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필로그 -- >
+에필로그미국 남부의 어느 조용한 야외의 공원.
입구에는 식장을 안내하는 싸인이 바람이 실어온 따듯한 온기에 살랑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인을 따라 식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니 양쪽으로 화분에 담긴 안개꽃들이 흐드러지듯 웃기 시작했다. 곧 하얀색 꽃들로 장식된 아치문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입장 길의 초입에서 오늘 결혼식의주인공인 준혁과 예리엘이 한껏 예복으로 멋을 낸 모습을 하고는 서로의 손을 살포시 잡고는 서 있었다.
신랑 신부 입장! "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예리엘이 부드럽게 팔짱을 껴왔고, 준혁은 그런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는 두 사람은 함께 아치문을 통과해 하얀색의 웨딩카펫 위에 발을 올렸다. 그 길을 따라 주례가 서 있는 연단으로 향했다.
" 와아아~~ "
" 짝짝짝~ "
웨딩카펫 양쪽의 실버컬러의 의자에 앉은 하객들의 환호소리와 박수가 이어졌다. 준혁과 예리엘의 가족과 지인들만 초대를 한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예리엘의 오랜 친구인 스트라스버그와 그의 아내 레이첼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브라이스 하퍼와 그의 여자 친구인 카일라 바너도 초대했지만, 두 사람의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결혼식에 앞서 먼저 치러지는 미국에서의 결혼식이었다. 신부인 예리엘이 미국아가씨이다보니 두 사람은 이곳에서 먼저 결혼식을 올리기로 이야기를 하고는 양가에 양해를 구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준혁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여주신다. 어머니 없이 홀로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가슴이 조금은 짠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젠과 테드가 옆에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결혼식은 직계의 가족만 부르는 것이었지만, 솔직히 그녀들은 그에게 가족과도 같은 관계였다. 연단의 양쪽으로는 신랑과 신부 측의 들러리들이 먼저 입장해서는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 신장 190에 체중 102키로나 나가는 브라이스 하퍼가 떡하니 서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피어난 다랄까? 물론 신부 측 들러리 (Bridesmaid) 로 그의 여자 친구 카일라 바너 양도 함께 였지만, 그녀는 하퍼와 달리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결혼식 주례는 그의 감독커리어 2번째의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막 은퇴를 한 데이비 존슨 전 감독이었다. 준혁과 예리엘은 그의 앞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는 두 손을 맞잡았다. 주례사가 이어질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왠지 긴장하는 듯 한 예리엘의 눈빛을 보고는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힘주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살포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눈빛을 보니 자신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 것 같아 준혁은 기뻤다. 그다지 길지 않은 주례사가 끝나고, 결혼서약이 이어졌다.
" 신랑 이준혁군은 신부 예리엘 버나드 양을 아내로 맞아 영원히 사랑하겠는가? "
" 네! "
주례의 물음에 준혁은 예리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왠지 그녀의 두 눈이 촉촉이 젖어 있는 것 같다 생각하며 그는 다부지게 대답했다.
" 그럼, 신부 예리엘 버나드 양은 신랑 이준혁 군을 남편으로 맞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
" 네. "
준혁의 앞선 대답이 너무 다부졌기 때문일까? 그녀의 대답은 다소곳하게 들렸다.
하퍼가 앞으로 나섰다. 신랑들러리의 주 역할인 신랑에게 결혼반지를 건네주기 위해서 였다.
" 준, 축하해요. "
" 그래. 고마워. "
반지를 받아든 준혁은 예리엘의 왼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는 결혼반지를 그녀의 손에 끼워주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눈의 촉촉함이 더욱 더 짙어진 것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데이비 존슨 전 감독은 빙긋이 웃고는 말했다.
" 신랑, 신부에게 키스하셔도 좋습니다. "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에게 멈췄다.
" 예리엘... "
" 준... "
준혁은 두 팔로 예리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 또한 두 팔로 준혁의 목을 껴안았다. 준혁의 입술이 예리엘에게로 다가가며 자연스레 그녀의 허리는 뒤로 젖혀진다.
입술과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았다.
" 비로소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
데이비 존슨 감독이 말했다. 그리곤 마지막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 그 다음은 두 사람만 있을 때 하세요. "
순간, 준혁과 예리엘의 표정이 묘해진다.
" 와하하하. "
그리고 하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데이비 존슨 전 감독의 가벼운 위트는 결혼식을 좀 더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결혼예식은 끝이 났지만, 결혼식은 이제 시작이었다. 미국의 예식은 보통 6~7시간이었다. 조금은 늦은 오후에 시작된 결혼식이라 피로연 장소의 세팅과 음식준비의 전 칵테일 타임만으로도 해가 뉘억뉘억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객들이 피로연 장소로 이동할
때 즈음에는 어두워졌다.
그리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올려다본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이미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리셉션장 바깥의 테라스 난간에는 한명의 여성이 엉덩이를 깔고는 올라가 있었다.
피로연장과 연결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 여기 있었네? "
" 응. 그러는 너는? "
젠은 다가오는 테드를 보며 물었다. 테드는 대답 대신 양손에 들고 온 칵테일 잔을 하나 내밀었다.
" 이번 카르마는 재밌지 않았어? "
" 그래. 재밌었지. "
젠이 대답했다. 의외로 시원스런 대답이었다. 테드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앞으론 어떡할 거야? "
" 글쎄? 재미없는 녀석과 착실한 여자 사이에서 태어날 애기 까지는 보고 갈까? "
" 허긴, 찰나의 시간일 테지만, 기분 좋은 기억의 편린 하나 정도라면 야...."
" 그 정도는 괜찮겠지? "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곤 있다지만 그녀들의 본질은 램프의 요정이었다. 그리고 되돌아갈 시기 또한 그녀들의 마음이었다. 테드의 되물음에 젠은 말없이 칵테일 잔을 기울였다. 그리곤 피로연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벽이 막고 있었지만, 보고자 한다면 이것은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한껏 흥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행복한 웃음을 연신 터뜨리며 빛나고 있는 준혁과 예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칵테일은 벌써 바닥이다. 테드가 들고 온 이것은 의외로 입맛에 맞았다. 한잔 더 먹고 싶다.
--풀쩍--젠은 난간에서 뛰어내리듯 내려왔다. 먼지하나 묻었을 리 없었지만, 원피스 치마를 털었다.
그러고는 테드의 말에 대답했다.
" 아마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