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 2012시즌 -- >
범가너에게 홈런을 맞은 이후, 완전히 흔들릴 뻔 한 에드윈 잭슨을 잡아준것은 라이언 짐머맨이었다.1번 타자를 스트레이트 포볼로 걸어 내보낸 이후, 2번 카브레라의 3루선상을 빠지는 타구를 다이빙캐치로 잡아낸 것이었다.
그렇게 워싱턴은 완전히 기울 뻔 한 무게 추를 붙잡을 수 있었다.2회말, 워싱턴의 공격은 8번 마크 데로사 부터였다.
투수까지 끼인 하위타선이다보니 범가너에게는 숨 돌릴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휴식은 2아웃 까지였다.
또다시 그는 타석에 들어선 준혁을 상대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 2사에 주자가 없지요? 이준혁 선수 큰걸 노려봄직한 타석이지 않습니까? ][ 네, 경기초반이긴 하지만... 아직 기록도 현재진행형 이다보니,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하지만, 자이언츠의 배터리도 이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테죠. 점수도 한 점차이고... 아무래도 까다로운 승부가 이어지지 않겠나 싶군요. ][ 네, 그렇군요. ]송재익 해설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민성 아나운서다. 어제 시합부터 벌써 6연타석 홈런을 준혁에게 허용하고 있었다.
대놓고 고의사구로 거르진 않겠지만, 분명 쉬운 공은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여기서 또 큰 것 한방이면 기록은 재껴둔다고 치더라도 동점이 되고 만다.
아쉽지만, 여기까지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정면승부는 피할 확률이 다분히 높은 타석이었다.
런 생각은 준혁도 마찬가지였다. 1회때에는 자이언츠의 배터리들도 선두타자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한 점차의 앞선 상황에다가 주자도 없고, 나름 파워히터로 이름이 난 자신과 정면승부를 걸 이유는 없었다. ' 연속홈런에 욕심이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어제에 이어 홈런을 6개나 연속으로 때려내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신기록 작성중이란 것을 준혁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에 이어 오늘의 첫 홈런도 행운이 따랐다.' 홈런약속도 이미 지켰으니까, 욕심은 내지말자고. '지금의 타석이 월드시리즈 7차전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길고 긴 패넌트레이스중의 하나의 시합이었고, 더군다나 이제 겨우 2회 였다.
때려내기 좋은 공이 온다면야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거지로 용을 쓸 필요까지는 없었다.
" 첫타석에서는 대단하더군. "
타석에 들어서는 준혁을 올려다보며 포지가 말했다.
" 아아, 요행히 생각했던 코스라서 말이야. "
준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자신의 비밀을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물으니 그냥 두루뭉술하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듣는 쪽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했던 쪽이라고? 포지는 잘못 들었나 싶어 준혁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덤덤한 표정이었다. 투스트라이크가 되기 전 노림수란 것은 있었다.
안쪽공도 충분히 노림수가 맞아 떨어진다면 홈런도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어떤 타자가 8구째 까지 가는 승부에서 가운데로 몰린 실투도 아닌 것을, 그것도 스트라이크도 아닌 유인하는 몸 쪽 높은 공을 노리겠느냐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준혁의 노림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타격 패턴이었다.
' 하지만 거기에 당한 것은 나니까. '첫 번째 타석을 생각하자, 입안이 씁쓸해진다. 자신과 범가너 모두 완벽하게 속았으니까.
준혁의 첫 타석에서의 타구와 코스에 대한 대응자세를 보고는 큰 것보다는 출루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승부에 들어갔고, 완벽하게 높은 공은 아니었지만, 높은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한 개는 더 높았고, 더군다나 몸 쪽에 붙기까지 한 공이었다. 하지만, 그 공을 통타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준혁의 짧은 한마디에서 알 수 있었다.
