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43화 (243/309)

" 그럼, 우리 친가쪽 남자들이 다들 그런 쪽으로는 쿨 해거든. "

있지도 않은 혈연관계를 지어내는 것은 테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이미 준혁과 젠과 이야기가 다 되어있었다.

" 그런데 프러포즈는 받았어? "

문득 생각났다며 젠이 물었다.

" 아니요. 아직. "

언젠가 친구 레이첼 부부와의 저녁식사에서 준혁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지만, 그 후로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는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부모에게 허락을 받는 관습이란것이있다고 하니(이리저리 그녀 나름 알아봤다. ) 그래도 결혼 전에는 해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그럴까? "

그런데, 테드가 그녀의 속마음이라도 들여다 본 듯이 말은 하는 것이었다.

" 그럼요. 해줄거에요. "

예리엘은 서둘러 대답했다.

준혁이 그리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 당사자가 좋으면 된 거지. "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고 준혁과 함께 찾은 고향집에서의 그의 아버지의 허락은 생각보다 쉽게 떨어졌다.

조금은 과묵한 인상과는 달리 조금은 손쉽게 인정을 받아서 오히려 예리엘이 적이 얼떨떨할 정도였다.

" 거봐. 내가 뭐랬어? "

젠과 테드가 웃으며 말한 것은 덤이었다.

그리고, 준혁의 고향집엔 오래간만에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준혁은 한국에서 한 달 남짓 머물렀다. W B C 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보니 예년에 비해 조금 출국을 서두른 것이었는데, 그 덕분에 부르는 곳은 많았지만 꼭 해야만 했던 공식 일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절을 했다.

더군다나 그의 생애 처음으로 장래를 약속한 이와 함께 온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개인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준혁이 W B C 대표 팀에 합류한 것은 2월 12일 대만에서 였다. 소집일은 그보다 하루 빠른 11일 이었지만, 한 달간의 짧은 체류 후 미국으로 돌아가 개인훈련 중이던 준혁이 한국에 왔다가 하루 만에 다시 대만으로 출국하는 것은 미국과의 시차까지 생각하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그사이 한국도 최종 대표 팀 명단이 꾸려졌다.

감독 및 선수명단 감독: 류중일(삼성) 투수 (13명)노경은(두산), 박희수(SK), 서재응(KIA),손승락(넥센),송승준(롯데), 오승환(삼성), 유원상(LG), 윤석민(KIA),윤희상(SK), 장원삼(삼성), 장원준(경찰), 정대현(롯데), 차우찬(삼성)포수 (2명)강민호(롯데), 진갑용(삼성)내야수 (8명)강정호(넥센), 김상수(삼성), 김태균(한화), 손시헌(두산),이대호(오릭스), 이승엽(삼성), 정근우(SK), 최정(SK)외야수 (5명)이준혁(워싱턴), 김현수(두산), 손아섭(롯데), 이용규(KIA), 전준우(롯데)투수진에서는 결국 이용찬이 빠지고 말았다.

부상을 이유로 빠진 김광현을 대신해서 들어온 그였지만, 그도 역시나 부상으로 빠지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력 누수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12일 오후, 미리 대만에 도착해 있다가 한국대표팀의 선수들을 마중하기 위해 나간 준혁을 타이페이 타오위안 공항까지 데려다 준 테드는 멀찌감치 떨어진 차안에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하나 둘... 여섯. 뭐야 이 대표팀은? "

전체 28명의 선수들 중 20%가까이나 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속으로 골골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대호는 이번 대표 팀에서 중고참이다.

비록 위로 6명의 형님들이 계시지만, 유이한 해외파 중 한명이었고, 대표 팀 주장이 진갑용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선수들을 이끌고 조율해야 할 선수는 바로 그였다.

아무래도 각 팀의 주축선수들을 뽑아 모은 것이 대표 팀이다 보니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추어온 같은 팀의 이들과는 같을 수가 없었고, 그러하기에 중요한 자리였다. 그리고 이미 일본으로 건너가기전 롯데에 있을 때에도 그는 팀 내에서 중고참이었고,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 들어나고 있었다.

12일 오후, 대만 타이페이 타오위안 공항의 입국장을 빠져나온 대표 팀 선수들의 주위는 각자 가지고 온 짐들로 금세 혼잡해졌다. 대표 팀의 숙소는 차로만 3시간 넘게 걸리는 자이현 도류라는 곳에 위치한 나이스 프린스 호텔이었는데, 마침 비까지 내려다보니 정작 선수들의 짐을 싣고 갈 소형 트럭 2대가 도착했음에도 우왕좌왕하며 짐들이 엉켜버린 것이다.

