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2013시즌 -- >
+2013시즌팀의 포수인 윌슨 라모스로부터 사인을 받았다. -패스트볼-어차피 약속된 구질은 단 2가지였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마운드에 선 땜방 투수에게 초구부터 슬라이더를 요구할 정신 나간 포수는 없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윌슨 라모스가 포수미트로 잡아준 영점에 가상스트라이크존이 함께 찍혔다.
다행... 젠도 말했고, 준혁도 가상스트라이크존이 버그상태이기에 투수일 때도 표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두 눈으로 그것을 보고나니 안도가 되었다. 게다가 정말 오랜만에 던져보는 투구였지만 다행히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몸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최소한의 게임보정이라도 되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아무리 투수일 때는 게임의 옵션 지원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찰나에 찰나다. 지금의 준혁에겐 포수의 미트에 공을 집어넣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슈우욱!
--이런!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암스윙과 달리 생각만큼 제구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던진 공이 포수의 사인과는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는 것을 준혁은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허긴 마이너리그 3년 만에 방출 될 때까지 투수로 공을 던졌던 것은 초반 1년이 전부였다. 2년차 스프링캠프에서 어깨부상을 당했고, 수술과 재활로 1년을 날려먹었다. 그 후 타자로 전향했지만 1년도 못 채우고 방출까지 됐었다. 물론 회귀를 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었고, 방출이 아니라 메이저리거가 되었지만, 단순 계산상으로도 그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지 않은지는 횟수로도 6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구가 바로 되는 것이 더 이상할 터였다.
하지만 준혁의 첫 투구를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포수의 머리 위를 한참이나 넘어가버린 와일드피치였지만 말이다.
" 오우! 95마일이 찍혔어요! 엄청난데요? "
캐스터 스티브 존슨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 하하하. 맞습니다. 야수가 던진 공이라고는 믿기 힘든 구속이네요. "
연장이 길어지다 보니 더블헤더 2차전은 양 팀 모두 불펜투수들까지 총동원이 된 경기였다. 당연히 양 팀의 이름난 파이어볼러 불펜들 또한 모두 등판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같은 팀 불펜투수인 핸리 로드리게스는 98 99마일의 공을 연거푸 던졌고, 좌완불펜인 이안 크롤또한 96마일의 최고구속을 찍어보였다. 지만, 그들은 보직이 투수인 선수들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짧은 이닝에 온힘을 집중하는 불펜투수들 중에서 이정도의 구속을 보여주는 투수는 대부분이 팀에서 한명이상은 있었고 그래서 그런 구속을 찍어 보여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야수의 경우라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문 투수가 아니었다. 마운드 위에 올라온다는 자체가 이야기 꺼리가 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야수가 던진 공이 95마일을 찍었다?
모두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 2구째도 96마일이군요. 그런데 제구는 좀 많이 흔들리는데요? "
준혁의 두 번째 공을 보며 해설자 밥 달링이 말했다. 완전히 벗어난 초구보다는 안정되어 들어온 준혁의 공이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에서는 확연하게 벋어난 공이었다.
" 확실히 공은 빠른데요. 그래도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니까요. "
아무리 공이 빠르더라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헛일 이었다. ' 역시나 쉽지는 않네. '타깃을 보고 던지는데도 공이 벗어나고 있었다. 준혁은 너무 오랜만에 던지기 때문인가 싶었다. 구속은 만족스러웠다. 젠이 알려주었기에 전광판을 볼 필요도 없었다. 투수로 있을 동안 한 번도 찍어보지 못했던 95 96마일의 공을 연거푸 찍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으니까. 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온 이상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다들 지칠 시간이니까. '어제 경기가 우천취소가 되는 바람에 양 팀 선수들은 하루사이에 두 경기를 연속으로 치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2차전은 연장 17회까지 넘어온 상태였고 경기시간은 이미 6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3시간을 조금 넘긴 1차전까지 합친다면 9시간 넘게 야구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인간인 다음에야 집중력도 떨어질 것이고 지칠 수밖에는 없었다.' 어렵게 가지 말자. '몇 년 만의 꿈에 그리던 등판인데, 차라리 안타를 맞으면 맞았지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내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정신적 피로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는 육체를 가진 덕분인지 최소한 현재까지 준혁에게는 양 팀의 모든 선수들이 느끼고 있을 육체적 피로감은 없었다. 그것을 구속이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되지도 않는 코너는 버리자. '생각은 정리한 준혁은 87년생 동갑내기 포수인 윌슨 라모스를 마운드로 불렀다.
" 왜 그래? 어디 몸에 이상이라도 있어? "
올라오자마자 라모스는 준혁의 몸 상태부터 체크를 했다. 아무리 전직 투수라지만 오랜 시간을 야수로 뛰었던 준혁이었다. 갑작스레 안하던 움직임을 하게 되면 몸에 이상이 올수도 있었다.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지금 제구가 안 되잖아. 그래서 우선은 한가운데를 보고 던질까 싶어서 말이야. "
" 한가운데? "
윌슨 라모스는 되물었다. 그리고 준혁은 곧바로 대답했다. 이미 생각을 정리하고 포수를 부른 것이었기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 응. 너무 오랜만이라 코너워크를 노리며 던진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어서 말이야. 우선은 그렇게 던지다가 볼카운트가 유리해지면 코너를 노려본다던지 슬라이더를 던져본다던지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싶어서 말이야. "
" 나쁜 생각은 아니네. "
라모스는 준혁이 말하는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보니 해볼 만하다 싶었다. 우선은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타자와 승부가 가능하지 볼만 들어가서는 승부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더군다나 준혁은 야수지 투수가 아니지 않던가. 아무리 자신의 리드가 좋다고 한들 거기로 던져주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 네 구위만큼은 좋으니까. 오히려 그것이 좋은 수도 있겠다. "
투수가 던진 공의 구위를 포수만큼 잘 알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윌슨 라모스는 제구를 떠나 구위자체만 놓고 본다면 지금 준혁의 공도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타자들은 지칠 시간이기도 했다.
