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51화 (251/309)

그리고, 역시나 이대호도 곧바로 알아듣는다.

" 허긴. 말이 그렇게 되나? "

스트라스버그는 100마일의 사나이였고, 아롤디스 채프먼은 106마일을 던지는 투수였다.

워낙 빠른공을 던지는 투수들이라 이대호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라면 수도 없이 상대해봤을 준혁이니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단순히 실력만으로 평가 내릴 수 없는 것이 한일전이었으니 말이다.

" 걱정 마세요. 다나카를 얕잡아 볼 생각은 없으니까요. "

준혁은 그런 이대호의 마음을 읽고는 앞서 대답을 했다. 어쨌거나 자신은 단 한 차례도 다나카를 상대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대호가 자신의 경험이라며 몇 마디 해주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긴 이야기는 없었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알 수 있었다.

' 이따금 밋밋하더라... '빠르고 훌륭한 속구를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무브먼트가 밋밋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호의 안타 2개는 그때 나온 것이라고 했다.

(2012일본리그에서 다나카 상대 이대호의 성적은 11타수 2안타(단타) 3삼진 0볼넷 이었다.)' 그래도 직접 보긴 봐야겠지. '

타석에서 자세를 잡으며 준혁은 다나카 마사히로를 응시했다. [ 투수가 교체됐지요? ]역시나 중계의 시작은 이민성 아나운서의 멘트로 부터였다. 그리고 역시나 송재익 해설위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 다나카 마사히로 선수가 올라왔네요. 지난해 최다 탈삼진 왕에다가 재작년엔 사와무라상 수상자이지요?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이구요. 지금 7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188cm 93kg의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8생으로 타석의 이준혁 선수보단 한 살이 어립니다. ][ 초구가 중요했는데, 스트라이크를 집어넣는군요. ][ 공은 빠르네요. ]도쿄돔의 전광판에 '150키로(94마일)'이 찍혀있었다. 하지만 이민성 아나운서와 송재익 해설위원이 멘트는 그뿐이었다.

만루의 상황에서 투수가 바뀌었고, 또 초구였기에 투수에게나 타자에게나 모두 중요한 첫 번째 공이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잡아낸 것은 다나카에게 분명 플러스가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초구 스트라이크 하나를 잡히고 시작했지만, 준혁은 초구를 기다리기로 유명한 타자라는 것은 메이저리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 이준혁 선수. 올해 메이저리그 홈런왕이지 않습니까? ][ 이럴 때 홈런 한방이 나온다면 쐐기점이 되는 거지요. ]걸리면 넘어간다고 봐야했다.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도 모두 펜스직격의 타구를 날리며 컨디션이 나쁘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 다나카 선수에게는 얼마나 정교한 컨트롤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상황입니다.

저 빠른공이 오히려 이준혁 선수에게는 친숙할 수 있거든요. ][ 그렇습니다. 다나카 투수가 2011년에 19승5패. 1.27의 평균자책점을 보여주었고, 사와무라상을 차지한 투수입니다만, 대한민국의 이준혁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올해 양대 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타자 아니겠습니까? 저 정도의 빠른공은 숱하게 봐왔다는 거지요. ]다나카 마사히로가 일본리그에서 빼어난 실력을 뽐내고 있는 투수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준혁은 그보다 더 실력이 높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탑랭커를 차지하는 타자였다.

이런 해설진의 대화는 자연스레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며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준혁이라면 분명히 하나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게 만들었다. ' 움직임은 좀 덜한데? '첫 상대하는 다나카의 초구를 지켜본 준혁의 감상평이었다.

이대호의 말대로 패스트볼이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계속해서 이렇게 들어오는 것은 아닐 테지만, 까다로운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들과 비교한다면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준혁은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다나카의 두 번째 공은 슬라이더 였다.

