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 2012시즌 -- >
[ 볼 카운트가 투수에게 불리해졌는데요? ]말린스의 선발투수 놀라스코의 4번째 공도 볼이 되면서 3볼 1스트라이크가 되어있었다.
스트라이크로 판정해도 충분할 정도의 제구였지만, 오늘의 주심 토니 란다조 심판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 철저하게 바깥쪽 공이지요. 첫 타자부터 너무 신중하다고나 할까요? 리그 홈런 1위인 이준혁 선수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투수 입장에서는 포볼로 내보는 것도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거든요. 특히 오늘의 경기에서는 말이죠. ][ 송재익 해설위원. 도루 이야기를 하시는 거군요. 벌써 리키 핸더슨의 기록을 넘어섰지요. ]이준혁이 이제껏 기록한 도루 숫자는 정확히 137개였다.
1982년 리키 핸더슨이 세웠던 130개의 기록을 30여년 만에 뛰어넘어선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기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송재익 해설위원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 하하하, 맞습니다.
메이저리그에는 오랫동안 깨어지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기록 3가지가 있습니다. 1894년 빌리 해밀턴이 세운 한 시즌 198득점이 그 하나이고, 4할 만하더라도 꿈의 기록인데 무려 4할4푼(0.440/실제로는 0.4397)을 기록한 휴 더피의 1894년 최고타율 기록입니다.
그럼 나머지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 [ 너무 쉬운데요. 시즌 최다도루 이지 않습니까? ]혁의 기록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보니 당연히 조사를 통해 이민성 아나운서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메이저리그의 단일시즌 최고도루는 138개로 1887년 신시내티의 휴 니콜이 세운 기록이 125년 동안 깨어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준혁에 의해 깨어질 것은 분명했다. 단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이냐의 문제 일뿐. 개수 상으로는 오늘 당장도 가능해보였다.
송재익 해설위원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도 그것 때문이리라. [ 도루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에 비해 고과산정이나 연봉협상등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요. 메이저리그에는 ' 수위타자는 포드를 몰고 홈런 타자는 캐딜락을 몬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안타를 많이 치는 타자보다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가 더 가치를 인정받는 다는 말인데요. 메이저리그에서도 도루는 안타보다도 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20-20클럽 30-30클럽이라고들 하지요. 다른 말로는 호타준족이라고도 하고요. 이런 기록을 달성한 타자들이 인정을 받는 것은 20개 이상의 혹은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파워히터가 발까지 빠르기 때문입니다. 파워가 주고 다리는 부가 되는 거죠. 실제로도 파워와 빠른 발을 겸비한 타자들이 FA이후 거의 대부분 도루 개수가 확 줄어듭니다.
어떤 경우는 팀에서 도루를 말리기까지 합니다. 고액의 연봉과 부상위험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여러 지표들 중 도루에 대한 평가가 낮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잠시잠깐 뜸을 들인 송재익 해설위원의 말이 다시금 이어졌다.
[ 역대 메이저리그의 선수들 중에도 도루로 MVP를 수상한 선수는 단 한명 밖에는 없습니다. 1962년 104개의 도루로 내셔널리그의 MVP를 차지한 모리 윌스가 그 주인공인데요. 그는 .299의 타율도 준수했고, 165게임 전경기출장을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208안타까지 기록을 했지요. 도루의 기록이 MVP수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겠지만, 다른 부수적인 기록들도 충분했다는 말이지요. ]모리 윌스의 안타기록은 역대 256위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단일시즌동안 그보다 많은 안타를 때려낸 타자는 17명에 불과했다. 그가 단순히 도루만 많이 한 선수였다면 역대 단한명의 도루로 이루어낸 MVP수상은 요원한 일 일수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 이런 점에서 이준혁 선수는 앞선 대도들과 전혀 다른 선수입니다. 대기록을 앞두고 있다 보니 그의 빠른 발을 부각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태생적으로 이준혁선수는 거포입니다.
올해로 3년 연속 홈런왕을 바라보고 있는 선수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홈런타자입니다. 이런 장타자 중에서 이준혁 선수만큼 발이 빨랐던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에서도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준혁 선수가 더 대단한 것입니다.
