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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 스티브. 오늘 공 좋은데? "
곧장 덕아웃으로 달려 들어온 준혁은 장비를 챙기러 가면서 스트라스버그를 보고는 한껏 웃으며 엄지를 세워보였다.
" 이정도야 뭐. 핫핫핫. "
대답하는 그의 표정은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만족스럽다는 것은 확실하다.
허긴 코치와 분석원과 함께 비디오실 꽤나 들락날락 한 것은 분명하니... 최소한 다과회만 하지는 않았을 터.
" 그래. 인정. 인정. "
헬멧과 방망이를 챙겨든 준혁은 다시 한 번 스트라스버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리고는 곧바로 덕아웃을 나선다. 1회 말 공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워싱턴의 1번 타자였다.' 시작이 좋다. '어떤 투수건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시합의 시작인 초반의 1,2회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 챔피언십 1차전 선발로 나선 스트라스버그는 그 초반의 어려움을 좀 더 깊게 느끼는 타입이었다.
올 시즌 그의 평자책점은 3.14였다. 그런데 1회 ERA는 무려 4.50 2회도 크게 다르지 않은 4.24 이었으니까. 게다가 올 시즌 허용한 피홈런 20개중 절반이 넘는 13개를 1-2회에 집중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세인트루이스의 타자들을 상대로 1회를 공 10개도 던지지 않고 마쳤다.
스트라스버그가 1-2회 초반만 잘 넘기면 7회까지는 무난히 지워줄수 있는 투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기분 좋은 시작임에는 틀하하하. 스티브. 오늘 공 좋은데? "
역사대로라면 토미존 서저리 이후 투심패스트볼의 비중을 늘리며 땅볼의 비율이 50%를 넘겼을 스트라스버그였다. 하지만, 리그 최강 외야수비진의 존재(정확하게는 준혁)는 그런 그의 생각을 조금은 바꾸어 놓기에 충분해서, 올해 그의 땅볼비율은 40%중반 정도를 유지했다. 솔직히 포인트를 벌어야하는 준혁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플라이볼 피처라면 더 좋았을 터이지만, 중립구장인 내셔널스파크를 생각한다면(2013 ESPN기준 1.013 전체13위) 이것은 투수의 취사선택의 문제였고, 투수코치가 땅볼유도를 좋아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스트라스버그의 투구는 준혁과 상성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실제로 오늘 시합에서 준혁은 1회부터 포인트를 두 번이나 얻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했기에.' 더더욱 선취점이 중요하다는 거지. '어떤 시합이든지 간에 선취점이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팀의 선발투수의 컨디션이 좋다고 한다면 선취점을 얻어냄으로써 상대팀으로 하여금 좀 더 조급증을 이끌어 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작년에 이겼다고 올해도 100%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그 이겼던 경험이 팀의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라는 것은 분명할 터였지만, 포스트시즌의 경험의 두께에서는 세인트루이스와 자신들의 팀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 하지만, 넘어서야만 해. '마지막으로 타석에 들어서기전 세인트루이스의 포수 몰리나와 선발투수 조 켈리를 번갈아 쳐다보는 준혁의 다문 입술에 힘이 들어간다. 기세싸움에서 질수는 없었다.
가을좀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세에서 넘어서야만 한다고 준혁은 생각했다.
이런 준혁을 역시 야디에르 몰리나도 슬쩍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스퀘어 스탠스... '타석에서의 준혁의 모습은 이제껏 봐왔던 모습과 별반 다를 바는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몰리나는 시합 하루 전 그의 형 벤지 몰리나 배터리 코치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저 녀석은 긴장도 되지 않나? "
사람들은 말한다.
'시즌처럼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말이 쉽지 월드시리즈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포스트시즌에서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런 점에서 준혁은 정말... 흠 잡을 곳 없는 선수였다. 이제 갓 메이저4년차 20대 중반의 선수가 웬만한 베테랑 보다 더한 평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준혁의 마음속을 들어가본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에 이은 올해 디비전시리즈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피츠버그 상대 디비전시리즈 5할의 타율과 2홈런.
이건 반론의 여지가 없는 거다.