낮은 스트라이크존으로 오다가 떨어지는 ... 확실히 유인구로 삼을만한 낙폭이 좋은 공이었다. ' 하지만, 나한테야 뻔 한 공이란 거지. '사실이 그랬다.

가상스트라이크존이 보였기에 오히려 움직임이 큰 공은 구별해내기 편했다. 준혁이 괜히 커브나 낙폭이 큰 변화구를 더 잘 때려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은 역으로 그 공을 노릴 때도 있었다.

궤적만 확실히 알 수 있다면 변화구가 빠른 패스트볼에 비해 때려내기 더 쉬웠다. 준혁은 그랬다.

[ 슬라이더라고 봐야겠지요? 일단 다나카 투수, 빠른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이기에 타자들이 많이 속는 것 않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지금도 빠른 볼을 보여주고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졌지요. 보통의 타자라면 방망이가 따라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 그렇군요. 보통의 타자라면 말이지요. 하지만 이준혁 선수는 다르지 않습니까? 지금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말이지요. ]결론적으로 이민성 아나운서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를 보여준 선구안. 유인구에 속지 않는다면 결국은 승부가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준혁에게 크게 걸리지 않겠냐라는 그런 것 말이었다.

' 역시, 메이저 레벨이라는 건가? '아베포수가 던져준 공을 받아 든 다나카 마사히로의 준혁에 대한 첫인상이었다.1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았고, 그리고 나서 던진 스트라이크존으로 가다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떨어지는 슬라이더였다. 하지만, 준혁 이란 이름의 타자는 방망이는 고사하고 몸의 미동조차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는 타자답다 싶었다.

물론 그가 공략할 수 없는 타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올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해놓은 다나카였고, 이런 선언은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래. 한번 해보자. 메이저 레벨을. '그에겐 스플리터란 결정구가 있었다.

프로데뷔 초반 설익었던 이 구질은 이제는 원숙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가장 자신 있기도 했다.

다나카는 루상의 주자들을 한 번씩 쳐다봤다.

모든 루가 다 채워진 만루의 상황. 그리고 국제대회.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부담감에 잠식 되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프레셔도 나쁘지 만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볼카운트도 1볼 1스트라이크. 기대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공하나의 여유는 있었다.

아베 포수로부터 사인을 건네받은 다나카는 가볍게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는 와인드업에 들어간다. 신장대비 스트라이드 비율에서 메이저리그의 평균이 87%인 점을 감안하면 다나카의 그것은 훨씬 긴 110%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략 10cm에 1키로의 타자가 느끼는 체감구속 향상을 보여준다고 하니(실제 구속 향상은 아니다) 단순 산술적으로 본다면 타자들의 눈에는 그가 던지는 공의 실제 속도에 비해 약 2키로 정도 더 빠르게 느껴진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투구 폼의 완성과 함께 그의 손을 떠난 야구공은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슈우우욱--그와 함께 다나카의 투구 폼을 보며 타이밍을 잡고 있던 준혁의 눈에도 가상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공의 위치가 찍혔다.

' 어디? '빠르게 확인한 코스는 이번에도 스트라이크존과 거리가 있었다. 준혁은 그대로 선채로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살폈다.

' 스플리터...? '다나카가 던진다는 구질을 생각해보고 지금의 공의 움직임을 봤을 땐 스플리터가 거의 확실하지 않겠나 싶었다. 준혁은 곧바로 스윙 생각을 접었다.

솔직히 스플리터는 치기보단 골라내는 것이 더 이득이 구질이었다. 스트라이크를 잡기위해 높은 존에서 형성된다면야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지금처럼 무릎에서 떨어지는 유인구는 친다고 하더라도 땅볼이 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작정하고 첨부터 타이밍과 스윙의 궤적까지 스플리터에 맞춰서 친다면야 못칠것도 없긴 했지만, 그래서는 그도 100%성공은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1아웃에 만루. 자신의 타석에서 최소한 1점이라도 얻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특기]도 발동되지 않은 타이밍에서 모험을 걸 이유는 없었다.

