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 2012시즌 -- >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빠트리지도 않았다. 마이애미의 바뀐 투수는 자기의 키를 넘어가는 타구를 건드리는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타구의 궤적과 속도가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달려오던 유격수 호세 레이예스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솔직히 처음에는 잡기 힘든 안타라고 생각했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투수정면쪽의 타구는 투수가 잡아주지 못한다면 대부분 안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투수가 건드려주었고, 타구는 방향이 꺾이며 달리던 호세 바로 앞으로 날아왔다. ' 하지만, 시간이 없어! '요행히 방향은 좋았지만, 타구는 투수의 글러브를 맞으며 속도가 줄어들며 공중에 떠있었다.
준혁 리의 발을 생각하면 잡자마자 던져야만 한다는 것을 레이예스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턱--공을 잡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공을 잡아 뺐다.
달리는 탄력 그대로 송구까지 이어졌다.
' 이런!!'
지만, 공이 그의 손을 떠나는 순간, 레이예스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 글러브 맞고 굴절된 공. 달려오던 유격수가 잡아 1루로~. ]이민성 아나운서는 습관처럼 멘트를 날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안타 성 타구였다. 하지만 투수를 완전하게 빠져나가지 못했고, 글러브를 맞은 공은 얄궂게도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유격수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무리 준혁의 발이 빠르더라도 아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마치 야구공은 둥글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 앗! 악송구가 나오고 맙니다. ]이민성 아나운서의 멘트대로 레이예스의 송구는 1루를 지나쳐버렸다.
1루수 카를로스 리가 몸을 날리며 어떻게 해서든 막아놓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 이준혁 선수 3루까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요. ]공이 빠진 틈을 타, 2루를 통과하고 있는 준혁을 보며 송재익 해설위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원아웃에 2루와 3루는 엄청난 차이였다. 2루는 안타가 아니라면 득점이 나올 수 없지만, 3루는 안타가 나오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득점이 가능했다.
전력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웃 된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 [ 타격의 신] 특기가 발동되면 1루에서 만큼은 절대로 아웃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 1루심의 오심이 나오면 죽을 수도 있다.
아무리 [타격의 신]특기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행동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욕심을 내서 오버런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안타로 기록되고 아웃이 되는 것이다.)이었다.
그러했기에 준혁은 1루 베이스를 밟자마자, 곧바로 베이스 코치부터 살폈다. 자신은 당연히 1루에서 살 것이라 확신하고 있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접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준혁은 경험상으로 이런 타이밍에서 에러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더군다나 호수비로 안타가 될 타구가 아웃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된다면 [타격의 신]특기의 보정이 강제적으로 발동하게 되어있었다.
파인플레이를 펼친 수비수에게는 미안하지만, 호수비를 펼치고도 에러를 범하고 마는 '원 히트 원 에러'의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말이었다.' 역시나! '그리고, 이런 준혁의 예감은 적중해서, 1루 베이스 코치 댄 래디슨이 달리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루상에 주자가 없던 상황이라 무리를 해서 공을 막아놓으려던 카를로스 리는 지면과 키스를 하고는 이제야 일어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빠져버린 공은 1루 측 덕아웃 바로 옆 펜스 앞에 말아놓은 방수포에 맞고는 튕겨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 딱 멈춰버렸다.
방수포가 공의 굴러오던 탄력을 죽여 버린 것이다.
우익수가 달려오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2루수도 있었지만, 준혁의 타구는 맨 처음 2루 베이스를 통과하는 궤적이었기에 수비를 위해 베이스 쪽으로 움직였던 도노반 솔라노가 되돌아오기에도 상당한 거리였다.
결론은 1루 백업을 들어오고 있던 포수 롭 블랜틀리가 처리해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 3루도 충분해. '2루를 향해 달리던 준혁은 어렵지 않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3루 베이스 코치도 그의 판단이 옳다고 동조를 해주고 있었다.
준혁은 밴트레그슬라이딩으로 3루로 들어갔다.
자신의 타석에서 점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차선책으로는 최고의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 !!! "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등에 무언가가 와서 부딪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뒤이어 준혁은 3루측 펜스 쪽으로 굴러가는 야구공을 발견했다.
마이애미의 포수 롭 블랜틀 리의 송구가 준혁의 등에 맞아버린것이 분명했다.
순간 준혁의 눈과 3루 주루코치 펫 리스타치의 눈이 마주쳤다.
" 리! 달려! 달리라고!! "
" 옛썰~! "
3루 베이스를 기점으로 그렉 돕스과 준혁이 동시에 뛰쳐나갔다. 한명은 공을 잡기위해서 그리고 또 한명은 홈 플레이트를 밟기 위해서.
[ 이준혁! 홈으로 달립니다! ][ 충분합니다.
이준혁! 홈~~~인!! ]슬라이딩도 필요 없었다. 마이애미의 3루수 그렉 돕스가 공을 집어 송구를 하긴 했지만, 준혁은 그보다 먼저 홈 베이스를 통과하고 있었다.