한 타자에게 두게임 연속으로 6개의 홈런을 허용한 것은 투수만의 잘못일수는 없었다. 같이 배터리를 이루고 있는 자신에게도 최소한 절반의 잘못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한 선수에게 원사이드하게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포지의 상한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한 선수에게 너무 극단적인 천적관계를 만들어줘서는 좋은 것은 없었다.
이순간, 자이언츠의 보치 감독의 생각도 그랬다.
재작년에 이어, 자이언츠는 올해도 우승반지를 노리고 있었다. 팀의 성적과 분위기도 좋았다.
본래부터 끈끈한 팀컬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자이언츠란 팀이었다. 하지만 이번 3연전에서의 맞상대인 워싱턴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타선의 응집력은 자신들의 팀이 한수 위였다. 하지만, 워싱턴에는 말도 안 되는 컨디션의 준혁 리가 버티고 있었다.
" 사인을 보내게. "
보치 감독은 벤치코치에게 말했다.
" 까다롭게 가라고 말이죠? "
역시나 자신의 의도를 바로 알아듣는 벤치코치다.
여러 해같이 팀을 이끌어온 코치답게 말이다. 보치 감독은 거기에다가 아주 조금 양념을 더 친다.
" 그래. 까다롭게. 좀 많이 까다로워도 된다고 하게. "
' 상대 배터리도 정면승부는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연속으로 두 개의 공을 바라본 준혁의 결론이었다. 확실한 코너워크를 노린다는 것이 범가너의 살짝 살짝 빠지는 공에서 느껴졌다.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라고나 할까? 타석에서 벗어나 타르액 캔을 넘겨받을 때 에스피노사가 건넨 말도 그것을 뒷받침해주었다.
" 포수가 벤치 쪽에서 싸인을 받는 것 같더라.
대놓고 고의사구를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충분히 까다롭게 던질 것은 분명해 보였다.
' 허긴. '준혁이 상대팀의 감독이라도 그렇게 할 만하겠다 싶다. 점수 차가 많이 벌어졌더라면 모를까? 3연 전중 첫판을 이미 내어준 상태에서, 1점차의 아슬아슬하게 앞선 상황에다가 앞서 홈런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 어제까지 소급하면 6연타석 홈런을 날리고 있는 타자. 아무리 미국야구의 스타일이란 것이 있더라도 팀의 사기문제도 있고, 승패까지 걸려있었다.
오늘시합까지 진다면 자칫 스윕까지 몰릴 수도 있는 상황. 정면승부는 힘들리라.
그렇게 조금은 느슨한 생각이 들려는 찰라.
--삐이~~--하는 비프음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가상스트라이크존의 안쪽 선에서 공 반개정도 더 안쪽으로 벗어나며 야구공의 통과위치가 표시되는 것과 동시에 말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투수의 실투라는 경고였다.
더군다나 인코스로 들어온다던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아예 표시 자체가 안 된다는 말은... --퍽--몸통으로 날아든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준혁은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빈볼이라면 투수가 노리고 던지는 공이기에 가상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더라도 보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실투는 투수가 의도치 않은 공이다보니, 가상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나면 표시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처음에 찍힌 코스가 남아있었고, 전혀 다른 쪽으로 날아오기에 오히려 피하기가 더 힘들어서, 그로서도 방금처럼 몸을 틀며 등 쪽으로 맞아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순간. 팬들의 야유와 탄식이 내셔널스 파크의 그라운드를 뒤덮어버렸다.
가슴조리며 투수와 타자의 대결을 지켜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자이언츠의 투수가 고춧가루를 재대로 뿌려버리고 만 것이다. 성질 급한 관중들 중 일부는 손에 들고 있던 맥주잔을 그라운드 안에다가 던져 넣고 있었다.
왜 구장 안에서 맛 없어 보이는 플라스틱 잔에 맥주를 넣어 파는지 그 존재 의의가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제리 밀러 주심은 곧바로 준혁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대기록 달성의 연장선상에 있던 타석이었다. 그런 타자를 맞춰버림으로써 기록달성을 깨트려버렸다.
