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03화 (203/309)

< -- 9. 2012시즌 -- >

" 그래요? 알았어요. 물어볼게요. "

스트라스버그와의 통화를 마친 레이첼은 젠과 친구 예리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 뭐래? 스티브가. "

예리엘이 물어왔다.

" 준과 같이 저녁 먹으러 가기로 했다네. 가는 김에 두 식구 다 같이 가는 건 어떠냐고 그러는데, 어때요? "

라며 젠을 먼저 쳐다본다.

그녀 덕분에 오늘 경기를 편하게 볼 수 있었던 레이첼이었다. 서버의 서비스도 마음껏 받고, 편안하고 시원한 룸에서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먹으며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9월 달임에도 꽤나 더운 날이었기에 일반좌석이었다면 땀깨나 흘렸으리라.

전화통화상으로 스티브가 준혁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왕 사는 것, 두 집의 식구들도 같이 가는 게 어떠하냐 라고 했다.

그녀로써도 찬성이었다. 오늘 젠에게 대접받은 것도 있으니, 저녁을 자신들이 사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 그럴까? "

젠도 가겠다고 한다. 레이첼은 잘 되었다 싶었다.

" 나는 안 물어보니? "

" 너는 당연히 갈꺼잖아. "

물론, 예리엘에게도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앞뒤가 뒤바뀐 듯 하긴 하지만.

" 우선 집에 돌아가요. 옷을 바꿔 입어야 할 듯 하네요. "

스트라스버그가 레스토랑에 저녁식사를 예약해놓았다고 했다.

그녀의 기억이 대로라면 그곳은 고급레스토랑이었다. 더운 날씨였기에 가볍게 입고들 있는 지금의 복장으로는 조금 곤란한 곳이었고, 이브닝드레스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꼭 드레스를 갖추어 입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정장 정도만 되어도 괜찮다. 하지만, 지금처럼 바지는 곤란했다.

이것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자켓은 필수다. 물론 넥타이까지 갖춘다면 더 좋겠지만, 요즘은 그것까지는 요구를 하진 않는다.

한마디로 레스토랑의 품격에 맞게 복장도 격식을 갖춰서 오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낮경기 였고, 3시간 가까운 경기시간이었지만, 아직 시계의 바늘은 5시를 넘지 않고 있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충분했다.

다들 퇴근하고 불이 꺼진 복도. 그리고 그 끝자락, 데이비 존슨 감독의 사무실에는 여전히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사무실 가운데의 탁자위에는 여러 개의 페이퍼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턱을 괴고는 존슨 감독이 쳐다보며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끼이익.

--하지만, 문 열리는 소리가 그의 사색을 깨트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존 멕클라렌 벤치코치다.

" 아직 퇴근 안하셨습니까? "

" 생각할게 좀 있어서. "

" 그래요?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

" 그래주면 고맙겠군. "

" 하하. 고마울 것 까지는 요. "

커피머신으로 미리 내려놓은 게 남이 있었다.

그걸 두 개의 컵에 담아내는 수준이니, 그다지 수고로울 것은 없었다.

" 오늘 경기 기록이군요. "

커피 잔 하나를 감독에게 건내주다보니 자연스레 탁자위의 기록지가 보인다.

맨 위에 스트라스버그의 투구분석표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 이 친구, 오늘 참 잘 던지더군요. "

" 나무랄 때 없었지. "

비록 피홈런 하나를 맞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정말 깔끔한 피칭을 스트라스버그는 보여주었다.

" 흔들림이 없더군요. 나이도 어리고 올해가 풀타임 처음인데 말이죠. 솔직히 저라면... 더 이상 던질 수 없다는 최종통보를 받아놓은 경기라면... 생각이 많아졌을 텐데 말이죠. "

데이비 존슨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타자들이 잔루만 늘리며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박빙의 승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7회의 대량득점이 나올 수 있었던 밑바탕은 스트라스버그가 완벽하게 마이애미 타선을 막아주었기 때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었다.

" 오늘따라 더 아쉽네요. 딱봐도 그는 빅게임용 피처인데 말이죠. 디비전 때도 등판 시키지 않는다는 단장의 방침은 바뀌지 않겠죠? "

" 아마도. 힘들 거야. "

마이크 리조 단장은 시즌 초부터 계속해서 스트라스버그의 160이닝 시즌아웃을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다. 쉬이 무를 이야기였다면 얼마 전 라이오인터뷰에 나가서 까지 재차 강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존 멕클라렌 코치도 그것을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시합은 이겼지만,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그래서 더욱 더 스트라스버그의 호투가 인상 깊은지도 몰랐다.

" 아쉽네요. "

" 나도 그러네. 솔직히 팀의 미래나 선수를 위해선 단장의 결단이 옳네만... "

그다음 감독이 하고 자하는 말은 짐작이 간다.

플레이오프에 들어가게 되면 오늘처럼 될듯하면서도 되지 않는, 타이트한 경기가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었다.

그런 경기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팀이 이길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줄수 있는 투수가 있고 없고는 커다란 차이였다.