]송재익 해설위원의 설명에서는 자부심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제껏 여러 많은 한국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거쳐 갔고, 지금도 자리를 하고 있지만, 이준혁만큼 임팩트와 전국구의 선수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24살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그의 이름을 세겨나가고 있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써 그리고 야구에 몸담고 있는 이로써 자랑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 골치 아파졌군. '이미 리키 핸더슨의 130도루 기록을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휴 니콜의 기록마저 넘어설 기세였다. 125년만의 대기록이었다.
거기에 같이 이름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놀라스코에게 솔직히 없었다. 하지만, 포수와 주심이 동시에 도와주지 않고 있었다. 토니 란다조 주심은 평소와 달리 바깥쪽에서 공 반개정도 박한 판정을 내리고 있었는데, 포수인 롭 블랜틀리는 계속해서 바깥쪽 코너 워크를 요구하고 있었다.
' 분명 무언가 느낌을 받은 것이 분명한데... '그렇지 않고서는 1회부터 팍팍한 리드를 할 이유는 없다 싶었다. 도루의 신기록을 준혁이 앞두고 있다는 것은 블랜틀리도 알고 있었다.
' 이번에도 바깥쪽. '포수의 사인을 확인한 놀라스코의 미간이 자신도 모르게 좁혀졌다. ' 홈런을 염려하는 건가? '1회 첫타석을 조심하라.
준혁을 상대할 때 코치들의 주의사항중 하나...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1회부터 컨디션이 하늘을 찌르는 상대편의 선발 스트라스버그를 생각했을 때, 블랜틀리는 선두타자 홈런을 염려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운드위의 놀라스코로서는 평소보다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내보내자니 당장 125년만의 타이기록에 이름을 같이 올리게 될 것 같았고, 그렇다고 공이 몰려버리면 홈런의 위험이 있었다. 더군다나 볼카운트마저도 자신에게 불리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말은 지금의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다른 수는 없었다. 포볼도 조심하면서 장타도 경계를 하는 수밖에는. 놀라스코의 손을 떠난 5번째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아왔다.
포수의 요구대로 공은 바깥쪽을 향했다. 하지만, 은연중의 긴장이 놀라스코의 손가락에 영향을 미쳤고, 좌우 폭은 마음먹은 대로 제구가 되었지만, 포수가 요구했던 것보다 높이는 조금 더 높아지고 말았다.' 왔다.
'이것을 놓칠 준혁이 아니었다. 솔직히 파워히팅을 할 수 있는-마음껏 잡아당길 수 있는-코스는 아니었다.
은근히 코스도 까다로웠고 놀라스코는 좌타자를 상대로 포심보다 투심을 더 많이 던지는 투수였다. 물론 준혁의 입장에서 결대로 밀어치기엔 높낮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홈런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환영할만한 코스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준혁의 방망이는 망설임 없이 공을 향해 나왔다.
--부웅--이미, 혼잣말 실수와 뒤 이은 까다로운 코너 워크에 바깥쪽 공에도 생각을 해둔 상태였던 것이었다.
--따악--' 이런, 투심이었나. '준혁이 느끼기에도 잘맞은 타구는 아니었다. 투심의 무브먼트 상 방망이 끝에 맞은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혹시나 했던 [울트라 모드]도 터지지 않았다. 이제는 무조건 안타라는 [타격의 신]특기의 불똥이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튀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타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적당한 높이에 적당한 채공시간의 플라이 볼이 되어 외야로 날아가고 있었다.
코스가 왼쪽 파울라인에 가깝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한 코스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2010시즌 빅리그에 데뷔한 좌익수 브라이언 피터슨의 발이 느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밀어 치는데 능한 준혁의 타격 데이터를 알기에 수비위치를 왼쪽으로 당겨놓은 터라, 조금만 더 옆으로 달려간다면,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잡을 것으로 보이는 평범한 외야플라이 였다. 하지만, 단 한명. 준혁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다다닥!! --이미 안타라는 결과는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노림수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것을 유리하게 가져가기위해 그의 다리는 전력으로 그라운드를 박찰 수밖에 없었다.
[ 이준혁. 쳤습니다. 아~ 타구가 뻗지를 못합니.... ]하지만, 이민성 아나운서의 멘트는 끝을 맺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 앗! 이건 뭔가요?! ]말린스의 좌익수 브라이언 피터슨은 타구의 궤적을 확인하며 달렸다.
'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준혁 리는 워싱턴의 타선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였다. 아니 메이저리그의 모든 타자를 통틀어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였다.
