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96화 (196/309)

< -- 9. 2012시즌 -- >

리베라가 던진 초구는 제구가 된 몸 쪽 공이었다.

거기에다 준혁이 컷패스트볼을 상정하고 스윙을 가져가다보니, 파울이 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리베라는 집요하리만치 몸 쪽으로 승부를 걸어왔다. --슈우우욱!

--이번엔 조금 빠진 공이다.

타이밍이라도 재어 볼 요량으로 살짝 스윙을 시늉만 해본다. ' 타이밍은 맞는데, 너무 깊어. '몸에 맞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 쪽으로 꺾어 들어오는 오른손투수의 커터의 성격상 확실한 볼이었고, 주심의 시그널도 마찬가지였다.

' 피하려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잠시 타석에서 벗어난 준혁의 느낌은 그랬다. 도망가는 투구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인하고자하는 것도 아니었다.

커터만 주구장창 던지는 리베라의 성격으로 봤을 때 분명 승부를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안쪽은 곤란했다. 좌타자 안쪽으로 들어오는 커터는 잘못 대응했다가는 그대로 방망이가 부러지고 만다.

' 지금보다 공하나 정도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그렇다면! 타구를 그라운드 안으로 보낼 자신이 준혁에게 있었다. 커트를 해낸 타구들도 그랬고, 조금 전의 볼이 된 공도 그랬다.

리베라의 공과 자신의 스윙의 타이밍은 분명 맞고 있었다. 단지 워낙 안쪽 제구가 잘된 공이었고 더군다나 전부 컷패스트볼 이다보니 파울밖에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포심패스트볼이었다면 안쪽공이라고 하더라도 가상스트라이크존 덕분에 어디로 오는지를 알기에 오픈스탠스로 밀어 쳐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리베라는 포심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몰린 공이라면 모를까 오른손 투수의 꽉 찬 안쪽 컷패스트볼을 밀어치려다가는 방망이 손잡이에 맞아 방망이가 부러질 위험성이 다분했다.

볼 카운트는 2볼 2스트라이크. 커트해낸 공까지 합치면 총 7개의 공을 던지게 하고 있었다. ' 지금은 커트해내는게 최선이야. '인간은 기계가 아니었다.

아무리 제구가 좋은 투수라도 실투는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자신과의 대결에서 평소보다 더 좋은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는 리베라였지만, 그가 핀 포인트의 제구력을 가진 투수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 끈질기군. 역시 내셔널리그 2년 연속 MVP답다라고나 할까? '리베라는 포수가 던져준 공을 받으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358의 데이빗 라이트에 이어 2위인 타율도 타율이지만, 올해도 압도적인 포볼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준혁이었다.

덕분에 그의 출루율과 OPS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1번 타자는 중심타선에 비해서 출루율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중심타선은 상황에 따라서 고의사구 등으로 거르기도 하지만,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설 기회가 많은 1번은 그렇지 않았다. 아메리칸 리그는 좀 다르겠지만, 내셔널리그는 실제로도 투수가 9번 타석에 들어서다보니 이닝의 선두타자로 1번 타자가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선두타자를 출루시키면 그만큼 실점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아는 투수가 이닝의 선두타자를 고의로 거르고 시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워싱턴의 1번 타자는 그 기본원리를 완전히 뒤집고 있었다.

고의사구마저도 내셔널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으니 할 말은 다한 것이다. ' 하지만, 이참에서 승부는 해야겠지. '벌써 준혁에게만 7개의 공을 던지고 있었다.

좌타자에게 가장 까다롭다는 오른손 투수의 몸 쪽 커터로 볼카운트에서 우위를 점하고는 있다지만, 연이은 몸쪽공 승부는 자칫 위험할 수 있었다. 요즘은 전통적인 리드오프형 1번 타자보다 일발장타를 날릴 수 있는 타자를 더 선호하는 팀들도 많아졌다고 하지만, 준혁은 1번 타자로는 믿을 수 없는 파워를 가진 선수였다.