" 어때? 달라진 게 있지? "
배터리 코치이자 야디에르의 형인 벤지 몰리나가 동생을 보며 말했다. 챔피언십이 열리기 하루전날 두 사람은 비디오 실에서 디준혁의 타석을 살펴보고 있었다.
"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어. "
야디에르 몰리나가 대답했다.
" 그래. 준혁 리의 선구안은 대단하지. 리그를 통틀어 스트라이크존 공략에는 최고의 타자야. 나쁜 볼에 방망이가 나가는 법이 없거든. "
물론 준혁이라고 스트라이크만 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이 확실한 타자였고, 언저리의 공이 아닌 완전히 빠지는 공에 선풍기 질은 하지 않는 타자였다. 그런데, 앞선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는 상당히 많이 빠지는 공에 방망이가 따라 나오고 있었다.
" 그런데 녀석이 볼을 건드리고 있어. 계속해서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마치... "
" ... 배드볼 히터 처럼? "
벤지 몰리나의 이야기에 야디에르는 대답하듯이 말을 받았다.
" 그래. 맞아. 녀석은 결코 배드볼 히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
야구를 모르는 사람을 제외하고 메이저리그를 좀 본다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준혁 리는 배드볼 히터인가?'
라고 말이다.
백이면 백. 절대로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준혁은 이런 4년간의 모습을 손바닥 뒤집듯이 정반대의 타격을 디비전시리즈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 노렸다고 봐야겠지? "
스트라이크만 치던 타자가 노린다고 하루아침에 배드볼히터가 된다고? "
선구안이 좋고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의 공략을 잘하는 타자는 준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조이 보토나 추신수 등을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을 때렸을 때도 재미를 보았느냐 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준혁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마치 게레로를 보는 것 같다랄까? "
배드볼 히터의 대명사와도 같은 블라디미르 게레로.
" 글쎄. 완전히 빠졌다 싶은 공을 걷어낸다는 점은 비슷하긴 한데...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지 않나? "
" 허긴. 준혁 리에겐 긴 팔이 없으니까. "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배드볼히터로 그 이름을 알린 데에는 그의 야구에 유리한 신체조건도 한몫했다. 그는 그 긴팔로 생각지도 않았던 공들을 걷어 올렸다. 하지만, 준혁 리의 신체조건은 그렇지 못하다.
인종적으로도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팔 길이가 짧은 편이었다.
" 게스히팅이라고 봐야하는 걸까? "
야디에르는 미심적은 의문이 가시지 않는 다는 투로 형 벤지 몰리나에게 되물었다.
준혁이 피츠버그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뽑아낸 2개의 홈런은 모두 바깥쪽으로 최소한 공2개 이상은 빠진 코스였다. 그것을 스퀘어스탠스에서 순간적으로 앞발을 클로즈로 홈플레이트 쪽에 최대한 가깝도록 만들고는 몸이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며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방망이를 휘둘러 펜스를 넘겨버렸다.
" 그래. 게스히팅으로 노렸다고 봐야겠지. "
답은 나와 있었다. 피츠버그와의 디비전시리즈의 자료도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 하지만, 벤지. 저만큼 빠지는 공을 게스히팅으로 노린다는 게 상식적인 걸까? "
정도껏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준혁의 대처는 상식선을 훨씬 벗어나 있었다. 그 어떤 야구선수가 스트라이크존에서 공2~3개는 벗어나는 공을 노려서 친다는 말인가?
" 그러니 피츠버그가 준혁 리의 타격 성향이 바뀐 것을 재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당한 것이겠지. "
실제로 피츠버그는 1차전과 3차전에서 준혁의 이런 배드볼 히팅에 결승홈런을 헌납하고는 지고 말았다.