그런 타자를 1회 초 첫타석에서부터 외야플라이로 잡아낸다는 것은 그만큼 마운드위의 투수의 수고로움을 덜어줄수 있는 일이었다. 까다로운 타구도 아니었다.
낙구지점까지 달려가기에 충분한 채공시간마저 있는 타구였기에 호수비도 필요 없었다. 안정적으로만 잡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피터슨은 서서히 낙하하고 있는 타구에 맞추어 글러브의 위치를 잡아 갔다.
" !!! "
그런데 그 순간,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완만하게 힘을 잃어 자유낙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공이 글러브를 가져다 대는 순간 갑자기 -마치 폭포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듯-수직낙하를 해버린 것이었다.
" 앗!! "
브라이언 피터슨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그의 팔이 앞으로 쭉 뻗어진 것은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모자랐던 것이 아니었다.
예상경로에서 조금 코스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러하기에 몸에 베인 연습의 결과물이 그의 몸을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런 변화는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는 쉬이 잡을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무조건 안타가 될 수밖에 없는 타구였기에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오히려 이런 피터슨의 행동은 득이 아닌 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전력질주는 아니었지만, 달려오던 탄력이 있었고, 공을 잡으려 갑작스레 팔까지 뻗다보니 몸의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 어이쿠! "
피터슨은 넘어지며 잔디 위를 두어 바퀴 구르고 말았다.
준비하고 있던 것이 아닌, 갑작스레 넘어지다 보니 낙법은 생각지도 못했고, 타구를 찾는데도 한참의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잔디위에 떨어지며 안타가 된 타구는 계속해서 뒤로 굴러가 버렸다. [ 이준혁! 2루를 통과! ][ 이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도 가능하겠는데요?! ]송재익 해설위원도 덩달아 목소리가 흥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좌익수는 공을 잡지 못한 것도 모자라, 그라운드 위를 여러 차례 뒹굴며 타구의 방향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그리고, 백업을 들어온 중견수 저스틴 루지아노가 있었지만, 그가 공을 집어 들기까지는 상당한 거리를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준혁은 이미 3루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 홈까지 충분합니다! 3루 베이스코치도 돌리고 있어요! ]다시금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준혁의 눈에 풍차를 돌리고 있는 3루 베이스코치 펫 리스타치가 들어왔다.
그대로 홈까지 달리라는 신호였다.
코치도 살수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코치의 판단 이전에 이미 준혁은 플라이 볼이 안타가 되는 순간,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확신하고 있었다.
[타격의 신] 특기가 발동된 이상 평범한 외야플라이도 100% 안타로 둔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퍼즐은 안타가 된 타구가 얼마나 수비수에서 멀어질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는데, 좌익수 브라이언 피터슨이 넘어지며 공이 뒤로 빠져나가는 순간 준혁의 승부수는 맞아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 비록 홈런은 나오지 않았지만! '펜스를 넘기던, 자신의 발로 만들던! 결승타점이 될 수도 있는 선제타점이란 사실은 똑같기에 심장이 터져라 준혁은 달리고 달렸다.
--타다다닥!!
--홈플레이트가 가까워진다.' 아직 홈플레이트를 막아서지 않았어. '아직 외야로부터의 송구가 다다르기엔 시간적으로 여유가 충분해보였다.
말린스의 포수 롭 블랜틀리의 위치가 그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고,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포수의 터치보다 그의 손이 먼저 홈플레이트를 찍기 전에는 장담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블랜틀리가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하퍼가 팔을 밖으로 내저으며 방향을 가리켜주고 있었다.
' 벌써 중계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다 싶었다. 물론 직접 눈으로 송구를 본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포수의 움직임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길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홈플레이트로 가는 길은 충분히 열려있었다.
준혁은 그대로 몸을 던졌다. --촤라라락!!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옆으로 쭉 뻗은 왼쪽 팔 끝 손바닥에서 홈플레이트의 감촉이 전해져왔다.
다른 감촉은 전혀 없었다. 이것으로 분명해졌다. 준혁은 확신했다.
그리고, 재차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토니 란다조 심판의 시그널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 세이프! "
" 아자!! "
준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와아아아~~!! "
그리고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워싱턴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이준혁 선수! 1회 선두타자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입니다! ]이민성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월요일의 오전이 주는 나른함에 빠져있던 대한민국도 들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