" 볼."

일본 대표 팀의 아베포수의 미트가 바닥에 닿으며 공을 잡아냈고, 주심의 시그널이 볼이 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어진 다나카의 4번째 공도 볼이었다.

물론 그 공도 스플리터였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볼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에서 공을 받아든 다나카의 속내는 조금은 복잡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유인구인걸 알고 있는 것 같잖은가.' 내가 모르는 버릇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정말 버릇이 있었다면 일본리그의 다른 팀에서 그것을 공략해 들어왔어도 진즉에 들어왔을 터였다. 하지만 그 어느 팀도 그런 팀은 없었다.

' 처음부터 포볼을 노리고 나온 것 아닐까? '다나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팀의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솔직히 포볼만 얻어내더라도 한 점은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한국 팀이었다. 하지만 1아웃에 주자만루라는 것은 일순간에 더블플레이로 이닝이 종료 될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내포를 하고 있었다. 정말 처음부터 포볼을 노리고 공4개를 그냥 흘려보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준혁은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홈런 1위의 타자였다.

타율도 1위였다. 거기에다가 타점도 1번 타자답지 않게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그런 타자가 소극적으로 나온다고? 그런 마인드의 타자가 3년 연속 타격왕이 되고 홈런왕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 선구안도 진짜라는 건데... '어쩌면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는지도 몰랐다. 겉으로면 전혀 타격의지가 없는 포볼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준혁이 작년 얻어낸 100단위가 넘어가는 포볼갯수를 생각하면 간단했다. ' 벤치의 사인을 따르는 것이 좋을까? '연습투구를 할 때, 투수코치에게 전달받은 내용이 하나 있었다.

다나카는 그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대로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자존심만 내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이럴 땐 무엇이 최선인지는 다나카는 알고 있었다.

나이는 1988년 생으로 어렸지만, 그도 벌써 프로 7년차로 접어드는 투수였다. ' 포수에게 맡기자. '아베는 자신보다 훨씬 국제대회 경험도 많은 베테랑이었다.

사인대로, 사인받은데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던지 아니면 또다시 유인구로 승부를 걸든지... 던지는데 만 집중하자고 다나카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이 정답이었다.

아베 포수로부터의 사인이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한두 번 고개를 흔들 수도 있었지만, 다나카는 그러지 않았다.

바로 사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 다나카 제5구! ]

" ... 승부를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타자를 걸러도 좋다. 한 점도 안주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2점 까지라면 못 따라갈 점수는 아니니까. 그러니까 힘들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다나카, 아베, 알겠지? "

다나카가 3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투수코치가 이야기 말미에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베 포수도 함께 들은 말이었다.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투수코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처럼 아베는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앞서 2개의 스플리터에서 꿈쩍도 하지 않으니 꺼내든 카드였다.

물론 2번째 공으로 슬라이더를 던지긴 했지만, 앞에서 2개의 스플리터를 던졌고, 이번엔 코스도 달랐다. 바로 왼손타자 몸 쪽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종슬라이더였다.

게다가 높이도 타자를 현혹시키기에 적당했다. 앞서 두 번의 타석에서 준혁의 타격을 본 아베의 선택은 유인구였다.

' 됐어! ' 따라 나온다면 헛스윙 내지는 땅볼이 될 수밖에 없는 최상의 공이었다. 그리고 최소한 헛스윙만 유도가 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고 다나카는 생각했다. 하지만...

" 볼. 베이스 온 볼스. "

주심을 맡은 크리스 구치오네 심판은 준혁에게 1루로 걸어 나갈 것을 명하고 있었다. 다나카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유인구였다. 하지만, 결과는 투수코치의 말대로 되어버린 것이었다.

