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88화 (188/309)

< -- 9. 2012시즌 -- >

+2012 시즌미국이라고 하더라도 이상기온현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요 며칠사이 워싱턴은 5월 중순 답지 않은 무더운 날씨를 보여주었다. 화씨90도(섭씨 32.2도)까지 올라가는 통에 사람들의 복장도 자연 얇아지고 가벼워졌다.

그러다보니, 자연 저녁의 기온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아서 필라델피아와 워싱턴의 시즌 첫 3연전의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저녁 7시경의 내셔널스 파크의 저녁기온도 화씨82도(섭씨27.7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완전한 여름이 찾아온 것이 아니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가고 늦은 밤이 되면 날씨가 선선해질 것은 분명했지만, 당장 덥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그러다보니 경기가 채 시작되기 전임에도 시원한 음료수들을 찾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기장 내의 매점과 맥주 통을 울러 매고 다니는 아르바이트판매직원이 분주할 즈음...

" 플레이 볼~~! "

시합의 주심을 맡은 토니 란다조 심판의 시그널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선발은 지오 곤잘레스와 콜 해멀스. 공히 양 팀의 에이스스터프를 가지고 있는 좌완 투수들의 대결이다 보니 ESPN의 중계가 잡혀 있었는데(일요일의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 중계 말고도 월요일과 수요일의 야간 경기 중계권을 가지고 있다. ), 캐스터 존 레이와 짐 고든과 제이슨 쇼월츠의 해설진의 이야기도 타격 전보다는 얼마나 두 투수들이 양 팀의 타자들을 억제할 수 있느냐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관심에 걸맞은 스타트를 워싱턴의 지오 곤잘레스는 1회부터 보여주었다. 물론, 란다조 주심이 MLB의 심판들이 대부분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처럼 좌타자 바깥쪽 스트라이크 판정에 후하긴 했지만, 오늘시합서 그의 투심이 잘 긁히는 것 또한 분명했다. 그렇게 1회 초 필라델피아의 공격을 막아낸 워싱턴이 1회 말 공격이 돌아왔다.

[ 필리스의 선발투수는 콜 해멀스입니다. 올 시즌 현재까지 5승 1패, 47.1이닝을 던졌고, 승률 0.833에 13개의 자책점, 피안타 40, 피홈런 3, 탈삼진 49를 잡을 동안 포볼은 9개를 허용. 방어율 2.28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5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7이닝을 책임져주면서 실점은 1.4점을 허용,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막과 함께, 캐스터 존 레이의 짤막한 소개가 이어졌고, 화면은 곧바로 경기장면으로 이동되었다.

초구는 바깥쪽 체인지업. 간단하게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 초구가 체인지업이군요. ]멘트의 시작은 존 레이 캐스터였다. 그리고 해설진의 말이 뒤를 이었다.

[ 보통 좌투수가 좌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잘 던지지 않습니다만, 해멀스는 던집니다.

패스트볼과 교대로 던지는데, 방금처럼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가기도 하지요. ][ 그래도 준혁 리를 상대로 초구 체인지업은 조금 의외군요. ][ 그렇지요. 방금 말씀드렸지만, 보통 좌완투수는 좌타자를 상대할 때 체인지업을 던지지 않습니다. 홈플레이트로 몰리면 홈런을 허용하기 쉽거든요. 더군다나 리는 첫타석에서의 장타도 많은 타자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체인지업의 무브먼트가 좋은 해멀스 답게 던져 넣는군요. ]투수가 공을 던지는 데 있어서 투구의 기본이 되는 것은 패스트볼이었다.

해멀스도 다르지 않아서 일단은 패스트볼로 볼카운트를 잡아놓고 시작한다. 그가 던질 수 있는 다른 구질들... 그중에서 체인지업을 던지기 위한 사전포석을 깔아놓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초구에 노림수가 좋다고 알려진 준혁이 상대이다 보니 조금은 다른 역 패턴으로 스타트를 시작한 것이었다.

' 어라? 체인지업? '의외였다. 해멀스의 주무기는 평균 90~92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메이저리그 탑3안에 들어가는 체인지업이었다.