플레이오프는 시즌과 다르다.

한게임 지더라도 내일 이기면 되겠지 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 한게임을 이기느냐 지느냐라는 것으로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야 못가냐가 결정날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플레이오프의 한게임 한게임은 그 중요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선수들의 집중도와 피로도도 달랐다.

초반에 대량득점으로 확 경기의 흐름을 가져와버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시소경기가 되거나 타이트하게 흘러가게 된다.

그런 경기 일수록, 멘탈이 강한 투수가 필요하다.

마이크 리조 단장의 결정에 지지를 보내고 있던 존슨 감독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도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로써 스트라스버그의 투구이닝은 모두 소모되었고, 남은 시즌에서의 등판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플레이오프까지 이어진다.

물론 스트라스버그 말고도 워싱턴엔 좋은 투수들이 많다. 하지만, 1선발이 버티고 있을 때와, 그가 전력 외로 이탈했을 때의 남아있는 투수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같을 수는 없으리라.

" 그래도 단장도 생각이 조금은 바뀐 듯 하네만. "

" 리그챔피언십 이야기군요.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디비전이 문제란 말이겠지요. "

우선 팬들의 여론이 드셌다. 거기에다가 지역 언론의 압박도 대단했다.

얼마만의 디비전 진출인데, 팀의 1선발을 쏙 빼버린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마이크 리조 단장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얼마 전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디비전은 힘들지만, 리그챔피언십이라면 생각을 달리해보겠다는 말을 리조 단장은 꺼냈었다.

멕클라렌 코치의 전화기가 울린다.

" 여보세요? "

스트라스버그의 경기기록 페이퍼를 그가 들고 일어난 덕분에 이번엔 준혁의 기록지가 바로 존슨 감독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경기에서 스트라스버그도 잘해주었지만, 준혁의 활약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경기 스코어 상으로는 워싱턴의 대승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파고들면 전형적인 말리는 경기였다.

1회와 7회 그의 발로 만든 득점이 없었다면, 경기의 향방은 또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다.

멕클라렌의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옆이다 이야기 소리가 다 들렸고, 데이비 존슨 감독은 아내와의 통화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 감독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늘 아내와 약속을 깜빡할 뻔했네요. "

" 저런, 그러면 안 되지. 어여 가게나. "

" 네. 감독님도 너무 늦게 까지 계시지 마시고. 일찍 들어가십시오. "

존 멕클라렌 코치가 방을 나서고 나자, 사무실은 다시금 조용해진다. 클러비들도 다 퇴근한 시간이라, 라디오라도 틀어놓지 않은 다음에는 달라지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엔 이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데이비 존슨 감독은 커피머신에 남아있던 커피를 자신의 커피 잔에 마저 따르고는 다시금 소파로 와서 앉았다.

내일은 올 시즌 마지막의 휴식일이다. 덕분에 데이비 존슨 감독은 맞상대할 팀의 분석이 아닌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보는 여유를 부려본다.

결국은 그것도 야구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지만...

" 와일드카드는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에게로 돌아가겠지? "

시즌 막바지까지 20여일이 남은 지금, 내셔널리그 각 지구 1위팀은 동부의 워싱턴, 중부의 신시내티, 서부의 자이언츠였다. 그리고, 전체 승률로 따지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가 유력했다.

그중 데이비 존슨 감독이 가장 껄끄럽게 느끼는 상대는 각 지구 우승팀이 아닌 바로 세인트루이스였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좀비군단... 이라 불리는 세인트루이스다.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언제 달려들어 물어뜯을지 모른다.

작년에도 와일드카드로 겨우 디비전에 턱걸이했던 세인트루이스였지만, 월드시리즈의 우승컵은 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차지였다.' 이대로 라면 세인트루이스와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거지. '오늘까지 내셔널리그 승률 전체 1위팀이 워싱턴이었다. 그리고, 와일드카드 2위가 세인트루이스였다.

작년이었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었겠지만, 올해부터는 지구 우승팀을 제외한 팀들중 승률 1-2위팀이 단판승부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게 경기규칙이 변경되었다.

그러하기에 가장승률이 높은 지구1위팀과 와일드카드결정전의 승자가 디비전을 치르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시즌이 20여일이나 남아있기는 했다. 그 안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2위와 3위 간의 경기차는 꽤나 나고 있었고, 2010시즌의 애틀랜타와 같은 대참사(이해 애틀랜타는 6월부터 줄 곳 1위를 달리다가 시즌을 불과 20여일을 남기고 순위가 뒤집혀 결국은 지구우승을 놓쳤고, 와일드카드도 마지막게임에서 지면서 놓치고 말았다. )는 매년 일어나지 않았다.

이변이 없는 한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 중 한 팀과 맞붙게 된다는 말이었다. 데이비 존슨 감독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세인트루이스보다는 애틀랜타가 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준혁과 예리엘, 레이첼은 차를 가지러간 젠과 스트라스버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가을이라고 해가 지고 나자, 한낮의 더위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 식사는 어땠어요? "

" 아네. 괜찮네요. 음식 맛도 좋고. "

레이첼의 물음에 준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음식 맛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영 그와 맞지 않았다.