여기서 타자가 조금만 움직임을 보인다면 곧바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준혁 리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었다. ' 황당한가 보군. '밀러 주심은 그렇게 생각했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최초로 6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선수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다른 기록을 만들어낼수도 있던 타석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몸에 맞는 볼로 날아가 버렸다. 너무 허무하다보니 화낼 생각도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싶었다.
모든 이목이 집중되던 시합이었다. 그런 시합에서 정당치 않은 '히프 바이 피치드 볼'이라니. 더군다나 완벽하게 타자의 몸통으로 날아온 공이었다.
어제의 시합과 오늘의 시합 첫타석에서의 홈런으로 인한 앙금이 분명 개입하기에 충분하다고 제리 밀러 주심은 생각했고, 그의 행동도 빨랐다. 곧바로 매디슨 범가너를 가리키고는
" 퇴장! "
을 외쳤다.
거기에 대뜸 반응한 것은 포지였다.
" 제리 밀러씨. 퇴장이라뇨? "
" 퇴장 맞아. 다음에도 방금과 같은 공을 던지면 또 퇴장을 줄꺼니까 그렇게 알아. "
억울했다. 퇴장이라니. 벤치로부터 상황에 따라서는 1루로 내보내도 좋다는 사인까지 받은 상태였다.
단지 일어나서 고의사구를 던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등 준혁을 맞출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었다.
" 맞출 이유가 없다니까요? "
제리 밀러 주심은 고의라고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포지는 답답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 그만하게나. "
고개를 돌려보니 감독이었다.
범가너에게 퇴장이 내려지자, 브루스 보치 감독은 덕아웃을 나섰다. 물론 재빨리 투수코치에게 다음 투수를 준비시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미 내려진 범가너에 대한 퇴장 명령은 거두어질 리가 없었다. 물론 그도 범가너가 고의로 맞추었을 리는 없다 싶었다.
여차하면 걸러 보내라고 까지 한 타자에게 일부러 말이다. ' 공이 손에서 빠져버린게 분명해. '타이밍이 문제였다.
실투가 되더라도 차라리 땅바닥에 내리 꽂던가, 아니면 최소한 와일드피치가 되더라도 타자만 맞지 않았다면 모를까...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이미 타자는 몸에 맞아버렸고, 지금으로써는 급작스럽게 몸을 풀어야하는 다음투수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데, 보치 감독은 느긋하게 걸어가려던 이런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생각 외로 포수인 버스터 포지와 제리 밀러 주심의 대화가 길어진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 이런! 까딱하면 포지도 퇴장 당하겠어. '이미 판정은 내려졌다. 길게 이야기를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브루스 보치 감독은 득달같이 달려 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왔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보치 감독은 제리 밀러 주심에게 상황을 다시 한 번 들었고, 몇 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제리 밀러 주심은 보치 감독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았다.
워싱턴 쪽도 불러들였고, 존 멕클라렌 벤치코치가 나오기 무섭게, 양쪽에 똑같이 주의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 몸에 맞추는 공이 나오면 무조건 퇴장을 주겠소. "
그렇게 우선은 상황이 일단락되었고, 자이언츠의 투수는 제레미 아펠트로 바뀌었다.
그는 만년 유망주에서 2009년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되어오면서 포텐이 터진 선수였다.
평균 92마일의 투심과 커브 스플리터의 조합으로 좌우타자 가리지 않는 불펜의 좌완기대주였다.
앞서고 있는 경기 상황을 그대로 끌고 나가겠다는 보치 감독의 의중을 읽어볼 수 있는 투수교체였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바뀌게 된 투수교체타이밍이었다. 아무리 보치 감독이 시간을 벌어주었고, 또 마운드에서 연습투구를 했다고는 하더라도 투수가 몸을 풀기에는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