원아웃 만루의 위기에서 준혁에게 포볼을 허용하며 추가점을 헌납한 다나카였다. 하지만, 야구의 신은 한국대표팀이 멀찍이 달아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2번 이용규의 잘 맞은 타구가 투수 다나카의 글러브를 스치고는 마치 토스라도 한 것처럼 달리던 유격수에게로 정확하게 각도가 꺾여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타구는 일본의 유격수 사카모토 하야토가 여유롭게 2루베이스를 찍고는 1루로 송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꼴이 되어버렸다.

" 아웃! "

1루심 드레버 그리브의 오른팔이 아래로 향했다. 더블플레이였다.

[ 아~. 안타깝습니다. 잘 맞은 타구였는데 하필 유격수 앞으로 가는군요. ][ 그렇습니다.

낮은 코스이긴 했습니다만, 공은 가운데로 들어갔어요. 이용규 선수가 놓치지 않고 잘 쳤습니다만 그게 투수 글러브를 맞고 마네요. ]한국의 중계진은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다지 썩 제구가 잘된 공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구속은 다나카 답게 제법 나온 공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낮은 스트라이크존에 걸친 공은 아니었다. 한가운데와 낮은 스트라이크존 중간 정도의 높이었다.

게다가 좌우로만 보면 한가운데로 들어간 공이었다.

그리고 이공을 이용규는 재대로 받아쳤다.

코스도 타격이론에서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말하는 투수 쪽을 향했다. 하지만, 다나카를 완벽하게 통과하지 못하며 오히려 일본의 병살플레이를 도와준 꼴이 되고 만 것이었다. V를 시청하며 한국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던 이들 또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완벽하게 일본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거 하나 드십시오. "

공격과수비가 바뀌는 사이, 참을 수 없는 배설욕구를 위해 잠깐 자리를 비웠던 부하직원이 무언가를 내밀고 있었다.

캔 음료수였다.

" 변동사항 있습니까? "

" 한국 팀의 투수가 바뀐 것 말고는. "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스카우트팀의 레이 포이트빈트 국제담당국장은 캔 음료를 받아들며 대답했다.

볼티모어는 올해 초 '템퍼링(사전접촉)'위반 파문으로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초로 구단 관계자가 야구장 출입금지 조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해진 메이저리그 팀이었다. 레이 국제담당국장은 동양야구에 상당한 관심과 지식을 가진 스카우트팀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늘 경기에서 한국투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피칭은 꽤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 한국리그 성적은 괜찮은데, 국제대회 경험은 부족하군요. "

8회를 책임지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 한국대표팀의 투수 윤희상의 사전자료를 살펴보는 스카우트팀 부하직원의 말에 레이 극동스카우트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대표팀은 선발인 윤석민이 6회까지, 그리고 7회를 노경은이 무실점으로 막았고, 그 바통을 윤희상이 이어받고 있었다.

일본대표팀의 공격력이 앞선 2개 대회에 비해 약하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한국 대표팀의 투수들이 그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보이진 않았다.

한마디로 잘 던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레이 팀장은 선발투수인 윤석민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윤석민은 6회까지 총 83개의 투구 수를 기록했는데(마지막 타자를 상대하던 도중 80개를 넘어간 투구 수는 인정을 해준다.) 인상 깊은 투구를 보여주었다. ' 슬라이더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투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 외로 체인지업도 괜찮단 말이야. '한국리그에서 던지던 것보다 확실히 무브먼트나 떨어지는 낙폭도 좋아보였다.

' 메이저리그 공인구 탓일까? '프로야구리그가 있는 각 나라마다 사용하는 공들은 똑같지 않았다. 나라마다 특징이 있었다.

그랬기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뛰던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들어오게 되면 공인구에 대한 적응도 빠질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윤석민은 궁합이 맞는다고 봐야했다.

