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70화 (270/309)

< -- 12. 2013시즌 -- >

+2013시즌경기의 초반흐름은 역시나 준혁의 예상대로 흐르고 있었다. 아니 누구라도 이런 흐름은 쉬이 예상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몰랐다.

반쯤은 주심에 의한 투수전. 물론 이것도 양 팀의 투수들이 제구력엔 일가견이 있지 않았다면 성립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오클랜드의 선발투수인 토미 밀론은 피네스 피처답게 전년도 9이닝당 볼넷허용개수가 1.71개에 불과한 투수였고, 통산9이닝당 볼넷은 그보다 더 적어서 1.5개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맞서는 워싱턴의 선발투수 조던 짐머맨 또한 9이닝당 볼넷허용이 2개를 넘기지 않는 투수였다. 패스트볼의 평속이 94.3마일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통의 젊은 강속구 투수들과는 달리 제구가 되는 투수였다.

전년도인 2012시즌의 메이저리그 전체의 9이닝당 볼넷의 평균이 3.05개란 것을 생각하면 오늘처럼 넓은 스트라이크존은 이 두 투수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과도 같다고 볼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는 순식간에 5회가 지워져버리고 난 6회 초가 되어서야 워싱턴의 첫 안타가 나왔다. 아메리칸리그 룰을 따라 9번 타순에 지명타자가 들어섰고 AL에 비해 그 이름값이나 몸값이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낮았지만, 거기에서 기대하지 않았던(정확하게 말하면 기대치가 낮았던) 안타가 나와준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안타는 5.2이닝 퍼펙트를 당하던 중에 나온 귀중한 안타였다. 더군다나 준혁의 바로 앞에서였으니 이 경기를 지켜보던 오클랜드와 워싱턴의 팬들의 희비가 갈린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워싱턴 덕아웃의 코칭스태프의 기대치는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았다.

" 어렵게 간다고 봐야겠지? "

" 네. 아쉽지만 2번 타순에서 하퍼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

데이비 존슨 감독의 물음에 2013시즌부터 존 맥클라렌 코치를 대신해서 덕아웃을 지키게 된 랜디 노어 벤치 코치가 대답했다.

" 브라이스 하퍼가 그대로 있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

어렵게 가더라도 승부를 생각한 어려움이냐? 승부를 피하는 어려움이냐라는 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전자가 투수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베스트로 승부를 걸어가겠다는 것이라면, 후자는 한번해보고 안되면 말고 라는 도망갈 자리를 마련해놓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브라이스 하퍼의 부재는 투수의 부담을 덜어주고 후자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 한 가지 변수라면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겠지요. "

랜디 노어 벤치 코치의 말 대로였다.

양 팀 모두에게 후하게 적용되고는 있었다. 하지만 빌 웰크 주심의 오늘 시합에서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불안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봐야했다.

" 사인을 보낼까요? "

" 아냐. 리는 알아서 잘하잖아. 안 그래? "

오늘 경기에서 앞선 2타석에서 파울플라이와 삼진으로 모두 물러나고만 준혁이었지만, 그래도 워싱턴 공격의 첨병은 준혁 이었다.

상대 선발투수의 공을 가장 먼저 보는 타자이기도 했고, 그 스스로 풀어나가는 플레이 또한 나무랄 데 없는 타자였다.

게다가 데이비 존슨 감독 또한 선수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감독이었다. 준혁이라면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 줄거다.

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방망이를 두어 번 휘둘러보며 준혁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토미 밀론의 초구선택은 바깥쪽 코스였다.

판정은 볼이 되었지만, 오늘 시합에서 확실히 투수에게 유리한 넓은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해주고 있는 빌 웰크 심판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두 번째 공이 들어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바깥쪽 코스였다. 더군다나 코스도 거의 같았다. 그런데 빌 웰크 주심의 손은 올라갔다.

' 같은 코스 인데... '

가상스트라이크존이 보이는 준혁이었다. 그랬기에 다른 코스를 같은 코스라고 착각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좌우와 높낮이에서 약간의 차이라는 것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범위 내라고 봐야할 그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공이었다.

" 후우... "

천하의 준혁도 한숨을 쉬며 타석을 벗어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미 서서 삼진을 당했던 앞선 2번째 타석에서 꽤나 강하게 어필을 한 터였다. 또다시 어필은 퇴장을 부를 수도 있었다.

물론, 퇴장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퇴장을 무릅쓴다고 하더라도 심판의 판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앞선 삼진을 먹은 타석에서도 오락가락했던 코스였으니까. 그때도 먼저 2번은 잡아주지 않다가 마지막에 잡아주는 바람에 삼진을 먹고 말았었다. 3번째는 볼이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안쪽 공이었다. ' 그래도 안쪽은 양호하네. '빌 웰크 주심도 메이저리그 심판답게 안쪽 공에 대해선 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안쪽 공은 그냥 한번 찔러보는 공일 터. 어차피 승부는 바깥쪽. 태평양처럼 넓은 바깥쪽 판정이 타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좀 더 불리했는데, 물론 이것은 다른 타자들에 비해 공을 많이 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아무튼 오락가락하는 존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는 없었다.