저녁 날씨가 선선해서 망정이지, 한낮은 아직도 후텁지근한데 아무리 여름자켓이라지만, 외투를 입고 입장은 웬 말인가 말이다. 물론, 미국의 고급레스토랑이 격식을 따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고, 이곳에서의 레스토랑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실수는 하지 않았다만... 식사템포부터 천천히 맞추어야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자업자득이었다.

' 젠장. 물어볼 때, 내가 결정할걸. 괜히 스티브 녀석이 아는 곳으로 가자고 했어. '분명 스트라스버그는 준혁에게 식당 결정의 선택권도 주었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걷어찼다.

' 네가 잘 아는 곳으로 가자.'

면서 말이다.

덕분에 준혁은 식사 내내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이럴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화를 시켜내는 튼튼한 위장이 참으로 고마웠다.

" 고마워요. 준. "

"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나죠. 근사한 저녁도 얻어먹었으니 말이죠. "

어쨌거나, 음식은 맛있었다. 고급레스토랑 답게, 식사중 그들을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어서 정말 같이 온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식사와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요즘 워싱턴에서 가장 핫한 3인방은 준혁과 스트라스버그, 그리고 하퍼였다. 더군다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던 투타의 주역인 두 사람이 그라운드를 밟고 있었던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이것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잠시 잠깐 술렁였던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방해도 그들의 식사 중에는 없었다.

" 아뇨 그이야기가 아니고요. 준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그이가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시합전 생각이 많았었는데, 덕분에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고요. "

" 그런 말을 했어요? 뭘도 그런걸... 또. "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라면... 아마 화장실 같을때였나보다.

" 아니에요. 정말 고마워요. 저도 아침에 그이가 기운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힘내라는 말 밖에는 해주지 못했거든요. "

래이첼은 조금은 분한 마음도 있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사이고, 결혼까지 했다.

서로간의 마음을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아는 것과 조언을 해주는 것은 달랐다. 스포츠 선수의 아내이지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준 혁에게 말한 것처럼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힘내라고 해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준혁은 같은 운동선수에다가 팀 동료답게 남편에게 시기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마음이 통하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동료가 같은 팀에 있다는 것은 그의 남편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는 그녀의 오랜 친구 예리엘의 애인이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사귄 것도 꽤나 되었다 싶다. 당사자가 아니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얼추 2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한 가지가 궁금해지는 레이첼이다.

" 두 사람 결혼은 언제 할거에요? "

" 얘는.. "

별다른 질문은 아니었다. 준혁과 예리엘은 성인이었고, 몇 해째 사귀는 사이였다.

거기에다 여성은 어릴 때부터의 친구였고, 남성은 남편의 동료이자 친구였다. 던져봄직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준혁과 예리엘은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예리엘은 무언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레이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준혁은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다. 가볍게 응수할 수도 있으련만 웬일인지 곤란한 표정이다.

그 모습에 예리엘이... 뭘 그런걸 묻니 당황하게 라며 나서서 얼버무리는데,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 눈동자에 실망감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연예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닌 남자지만, 이번엔 요행히도 준혁은 잠시나마 실망감이 스치고 지나간 예리엘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알아서 일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왠지 안쓰럽게 다가왔다.

식사 때 마신 와인 때문인지, 준혁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평소였다면 열리지 않았을 입이 열렸다.

" 아, 이거 갑작스러워서요. 나중에 단둘이 있을 때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

생각지도 않았던 준혁의 행동이었다. 두 여자의 시선이 그에게로 고정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그러니까... 야구시즌이 끝나면 예리엘과 같이 한국에 들어가려고요. 아버지도 만나 뵙고 인사드리고... 같이 가줄 꺼지? "

준혁이 바라보고 있었다. 예리엘은 그 눈동자가 호수처럼 깊게 느껴졌다.

그 순간 그녀의 입술도 열리고 있었다.

" 그럼요. 갈게요. "

예리엘은 준혁을 사랑한다.

당연히 그와의 허니문을 꿈꾸어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러했기에 준혁이 말한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후일, 얼렁뚱땅 받아들인 프로포즈에 후회를 하곤 하는 그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심장이 뛰는 것은 말을 꺼낸 준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 말을 꺼낸다는 것이, 어느 선 이상을 넘어버린것이었다. 물론, 말 그대로 시즌을 마치고 이야기를 하려고 는 했었다.

반지도 사고, 근사한 자리도 마련해서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려고 말이다. 하지만, 레이첼 덕분에 순서가 뒤바뀌어버렸다. 아무것도 준비해놓지 않은 채 말이다.

옆 동네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아가씨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고향집에 인사 시키러 데려가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겉모습은 20대지만 그의 영혼은 40이었다.

학생이

' 엄마, 사귀는 여자 친구야.'

라며 부모님에게 소개시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레이첼은 이런 두 사람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 웬일이니.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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