실투라도 나온다면 그대로 넘어간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9회 초 3점이나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온 덕분에 리베라에게 부담은 없었다. 한방 맞으면 방어율은 좀 올라가겠지만, 뭐 어떤가. 그렇다고 ' 드시구려~. ' 하는 어이없는 볼을 던질 생각은 없었다.

나이 마흔을 넘겼지만, 그의 승부욕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준혁 리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겨우 절반을 경험했을 뿐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애송이가 아니다.

이미 그 어떤 타자들도 하지 못한 기록들을 하나하나 세워나가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확실한 타자였다.' 같은 리그였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쉬웠다.

그와 준혁 리가 다른 리그라는 것이. 길어야 한해 또는 두해였다. 리베라는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은퇴한다던 말을 조만간 실천해야 할 때가 다 되었다 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번이 마지막일수도 있었다.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워싱턴과 양키스의 인터리그 맞대결은 2006년.2009년, 2012년에 있었다.)' 늘그막에 자랑거리 하나는 만들어놔야겠지? '은퇴를 하고 언젠가는 자신도 할아버지가 될 터였다. 그때 손자손녀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준혁과의 대결을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때마침 포수인 크리스 스튜워트의 사인도 만족스러웠다. 일이 잘될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리베라는 곧바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힘차게 공을 던졌다.

리베라가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순간 준혁은 처음으로 바깥쪽 승부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다.

더군다나 까다로웠던 몸 쪽 공들과 달리 이번 바깥쪽 공은 외곽스트라이크존에서 공하나 정도 안쪽으로 들어온 것으로 표시가 되고 있었다.

' 됐어! '준혁은 리베라의 생각은 알 것 같았다. 계속된 안쪽 승부로 신경을 몰아놓고는 바깥쪽으로 승부를 걸 참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히려 대응하기엔 바깥쪽공이 더 좋았다.

더군다나 가상스트라이크 존의 존재덕분에 이미 리베라의 의도를 간파했다고 생각한 준혁이었다.

--부우웅--당연히 호쾌한 스윙이 이어졌다.

' !!! '그런데, 안쪽으로 꺾여야 할 공이 바깥쪽으로 꺾이면서 살짝 가라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차! '준혁은 당했다 싶었다.

리베라가 던진 공은 컷패스트볼이 아닌 투심이었던 것이었다. 리베라가 투심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과의 승부에서 앞선 7개의 공을 던질 동안 리베라는 우직스럽게 커터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좌타자를 상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시합전 회의에서 본 자료에서도 우타자를 상대로는 20%에 가까운 투심을 던지고 있었지만, 좌타자를 상대로 한 리베라의 투심사용비율은 겨우 5%였다. 95%의 공을 커터로 던진다는 말은 커터만 던진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 제발, 커트만이라도! '리베라가 던진 투심의 떨어지는 낙폭은 크지는 않았다. 컷패스트볼에 맞춘 스윙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건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건드려야만 한다. --틱. --' 됐어. '방망이 끝에서 느낌이 왔다.

분명 공을 건드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 준혁은 곧바로 고개를 젖히며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 아아! "

건드리는데 는 성공했지만, 포수의 미트 속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린 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지없는 파울팁.... 삼진이었다.

" 스트라이크 아웃! "

양키스타디움을 찾은 양키스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리베라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었다.

준혁은 그 모습을 한참을 쳐다봤다. ' 역시 리베라. '수싸움에서 밀린 것이었다.

이것은 워낙 좋았던 리베라의 컷패스트볼이 준혁의 머릿속에서 투심을 완전히 지워버린 때문이었다. 완패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준혁은 삼진을 먹고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워낙 대투수였고, 컨디션이 좋은 리베라의 공이였다. 거기다 허를 찔린... 충분히 삼진을 먹을 만한 공이었다 싶었다.

' 다음번에는 당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또 삼진을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준혁은 리베라의 모습이 사라진 양키스의 덕아웃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다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음날과 그 다음날 의 두 경기 모두 큰 점수 차이로 워싱턴과 양키스가 사이좋게 한게임씩을 나누어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3연전은 2승1패로 워싱턴의 우위로 마무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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