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34화 (234/309)

< -- 10. 2012포스트시즌 -- >

창문의 커튼사이로 스며든 아침햇살이 뺨을 간지럽혔다.

준혁은 그것을 참지 못하고 눈을 뜬다.

그리고 이런 그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실크로 덮인 봉긋한 언덕과 그 위에 자리 잡은 꼭짓점이었다.

' 으음... 하아... 아침인가... '반쯤 흘러내린 이불 위로 고급실크로 된 캐미를 입은 예리엘의 윗몸이 들어나 있다.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그녀의 어깨 한쪽도 역시나 스파게티 같은 가느다란 어깨끈이 흘러내려 있어서 뽀오얗고 하얀 살결을 한결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은근히 섹시함을 풍기고 있었다.

아침에 가장 성욕이 강해지는 여타의 남자라면 자신의 연인을 가만 놔둘 수 없는 그런 향기를 말이다. 하지만, 예리엘을 바라보는 준혁의 몸은 오히려 천근만근 같았다. 꽤나 심한 감기몸살이라도 걸린 것처럼 말이다.

' 역시나 ... '이리 될 줄 몰랐던 것은 아니었고, 처음 경험해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마이너스 포인트의 페널티는 마이너스 포인트가 만들어진 시합의 그 다음 경기를 마쳐야지만 사라진다.

그 전까지는 모든 능력치가 다운된 채로 였다. 그리고 그동안 몸은 마치 심한 감기몸살을 걸린 것과 같았다. 게임옵션들이 시합 때만 적용되는 것과 달리 왜 시합과도 상관없이 적용되는지는 알수 없었다. 하지만, 몸살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분명했고, 그 '저주'와 같은 페널티가 사라지는 것 또한 게임의 설명서대로 다음시합을 치르면 사라졌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혁은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예리엘은 계속 잠든 채였고, 이런 그녀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방문을 닫고는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 일찍 일어난 것 치고는 몸이 안 좋아 보인다? "

먼저 일어나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던 테드가 그를 보고는 입가로 커피 잔을 가져가며 말했다.

" 어제 경기에서 무리를 좀 해버렸나봐요. 그런데 그게 바로 느껴져요? "

" 응. 평상시와 몸의 스펙트럼이 달라 보이는데 모를 수가 없지. "

테드의 대답에 준혁은 한참을 쳐다본다.

" 요정이잖아. "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이 테드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그 말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브이넥으로 파여진 잠옷 덕분에 풍만한 가슴골이 여실이 보이는 그녀였지만, 실상은 인간이 아니었으니...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었다.

" 게다가 머리위에 '해골 마크'도 떠있는데? "

" 정말요?! "

준혁은 놀라며 되물었다. '해골 마크'라니... 페널티의 효과가 게임의 '저주'에 걸린 것이라도 되는 것일까?

" 농담이야. 심각한 얼굴 하기는. "

차라리 웃으면서 말했다면 모를까...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는 말에 준혁은 정색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물론, 상대방이 상대방이다 보니 화를 내봐야 소심한 화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이런 속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부연을 하는 테드였다.

" 젠이 게임옵션이 적용되도록 소원을 들어줬다고 이야기 했었잖아? 그리고, 지금 그거 페널티잖아. "

" 어떻게 알았어요? "

" 보인다니까. 능력치들이 전부 새빨간 색인데? "

" 정말 보여요? "

" 몇 번을 말해. 보인다니까? "

거듭된 질문에 테드가 정색을 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준혁은 허탈해졌다.

보인다고? 젠장. 그런데 나는 왜 안 보이는 거지?

" 그런데, 왜 난 안보이는거죠? "

하다못해 슈퍼 포인트가 수치만이라도 표시만 되었더라면 조금 더 능동적으로 플레이가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치에 관련해서는 전혀 보이지를 않다보니 항상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계산에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생각지도 않은 패널티를 먹기도 했었다.

물론 오늘은 예외의 경우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아쉬움을 클 수밖에 없었다.

" 인간이니까. "

" 네? "

" 인간이니까. 요정이 아니면 보이지 않아. "

" 그런... "

대답은 생뚱맞을 정도였다.

준혁은 다시 한 번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은근한 어조로 테드가 말을 이어갔다.

" 방법이 없는 건 아냐. "

" 뭔데요? "

" 너도 램프 속으로 들어올래? 그러면 보일지도 모르는데... "

" 네? ... 에이 또 농담이지요? "

" 글쎄... 농담일 까나? "

오늘 아침, 처음으로 엷게나마 미소를 보이는 테드였다.