" 정호. 정이하고 얼른 짐 실어라. 우찬이 넌 뭐하노? "

보다 못한 대호가 우선 87년생 멤버들부터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롯데에서 대호의 성질(?)을 경험한 아섭이 말 안 해도 움직였고, 그와 함께 대표 팀 내 막내 3인방인 현수와 상수(가장 막내는 90년생 김상수 하나이긴 하지만)도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는 그 자신도 나서서 짐을 옮기는 대호였지만. 승엽등의 선배들이 거들겠다는 것은 딱 잘랐다. 짐이 많다면야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가 아닌 갑작스런 비속에서 빠르게 숙소로 이동을 하려다보니 생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손이 하나 더 거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준혁이었다.

" 어? 너 웬일이고? 내일 온다 안캔나? "

생각지도 않은 등장이었지만 반가운 대호였다.

" 여유가 생겨서 좀 일찍 왔어요. "

" 그래? 잘됐네. 감독님한테 인사는 드렸나? "

" 아뇨 방금 와서. 요 짐만 옮기고 인사 드릴려구요. "

준혁은 양손에 짐가방을 들고는 말했다.

" 됐다. 마. 인사부터 먼저 드려라. "

하지만, 대호는 준혁의 손에서 짐을 빼앗았다.

처음부터 갑작스런 비가 문제였던거지 짐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던 것이 아니었기에 금방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준혁도 더 이상 말은 못하고는 미쳐 인사를 건네지 못한 대표 팀의 동료들에게 마저 인사를 건네며 발걸음을 옮겼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반응도 역시나 별반 다르진 않았다.

" 내일 온다더니? "

" 조금 일찍 들어왔습니다.

" 그래 잘 왔다. 처음부터 함께하면 나쁠 건 없지. "

류중일 감독은 듬직하다는 표정으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부담과 우려가 많은 대표팀 감독 자리였다. 앞선 두 번의 대회에서 김인식 감독님이 각각4강과 결승진출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보니 국민들의 기대감부터가 높았다. 하지만 베스트 멤버를 꾸려도 모자랄 판에 부상과 메이저리그진출과 트레이드에 따른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하는 문제 등으로 대표 팀 선수 선발의 인선부터 매끄럽지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준혁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선수였다. 나이는 대표 팀에서도 아래쪽이었지만, 프로는 실력으로 말 하는 것. 지금 대표 팀에 선발되어 대만에 온 이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검증된 선수를 뽑으라면 단연 준혁이었으니 말이다.

단 3년이었지만 준혁은 메이저리그에서 엄청난 기록과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원소속구단인 워싱턴에서 강하게 클레임을 걸어서 그가 참가를 못한다고 하면 어쩌나하는 마음이었다.

6년 1억 달러라는 한화로 약 1100억에 가까운 몸값의 준혁이었고, 그 장기계약에서 겨우 첫해가 지나갔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경미하긴 했지만 플레이오프 챔피언십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으니. 그런데, 흔쾌히 수락을 했을 땐 어찌나 좋던지... 게다가 하루였지만 약속보다 먼저 합류까지 해주니 그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대절한 버스로 3시간여를 달려 한국대표팀은 숙소인 도류의 나이스 프린스 호텔에 도착했다. 비행기 편으로 늦은 오후에 대만에 도착을 했고 거기서 또 짧지 않은 시간을 이동했기에 바깥의 풍경은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번 한국 대표 팀의 진갑용 주장이 가장 먼저한일은 선수들에게 2인1실로 방을 배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정이 끝나기 무섭게 선수들은 각자 가지고 온 짐을 들고는 방으로 들어가서는 부산스럽게 짐을 풀기 시작한다. 이것은 준혁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아서 그 소란스러움에 함께 동참을 했다.

모든 일정의 시작이 내일부터 시작되었기에 선수들에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솔직히 다들 도착 첫날부터 마땅히 할 일이란 것은 없다고 봐야했다. 기껏해야 가지고 온 책을 읽거나 게임기, 노트북등을 꺼내들고는 호텔방 침대 매트리스의 성능을 시험해 볼 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사람 준혁 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자신을 부르는 테드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따라 호텔방 발코니로 나서니 그녀가 거기에 서 있었다.

" 들키면 어쩔려구요? "

그 모습에 준혁은 기겁을 했다.

단독실도 아닌 2인실이었다. 지금이라도 몇 발자국만 뒤로 움직이면 룸메이트가 방안에 있었다.

테드의 모습이 들킨다면 어떻게 방안에 먼저 들어와있었는지는 차제해 두더라도 아무리 누나라고 하더라도 좋은 소리가 나오긴 힘들 터였다.

하지만, 테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로 지적까지 한다.

" 네 목소리가 더 크다. "

--헙!

--그녀의 지적에 오히려 준혁이 서둘러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방안을 쳐다봤다.