" 그럼 이제부턴 릴렉스하게 위치를 잡아볼게. 너도 대충 언저리로 던진다고 생각해봐. "
의견교환을 마친 라모스는 마운드를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두어 발자국 가지 못하고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 그런데 진짜 완전 한가운데로 던진다는 건 아니지? "
혹시나 싶었다. 말이란 것은 조그마한 차이로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 에이 설마. 그리고 지금은 한가운데로 던지고 싶어도 안들어갈것 같은데 말이야. "
준혁은 대답했다. 100마일이 넘는 투수의 공도 한가운데로 몰리면 펜스를 넘어가는 곳이 메이저리그였다. 알량한 96마일의 공을 계속해서 가운데로 우겨넣을 생각은 준혁도 없었다. 다만 제구가 힘든 자신의 상태를 라모스가 감안해서 릭렉스하게 리드를 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 제 3구. 파울. "
" 셰인 빅토리노 방망이가 밀립니다. "
3구째. 조금은 가운데로 몰린 공이 파울이 되며 준혁의 첫 번째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올라갔다.
"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왔지요? 게다가 이번 공은 97마일이군요. "
캐스터 스티브 존슨이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해설자 칼 브렌들 리가 그말을 이어받았다.
" 메이저리그 불펜 평균구속보다 더 빠른데요? 물론 표본이 단 3개뿐이긴 하지만요. "
" 정말인가요? "
스티브 존슨이 되물었다. 단 3개의 공을 던졌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 맞습니다. 단순 비교이긴 하지만 오늘 나온 구속만 놓고 보면 탑10에 들어갈 만한 속도의 패스트볼을 준혁 리가 던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올 시즌 가장 빠른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는 디트로이트의 브루스 론돈 입니다. 평균구속이 무려 99.4마일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좌완투수 평균구속 최고는 신시내티의 채프먼이 98.1마일로 전체 3위를 기록하고 있지요. 96마일 언저리에 7위에서 10위의 불펜투수들이 몰려있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좌완투수만 놓고 보면 무려 2등이에요. 게다가 올 시즌 불펜 평균구속이 92.4마일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준혁 리의 구속은 더 대단하지요. 물론 유의미한 기록이 되려면 준혁 리가 계속해서 불펜투수로 활약을 해야겠지만 말이지요. 하하하 "
칼 브렌들리는 웃음으로 자신의 말을 끝맞쳤다. 본래부터 어깨는 알아주는 강견이 외야수였다. 그리고 오랜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준혁 리는 투수로써의 경력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봤을 때만 하더라도 워싱턴 데이비 존슨 감독의 고육지책이거니, 팬서비스 차원이겠거니 했지, 이런 생각지도 않았던 구속을 보여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 그거 솔깃한 이야긴데요? 워싱턴의 입장에서는 말이지요. 잭 듀크가 방어율 8.10으로 부진하다보니 이안 크롤을 최근에 메이저로 올렸습니다만, 불펜진에 좌완 한명은 부족하지 않습니까? "
" 그렇습니다. 거기에다가 좌완투수로 작년까지 휴스턴에서 뛰었던 페르난도 아바드와 마이너계약으로 AAA에 대기시켜놓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공의 구위는 그다지 뛰어난 투수가 아니니까요. 제구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도 아니고 말이지요. 물론 현재까지 마이너리그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만 메이저는 또 다르지요. "
FOX스포츠의 해설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준혁의 4번째 공에 셰인 빅토리노가 방망이를 돌렸다. --따악--하지만, 정타가 되지 못한 타구이다 보니 높이만 높은 플라이 볼이 되고 말았다.
" 우익수 플라이로 준혁 리가 셰인 빅토리노에게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냅니다. "
" 빨라요. 빨라. 이번에도 97마일이 찍히고 있습니다. "
" 셰인 빅토리노 타자가 좌완투수를 상대로는 3할2푼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공은 타이밍이 완전히 밀려버렸어요. "
해설자 칼 브렌들리와 밥 달링은 번갈아가며 감탄사를 터뜨리기에 바빴다.
" 워싱턴 내셔널스의 프런트에서는 정말 고민 좀 해봐야하는것 아닐까요? "
여기에 캐스터 스티브 존슨 또한 합류를 마다하지 않았다.
" 하하하. 그렇지요. 무려 지옥에 가서라도 데리고 온다는 좌완파이어볼러 이지 않습니까? "
물론, 그러한 일은 벌어질 리는 없다고 FOX스포츠의 세 사람은 생각했다. 워싱턴 공격진의 핵심이자 메이저리그의 타자기록을 끊임없이 갱신해나가고 이가 바로 준혁이었다. 매년 홈런왕을 차지하고 수위타자를 차지하며 도루의 신기록을 갱신하는 차후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실시 되는 그런 타자를 워싱턴의 프런트가 단체로 머리에 총 맞지 않은 다음에야 투수로 바꿀 리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지금 마운드위에 서있는 준혁을 본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