이것은 분명 플러스 요인이었고 그 덕분인지 로케이션이나 딜리버리도 준수했다. 하지만, 레이 팀장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자신 말고도 다른 많은 팀의 극동 담당 스카우트들이 도쿄돔을 찾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제스카우트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그 아버지에 비해 돈질의 위력이 현격히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언제라도 지갑을 열 수 있는 양키스, 거기에다가 구단주가 바뀌며 공격적 선수 수집에 나선 다저스, 그리고 또 다른 팀들의 스카우트들까지... 물론 그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올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행을 선언한 일본대표팀의 다나카 마사히로라는 투수를 보기 위해서 였다.

그것을 위해 각팀의 극동 스카우트 팀장이나 국제 스카우트 총괄팀장들이 모였고, 레이 포이트빈트 국제담당국장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목적은 달랐다.

볼티모어의 2012시즌 페이롤은 8142만 달러로 리그 19위였다. 지난 10년간 2000만 달러의 증액이 된 액수였지만 페이롤이 올라간 것은 볼티모어만이 아니었고, 안젤로스 구단주가 용단을 내리지 않는 한 솔직히 여기가 볼티모어 페이롤의 한계였다.

그랬기에 일본프로야구에서 다르빗슈 이후 최고의 투수라는 다나카를 잡기 위한 경쟁에서 타팀을 따돌릴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야 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팀으로 다나카가 왔을 때를 대비한 자료수집이라는 측면이 강했고, 본 목적은 한국대표팀의 윤석민이었다.

28경기, 9승 8패, 방어율 3.12 153이닝 120피안타 41볼넷(BB/9 2.41) 9피홈런 137탈삼진(SO/9 8.05) 53자책점 WHIP 1.002012시즌의 성적이었다.

커리어하이를 찍었던 2011년에 비해 결코 좋다고는 볼수 없는 성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망쳤다고 볼수도 없는 그런 성적이었다.

그랬기에 레이 포이트빈트 팀장은 예선1라운드 경기 때부터 윤석민이 반등할 여지가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었고, 앞선 시합과 이번시합을 보며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란 건데... '좋은 모습을 보여줘도 문제였다.

아무리 다나카에게 관심이 쏠려있다고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스카우트들은 모든 선수들에게 레이더를 가동시키는 족속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극동스카우트 치고 올 시즌이 마치면 윤석민이 완전FA가 된다는 사실은 모르는 치 또한 없을 테니까 말이다.

8회 초도 일본대표팀의 반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거기엔 준혁의 신들린 수비가 있었다.

--따악!

--몸에 맞는 볼로 선행주자가 무사에 1루로 나간 상황에서 이바타 히로카즈의 변화구를 받아친 타구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떨어지는 듯했다. 비거리가 크게 길지도 않은 전형적인 외야수 앞 안타의 모습이었다.

[우측! 우중간 우중간... ]해설진의 멘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 앗! 우익수 잡아냅니다! ]어느새 달려온 준혁이 안타와 다름없는 타구를 걷어내 버린 것이었다.

[ 이준혁 파인플레이! ][ 언제 저기까지 달려온 거죠? 대단합니다.

]한국의 해설진은 신이 났고, 반대로 일본의 해설진은 안타까워했다. 최소한 무사 1-2루가 될수 있는 타구였고, 더군다나 중심타선으로 이어지는 흐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준혁의 호수비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빠른 볼. 높이 튀었습니다.

2루수 키를 훌쩍 넘기는 타구. ]이어진 우치카와 세이치의 2구째의 타구가 커다란 바운드를 일으키고는 도저히 2루수가 잡을 수 없는 높이를 만들어낸것이었다.

[ 1루 주자, 2루를 돌아서 3루로! ]게다가 1루 주자는 바운드가 크게 된 타구를 보고는 망설임 없이 3루를 노리고 있었다. 주자의 빠른 발과 타구의 체공시간을 생각하면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예측]이 [크레이지모드]로 터진 준혁의 움직임이었다.