' 고의로 그러는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미국의 노스웨스턴대학교의 브라이든 킹 부교수가 2008~2009시즌의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 조사를 한것이 있었다. 그 조사에 따르면 무려 14%에 달하는 볼-스트라이크 판정에서의 실수가 있었다고 한다.

선발투수가 보통 100구 내외를 던진다고 하면 14개나 되는 판정실수가 나온다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중간계투와 마무리까지의 투구수를 따진다면 판정실수의 개수는 더 올라가는 것이었다.

여기에다가 홈 팀 투수에게 판정이 좀 더 유리해진다는 것도 사실로 밝혀졌는데, 실제로 홈 팀 투수가 던진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원정팀 투수보다 13.3%나 더 높았다고 했다.' 그것 까진 인정할 수 있어. '솔직히 컴퓨터가 판정을 내리지 않는 한, 주심도 사람인데 홈어드밴티지 없는 스포츠가 있긴 한가?

' 하지만, 오락가락만 좀 하지 않았으면 좀 좋아? '2볼 2스트라이크에서 8번째 공을 걷어내고는 준혁은 투덜거린다. 그도 사람인지라 짜증이 안날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시야 외곽이 번쩍하고는 시야 아래쪽에 글자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 얼래 이건?!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베드볼 히터]특기 였다.

" 크큭.. "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나왔다.

게임의 시스템도 준혁이 일부러 계속해서 볼을 건드리고 있다고 인식을 하는데, 주심만이 모르고 있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한결 마음은 편안해졌다.

더 이상 원숭이의 긴 팔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으니까.

'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하네. '물론 [베드볼 히터]라는 특기가 노림수를 노려볼 수 있는 특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나쁜 공에 방망이를 돌리더라도 정상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한 것과 같은 타구의 질을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 베드볼 히터]는 [ 타격의 신]과 달리 100%의 확률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아쉬워하며 벗어났던 타석에 다시 들어서는 준혁이었다.

--번쩍!

--그런데 다시 한 번 시야 외곽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스트라이크존의 색상까지 바뀌면서.' 뭐야? 진짜로?? '두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었다.

준혁은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말짱한 눈이었지만, 먼지라도 들어간 것처럼 손을 가져가는 제스추어를 취해본다. 그에겐 심호흡이 필요했다.

' 에스! 에스!! '되었다 싶었다. 준혁이 가장 원했던 바랐던 대로 아쉬움을 말끔히 날려줄 [특기]가 터져준 것이었다.

' 역시나 게임과 현실은 다른 걸까? '야구게임의 사파의 고수들도 동시에 [특기]가 발동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니 기대하지 말라던 [베드볼 히터]-[타격의 신] 콤보가 준혁에겐 100% 확률로 터져주었다. 물론 전체 횟수가 단 2번뿐이었기에 샘플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다르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튼 그에겐 나쁠 것은 없었다.

' 좋은 게 좋은 거다. ' 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리고 언뜻 든 생각이긴 했지만, 한 가지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지금 주심의 판정에 불만족스러운 것처럼, 잠브라노 때에도 무지하게 박쳤으니까 말이다. ' 이거 게임시스템이 사용자의 감정에도 영향을 받는 걸까? ' 궁금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먼저가 아니었다.

강제투수전이 된 마당에 그 어느 때보다 선취점이 중요해졌다는 사실은 준혁은 잊지 않았다.

" 오늘 주심 너무한데? "

어느새 인상이 험해진 젠이 툭하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 그죠? 저런 공을 잡아주면 어쩌란 말인지 몰라요. "

함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예리엘도 볼을 잔득 부풀이고는 불만스럽다며 말을 받았다.

야구선수를 동생(계약자로)으로 그리고 연인으로 두고 있는 여인네들이었다.

게다가 홈원정 가리지 않고 야구장을 자주 찾는 중이었다. 야구에 대한 지식과 보는 눈이 달라져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 그냥 봐. "

그때, 테드가 한마디 한다.

" 이번엔 달라질 것 같으니까. "

" 정말요? "

예리엘은 바로 반문했다. 테드의 말엔 꽤나 힘이 있었다.

" 준혁이잖아.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안 그래? "

" 그러네요. 맞아요. 준혁 리...'준' 이니까요. "

앞서 두 번의 타석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보여준 그녀의 연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준혁 리.'

였다. 예리엘은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테드도 굳건히 믿는데... '그의 누나도 믿어 의심치 않는데, 자신은 왜 마음 졸였을까 싶었다. 물론 이번에도 결과가 나쁘게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연인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혁의 배트가 나왔다.

--딱!

--예리엘의 믿음에 보답하기라도 하듯이 준혁은 한손을 놓은 채, 아름다운 턴을 선보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준혁: 저는 진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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