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 2012시즌 -- >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오고 말았다. 보치감독이 시간을 끌어주었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런 등판에서 교체된 투수가 어깨를 달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덕분에 몸에 맞는 볼로 1루에 나가있던 준혁은 2루도 걸어서 밟게 되었다.2아웃이었지만, 스코어링포지션까지 주자가 진루하게된 것이었다.
[ 결국은 라이언 짐머맨까지 연결이 되는군요. 오늘도 첫타석부터 안타를 기록하고 있지요? ]이민성 아나운서가 한 베이스씩 진루를 하는 주자들을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송재익 해설위원도 자료를 보면서 답변한다.
[ 네, 확실히 부활한 모습입니다.
시즌이 시작된 4월 한 때 47타수 5안타의 부진에 빠지기도 했었는데요. 앞선 10경기에서 3할 7푼의 고타율과 무려 4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팀이 연패를 기록하는 중에도 짐머맨 만큼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어요. ][ 그런 의미에서 방금 에스피노사 선수를 볼넷으로 내보낸 것은 좋다고 볼 순 없겠네요. ][ 맞습니다.
에스피노사가 올해 소포모어징크스를 톡톡히 치르고 있으니까요. 안타를 맞더라도 승부를 했었어야죠. ]자이언츠의 바뀐 투수 제레미 아펠트가 스트라이크를 잡기 싫어서 잡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코너코너를 노리는 듯 한 모습은 분명 보였다. 어깨를 충분히 풀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준혁이 빠른 주자라고는 하지만 1루에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코너 워크에 경을 쓰기보다는 우선 스트라이크 존에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다.
첫타석부터 안타를 치고 있고, 확실히 컨디션이 올라와 있는 짐머맨 보다는 대니 에스피노사가 쉬운 상대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그 대가를 아펠트는 초구에 곧바로 지불하고 말았다.
--딱--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워가 있다 보니 타구는 유격수 브랜든 크로퍼드의 키를 넘기기엔 충분했다.
준혁도 쏜살같이 홈까지 파고들었다.
[ 홈~ 인. 이준혁 선수 홈을 밟습니다.
][ 짧은 타구였는데, 역시 발이 빠르네요. ][ 네. 이것이 빠른 타자의 이점 중 하나란 거죠. ]송재익 해설위원의 칭찬이었다. 하지만, 이민성 아나운서는 준혁에 대한 칭찬을 더 이어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하지만, 이준혁 선수는 발만 빠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잘 치고 잘 던지고 잘 달리고. ]송재익 해설위원은 이민성 캐스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준혁과 5툴에 관한 이야기... 이제는 전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 하하하, 그것만인가요? 파워도 좋고, 수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습니까? ]잊혀질만하면 꺼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게시판의 반응에서도 시청자들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꺼내고 또 꺼내는 지도 몰랐다. --딱--[ 아깝네요. 타구판단이 조금 늦었지요. 빠질 뻔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잘 잡아내는 군요.
짐머맨에 이어서 나온 4번 마이클 모스의 타구가 외야로 날아갔다.
센터 쪽에서 좌익수 쪽으로 조금은 치우친 타구였는데, 앙헬 파간이 대각으로 따라가서는 마지막에 팔을 쭉 뻗으며 잡아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달려가던 탄력을 죽이려는 모양인지, 그라운드 위를 앞구르기로 한 바퀴 구르고는 일어나며 글러브를 올려다 보이고 있었다. [ 앙헬 파간, 호수비를 보여줍니다.
빠질 뻔 한 타구였는데, 잘 잡아내는군요. ]이민성 아나운서의 칭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송재익 해설위원의 생각은 달랐다. 리플레이 화면과 함께 나온 그의 멘트는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 첫 타구 판단이 늦었네요. 잡아내긴 했습니다만, 저런 정도의 타구는 안정적으로 잡아줘야죠. ]확실히 다시보기 화면으로 보자, 처음의 스타트 방향이 조금은 어긋나간 듯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 그렇습니까? ][ 파인플레이로 보이는 수비들이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엔 좋습니다만, 팀의 수비코치나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판단을 정확하게 그리고 빨리해서 미리 공이 떨어질 위치로 이동해서 안정적으로 잡는 것을 더 선호하지요. 그리고, 파인플레이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 필요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런 점에서 방금 전의 타구는 첫 판단에서 미스가 없었다면 손쉽게 잡아낼 수 있었던 타구라는 것이죠. ]
[ 흠... 그렇게 보면 이준혁 선수도 파인플레이가 꽤나 많은 선수이지 않은가요? ]송재익 해설위원이 부정적인 멘트를 날린 의도를 알것 같았다. 그래서 은근슬쩍 이준혁의 수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걸치는 이민성 아나운서였다. 그리고, 역시나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송재익 해설위원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수년간 같이 메이저리그 중계를 해왔던 두 사람다운 진행이었다.