" 하하. 정말 골치 아픈 녀석이야. "
" 그러게 말이다. 어쨌든, 어설프게 뺐다간 위험하다는 말이겠지. "
"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
야디에르 몰리나가 그의 형을 보며 말했고, 벤지 몰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벤지.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준혁 리의 선구안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배트 컨트롤이나 파워는 좋은 녀석이니까 그것을 커버치고 있다고 보고 말이야. "
" 그럴 가능성도 없다곤 못하겠지. 오랫동안 몸에 익은 성향이라는 것이 단 며칠 사이에 달라지긴 힘든 거니까 말이야. "
야디에르 몰리나의 말처럼 벤지 몰리나도 이것은 의문이었다. 최소한 시즌 중에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면 비시즌 기간부터 준비를 해왔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준혁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타격성향이 뒤바뀐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처음부터 배드볼히터였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야구게임의 타자도 아니고 말이야. "
야디에르 몰리나는 푸념이 나왔다. 어디서 이런 녀석이 튀어나온 건지.
" 천재라고 해야겠지. "
" 천재라... 그 말이 정답이긴 한데. 그 천재를 우리가 넘어서야 하니까. 머리가 아픈 거지. "
야디에르를 말에 벤지 몰리나가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흩트려 놔야지. "
" 흩트려놓자고? "
" 그래. 피츠버그 배터리가 보면 공 두 개 이상 빠지는 바깥쪽 공으로 준혁 리를 상대했거든. 그러다가 실패를 했고. "
" 글쎄. 대처가 잘못 되었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 어쨌거나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로 승부를 했고. 준혁 리는 루상에 보내는 것도 위험한 타자니까 말이야. "
한 시즌 도루만 무려 150여개인 선수였다.
" 하지만, 경기 초반엔 안 뛰는 타자지. "
이유는 모른다.
징크스나 버릇이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레 유추는 해보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무도 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기록은 정확히 준혁이 경기 초반 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벤지 몰리나가 다시금 말했다.
" 그러니까, 경기 초반엔 볼카운트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몸 쪽으로 붙여보자는 거야. 바깥쪽을 노리는 타자에게 바깥쪽을 줘답이 안 나오기도 하고. 그리고 겸사겸사 준혁 리의 리듬도 좀 흩트려 놓고 말이지. "
" 솔직히 조금 과한 코스를 노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해. "
야디에르 몰리나는 형의 말을 이해했다. 준혁은 평소의 타격 폼으로는 때릴 수 없는 코스를 디비전시리즈에서 때려냈고 노렸다.
" 그래. 그만큼 바깥쪽에 신경을 쓸 수밖에는 없을 테니까. 당연히 안쪽이 답이 되는 거지. 조 켈리는 구속도 빠르니까 말이야. "
1차전 선발투수 조 켈리의 포심패스트볼은 평균구속이 95마일이었다. 그런 투수의 패스트볼이 몸 쪽으로 끈질기게 붙는다면 아무리 배드볼 히터로 각성한(?)준혁 리 라고 하더라도 쉽게 바깥쪽 공을 공략하긴 힘들리라.
" 녀석도 사람이니까. 몸 쪽으로 위협구가 들어가면 평정심이 깨질 수도 있을 테지. "
그래주면 다행이고... 워싱턴의 전력의 반은 준혁 리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도 않았다. ' 그런 녀석의 컨디션을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솔직히 벤지 몰리나는 준혁을 맞춰버리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헨리 라미네즈가 사구에 부상을 당하며 상대팀 다저스의 공격력이 현격하게 약해진 것은 분명했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1차전 선발로 나서는 조 켈리의 능력을 감안한다면 몸 쪽 승부를 가져갔을 때 몰리나의 리드대로 100% 컨트롤을 해낸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젊은 투수인데다가 1차전 선발. 긴장한 상태였다라고 한다면...
" 악마의 유혹인건가... "
무슨 말이야. 벤지. "
" 아냐. "
야디에르의 물음에 벤지는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아무리 과실이 달콤하더라도 대놓고 동생에게 말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 암튼. 이번 시리즈에선 말이야. 준혁 리에겐 몸 쪽 승부를 과감하게 가져가 보자고. "
형의 마지막 말이 들리는 듯 했다.' 그래. 계획대로 가보자고. 안쪽! '야디에르 몰리나는 망설임 없이 조 켈리에게 사인을 보냈다.
============================ 작품 후기 ============================+토요일 아침부터 밤샘근무하고 일요일 아침 퇴근. 한숨자고 오후 늦게 일어났네요. 정말 토욜 특근은 하고 나면 주말이 순삭된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주말연재는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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