며 다시 술잔을 집어 들었다.
“나한테 걸리면 이 정도야, 뭐.”
두 사람의 잔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토했다.
남자에 대한 것은 금세 잊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겨우 술자리가 파했다.
취기 때문에 몸에 열이 올라서 그런지 몸이 으스스 떨렸다.
“아, 나 아빠 차 끌고 나왔는데. 시현 님, 오늘 하루만 재워 주시죠.”
“그러든가.”
“그러면 일단 편의점 좀. 칫솔 하나만 사 가자.”
집에 남는 칫솔이 있다고 말하기도 전에 박세윤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 추운 날 밖에서 기다리기 싫어 뒤따라 들어갔다.
계산대에 선 박세윤은 칫솔 외에도 복권을 구매하고 있었다.
“너 복권도 사?”
“아, 말 안 했나? 스무 살 때부터 매주 한 장씩 샀는데.”
“최고 몇 등까지 해 봤는데?”
“4등.”
“개손해네.”
“겁나 손해지. 그래도 매주 느끼는 기대와 설렘 때문에 사는 거니까……라고 핑계 한 번 대봅니다. 제발 1등 돼 봤으면 좋겠다!”
“흐음…….”
비치된 종이에 열심히 마킹을 하는 박세윤은 상당히 들떠 보였다.
지금까지 시현은 복권이란 걸 구매해 본 적이 없었다.
1/8,145,000이라는 천문학적인 확률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매주 5,000원씩을 내다 버리는 박세윤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현은 지쳐 있었다.
몸이 지쳐 있는 건 항상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몰리는 건 드물었다.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다 떨어져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거기에 떨어져 사는 아버지의 입원이 결정적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에 무심코 혹해 버릴 정도로 말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손에 한 장의 복권이 들려 있었다.
“대체 뭘 기대한 거야? 이런 거 당첨될 리가 없는데.”
한숨과 함께 구겨 버린 복권은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음?”
뭔가가 손에 잡혔다.
꺼내서 확인해 보니 예의 잡상인이 넘겨 준 초대장이었다.
화려한 필체로 Re write라는 문구가 기입되어 있다.
보고 있자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이걸 챙겼었나?’
분명 테이블 위에 버려 둔 채 나왔을 텐데, 어째서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걸까.
고민하던 시현은 이내 취기에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넣었으리라 결론지었다.
이대로 폐기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초대장은 복권과 함께 주머니로 들어갔다.
* * *
“아으……. 내 머리……. 내가 또 술 마시면, 난 사람이 아니라 개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시현은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지렁이처럼 몸부림쳤다.
난생처음 겪는 숙취는 금주를 다짐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시현은 주변을 살폈다.
자그마한 가구가 꽉꽉 눌러 담긴 좁아터진 원룸.
자신의 자취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박세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잠결에 들었던 ‘나 이만 간다’라는 말이 가까스로 떠올랐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시현은 먼저 세면을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타일을 내기 애매한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렸다.
찬물로 얼굴을 씻으니 정신을 조금이나마 차릴 수 있었다.
이제 쳇바퀴처럼 지겨울 만큼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일단 카페 알바를 하면서 저녁 알바 자리를 구해 봐야겠네. 요즘 알바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훤한 고생길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지.
해진 운동화를 신고 짧은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쓴다.
문고리를 돌리는 동시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구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게시 글의 수가 확연하게 줄었다.
안타까움에 혀를 차며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찰나, 진동과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게임 시작까지 앞으로 148시간 남았습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