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80화 (280/309)

< -- 12. 2013시즌 -- >

+2013시즌

" 비가 왔었나봐요? "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며 예리엘이 준혁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아침의 집앞의 거리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시즌을 마무리하고 난 다음날인 9월30일. 구단에서 선수들에게 하루 휴식일이 주어졌다. 당장 내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하는 피츠버그와 신시내티에겐 긴장되는 하루일터이지만, 리그승률1위를 차지한 워싱턴 내셔널스는 3일에 첫 경기가 잡혀있었고 그 상대도 남들 다쉴때 와일드카드결정전을 하고 올라올 팀이었기에 아무래도 여유가 있었다.

막 162경기의 시즌의 대장정을 마친 다음 날이기도 했고 다시금 시작될 포스트시즌을 달리기 위해서도 하루의 휴식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준혁과 예리엘도 오늘 하루 조금은 느긋하게 보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구단에서도 쉬라고 준 휴식이지 않던가.

그래서 함께 나선 것이 바로 집 근처의 홀푸드마켓. 미국에서 유명한 유기농 그로서리 마켓이었다.

" 저기 하늘 좀 봐요. "

팔짱을 끼고 함께 걷고 있던 예리엘이 준혁의 팔을 잠아당기며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 정말 너무너무 예쁘지 않아요? "

" 어. 그러네. "

준혁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실제로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화창하게 갠 푸르른 하늘은 한국의 높은 가을하늘을 연상시키는 것이 가슴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리엘의 감탄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와아~. "

" 와아~~~. "

나무를 봐도 예쁘다.

잔디를 봐도 예쁘다... 예리엘은 걸어가면서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평소보다 기분이 업 되어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준혁은 싫지 않았다. 그냥 흐뭇해진 다랄까? 연인이 활짝 웃는 감탄사에 그도 물들어간다랄까?

" 단풍이 조금 더 물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

오히려 아쉬움마저 들어 이런 자신의 감정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시즌중이라는 충분한 핑계거리가 있긴 했지만, 함께 마켓에 가보는 것조차 한참이나 되었으니까 말이다.

" 아침 먹고 가까운 데로 바람이나 쐬러 가볼까? "

" 와아. 그럴래요? 으음... 그럼 우리 내셔널 몰 구경 가요. "

준혁의 말에 예리엘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 좋아라하는 것이 그대로 다 보였다. 곧바로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하는 폼이 평소에도 생각해두었던듯 했다.

이야길 잘 꺼냈다 싶었다. 그런데, 내셔널 몰이라...

" 그럴까? 그러고 보니 나 한 번도 못가 봤네. 하하. "

여태껏 워싱턴DC에서 꼬박꼬박 세금 내면서 살면서 말이다.

" 네에? 정말요? "

예리엘 또한 의외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내셔널 몰이란 미국회의사당에서 서쪽의 워싱턴 모뉴먼트까지를 말하는데, 이곳은 녹음의 산책로라 할 만한 광대한 공원이었다. 여기엔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기념관 그리고 세계 최대의 미술관과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가을로 접어들어서 여름에 비해 관관객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 응. 관광객들이 외국에서도 찾아오는 곳인데,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하니 이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인걸. "

회귀전 마이너리거 때에는 한 몸 건사하기에도 바빴다고 핑계를 댈 수 있겠다. 하지만,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에는 왜 그랬던 걸까? 오랫동안 한국에서 동네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웅크리고 있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일까? 그때는 몇 년 동안 시내를 단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 그러고 보니 집 야구장. 집 야구장 이었구나.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도착한 마켓 안은 한산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준혁은 젠에게 부탁한 모자와 썬그라스를 꺼내 썼다.

" 풋. 뭐에요. 그거? "

" 귀찮은 건 싫어서. "

요정의 마법이 깃든 물건이었다.

그 효과야 이미 예전에 백화점에서 알고 있었다.

" 준은 모자 안 쓴 모습이 더 멋있는데... "

보통의 야구선수들은 모자 썼을 때의 모습이 더 잘나 보인다.

게다가 몇몇 선수들은 모자 쓴 모습과 벗은 모습에 상당한 괴리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모자를 벗은 모습이 더 멋진 남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안경은 영 어울리지 않아서 어색할 정도였다.

그녀가 보기엔 그랬다. 안경과 모자로 가리지 않은 그대로의 얼굴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다지만 그녀 또한 오랜만의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우선은 장부터 본다. 거의 매일 장을 보기에 그다지 살 것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살 것만 사고 갈 것 같았으면 준혁과 같이 오지도 않았을 터, 진정한 장보기 재미는 지금부터였다.

각종 유기농체소들과 육류들, 역시 유기농인 먹기 좋게 작게 잘라서 파는 생과일들, 견과류와 잡곡, 원두류 등을 원하는 무게만큼 덜어서 파는 코너 등등... 그러다

'노슈거는 맛없다.'

는 공식을 깨뜨려버리는 너무나도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집어 들기도 하며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하며 돌아다녔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다시금 집을 나선 두 사람은 자전거부터 빌렸다. 그리곤 미국회의사당을 출발지로 삼아 천천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10도 가까이 일교차가 나는 워싱턴의 가을날씨 답게 낮이 되자 은근히 더워진 기온이 옥의 티랄까?

하지만, 월요일의 한가로움이 내셔널 몰에도 찾아와준 덕에 두 사람은 좀 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와 스미소니언박물관 등은 그대로 지나쳤다.

구경이야 시간이 남으면 돌아오는 길에 해도 늦지는 않다. 매디슨 드라이브 노스웨스트를 따라 워싱턴 기념탑을 구경하고 두사람이 자전거드라이브를 멈춘곳은 콘스티뉴션파크Constitution Park였다.