[ 이준혁 선수는 다르지요. 다릅니다. 이준혁 선수의 파인플레이는 메이저리그 외야수들을 통틀어 가장 넓은 수비범위에 기인하거든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코너외야수들이 원바운드로 잡을 안타성 타구를 중간에서 끊어 먹는 거라고 봐야죠. 안타가 될 타구를 쫓아가서 잡으려다보니 몸을 날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 진짜배기 파인플레이죠. 오죽하면 준혁 리가 못 잡는 타구는 장외홈런 말고는 없다 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겠습니까? ][ 하하하, 그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민성 아나운서의 가벼운 웃음과 함께 이야기는 일단락이 되었다. 어쨌든, 4대4 동점이 되며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경기는 서로 주고받는 양상으로 전개가 되기 시작했다.
--딱--5회말. 이번에도 마이클 모스의 타구는 외야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1아웃이었고, 준혁이 3루에 주자로 있던 상황이었다.
[ 마이클 모스 가볍게 외야로 타구를 보냅니다.
][ 3루에 있던 이준혁 선수 가볍게 홈인. 스코어 7대 7. 워싱턴, 또 다시 동점을 만듭니다. ]양 팀 모두 1,2회와는 달리 많은 점수를 한꺼번에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점 한 점 착실히 얻어내는 데는 성공하고 있었어, 4회를 제외하고는 매 이닝 점수를 뽑고 있었다. 그렇게 경기는 7회로 접어들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자이언츠는 1사 1-2루의 기회를 잡았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브랜든 크로포드.
워싱턴에서는 7회부터 션 버넷이 마운드에 올라와 있었다.
선발 에드윈 잭슨과 톰 고르질라니에 이은 3번째 투수였는데, 동점상황에서 한 이닝을 차분하게 막아주기를 바랬으나 현재까지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 공이 높지요? ][ 네. 이 선수는 90마일정도의 투심에다가 왼손을 상대로는 슬라이더, 오른손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의 조합을 사용하는데요. 오늘은 썩 좋아 보이지 않네요. 벌써 2볼이죠? ]해설자들의 말대로 카운트도 몰린 상태였다.
2볼 노 스트라이크에 주자가 둘씩이나 나가있는 상황, 스트라이크가 필요한 순간이었고 그가 꺼내든 것은 우타자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평소 타자들로부터 마치 테이블 위에서 뚝 떨어지는 듯 하다라는 평가와는 달리 공은 밋밋하게 밀려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이 행인 체인지업은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크로포드의 방망이를 피해갈수 없었다.
--따악!!
--누가 보더라도 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타구였다.
[ 크로포드 쳤습니다. 큽니다! ][ 이준혁 따라갑니다! 이준혁! ]이민성 아나운서가 소리 높여 외쳤다.
중견수를 보고 있는 이준혁이 쏜살같이 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내셔널스 파크에서 가장 깊다는 123m 중앙펜스 방향이었다.
[ 이준혁, 워닝트렉! ]이민성 아나운서가 외치지 않더라도 경기를 시청하고 있던 이들은 모두 펜스 근처까지 다다른 준혁의 위치를 볼 수 있었다. 펜스의 위치와 공의 위치를 번갈아 살피는 그의 고개 움직임 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 찰라, 준혁은 도움닫기에 이어 점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점프와 함께 오른발을 들어 스파이크 밑창으로 찍듯이 펜스 옆면을 밟고는 또다시 점프를 이어간 것이었다.
내셔널스파크의 센터쪽 펜스는 중앙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4.3m였지만, 준혁이 펜스플레이를 시도한 왼쪽은 3m였다. 그에게는 펜스를 한번 찍고 시도한 이중 점프만으로도 충분히 극복 가능한 높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거의 자신의 키 두 배에 가까운 높이로 뛰어오른 준혁은 넘어가는 타구를 걷어내어 버렸다. --턱!
--
" 와아아아~~~ !!"
" 꺄아아악!!! "
" 마이스터 준!! "
그가 들어 올렸던 글러브를 내리지 않고, 그라운드에 착지하는 순간! 엄청난 함성이 내셔널스 파크를 뒤흔들어버렸다. 준혁은 타격 폼만 캔 그리피 주니어를 닮은 것이 아니었다.
수비에서마저도 호수비를 밥 먹듯이 하던 캔 그리피 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전혀 덜하지 않았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허슬플레이가 넘치다보니 부상을 달고 살았던 캔 그리피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 지금이라도 조금 몸을 사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준혁을 좋아하는 팬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다치지 않았으면, 그리고 오랫동안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경기장에 오게 되면 그 생각은 멀찌감치 날아가고 없었다.
