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85화 (185/309)

< -- 9. 2012시즌 -- >

"야, 저 녀석... "

안타를 치고 1루를 밟은 짐머맨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어라 말해야할지 정확한 단어조차 찾기 힘들었다. 이것은 댄 래디슨 1루코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이 지금 자신의 표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 그러게 말이야.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 녀석이야. 정말. "

덕아웃에서 경쟁적으로 뛰쳐나온 워싱턴의 동료들이 준혁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라이언 짐머맨은 코끝으로 슬쩍 그쪽을 가리킨다.

그러자, 댄 래디슨이 '피식'하고는 웃으며 등을 떠밀었다.

짐머맨은 다시 한 번 즐겁다는 듯이 웃고는 뛰어가기 시작했다. 준혁의 환영인사엔 자신도 빠질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장 먼저 준혁과 격하게 포옹을 한 애덤 라로시 이후로 득달같이 달려온 동료들이 준혁을 둘러싸고는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쁨에 손을 뻣어 준혁의 머리를 한차례 씩 때리며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 와아아아~~~!!! "

" 준~~~!! "

" 와우!! "

관중들도 방방 뛰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준혁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 여념이 없었다. 경기장은 기쁨의 도가니였다.

[ 와우! 그 틈을 파고드는군요! ]이민성 아나운서의 목소리에서부터 격양된 감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동을 시청자들도 함께 되새겨보라는 듯이 리플레이 화면이 곧바로 전파를 탔다.

[ 라이언 짐머맨이 타석에 서있고요. 이준혁 선수가 뜁니다. ]송재익 해설위원이 그 리플레이 화면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 타격이 이루어졌고, 타구는 2루수 옆을 빠져나갑니다. 이때까지는 늘 있었던 평범한 흐름이었어요. ][ 그렇군요. ]이민성 아나운서의 추임새처럼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일련의 흐름이었다.

준혁의 도루로 인해 아웃이 될 수도 있었던 타구가 안타가 되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일이었다. 수비의 위치, 움직임에 의해 안타가 아웃이 될 수도 있고 아웃될 타구가 안타로 바뀔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적잖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 우익수의 수비도 공을 잡을 때 까지는 문제될 것은 없었는데요. 잠시 주춤 거렸죠? ]송재익 해설위원의 지적대로 자이언츠의 우익수가 주춤거리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3루를 돌고 있던 준혁이 재차 스타트를 끊고 있었다.

[ 여기서 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준혁선수의 스타트가 빨라서 우익수가 공을 잡는 동 타이밍에 3루 베이스를 이미 밟고 있었거든요. ]발이 빠르다보니 평소에도 1-2루간의 타구라면 3루까지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는 준혁이었다. 그런데 스타트가 빠르다보니 이번에는 3루까지 들어가는데 슬라이딩조차도 필요 없었던 것이었다.

도루의 영향이었다.

[ 평소 같았으면 조금 루즈하게 플레이를 했더라도 문제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보세요. ]준혁의 주루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리플레이 화면이 나왔다.

거기에서 준혁의 움직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빠른 스타트 덕분에 3루에 서서 들어왔어요. 더군다나 뛰던 탄력도 별로 죽지 않고 3루를 돌고 있지요?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다.

보통은 1루에서 3루까지 내달리게 되면 슬라이딩은 혹시 모를 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이었다. 당연히 주자도 추진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빠른 스타트 덕분에 준혁은 1루에서 3루까지 내달리고도 그 추진력을 거의 잃지 않고 있었다. [ 3루를 통과하고도 외야를 쳐다보잖아요. 그리고는 그대로 전력으로 달려버리잖아요. 순간적으로 주자3루에서 외야플라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이준혁 선수가 발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다시금 찬탄사가 나왔다.

TV를 시청하고 있던 이들은 송재익 해설위원의 설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준혁이 플레이는 말이 필요 없는 그런 것이었다.

오늘의 사이드라인 리포터는 줄리 알렉산드리아였다. 그녀는 오늘이 MASN(워싱턴과 볼티모어가 공동으로 소유한 지역방송사)에서 일하는 첫 날이었다.

" 줄리, 오늘 그냥 안 넘어갑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후후. "

워싱턴의 클럽하우스 리더인 짐머맨이 그녀에게 다가와서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 네? 아... 아아 네. "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리포터 생활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곧바로 라이언 짐머맨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싫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첫출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볼 선수들이었다.

친해지는 구실로 그것도 나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인터뷰를 할 오늘은 수훈선수는 준혁 리였다.

3일 연속 수훈선수라니... 물론 직접 인터뷰는 오늘이 처음이지만, 대단하다 싶었다. 물론, 짐머맨의 안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수비의 틈을 노린 그의 빠른 판단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결승점수였으니 준혁 리에게 수훈선수가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 들었다.

인터뷰는 1루 측 워싱턴의 덕아웃 앞 그라운드 위에서 진행되었다.

준혁과 마이크를 든 리포터인 줄리 알렉산드리아가 마주보며 서있었고, 그 옆에서는 MASN의 카메라맨이 그 장면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는 또 다른 사진기자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 3일 연속 끝내기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기분 어떠세요? "

" 얼떨떨합니다.

