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25화 (225/309)

< -- 10. 2012포스트시즌 -- >

하퍼는 야구가 좋다. 야구선수가 야구가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퍼는 거기에 일일이 대답할 생각은 없다.

야구가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니까. 그런 야구에서 항상 천재소리가 떠나지 않던 그였다. 언제부턴가는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전미신인드래프트 야수 최고 계약금도 당연한 것이었다. ' 개구리는 큰 바다를 모른다.

(The frog in the well knows nothing of the great ocean) ' 자신이 바로 그 짝이었다. 정말이었다.

천재는 따로 있었다. 워싱턴에 합류한 이후, 하퍼는 준혁에게서 진정한 천재란 무엇인지를 봤다.

'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 '넘어서겠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접었다.

그가 천재라면 준혁 리는 초천재였으니까. 하지만, 최소한.... 아니 죽을힘을 다해서 단 한순간만이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하퍼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진심이 그의 몸 구석구석 세포를 깨우고 있었다.

--슈우욱!

--마크 젭친스키의 공이 날아온다. ' 안쪽! '하퍼는 순간적으로 앞선 타석에서 준혁이 때려냈던 바로 그 공이라 직감했다.

' 까다롭다. '공이 투수의 손을 막 출발했을 때만 봐도 안쪽 높은 스트라이크존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싱커의 움직임이 더해진다면 홈플레이트에 와서는 볼로 빠지거나 살짝 걸리는 공이 되리라.

앞선 준혁에게 던진 공이라면 말이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타자를 미치게 만드는 코스였다.

더군다나 자신은 이미 반 족장을 홈플레이트로 붙은 상황이었다.

몰리나는 그의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하퍼 스스로 붙은 것이었다.

바로 이공을 던지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우선 맞출 수 있을까? 맞춘다고 하더라도 준혁처럼 인필드로 집어넣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힘까지 완벽하게 타구에 전달을 시킬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해내고 말거야!! '정상적인 타격 메커니즘으로는 절대로 칠 수 없는 공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바로 앞의 타자는 이공을 때려냈다. 절대로 칠 수 없는 공은 아니라는 거다.

순간적으로 준혁이 이공을 때려내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믿을 수 없게도 그의 몸은 준혁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따악!!

--[ 우익수 쪽! 우익수 뒤로 뒤로! ]커다란 타구였다. 앞선 준혁의 타구처럼 타구는 우측 펜스를 향해 끝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 아~~~·. ][ 넘어갔습니다! 넘어갔어요. 브라이스 하퍼. 솔로 홈런! ]

" 와아아아아~~~~ !! "

워싱턴을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소리로 내셔널스파크는 뒤덮어버렸다. 1회에 이어 또다시 준혁-하퍼의 백투백 홈런이 나온 것이었다.

더군다나 경기후반 2점차로 점수 차이를 벌리는 홈런이었으니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곧바로 리플레이 화면이 나왔다. 그리고 그 화면을 보는 순간 이민성 아나운서의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 마치 1회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 [ 정말 그렇군요. 똑같은 코스 똑같은 구질. 거기다 똑같은 결과까지... 이민성 아나운서의 말대로 데자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 무엇을 말이지요? ][ 1회 선두타자 홈런에 이은 백투백 홈런처럼, 이번 7회도 선두타자 홈런에 이은 백투백 홈런이란 것을요. ][ 정말입니까? 하하하. 이거, 이런 기록이 메이저리그에 있었을까요? 처음이지 않을까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준혁을 응원하고 있었기에 그 기쁨은 배가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비밀 아닌 비밀 중 하나는 이렇게 이민성 아나운서가 신나하면,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 또한 난리가 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다함께 기쁨을 나눈다고나 할까?

" 짐머맨. 저 정도면 한번은 이상해져 볼만하지 않나요? 후후후. "

준혁은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는 하퍼를 보고는 다시 덕아웃 바로 앞의 대기타석에 서있던 짐머맨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슬며시 말을 걸었다.

" 허허... 것참. 그렇게 말하면 괜스레 미안해지잖아. 하퍼한테는 이야기 하지 마. "

이상한 놈 취급한 것이 엄청 후회가 됐다.

저렇게나 화끈한 홈런을 날려준 녀석에게 말이다.

" 맨입으로요? "

" 스티브에게 얻어먹을 거면서 나한테도 얻어먹으려고? "

짐머맨은 챔피언십 진출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그만큼 경기 후반의 두 점이란 추가점은 컸다.

" 그건 그거지요. "

" 그래. 알았다.