눈앞에서 방금과 같은 멋진 플레이가 펼쳐지는데, 어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잡았습니다!! 이준혁! 놀라운 수비!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수비를 보여줍니다! ][ 와하하하하. 이거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요. 메이저리그급 수비입니다. ][ 아니죠. 이건 '준혁 급' 수비라고 해야 합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수비가 아니에요. ]이민성 아나운서가 곧바로 송재익 해설위원의 멘트를 수정했는데, 솔직히 그가 조금 오버한 감은 없지 않아 있었다. MLB.
COM에서 선정한 역대급 중견수 수비만 보더라도 준혁과 비등한 수비들은 분명히 있었다.
물론 이런 수비가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명수비를 유난히 자주 보여주는 것이 준혁이기는 했다. 하지만, 준혁만이 할 수 있는 수비란 말에는 어패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민성 아나운서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쉽게 볼 수 없는 수비라는 것은 틀리지 않았고, 그런 수비를 자주 보여주는 수비의 달인이 준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 그나저나, 클로포드 로서는 아쉽겠는데요? 한해 많아봐야 3개나 4개 정도 때려내는 크로포드의 홈런을 하이재킹 해버렸으니 말이죠. [ 버스터 포지 선수가 더 아까워하는 모습이죠? ]카메라맨이 용케 장면을 잡았다. 브랜든 크로포드의 다 넘어간 홈런성 타구를 준혁이 걷어내는 순간, 버스터 포지가 머리를 감싸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대신에 션 버넷은 힘을 내는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높게 제구가 되던 공이 저스틴 크리스티안을 상대로는 낮게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는 내야땅볼을 유도하며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준혁의 호수비가 힘을 준 것은 분명해보였다.
위기 뒤에 찬스라고 7회 말 워싱턴의 공격에서도 찬스가 찾아왔다.
1아웃에 2-3루. 오히려 자이언츠보다 더 좋은 찬스였다. 더군다나 준혁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슈퍼모드]가 발동된 것을 확인까지 한 상태였다. 하지만, 좋아하기엔 일렀다.
" 이번엔 확실하게 거르라고 해. "
자이언츠 보치 감독의 결정은 빨랐다. 아예 고의사구를 지시한 것이었다.
오늘 시합에서 준혁의 기록상의 안타는 1회의 홈런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는 매 타석 득점에 관여를 하고 있었다. 1회에는 홈런으로, 2회에는 몸에 맞는 볼로 걸어 나간 후 홈까지 들어왔고, 4회에는 유격수 실책으로 살아나간 후 후속 안타 때 득점, 5회에는 희생플라이에 의한 타점까지 ... 워싱턴이 뽑은 7점 중에서 4점이나 준혁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더군다나 통산기록상으로 준혁은 경기후반부에 더욱 집중력이 좋아지는 타자였다.
" 알겠습니다.
대기타석의 대니 에스피노사를 한번 쳐다본 벤치코치도 지체 없이 포수에게 사인을 내보냈다. [ 아~. 포수가 일어서는 군요. ]버스터 포지가 일어서서는 밖으로 빠지며 투수의 공을 받아냈다.
두 번째도 역시나 였다. 그 것을 보며 송재익 해설위원이 멘트를 이어갔다.
[ 저희로는 아쉬운 상황입니다만, 보치 감독으로써는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타자인 에스피노사 선수의 타율이 겨우 2할 초반 대니까요. 득점권에서의 타율도 2할인데다가 4월 한 달간의 병살타도 5개나 있습니다.
올해 소포모어징크스를 아주 제대로 치르고 있다고나 할까요? 저희로써는 이준혁 선수의 타점기회를 못 봐서 아쉬울 수밖에 없겠지만, 그 누가 감독이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거르는 것이 정석이겠지요. ]안타 하나면 순식간에 2점차이로 점수가 벌어질 수 있었다. 게다가 경기는 어느덧 후반부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공격적이고 뻥뻥 야구처럼 보인다 라지만, 메이저리그만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리그도 없었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물론, 루상에 주자가 준혁 혼자라면 그의 도루 능력 때문에라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선행주자들이 나가 있는 상황에서는 천하의 준혁이라도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 젠장. '한 두번 겪는 일이 아니다보니, 이젠 준혁도 시합말미에 지금과 같은 찬스가 오면 의례히 고의사구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슈퍼모드]까지 발동된 타석이었다. 타구를 때려내던 아니면 그냥 걸어 나가던 포인트는 소진될 수밖에 없었다.
아까웠다. ' 미친 척하고 때려봐? '하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 작전이었다.
고의사구를 때려낸 전력이 있다 보니, 이제는 어느 팀이든 준혁에게 고의사구를 줄때는 아주 확실하게 빼고 있었다. 물론, 아예 방망이에 가져다 맞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포수가 일어서 있다가 투수가 투구를 하는 순간 밖으로 몸을 빼내다보니), 하지만, 타구에 힘을 실어줄수 있는 스윙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렇게 준혁은 자신에게 온 [슈퍼모드] 발동 찬스를 날려먹을 처지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