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 2012포스트시즌 -- >
카를로스 벨트란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 젠장! 이번엔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
글러브채로 펜스를 넘어가버리다니, 허탈하기 까지 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글러브가 벗겨진 손바닥이 시린 것만 같았다.1차전 때에도 생각지도 않았던 불규칙 바운드가 그를 슬프게 하더니, 이번엔 또 공을 잡을 채로 글러브가 벗겨져 펜스를 넘어가버린단 말인가... 정말, 자신에게는 플레이오프의 저주라도 있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슬퍼하는 쪽이 있으면 그 반대로 기뻐하는 쪽 또한 있기 마련.
" 야이 미친 녀석아! "
" 정말 대단해요! "
" 넌 정말 야구의 신이 있다면 널 너무 사랑하는 거 같다! "
" 무식한 놈!! 글러브 채 넘겨버리냐!? 그걸!! "
워싱턴의 덕아웃은 베이스를 돌고 막 들어온 준혁을 환영하기에 바빴다.
" 역시 물건은 물건이야. 그렇지 않나? "
데이비 존슨 감독이 코치들을 돌아보며 웃었다.
평소의 온화한 그 다운 화법이었다.
" 맞습니다. 정말. 여기에서 초구홈런이 나올 줄을 말이죠. 하하하. "
[ 무려! 첫타석 초구의 홈런입니다.
이준혁! 디비전 2호홈런을 선두타자 홈런으로 장식합니다!]난리가 난 것은 방송부스도 마찬가지였다. [ 저걸 걷어 올리는군요! 와우! ]평소 입담이 좋은 송재익 해설위원도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리플레이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노렸어요. 이준혁 선수가 말이죠. ]
[ 스트라이크... 도 아니었네요? ][ 맞습니다. 하지만 유인구였다면 더 떨어뜨렸어야만 했어요. 이준혁 선수를 상대로는 말이죠. 이준혁선수는 딱히 약점코스가 없는 타자이지 않습니까? ]때마침 스트라이크존을 9분할한 한 존이 그래픽으로 나오고 있었다. 오늘따라 딱딱 해설진과 기술진이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 보세요. 그나마 약한 코스라면 바깥쪽 낮은 코스입니다만. 저쪽은 이준혁 선수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쉽게 때려내기 힘든 코스이죠. 그런데 거기에서 공하나 정도 안쪽으로 들어와 버렸지요? 높이는 볼로 빠지는 괜찮았습니다만, 좌우코스가 좋지 못했어요. ]물론, 준혁을 상대로 그렇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공하나 정도 몰렸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투수의 실투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실투는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 그렇다고는 해도, 벨트란은 아깝겠어요. 다잡은 공인데 말이죠. ][ 맞습니다.
까딱 잘못했으면 이준혁선수는 홈런 하나는 도둑 맞을뻔 했지요. 하지만, 워낙 타구가 강했어요. 글러브가 벗겨질정로로 말이죠. ]이 벼락같은 홈런 한방으로 승기는 일순간에 워싱턴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 승기를 워싱턴의 타자들은 놓치지 않았다.
하퍼의 백투백 홈런이 뒤를 이었다.
정말 요즘 들어 하퍼도 무서워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뒤를 이어 라이언 짐머맨의 2루타, 라로시의 진루타. 마이클 모스의 희생플라이까지 이어지며 워싱턴은 1회에만 3점을 얻어냈다.
하지만, 2회 초의 세인트루이스의 공격은 전혀 살아나지 못했다.
그리고는 다시 2호말 워싱턴의 공격으로 넘어갔다.
" 몰리나,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아. "
포수 장구를 갖춰 입고 수비에 나설 준비를 하는 야디에르 몰리나의 앞에 배터리코치이지 형인 벤지 몰리나가 다가와서 그 옆자리에 앉았다.
" 오늘 리를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아? 어때? "
시합을 하다보면 미치는 타자가 꼭 하나는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타자가 있는 팀이 이길 확률 또한 그렇지 못한 팀에 비해 높았다.
준혁이 바로 그 짝이지 않은가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 형이니 솔직히 말할게. 어렵지 싶어. 연습타격때의 그 리듬이 그대로 시합까지 이어진 것 같아. 1회의 홈런도 완전 볼이었거든. 더군다나 낮은 공을... 그런데 그 타구를 라인드라이브로 넘겨버렸어. 덕분에 웨인라이트가 흔들려버린것이고 말이야. "
" 그래? 그럼 나도 쉽게 말할 수 있겠다.
야디. 오늘 준혁 리는 그냥 피하자. "
" 형. "
" 그러자. 태풍은 피하고 봐야지. 맞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
" 하지만, 형. "
" 그러자. "
형 벤지 몰리나가 다시금 이야기를 했다.
사뭇 부탁조로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워싱턴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라면 그 누구라도 준혁 리를 뽑을 테니까 말이다.