[ 이준혁 선수! 이번에도 발로 점수를 만들어냅니다! ][ 하하하, 대단하군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민성 아나운서가 질문을 던졌다.
[ 이번에도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인가요?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은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지 않더라도, 인플레이 상황이 종료되기 전에 타구를 날린 타자가 모든 베이스를 돌아 홈까지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이민성 아나운서는 이번 준혁의 경우도 앞선 1회 때처럼 생각한 것이었다. [ 아쉽지만, 에러가 나와서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인정은 힘들듯 싶습니다.
원 히트 투 에러라고 봐야겠지요. ] 송재익 해설위원의 설명처럼 홈런으로 인정은 힘들었다. 수비수의 실책으로 기록되는 플레이가 나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유격수와 포수의 송구실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준혁의 단독 득점은 나올 수가 없었다.
안타로 기록된 1회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 그런가요? 정말 아쉽군요. 그런데, 결과를 놓고 말하는 거지만, 마이애미 입장에서는 얌전히 안타를 내어주느니만 못하게 되어버렸다 싶네요. ][ 왜? 아아... 그러네요. 그랬다면 점수는 내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하 ]곧바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민성 아나운서의 말대로 차라리 송구를 포기했다면 점수를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확하게만 송구되었다면 주자를 잡을 수 있는 타구였기에 호세 레이예스가 송구를 택한 것이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 다시 생각해도 아쉽네요. 그래도 하하하... 이준혁 선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 맞습니다. 새로운 기록이 또 하나 나오나했는데 말이죠. ]미련이 떠나지 않은가보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것은 바다건너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에러가 포함되었기에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이 그렇게나 아쉬울 수 없었다.
하마터면(?) 한국인에 의해 한경기 한 타자에 의한 2개의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새겨질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됐다면... 아마 메이저리그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깨어지기 힘든 기록으로 남았을지도 모르지. '웃지 않으려고 했지만, 덕아웃의 동료들을 보자 웃음이 나오고 만다.
준혁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싶었다.
스트라스버그에게 큰소리를 쳤던 것과는 달리 결코 잘 맞은 타구가 아니었다.
물론 1루에서 아웃된다는 생각은 안했다. 하지만, 그 타구로 홈 베이스까지 밟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도 이럴 진데 수비를 하고 있는 마이애미이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리라.
" 와하하하! 준! 너 사람 맞냐?! "
라이언 짐머맨이 가장 먼저 맞아주었다. 그리고는 다들 웃으며 준혁의 머리를 두드리기 여념 없었다.
" 이야. 이런 재간둥이! "
" 쟤네들 완전히 정신 나가겠는데? "
" 역시 리다.
대단해! "
덕아웃이 왁자지껄해졌다. 워싱턴은 매 이닝 안타와 출루를 하고 있었다.
마이애미 선발투수 놀라스코의 공을 공략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타자들은 놀라스코를 넘지 못해서 1대1 균형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준혁의 발로 만든 득점으로 그 균형이 다시금 워싱턴에게로 넘어온 것이었다. 선수들이 즐거워하고 덕아웃의 기운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어때. 내가 한다고 했지? "
준혁은 가시지 않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스트라스버그를 보며 말했다.
" 그래, 친구. 뭐 먹고 싶냐? "
스트라스버그도 활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준혁 리! 준혁 리!! 준혁 리!!! "
내셔널스 파크의 좌석을 가득 채운 팬들의 함성이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럴 때 해결방법을 데이비 존슨 감독은 모르지 않았다.
" 리. 인사하고 오게나. "
존슨 감독은 직접 준혁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준혁은 데이비 존슨 감독이 동네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을 잘 다독이고, 또 선수들에게 맡기는 것을 좋아하는... 그래서인지 준혁은 자신과도 잘 맞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덕아웃 바깥으로 나갔다.
" 와아아아~~ !! "
준혁이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답답하던 경기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홈런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준혁의 발로 만든 한 점이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보다 더 워싱턴의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준혁은 그런 팬들을 향해 쓰고 있는 모자를 들어 보이며 환호에 답해주었다.7회에 나온 준혁의 득점은 승부의 추를 완전히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1회에 나온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보다 데미지는 더 강했다. 기록되어지지 않은 실책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준혁의 안타와 행운 그리고 발로 만들어진 실점이었다. 하지만, 7회의 실점은 마이애미로써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다가 경기가 막 시작한 1회의 1실점과 후반부인 7회의 1실점은 부담감이 같은 수는 없었다.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은 마이애미를 상대로 워싱턴은 7회에만 대거 6점을 뽑아내어버렸다.
순식간에 8대1로 스코어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런 점수 차이에서 추격을 허용할 만큼 워싱턴의 중간계투는 약하지 않았다.86승 54패.
워싱턴은 여전히 지구2위 애틀란타와 7.5게임차를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