리플렉팅 풀에서 조금 북쪽으로 위치한 연못이었는데, 오리랑 백조들이 노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예리엘이 추천한 장소였다.

" 피크닉가방 좀 가져다줄래요? "

예리엘이 주변경치를 구경하기 좋은 쪽의 잔디위에 자리를 펴며 부탁을 한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전거로 향했다. 피크닉가방은 자전거 뒤 안장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가 끈으로 묶어 놓았던 그대로 있었다.

3단 도시락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의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하나하나 가져온 접시위에 놓여졌다. 물병과 냅킨. 포크와 수저 등이 그 뒤를 잇는다.

" 맛 어때요? "

기대에 찬 얼굴로 예리엘이 두 눈을 반짝였다.

" 최고. 최고. "

준혁은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링컨 기념관이 있고, 백악관이 지척에 있는 그런 곳에서 한가로이 김밥을 먹을 줄이야.

한국에서야 늘쌍 먹던... 어디서든지 1500원만 내면 먹을 수 있는 김밥이건만...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예리엘이 직접 말아준 김밥을 흔한 김밥이라고 말할 순 없는 것이겠지만... 요즘은 미국에서도 롤은 쉽게 볼수 있다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나 할까?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준혁의 심정은 그랬다.

집에서 그녀가 직접 김밥을 마는 것은 봤으면서도 말이다.' 갑자기 라면이 땡기는데? '한국인의 입맛은 어쩔 수 없다랄까?

" 한식요리를 배운 덕분에 내 입이 호강하는 것 같다.

고마워. "

준혁은 다시 한 번 예리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 정말요? 후후. "

" 그럼. "

정말이었다. 나무그늘아래 시원한 바람과 싱그런 풀내음, 눈앞엔 아름다움 미녀가 빙긋이 웃어주고 거기에다가 이런 맛있는 음식이라니... 이런것이 재대로 된 힐링이지 않을까.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티타임을 가진다.

준혁은 가져온 보온병에 담겨있던 커피를 예리엘의 잔에 따라주고는 자신도 잔을 채웠다.

" 오리랑 백조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언제 봐도 보기 좋네요. "

그녀의 말처럼 물위에서 천천히 노니는 모습은 한가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 준혁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 글쎄? 그것 알아? "

" 뭘요? "

" 오리와 백조가 물위에 한가롭게 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발때문이라고 하던가? "

" 에엑? 정말요? "

" 글쎄, 진짠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

" 에이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

" 암튼 그런 말이 있더라고. 하하. "

이야기는 잘 꺼내놓고 결국은 또 흐지부지... 말 주변이 없는 준혁답다랄까? 그래도 이번엔 완전 맹탕은 아닌 듯 하다.

'정말일까?'

라며 예리엘의 얼굴에 궁금증이 떠오른데 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것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 우리 DC수산시장 가요. "

어느 정도 소화도 되었다 싶어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날 때 예리엘이 다시금 가고싶은 곳을 말한다. 목적지를 먼저 선택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지만, 한편으로는 반성이 된다.

그동안 재대로 함께 해주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말이다.

" 지금이 블루크랩 철이잖아요. 준이 다리 이야길 해서 블루크랩이 먹고 싶어졌어요. 우리 그거 사다가 쩌먹어요. 후훗. "

블루그랩이라... 백조다리와 게다리가 무슨 매치 업인가 싶기는 했지만...

" 게 요리도 할 줄 알아? "

흥미가 동하는건 어쩔수 없다.

" 별건가요? 찌기만 하면 되는데? "

준혁의 반문에 예리엘은 그 정도야 하는 표정이었다.

' 그렇게 간단한 건가? '게라고 해봐야 음식점에서 사 먹어본 기억밖에 없는 준혁이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게 다리를 떠올리자 입안에 침이 흥건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젠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 나도 좋아하니까 내 몫도 사와. 안 그럼 네 몫은 없다. ]젠장, 젠은 언제 또 이야길 듣고 있었던 거야? 이제껏 숨어서 지켜보기라도 한걸까?

[ 주변은 왜 살펴봐? 스토킹 취미는 없거든. ]

그러고 보니... 준혁은 그와 젠이 항상 온라인 상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함께 회귀를 하고 정기를 넘겨받은 때문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평소엔 잊고 있다가 가끔씩 이렇게 불쑥 텔레파시가 날아오면 깜짝 놀라곤 한다.

[ 많이는 필요 없고, 난 딱 한 찜통만 먹을 테니까. 참고해. ]한. 찜. 통?! [ 어허 인상 펴고. ]

" 준, 왜 그래요? 블루크랩 싫어요? "

얼굴표정이 바뀐 것을 보고는 예리엘이 물었다.

" 아냐. 아냐. 싫기는. 그냥 누나가 크랩 킬러라서... "

젠의 텔레파시 때문이라고는 이야기 할 순 없다.

" 아하. 별걱정을 다한다. 안 그래도 식구들 다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사갈 생각이었어요. "

그 정도쯤은 생각했다며 예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로써는 자연스런 반응과 대답이었다.

" 하하하. 그게 좀 많이 넉넉하게... "

하지만, 찜통 하나를 다 먹겠다는 이야길 직접 들었다면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 나도 한 찜통. ]이번엔 테드의 텔레파시다.

젠장... 얼마나 사가야하는거야? 이 크랩 귀신들아.

============================ 작품 후기 ============================+힐링캠프는 먹방을 타고~~~이번엔 테드의 텔레파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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