' 하지만, 형... 알잖아. 오늘 무서운 건 '리' 만이 아니란 걸 말이야. '목젖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형이 정말 그것을 몰라서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싶었다.' 그래, 해보자. 준혁 리는 어쩔 수 없다지만, 나머지한테까지는... '
" 내가 누굽니까? "
" 누구긴, 야디에르 몰리나잖아. "
벤치 멤버로 덕아웃에 앉아있던 라파엘 퍼칼은 몰리나의 질문에 황당했다.
갑자기 자신이 누구냐라니?
" 지금 이게 몇 개로 보여? "
서둘러 손가락을 펴 보인다.
" 3개잖습니까. 걱정 마십쇼. 저 정신 안 나갔으니. "
" 아냐. 뭐 그렇게 까지 생각한건... "
몰리나의 대답에 퍼칼은 괜히 무안해졌다.
" 절대 안집니다. 오늘 시합. "
혼자만의 다짐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대답해야할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퍼칼의 대답은 한 박자 늦게 어정쩡했다.
" ...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왠지 말해놓고도 뻘쭘하다랄까?
[ 아, 이거 뭔가요? ][ 이준혁 선수를 피하기로 작정을 한 걸까요? ]몰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투수의 공을 받고 있었다.
고의 사구였다. 하지만, 그 상황이 평소와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선두타자인 에스피노사가 플라이로 아웃이 되고, 윌슨 라모스 타석에서 안타가 나왔다. 그리고 지체 없이 데이비 존슨 감독은 투수인 곤잘레스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여기까지는 정석대로였다. 하지만, 곤잘레스는 벤치의 작전수행에 실패를 했고, 그대로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늘린 채, 주자는 그대로 1루에 묶여있었다. 여기까지도 평소의 경기와 다를 바는 전혀 없었다.
2아웃에 주자는 1루. 여기서 준혁이 타석에 들어섰고, 내셔널스파크를 찾은 워싱턴 팬들은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몰리나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 2루에 주자가 있고 1루가 비어있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거기에서 강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면 '고의사구'. 까짓것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고의사구로 2루까지 보내준다라니요? 그냥 스코어링포지션까지 보내주겠다는 건데요. 이런 해괴망측한 작전은 정말 처음 봅니다. ]송재익 해설위원의 말이었다.
그도 말하면서 황당해하는 것이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느껴질 정도였다. [ 물론, 이준혁 선수가 무서울 수도 있겠지요. 무려 7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선행주자가 포수인걸 생각해야합니다.
이준혁선수에게 안타를 맞더라도 홈까지는 힘들다는 거지요. 카디널스의 배터리는 무슨 생각일까요? ]
" 난 만만하다는 건가? "
결국은 준혁에게 폴 4개가 연속으로 주어졌다. 보호대를 풀고, 방망이를 배트보이에게 전달해주고는 조금은 허탈해 보이는 준혁을 보며 대기타석은 하퍼는 중얼거렸다.
솔직히 자존심도 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상식을 벗어난 작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조금은 컸나보다.
뒷타자로 대기타석에 들어오던 라이언 짐머맨에게 까지 들린 것을 보면 말이다.
" 보여주면 되는 거야. 하퍼. 너도 할 수 있잖아. "
" 짐머맨이 보기에도 그런가요? "
" 그래. 너도 우리 팀 역대급 3인 방중 한명 아니냐? 그냥 넘어가주면 안 되는 거지. "
역대급 3인방이라는 것은 이준혁,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브라이스 하퍼... 이 세 명을 팀안에서 동료들이 지칭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너도 우습게 보일 필요 전혀 없다는 그런 의도의 라이언 짐머맨의 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할 말이 남아 있었다.
" 하지만 한마디만 더하지.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 그건 또 뭡니까? "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컷 기합을 불어넣어놓고 무슨 소린가 싶었다.
" 준혁이 가끔 집중해야 할 때 되뇌는 말이야. "
하지만, 준혁이 하는 행동이라면 달라진다.
적어도 하퍼에겐 말이다.
" 알았어요. 리 가 하는 이야기라면! "
눈빛이 달라졌다. 짐머맨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전까지가 단순히 자존심 상한 한 마리 사자였다면, 지금은 안광을 번뜩이며 사냥감을 노리는 호랑이었다.
" 그래. 하나 만드는 거야. 하퍼. "
적시타가 나오면 최소한 한 점이었다.
거기다 2루타이상이라도 나온다면 1루 주자인 준혁을 생각하면 2전까지도 가능하다고 짐머맨은 봤다.
그의 야구인생에도 플레이오프는 평생의 처음인 경험이었다.
' 좀더, 이 경험을 누리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 그나저나... 다루기가 쉽다고 해야 하나? "
대기타석에서 하퍼를 바라보는 짐머맨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