여기에 같은 팀 동료인 할 교수와 리 선생에게 사사받은 88마일짜리 커터를 추가하고, 간간히 타자의 타이밍을 뺏을 의도로 커브를 섞어 던졌다. 체인지업을 위닝샷으로 사용하는 좌완투수의 경우, 통계적으로도 좌타자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면이 있다는 것은 밝혀진 사실이었고, 해멀스도 그것을 느꼈기에 팀 내 커터의 달인 2인에게서 전수를 받아서 좌타자 바깥코스 공략용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초구 체인지업은 타석의 준혁에게도 상당히 의외였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 강력한 체인지업이란 주무기가 의외로 피홈런을 많이 맞는 편임을 생각하면 말이다. 물론, 제구력이 정교하고 타자와의 승부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그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던질 만 했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의외이긴 하지만, 위협적이진 않은 것도 사실이고... '해멀스의 체인지업은 낙차가 컸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방망이와 함께 머리를 절레절레 젓게 되는 TOP3의 구질이라고 하지만,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이 보이는 준혁에게는 오히려 노려 치기 좋은 공이었다.

낙차가 크면 클수록, 커브처럼 구질을 빨리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타자들이 낙차큰 변화구에, 특히 체인지업에 방망이를 헛돌리는 것은 투수의 손을 떠나 홈플레이트로 날아오는 총 0.4초가량의 시간 중에서 초반 0.25초 안에 구질을 판단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투수의 투구 폼과 공의 움직임이 패스트볼과 차이가 없다면 타자들은 당연히 패스트볼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 스윙과 타이밍을 잡게 된다. 그런데,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와서 공이 가라앉아버린다면? 타자들은 방망이를 헛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달랐다. 가상스트라이크존의 존재 때문에 그를 상대하는 투수들이 던진 낙차가 큰 공은 재빨리 파악당하고 만다.

준혁이 달리 메이저리그의 타자들 중에서 가장 커브를 잘 치는 선수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은 커브가 아니더라도 낙차가 큰 다른 구종들에 대부분 적용되는 것이었다. 체인지업도 그랬다.

준혁의 방망이를 헛돌게 하기 위해서는 낙폭보다는 오프 스피드 였다. 마치 전성기 때의 요한 산타나처럼 말이다.

그의 체인지업의 가장 큰 장점은 낙차보다 타자 앞에서 마치 정지한 듯 한 마술 같은 오프 스피드 였다.

산타나의 체인지업은 속구에 비해 낙폭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는 속구와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동일한 궤적을 보여주다 보니, 이것이 오프 스피드의 위력과 합쳐져서 그만의 위력적인 체인지업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가상 스트라이크존이 보이는 준혁도 마찬가지다. 스트라이크존의 통과위치가 보인다지만, 어차피 투수가 투구를 한순간부터 0.25초 사이에 구질을 판단해야하는것은 그라도 다르지 않았다.

[특수능력-예측]이 발동되지 않는 다음에는 공이 날아오는 궤적자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낙폭이 작은 구질에다가 오프 스피드까지 더해진다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역설적으로 낙폭이 큰 구질은 빠른 판단이 가능하다는 말이 되는 것이었다.

3년차에 접어든 준혁의 이런 타격 성향을 모를 리 없는 메이저리그의 구단과 정보분석팀이었다. 준혁이 타석에 들어서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를 상대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는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에 대한 명쾌한 정의는 아직까지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선수생활을 마칠때까지 끝나지 않을 지도 몰랐다. 가상스트라이크존과 여러 특기들... 바로 게임의 옵션이 준혁에게 적용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없다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들이 준혁만을 위한 맞춤 구질을 몸에 익힌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생각해보라.

100명의 타자중 99명에게 먹히는 구질을 단 한 타자를 위해 다르게 익힌다? 구질이란 것 자체가 새롭게 익힌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한데다가 효율적인 면에서도 극악인 그런 짓을? 아마 열이면 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질로 최대한 승부를 보겠다고 할 것이다. 콜 해멀스도 그런 마음가짐이었고, 그런 승부욕이 초구 체인지업으로 나타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해멀스가 준혁이 이번타석에서 조용히 죽어주려는 것을 알았다면 또 어떻게 나왔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하퍼의 사구는 이번 1회에 나와. '고의로 아웃 당하겠다니,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해멀스의 하퍼에 대한 빈볼을 이끌어내고, 그 다음 상황까지 이어지게 하려면 그가 살아나가서는 곤란했다.

' 스트라이크존이나 살펴봐야겠다. ' 하지만, 너무 대놓고 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곤란하다.

해멀스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뒷타자 하퍼에 관한 대응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부웅~--그렇게 준혁은 해멀스의 5구째 체인지업에 헛스윙 삼진을 당해주었다.