" 걱정 마. 지금 방안에 저치는 여기서 들리는 말소리하고 내 모습조차 못 보니까. "

" 그래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

정말 그녀의 말처럼 같이 방을 쓰게 된 정근우 선배는 전혀 소리를 듣지 못한 듯 보였다.

" 그런데 어쩐 일이에요? "

준혁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되물었다.

본래는 혼자 오려던 대만이었다. 곧바로 대표 팀에 합류할 생각이었기에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테드가 예선전 구경도 하고 이참에 대만 구경 좀 해보겠다며 따라 붙은 것이었다.

하지만 대표 팀 숙소하고도 자신이 머무르는 호텔방 발코니에 덥석 하고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 전해줄게 있어서. "

" 나한테요? "

" 오랜만에 만나면 음료수 같은 거 하나씩 돌린다면서? 그런데 넌 준비를 안했잖아. "

" 네? "

순간 무슨 엉뚱한 소린가 싶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표 팀 소집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은 즈음에서 전혀 자신이 음료수를 돌려야할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오랜만에 지인을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주더라도 국가가 자신에게 줘야지 말이다. 하지만 전혀 집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하하하. 이럴 때 주는 건 아니에요. 그냥 가져가세요. 하하하. "

준혁은 테드도 젠처럼 드라마 흉내를 내고 있구나 싶었다.

젠을 통해 자주 그러한 모습을 보아왔기에... 요정의 어설픈 인간 흉내 내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얼추 그녀의 행동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 그래? 내가 잘못 안거야? 그런데 어떡하지? 이미 방안에 넣어놨는데... "

" 네? "

그 말에 준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테드의 말마따나 정말로 자신의 침대 밑에는 종이로 된 음료수 박스가 놓여 있었다.

더군다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노트북을 보고 있던 정근우 선배도 그것을 발견한 듯 음료수 박스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 준혁아. 이건 뭐꼬? "

이젠 빼다박도 못한다.

" 하나씩 돌리려고 사온거에요. "

준혁은 서둘러 대답했다.

정확하게는 테드가 가지고 온 것이지만 지금 상화에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근우에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아차 싶었다.

" 그래? 그럼 먼저 하나 빼먹는데이? "

그런데, 테드의 이야기와는 달리 근우는 준혁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대답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뭔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테드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녀가 사라지면서 '음소거'의 효과 까지 함께 사라진 듯싶었다.

" 도깨비 같은 아가씨네... 아니 정령이라고 해야 하나? "

준혁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근우의 손에는 비타300이라고 적힌 한손에 들어가는 자그마한 드링크 병이 들려있었다.

슈퍼나 편의점 등에서 흔히 볼수 잇는 비타민 드링크제였다.

" 잘 마실게. "

정근우가 웃으면서 병 마개를 땄다.

" 하하. 뭘요. "

생각해보니 나쁘진 않을 듯싶었다. 조금은 생뚱맞을지도 모르지만 비싸지도 않은 흔한 드링크제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스러울 것도 없었고, 또 공짜라는 것은 언제나 받는 사람에겐 즐거운 것이었으니 말이다.

" 이것 좀 돌리고 올게요. "

준혁은 나머지 드링크제 박스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명한명 직접 방문을 두드리고는 음료수를 돌렸다. 테드의 오해 때문에 벌어진 자그마한 해프닝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준비해준걸로 자신이 생색내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게 공항에 이어 두 번째의 생각지도 않은 준혁의 음료수 서비스에 대표 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만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장원삼은 솔직히 몸이 좋지 않았다. 지난 시즌 개인통산 최다승인 17승을 거두며 다승왕이란 생애 첫 타이틀도 차지를 했다. 하지만 모든 힘을 쏟아 부은 한국시리즈에 이어 아시아시리즈까지 나선 이후 그는 제 모습이 아니었다.

겉은 멀쩡해도 속으론 골골해져있었기에 선발의 한축을 담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 반문 해봐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은 너무나도 상쾌했다. 마치 날아갈 것만 같다랄까?

" 잠이 보약이라더니 잠자리가 편안해서 그런가? "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은 그 스스로가 알았다.

단지 하룻밤을 편안하게 잤다고 바닥을 치던 컨디션이 좋아질 그런 몸 상태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에게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최정 또한 자고 일어날 때마다 그를 괴롭히던 종아리의 거북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 감독님, 다들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데요? "

연습구장에서 다함께 구보를 시작한 선수들을 보며 김한수 코치가 말했다.

" 김 코치가 보기에도 그렇지? "

대답하는 류중일 감독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느낌이란 것이 있었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했고 감독까지 되었기에 선수단의 분위기라는 것이 좋고 나쁨은 그대로 알수가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의 얼굴부터가 환한데 모른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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