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2013시즌 -- >
+2013시즌' 바깥쪽... '포수 윌슨 라모스의 사인을 확인한 준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고개를 가로저을 이유도 없었다. 오래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 공 좀 던질 줄 안다. '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였다. 그랬기에 좌투수가 우타자를 상대할 때 바깥쪽으로 카운트를 잡고 들어가는 것이 보통의 방법이라는 것은 굳이 대뇌피질을 혹사하며 기억을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물론, 정확한 컨트롤이 힘든 지금의 상황에서 안쪽을 잡으려 하다간 한가운데로 몰리기 딱 좋기도 했다. ' 대충 근처로 던진다고 생각 하면서... '안 되는 코너 워크가 억지로 집중한다고 당장 잡힐 리는 만무했다. 경험상 오히려 더 역효과를 초래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깃 자체를 무시해선 안 된다.' 포수의 미트를 보면서... '다행히(당연한 것이겠지만) 윌슨 라모스는 미트를 움직이지 않고 과녁을 잡아주고 있었다. 와인드업에 들어간 준혁은 그것에 집중하며 암스윙을 가져갔다. --슈우우욱!!
--' 헛! '
하지만 이번에도 바뀐 타자를 상대로 한 초구는 포수의 미트의 위치와는 정반대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앞타자를 외야수 뜬공으로 잡아내긴 했지만, 대기타석에서 지켜본 준혁의 제구는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3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초구를 지켜보기로 했다. 첫상대하는 투수(?)이기도 했고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준혁의 공은 초구부터 자신의 가슴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 헉!! "
페드로이아는 놀라며 몸을 뒤로 재꼈다. 몸에 맞지는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살짝만 몸을 틀어도 맞지는 않을 공이긴 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려 98마일짜리 공이었다. 그런 공이 몸 쪽으로 붙는다면 공포심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준혁은 땜빵으로 마운드에 올라온 야수. 아마도 제구가 벗어났다고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더군다나 공을 던지자마자 미안하다는 제스추어를 보내오지 않은가.
페드로이아는 심호흡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2번째 공을 기다렸다.' 바깥쪽. '이번엔 바깥쪽. 정석적인 수순이었는데, 조금은 멀어 보이는 공이었다. 하지만 오늘 주심인 래리 하노버의 손은 여지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 스트라이크! "
페드로이아는 공이 지나간 길과 주심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주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일관된 판정은 다행이긴 했지만 덕분에 곤란해졌다.
넓은 스트라이크존도 문제였지만, 어쨌거나 앞선 타자 때도 그렇고 이쪽 코스가 스트라이크로 들어온다는 것이 문제였다. ' 이거 곤란한데... '이래서는 계산이 서지 않았다. ' 분명 제구는 좋지 않아 보이는데... '첫공을 던지고 나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마운드 위의 준혁은 자신의 투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연신 공을 쥔 팔을 움직여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제구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준혁은 야수였고 메이저리그 등록 기간만 따지더라도 마운드에 오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주심의 태평양존 때문에 애매해지고 말았다. 왠지 생각지도 않은 카운트에서 날카로운 공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제구력이 좋은 투수보다 더 까다로워질 수도 있었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패스트볼만 던지고 있다는 건데. '정말 패스트볼만 던질까?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 맞지는 않았지만 지금 공은 조금 위험했지요? "
" 라모스와 페드로이아 둘 다 깜짝 놀라네요. "
칼 브렌들 리가 공의 궤적을 보며 말했다면 해설자 밥 달링은 포수와 타자의 움직임을 살폈다.
" 조심해야합니다. "
" 타자가 잘 피하는 수밖에는 없겠지요. 어쩔 수 없이 공이 몰리는 거니까요. "
" 그렇습니다. 바깥쪽 공을 요구했던 것 같은데 리의 공은 완전히 반대로 향하고 말았어요. "
칼 브렌들리는 리플레이 화면을 보며 해설자 밥 달링의 말에 동조했다. 바깥쪽에 자리를 잡았던 윌슨 라모스의 미트가 급히 움직였지만 준혁의 98마일에 이른 빠른 공을 잡아내진 못했다. 그리고 그 공은 타자가 피하지 않았다면 맞았었을 수도 있었던 애매한 공이었다.
" 그래도 덕분에 준혁 리가 조금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요 저는 말이지요. 하하하. "
캐스터 스티브 존슨이 웃으며 가벼운 농담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 동감입니다. 타자만으로도 대단한 선수인데 투수로 제구까지 잡힌다면 인간계를 떠나야지요. 하하하. "
" 이미 신계에 올라가 있던 거 아니던가요? 하하하. "
" 그런가요? 그럼 은하계로 가야하나 할까요? "
칼 브렌들리와 밥 달링 역시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만큼이나 준혁의 투구는 인상적이었던 것이었다. 전력투구라고는 하지만 97-8마일을 던지는 왼손야수라니... 만약 여기에서 준혁이 삼자범퇴라도 만들어낸다면 이것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거나 TV를 시청하고 있을 야구팬들이거나 모두 놀라고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터였다.
" 2구째는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
스티브 존슨이 말했다.
" 이번에는 포수가 원하는 곳과 비슷하게 들어왔네요. "
" 마이너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해가 2007년이군요. "
잠시 자료를 찾아보고는 해설자 밥 달링이 말했다.
" 꽤나 오래됐군요. 준혁 리, 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은데 말이지요. "
흥미롭다는 투로 캐스터 스티브 존슨이 말했다. 들쑥날쑥한 제구는 제처 두더라도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투구 폼은 현역투수라고 해도 괜찮다 싶었다. 3구째도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쨌든 준혁의 공은 바깥쪽 가장 먼 곳의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고 앞선 스트라이크 판정 때문에 기다릴 수 없었던 페드로이아의 방망이가 따라 나오며 파울이 되었다.