뻔히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허공에다가 방망이를 휘두르려니 온몸이 어색하다며 난리를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라구. '괜히 패스트볼이나 커터에 방망이를 휘둘렀다가 안타라도 나와 버리면 곤란하니 말이다.

속마음이 야 어쨌든 겉으로면 평상시의 플레이처럼 보여야 했으니까.

" 왠일야? "

" 어디 몸 안 좋은 거냐? "

" 눈에 날파리라도 들어간 거 아냐? "

그렇게 나름 연말연기대상에 버금가는 연기를 펼쳤다고 자평을 하며 덕아웃으로 들어가니, 다들 한마디를 던진다. 생각과 달리 티가 났던 것일까? 하지만, 이왕 벌린 일 어쩔 수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해서 이번 회에 하퍼가 빈볼을 맞아주는 것이었다. ' 제발 맞아라.

'세상 살다보니, 어처구니없는 일로 빌어도 본다 싶다.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준혁이었지만, 이런 상황이 온다면 누구라도 절대적인 존재를 향해 빌지 않을까? 뭐... 예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퍽!

--

" 앗! "

" 아아.... "

관중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 본사람 없겠지? '아차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주위를 살피고 싶지만, ESPN으로 전국으로 방송이 나가다보니 지금도 덕아웃의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 인상! 인상!! '재빨리 콜 해멀스를 째려본다. 예상대로 초구에 빈볼을 날려줬다는 사실에

' 잘 했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속마음일 뿐이다.

상대편 투수가 팀 동료를 초구에 공으로 맞췄는데, 잘했다고 좋아라한다면 컵스의 잠브라노보다 더 해악을 끼치는 팀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미치는 선수로 찬란하게 등극을 하고 말 것이다. 그것도 전국구로 말이다.

' 첫 단추는 꿰어졌고.... 그런데 이번엔 무조건 안타가 나와 야하잖아?! '하나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니, 산 넘어 산이다. ' 오늘은 짐머맨도 없는데. '한껏 피치를 끌어올리고 있던 라이언 짐머맨이 꼭 필요한 지금 없었다. 하지만, 원정에서 부상을 당한 그를 데려와 타석에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워스! 안타! 안타 꼭!! 알겠죠!! "

준혁은 대기타석에서 막 움직이려는 제이슨 워스를 보며 소리쳤다.

" 뭐야? 너? 새삼스럽게? "

워스는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여러 해 같은 팀에서 있다 보니, 해멀스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 분명 손에서 공이 빠지는... 그런 따위의 공은 아니라는 말이지. '경기 시작 전 준혁이 하퍼에게 조심하라던 당부가 떠올랐다. 그리고, 하퍼의 등을 맞춘 공이 해멀스의 고의적인 빈볼이 분명하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하지만, 공을 맞는 당사자가 별 행동 없이 걸어 나간 와중에 다른 팀원들이 행동을 보이는 것도 우스웠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여기에서 준혁은 최소한 안타라도 때려내어 보이라는 그런 '파이팅'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그런 준혁의 마음가짐을 동료들도 알았는지 이구동성으로 자신에게 안타를 요구한다.' 기분 좋은 프레스 군. '요 근래 슬럼프가 찾아왔다 싶었던 워스였다.

살짝 몸살이 왔던 이후로 일주일 넘는 기간 동안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타석에서 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안타를 만들어내야겠다는 마음이 가슴에 차올랐다.

물론, 그만의... 그리고 팀원들의 착각이었다.

--딱!

--하지만, 준혁의 행동을 착각했던 안했던... 워스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1-2루간을 통과 우익수 앞까지 굴러간 타구였기에 하퍼는 무난하게 준혁이 원했던 3루까지 내달았다.

" 좋았어!! "

준혁은 소리쳤다.

계획대로 되었다.

아니 본래의... 회귀전의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자 1,3루. 하퍼가 3루에 나가있었고, 워스는 1루에 나가있었다.

워스는 은근히 발이 빠른 선수였다.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는 20갤 기록한 시즌도 두시즌이나 있었고, 워싱턴으로 팀을 옮긴 작년에도 19개의 도루를 기록한 준족이었다.

해멀스가 좌완투수라고는 하지만, 견제구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자, 어서 뛰라고! 하퍼! 뛰는 거야! '준혁은 해멀스를 보는 것과 동시에 하퍼에게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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