솔직히 제가 한 것이 맞나 싶기도 하구요. "

" 거기서 홈으로 대시 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을 못했었는데요. 어떻게... 처음부터 홈까지 파고들겠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

" 아뇨. 처음엔 2루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스코어링포지션에만 들어가 준다면 우리 팀의 타자들이 절 불러들여줄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도루를 시도했는데, 때마침 짐머맨의 안타가 나왔지요. 덕분에 3루에도 아주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우익수가 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

'아!'

살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그다음은 보셨던 그대로였고요. "

" 결국은 틈은 놓치지 않았다는 말이네요. "

"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

두 사람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준혁은 자신의 발로 승리를 거두었기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줄리는 첫출근에 그녀의 직장의 지역연고 팀이 짜릿한 승리를 거둔 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인터뷰를 바라보는 팬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줄리는 조금 전의 짐머맨의 경고를 잊어가고 있었다.

" 그럼 다음 질문인데요... "

줄 리가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준비를 했고, 그에 맞추어 카메라의 초점도 줄리에게로 움직였다. 그 순간, 카메라에 '슉'하고 두 사람의 인형이 갑자기 나타났다.

메이저리그는 한국의 프로야구처럼 협찬사의 보드 판이 없어서 그들이 등지고 있는 덕아웃이 그대로 보이는데, 그 덕분에 무언가를 맞잡아 들고는 달려드는 사람의 모습이 곧바로 잡힌 것이었다.

그들은 팀 내에서 준혁과 가장 친한 스트라스버그와 에스피노사였다.

--촤아악 ~~! --순식간이었다. 그들이 들고 달려든 이온음료수가 가득 든 커다란 통에서 빨간색 음료수가 준혁과 줄리의 머리위로 쏟아진 것은.

" 아아앗! "

" 어어~어... "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얼음까지 든 차가운 음료였다. 줄리는 미리 언질을 받고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 아하하하하~~. "

" 와아아아아~~~"

하지만, 워싱턴의 덕아웃에서는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관중석에서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준혁의 인터뷰를 듣고 있던 팬들의 함성이 더해졌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었다.

상대하기 녹록치 않은 자이언츠와의 3연전을 모두 이긴 날이었고, 오늘도 역시나 끝내기로 승리를 가져온 날이었다. 그 중심에 팬들이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기를 바라는 준혁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지역방송사인 MASN의 사이드 리포터로 첫 모습을 보인 줄리에 대한 환영인사도 함께 라는 것을 워싱턴의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이온음료를 뒤집어쓴 준혁과 줄리, 그것을 뒤집어씌운 워싱턴의 동료들, 그리고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본 팬들과 현장은 아니지만 TV로 시청한 모든 이들까지 하나가 되어 즐거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자리를 피했던 두 사람은 다시 처음 인터뷰를 하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 하하하, 정신이 번쩍 드는데요. 괜찮으세요? "

배트 보이가 그들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준혁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얼굴을 닦으며 줄리에게 물었다. 그야 워낙 많이 맞아본 물벼락이었지만, 줄리는 처음일 테니.

" 괜찮아요. 아까 이야기 해주더라고요. 호호 "

줄리도 역시나 배트보이가 건네준 수건을 들고는 연신 웃으며 대답했다.

"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정말 차가운데요. 호호호. "

물론 준혁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물세례의 베테랑답게 가벼운 조크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덕아웃 쪽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 야, 스티브! 줄꺼면 내가 좋아하는 걸로 달라니까. 빨간 거 말고 파란 거! 다음엔 잊지 마! "

" 오우! 잠깐만요. 그럼 저 다음에도 또 맞아야하는거에요? "

" 네? 다음에도 같이 맞으실라구요? "

" 네? 아아. 말하고 나니 그러네요. "

준혁의 반문에 줄리는 말실수 했다는 표정이었다. 같이 일하게 된 것을 환영하는 워싱턴 선수들의 환영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음료수에 옷이 젖었지만 기분만은 좋았던 그녀였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오버를 하고 만 것이었는데, 말하고 보니 다음에도 또 맞을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준혁도 그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본래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한층 업된 분위기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 스티브! 들었지? 다음에도 같이 파란 걸로. 오케이?! "

준혁은 재빨리 확인사살까지 진행을 시켜버렸다. 인터뷰중이다보니 준혁의 이 말은 내셔널스 파크를 찾은 모든 이들에게 들렸다.

다시금 경기장 안에서는 여러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우연찮게 이온음료 샤워의 예고가 방송을 타고 말았고, 워싱턴의 지역방송인 MASN의 리포터인 줄리 알렉산드리아도 함께하는 걸로 확정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기분은... 글쎄... 나쁘진 않은 줄리였다. 그렇게 인터뷰는 계속 되었고, 경기도 끝이 났다.

하지만, 그 감동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내셔널스 파크를 찾은 홈팬들과 TV로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 해설자들과 바다건너 밤잠을 설치며 본방을 사수한 한국의 팬들까지... 그 여운은 쉽사리 사그라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3일간의 준혁의 활약은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히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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