그리곤 4번째 5번째의 공도 모두 파울이 되었다. 모두 빠른 패스트볼이었고, 3연속 파울이었다.' 딱 변화구 타이밍인데... '포수 마스크로 가려진 윌슨 라모스의 양미간은 살며시 찌푸려져있었다.
볼카운트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보스턴의 더스틴 페드로이아에게 타이밍이 맞아나가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패스트볼 하나면 던지다보니 97마일이라는 무시 못 한 속도임에도 타이밍이 맞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엔 2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았던 공보다 조금씩 안쪽으로 코스가 몰리고 있다는 점이 한몫했다. 하지만 그나마 주심의 일관된 태평양 존과 준혁의 공의 무브먼트가 나쁘지 않다보니 연속파울이 나오고 있었다. ' 하지만 계속 되는 건 곤란해. '이럴 땐 변화구 하나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이미 사인도 하나 준혁과 약속해 둔 것도 있었다. ' 굳이 꼭 스트라이크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투수를 논할 때 보통은 제구를 중요하게 치고는 했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제구를 가진 투수가 무조건 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메이저리그에서는 말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AJ버넷이 그런 유형의 투수였다. 무수히 많은 볼넷을 허용하는 결코 좋다고 볼 수 없는 제구력의 투수였지만 95마일의 빠른 구위가 좋은 패스트볼과 낙차큰 커브볼로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은 있었다. 들쑥날쑥한 제구력이더라도 구위 좋은 빠른공을 기본적으로 던질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마운드에 서있는 준혁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컨트롤이 잡히는 듯 하다가도 영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는 이 속구는 타자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평균정도의 변화구... 아니 야수의 등판인 점을 생각한다면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타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할 터였다. 물론 스트라이크존이 타이트한 주심을 만난다면 타자를 잡기전에 볼넷을 허용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만, 다행히 오늘 구심인 래리 하노버 주심은 '무척이나 관대' 했다. 그리고 이런 윌슨 라모스의 생각은 옳았다.
" 제 6구. 헛스윙! "
" 와우! 변화구를 던졌어요. "
" 변화구 타이밍이긴 했어요. 그런데 움직임이 좋았네요. "
FOX스포츠의 세 사람의 멘트가 커다란 시차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이나 준혁의 슬라이더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인상적인 변화구에 보스턴의 프랜차이즈스타이자 3번 타자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삼진을 당하고 있었다.
" 준혁 리. 삼진을 잡고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지요? "
" 슬라이더 였네요. 조금 가운데로 몰리긴 했지만 빠르게 꺾였네요. 유인구로는 괜찮았어요. "
" 맞습니다. 구속이 무려 91마일이나 나왔습니다. 저 정도 속도에서 저런 변화라면 까다롭지요. 더군다나 페드로이아에겐 아무런 정보도 없었어요. "
솔직히 조금은 후한 평가였다. 구속은 생각이상이었지만 코스는 그리 좋다고 말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던질지 모르는 타자와 투수의 대결에선 아무래도 타자가 약자가 될 수밖에는 없었다.
" 그렇더라도 대단하군요. 기본적으로 90마일 이상을 찍고 있군요. 준혁 리는 말이지요. "
다시금 준혁에 대한 FOX해설진의 칭찬이 이어졌다.
" 아무튼 빅 파피를 상대로도 이것은 괜찮은 무기가 되겠네요. "
이번 이닝에서 준혁이 상대할 3번째 타자가 빅 파피란 별명으로 불리는 데이빗 오티스였다.
" 그렇지요. 아무래도 고속슬라이더라는 것은 타자에게 위협이 되지요. "
" 그래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오티스는 페드로이아와 달리 슬라이더의 존재를 알고 들어간다는 거겠지요. 하지만, 재대로만 구사가 된다면 준혁 리 쪽이 조금 더 승산이 있겠지요. 아무래도 좌투수를 상대로는 약한 오티스니까요. 이것은 기록으로도 나와 있어요. 올 시즌도 3할이 넘어가는 좋은 타율을 기록 중인 오티스입니다만, 좌완투수를 상대로는 2할1푼에 머물고 있거든요. 거기에다가 피네스 피처를 상대로 3할7푼의 타격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파워 피처에겐 2할2푼에 그치고 있어요. 더군다나 2아웃 주자가 없을 때는 1할7푼으로 타율이 2할이 채 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
조금은 긴 해설자 칼 브렌들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마치 꼭 오티스와 좌완필승조 불펜과의 대결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준혁의 본업이 외야수이며 길어진 연장전 때문에 땜빵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말이다.
" 공이 빠르고 날카로워요. 조심해요. 파피. "
삼진을 먹은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대기타석의 데이빗 오티스를 지나치며 준혁의 공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 마지막 공은 슬라이더였지? "
오티스 본인도 대기타석에서 방금 전의 삼진장면을 전광판을 보며 짐작은 했다. 하지만 타석에서 직접 공을 본 타자에게 확인은 필요한 일이었다.
" 네. 각이 작지만 빨라요. "
" 제구는 어때? "
2번 셰인 빅토리노 때에는 몰리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오티스가 대기타석에서 지켜본 페드로이아의 타석에서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 그게 좀 애매해요. 나쁜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 주심의 존이 많이 넓잖아요. 그래서 굳이 말하자면 생각보단 나쁘지 않다 정도? "
조금은 자신 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준혁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 그게 뭐야? 페디(Pedey). "
오티스는 가벼운 힐난조로 되물었다. 물론 진짜로 타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덕분에 결론은 내려졌다.
" 직접 공을 상대해보는 수밖에는 없다는 말이군. "
뻔 한 결론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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