2루수와 우익수의 수비간격, 우치카와 세이치란 타자를 생각한다면 2루수를 넘기고도 여러 차례의 바운드가 되고 나서야 우익수의 글러브에 들어갈 타구였다. 그런데 [예측]이 발동하자마자 준혁은 수비위치를 앞으로 당기기 시작했고, 이것은 타구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 이준혁, 볼 3루로! ][ 테그~~. 아웃입니다! ][ 이준혁이 잡아냈습니다.

완벽한 수비를 보여주는 이준혁! ][아 엄청난 수비가 또 하나 나와 주네요. 빠른 동작에 정확한 송구가 나왔습니다. ]3루수 최정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그냥 3루를 지킨 채, 글러브를 들어오는 주자 앞에 가져다 놓으면 되었고, 공은 마치 자신의 집을 찾아온 듯 주자의 발보다 먼저 글러브 속으로 쏙하고 들어왔다.

" 기가 막히는 군요. "

" 그러게 말이야. 역시 리 야. 저걸 잡아내다니. "

한두 번 보는 보살장면도 아니었건만, 레이 팀장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 정말 탐나는 선수입니다. 오늘은 수비범위가 더 넓어진 것 같은데요. "

메이저리그 외야수들 중에서도 최고의 수비를 보여주는 선수가 준혁 리였다.

당연히 그 수비범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런데, 정말 부하직원의 말처럼 오늘 시합에서는 그 범위가 더 넓어진 것 같았다.

" 그래 보이는군. 외야로 타구를 보내려면 펜스를 넘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어. "

준혁 리는 가끔씩 수비에서 미치는 날이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구나 싶었다.

" 오늘시합은 일본이 이기긴 힘들겠어. "

물론 아직 일본 대표 팀에게는 4개의 아웃카운트가 남아있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처럼 끝나봐야 끝나는 것이 야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준혁이 수비에 미친날은 외야로 타구를 보내서는 홈런이 아니고서야 답이 없었다. 물론 좌익수쪽 코너를 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한국팀의 배터리도 머리가 있다면 우익수 쪽으로 타구를 보내려고 할 것이고, 이것을 타자가 억지로 좌익수 쪽으로 노려서는 좋은 타구를 만들긴 힘들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외야로의 공격의 방향자체를 봉쇄당해버린다면 그만큼 공격의 활로를 뚫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더더군다나 점수마저 끌려가고 있는 처지라면... 그리고 이런 볼티모어 레이 포이트빈트 국제담당국장의 예언 아닌 예언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앞선 2번의 대회에서 우승을 다투었던 두 팀의 첫 대결은 또다시 2대0 한국의 승리로 끝이 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상승세는 엉뚱한 곳에서 꺾이고 만다. 바로 집단장염이 한국선수단을 강타한 것이었다.

물론 대다수는 증상이 경미했다. 하지만, 장염에 걸려 복통과 설사에 시달린 6명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결코 가볍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장원삼윤석민윤희상서재응노경은최정선발의 두축이 한꺼번에 빠져버렸다.

여기에다가 허리를 책임져야할 투수마저 3명이나 등판이 힘들어지다보니 투수진에 커다란 비상이 걸려버렸다. 유일한 3루수자원인 최정 또한 마찬가지였고, 이 6명에겐 약속이나 한 듯이 몸살까지 함께 겹쳐버렸다.

당연히 경기력에 영향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고, 한국대표팀은 다시 한 번 4강이 문턱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곧바로 가건물이 채취되었다.

집단 장염이었기에 조사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결과 그 어떤 원인도 밝힐 수 없었다. 덕분에 그 어느 곳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램프의 요정 테드가 개입된 일이었기에 애초부터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테드가 건내준것은 에너지드링크였다. 그리고 에너지드링크는 태생적으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램프의 계약자는 오로지 준혁 만이었다.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 지속형 버프를 걸어줄 하등의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준혁 덕분에 부상으로 낙마할 선수들이 장염으로 대체를 한 것은 행운이라면 또 다른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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