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23화 (223/309)

< -- 10. 2012포스트시즌 -- >

스트라스버그는 가슴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꼭 질것만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던 그는 소리 높여 외쳤다.

" 준! 하나! 하나만 때려줘! "

그런데,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덕아웃 바로 앞의 대기타석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브라이스 하퍼가 뒤로 돌아보며 한마디 한 것이었다.

" 걱정 마십시오. 준이라면 반드시 해줄 겁니다."

" 반드시? "

" 네. 반드시! "

마지막 말에는 마치 강철로 된 H빔이라도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순간 하퍼가 살짝 무서워지는 스트라스버그였다.

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왠지 광신도 같다라고나 할까?

" 왜 고개를 돌리십니까? "

" 아냐. 돌리긴 물 좀 마시려고... "

" 볼! "

아쉽게도 초구는 크게 벗어나는 볼이었다.

' 또 피하는 걸까? 아니면 긴장을 한 걸까? '

초구부터 크게 벗어난 공이 들어오니 순간 오락가락해져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준혁이 생각한 기회는 2구까지였다. 그 안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정말 이번에도 걸어 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 들어온다. 들어와. 최소한 비슷하게 라도 들어온다.

'준혁은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골치 아파졌군. '나름 몰리나도 크게 벗어난 초구 덕분에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 이번엔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데,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단 말이야. '한방이면 또다시 역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기후반부에 무사의 상황에서 리키 핸더슨의 재림이라는 준혁을 1루로 걸어 보내는 것 또한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되는 일이었다. 3년간의 통계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할 수 없지. 최대한 근사치로 가보자. '프레이밍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오늘은 주심은 다른 메이저리그 심판들에 비하면 타자의 안쪽 공에 대해 공반개는 더 후한 편이었다. 몰리나는 그것에 이번 공을 걸어보기로 했다.

' 몸 쪽. 각도가 작은 싱커. '사인은 나갔다. 이제는 젭친스키가 요구한대로 공을 던져주기만을 바를 뿐이었다.

준혁은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젭친스키를 바라보았다.' 싱커와 슬라이더 중 어느 거냐! '체인지업도 던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준혁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싱커와 슬라이더의 비중이 90%에 가까운 투수가 젭친스키였다. 그리고 그 90%중에서 83%가 싱커였다. 단 한 번의 기회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경우의 수를 하나라도 줄여야만 했다.

가상스트라이크존이 떴다. 그리고 공의 통과위치까지 나왔다. ' 몸 쪽, 살짝 높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모서리. '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0.2초간 날아오는 초중반까지의 궤적이었다.

' 싱커닷! '여기에서 준혁은 싱커라고 확신을 내렸다. 초반궤적은 안쪽 스트라이크존의 그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통과위치까지 합쳐보면 젭친스키의 손을 떠난 공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자신의 몸 쪽으로 좀 더 꺾이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몇 년 동안이나 해오던 것이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판단을 내려야한다는 것은 바뀔 수가 없었고 그러하기에 그도 100% 판단실수가 없다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타자가 스윙을 몸이 기억하도록 만들듯이 준혁은 이것을 몸이 기억하도록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 결론은 살짝 벗어나는 볼이 되는 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준혁은 충분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할 수는 없었다.

그냥 때려서는 파울밖에는 나오지 않는 공이었다. 아무리 [슈퍼모드]라고 하더라도 파울을 홈런으로 만들어줄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공을 인필드로 집어넣어야만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가상스트라이크존을 통해 미리 공이 코스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만의 크나큰 장점이었다.

아무리 몸쪽 빠른 공이더라도 미리 알고만 있다면 못때려낼것도 없었으니까. 준혁은 살짝 상체를 뒤로 재끼면서 재빠르게 스윙을 가져갔다. 오른 팔뚝을 몸통에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다리에서부터 엉덩이를 통해 허리를 통과해서 어깨를 경우 팔까지 전해진 회전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자연스럽게 한손은 놓아버렸다. --따악!!

--순전히 오른 팔 하나만으로 팔로스로우를 밀고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미 슈퍼모드의 힘이 전해진 상태였다.)[ 아! 우측에 쭉 뻗습니다. ]이번엔 송재익 해설위원의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1회이 홈런 이후로는 계속해서 고의사구만 기록하고 있다 보니 답답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커다란 타구가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다시 앞서 나갈 수 있는 홈런이 말이다.

[ 우측에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뒤를 이어 이민성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서서히 올라갔다.