" 참내... 그러고 보니 젠은요? "

" 할 일이 있다면서 나갔어. 오늘은 안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어. "

대답에 준혁은 오랜만에 젠이 자리를 비우는 구나 싶었다. 덕분에 젠에게 물어보는 것은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왠지 테드의 말은 신뢰가 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탁 타타 탁탁... --오전, 경기장에 도착한 준혁은 여느 때처럼 스트레칭 후, 러닝으로 몸을 풀었다.

어떤 운동이던지 간에 하체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는 운동은 없었고, 그 하체운동을 위해서는 러닝만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저번에 패널티를 받았을 때 러닝을 빼먹는 것보다는 해주는 것이 나았다는 기억이 있었기에 그대로 진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전 때와는 달리 마치 땅거죽이 자신의 발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그래서 결국은 처음 생각과 달리, 자신과 약속된 러닝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는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준. 일찍 왔구나? "

스트라스버그였다.

" 응. 그래. 그러는 너는 선발도 아닌데 일찍 왔다? "

5차전을 완투했고, 겨우 이틀을 쉬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오늘은 왜만한 경기흐름이 아니라면 그의 등판은 없다고 봐야했다.

" 집에 있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마지막 시합이라고 생각하니 말이야. "

이해가 갔다.

스트라스버그의 말마따나, 오늘은 올라가느냐 못 올라가느냐가 결정 나는... 더 이상 남은 시합도 없는 그런 경기였다.

" 그런데, 너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

" 너도 보이는 거냐? "

아침에 테드의 말이 있었다보니 스트라스버그의 말 한마디가 예사로이 들리지 않았다.

" 당연하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구먼. 너 몸살 아냐? 그런데도 운동장을 뛴 거냐? 몇 바퀴를 뛴 거야? "

아, 얼굴빛... 그거였나? 테드처럼 숫치가 보이거나 한 거는 아닌가보다. 실없는 웃음마저 나왔다.

" 웃어? 야 너 오늘 시합 안할꺼냐? 몸살 걸린 놈이 무식하게 운동장을 뛰는 게 어디 있냐? "

스트라스버그는 역정을 내고 있었다.

" 준혁 리가 몸살이라고? "

" 네. 리의 이야기도 있고 해서, 팀 닥터에게 보여 봤는데, 꽤나 심하다고 합니다.

" 헛... 이것 참.... "

데이비 존슨 감독으로써는 생각지도 않은 변수였다. 아무리 야구가 팀스포츠라고 하지만, 그래도 중심을 잡아줄, 그리고 꼭 해줘야할... 스타팅에 들어간 것만으로 상대팀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바로 준혁 리였다.

그런데, 그런 중심 선수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역시나 신인급 선수에게 포스트시즌의 첫 경험은 몸과 마음 모두 힘든 것인 것일까?

" 디비전 때부터 접전이 아닌 경기가 없다보니 다들 지친것 또한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

디비전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의 브라이스 하퍼의 부상도 타이트한 내일이 없는 경기와 너무 넘쳐버린 승부욕이 가지고온 점도 없지 않아 있었으니...

" 할 수 없군. 오늘은 좀 더 작전을 내는 수밖에는 말이야. "

데이비 존슨은 본래 감독이 경기에 개입하기 보다는 선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준혁을 뺄 수 없는 이상, 조금은 작전을 더 써야했다.

" 그렇겠지요. 하퍼 마저 빠진 마당에 리 마저 뺄 수는 없으니까요. "

존 멕클라렌 벤치코치의 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워싱턴의 모든 코칭스태프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했다. 준혁은 대체 불가의 선수였다.

현지시간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오후2시50분 오후 3시 35분.

한국시간으로는 10월 23일 화요일 오전 7시 35분, 한창 한국의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바쁠 시간에.

메이저리그 중계를 내보내는 MBS의 방송 부스도 바쁘긴 매 한가지 였다. 이미 방송예고는 한참 전부터 내보내고 있었고, 지금은 광고시간이었다.

이민성 아나운서와 송재익 해설위원도 다시 한 번 준비한 자료를 꼼꼼히 살피며 만일에 있을 실수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 자! 지금 들어갈게요. "

스텝의 말과 함께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민성 아나운서는 침착하게 그 카메라를 응시하며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의 마지막 7차전의 시작을 알렸다.

[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워싱턴 내셔널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챔피언십 7차전 경기를 지금부터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도움 말씀에는 오늘도 송재익 해설위원이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위원님 안녕하십니까? ][ 네, 안녕하세요. ]올 시즌 내내 주고받았던 정형화된 시작 멘트였다. 하지만 이것도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마지막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