알았어. 대신 올라가면. 그리고 쉿 해주는 거다. 오케이? "

" 알았어요. 하하하. "

준혁은 다시금 웃었다. 그리고는 심판이 보기 전에 얼른 하퍼의 홈런 축하 다구리에 가담한다.

원칙적으로 대기타석엔 한명이상 있으면 안 되는 거라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퍼의 홈런도 있었고, 조금 어수선한감도 있었기에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었다.

" 이녀석!! "

" 멋진 녀석!! "

" 그걸 또 넘기냐?! "

워싱턴의 선수들은 서로 헬멧을 쓴 하퍼의 머리를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 준, 방금 나 어땠어요? "

덕아웃 안에 들어오고 나서도 하퍼는 다시 한 번 준혁에게 묻는다.

" 멋졌어. 정말. 오늘은 네가 최고다! 천재야. "

" 그런가요? 후후후. 하지만, 천재는 너무 과분하구요. 오늘은 최고다 정도만 마음에 담아 둘게요. 하하하. "

하퍼의 진심이었다.

그 공을 때려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준혁이었다. 그것을 보고 자신은 따라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진짜 천재는 하퍼. 바로 너야. '준혁이 할수 있는 것은 빙긋이 웃어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도 진심이었다.

" 불펜은? "

마이크 매시니 감독은 곧바로 투수코치 데릭 릴리퀴스트 에게 물었다.

" 계속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디비전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였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경기후반부에 들어가기 무섭게 불펜엔 총동원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 알았네. 그럼 올라갈 테니, 연락해주게나. "

젭친스키로는 더 이상은 힘들다고 판단했다.

위안을 삼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실투라면 투수가 어느 정도 심적으로 도망갈 구석은 있었다. 하지만, 던지고자 했던 곳으로 잘 던진 공을 연속으로 통타를 당해버린다면 투수는 도망갈 곳 없이 궁지에 몰리게 된다. 시즌 중이었다면 그냥 더 놔둘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디비전 마지막 경기였다.

내일이 없었다. 그랬기에 더 이상의 사단이 벌어지기 전인 지금이 투수를 교체해야할 시기였다.

교체가 되어 올라온 세인트루이스의 다음 투수는 미첼 보그스였다. 역시나 최고구속 99마일의 싱커볼러인 그는 90마일의 하드슬라이더의 피안타율이 무려 .087밖에 되지 않는 투수였다.

더군다나 앞서 나온 트레버 로젠탈처럼 롱릴리프도 가능한 투수였고, 여차하면 팀의 마무리인 제이슨 마트의 대체도 가능했다. 그리고 이런 기록이 디비전에서 통한다는 것을 앞선 2-3차전에서 보여주었듯이, 이번 7회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경기후반 뼈아픈 2실점을 한 세인트루이스였지만, 그래도 더 이상의 실점은 하지않은채, 경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9회가 시작되자, 워싱턴은 마운드를 마무리 드류 스토렌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 역시, 데이비 존슨 감독. 마무리 투수를 올리는군요. ][ 네. 드류 스토렌 투수. 올 시즌 전반기는 부상과 수술로 전혀 등판을 하지 못했습니다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복귀를 했습니다.

후반기 30.1이닝을 소화하며 3승 1패 4세이브 방어율 2.37을 기록했네요. 복귀초반에는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만, 이제 제 모습을 찾으며 타일러 클리파드에게 걸렸던 과부하를 무난히 넘겨받아주는 모습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무난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겠군요? ][ 아직 9회가 아웃카운트 3개가 남았습니다만, 잘 막아 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격언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민성 아나운서의 질문에 대답하는 송재익 해설위원의 말은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자. 바뀐 투수를 상대하는 첫 타자는 카를로스 벨트란입니다. 세인트루이스도 타순은 좋네요. ]9회 초를 2번부터 시작하는 타순이었다.

카를로스 벨트란- 맷 할러데이-앨런 크레이그 로 이어지는 만만치 않은 타선임에는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카를로스 벨트란은 1볼 1스트라이크에서 스토렌의 3구째를 통타, 3루수 키를 넘어가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들어내며 2루에 안착하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자칫 흔들릴 뻔 한 드류 스토렌을 맷 할러데이가 도와줬다. 초구를 건드리며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이 되어버렸다.

비록 벨트란이 3루까지 진루를 했지만, 2점이란 점수 차이였다. 아직은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이것을 생각한 덕분인지, 스토렌은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 스토렌! "

" 스토렌!! "

내셔널스파크의 모든 관중들이 기립을 했다.

챔피언십까지 단 한명의 타자만 남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타자는 바로 야디에르 몰리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