[ 홈런입니다! 이준혁 또다시 선두타자 홈런! ][ 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준혁의 홈런 한방으로 워싱턴이 다시 한 점 앞서 갑니다. ][ 먼저 앞서가는 득점을 어느 팀에서 먼저 가져가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후반전이었는데요. 이준혁 선수가 한건을 또 해주네요. 이러면 한경기 두 이닝 선두타자 홈런이 되는 건가요? ]이민성 아나운서가 물었다.

포스트시즌 선두타자 홈런만 해도 그리 흔한 기록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 타자가 그것도 한경기에서 두 번의 이닝에서 각각 선두타자로 나와서 홈런을 때렸다? 충분히 기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 맞습니다.

선두타자로 나선 2번의 이닝에서 홈런을 그것도 포스트시즌에서라면 아마도 진귀한 기록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번 찾아봐야하겠습니다. ]하지만, 기록의 달인 송재익 해설위원도 이것만은 모르는 듯 했다.

[ 리플레이 화면이 나오는 군요. ][ 안쪽 싱커로 보이는데요. 높은 쪽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빠진 공이었군요. ]중계 중에 홈런이 나왔을 때에는 그냥 안쪽 공을 때려냈구나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리플레이 화면이 제공되자, 찬찬히 준혁의 홈런타구를 뜯어볼 수 있게 되었다.

[ 저공이 홈런이 나오긴 나오는 군요. ]이민성 아나운서의 감탄사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송재익 해설위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 그냥 때려서는 무조건 파울입니다. 방금 전의 공을 어떻게 때려야하는지 이준혁 선수가 재대로 보여줬네요. ]일명 미존(타자가 미치는 존)이라고 불리는 코스가 2군데가 있었다.

스트라이크존을 9분할 했을 때.

왼손타자인 준혁이 보는 방향에서 몸 쪽 높은 코스인3번과 바깥쪽 낮은 코스인7번이 바로 그 미존 이었다. 그리고 그 속어처럼 때려내기 정말 힘든 코스가 바로 이 두 개의 코스였다. 그런데 그 몸 쪽 3번 코스의 더군다나 볼로 살짝 빠지는 유인구를 준혁은 홈런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것도 한팔로 만들어낸 홈런이었다.

[ 상체가 조금 뒤로 젖혀졌지요? 그 덕분에 공을 때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어요. 여기에다가 오른 팔뚝이 끝까지 몸통에서 붙어서 회전을 하지 않습니까? 스윙도중 왼팔은 자연스럽게 방망이를 놓아버리고요. 오른팔만으로 마지막 팔로스로우를 가져가잖습니까. 정말 예술이라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네요. ]설명을 하는 송재익 해설위원의 목소리에서는 감탄이 금방이라도 뚝뚝하고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 그런데, 말씀을 듣고 보니 떠오른 겁니다만. 이준혁 선수가 때려낸 홈런 2개가 전부 미존의 홈런이었네요. ]그 말에 송재익 해설위원도 그것까지는 생각 못했다는 듯이 '오'하며 감탄사를 뱉어냈다.

[ 그렇군요. 이민성 아나운서 눈썰미가 좋으신데요. 맞습니다. 첫 번째 홈런이 바로 7번 미존을 때려낸 것이고, 방금 나온 홈런은 3번 미존을 때려낸 것이군요. 안타도 쉽게 만들기 힘든 코스인데 말이죠. ][ 그리 말씀하시니 이준혁 선수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군요. 아직 경기의 결과는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만, 만약입니다만, 워싱턴이 계속해서 올라간다면 그를 상대하는 팀의 배터리는 머리카락 꽤나 빠질 듯 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중계를 하는 입장이었지만, 마음 졸이던 것은 시청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단 한 점이긴 했지만, 준혁의 호쾌한 홈런이 나오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었다.

" 보십시오. 준이 해주지 않습니까! "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것에 앞서 하퍼는 스트라스버그부터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 그... 그래. "

준혁의 홈런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 기뻤다. 다시 한 번 앞서 나가며 그가 챔피언십의 마운드를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특히 오늘의 하퍼는 조금은 꺼려진다.

" 쟤, 좀 이상해 진거 같잖습니까? "

불과 시합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저렇진 않았다. 스트라스버그는 막 대기타석으로 나서는 짐머맨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하퍼의 바로 뒷타석이었고, 앞선 이닝에서 타석 앞에서 이야기도 나누었기에 그도 좀 느끼는 것이 있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 글쎄...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

" 그래요? "

" 응. 조금 의욕이 과하다 싶어서 일거야. 그럼. 그럴 거야. 나는 준비를 좀 해야 해서 "

짐머맨은 짐짓 모르쇠로 일관했다. 왜냐면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중에서 자신 또한 자유롭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

그래도 타석에 들어선 하퍼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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