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69화 (169/309)

< -- 9. 2012시즌 -- >

자이언츠의 브루스 보치 감독은 혼자서 한참이나 중얼거리고 있다.

" 좋지 않아. 좋지 않단 말이야. "

우익수의 키를 넘어가는 타구였다.

더군다나, 그 타구가 원바운드로 펜스를 맞고는 펜스플레이를 하러온 제이슨 워스의 키를 넘겨버렸다. 1루 주자까지 충분히 들어올 수 있고, 또 들어와야 정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역전주자인 포지가 홈에서 잡혀버렸다.

분명 처음에 본 워싱턴의 수비위치는 정상위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스가 빠트린 공을 중견수인 준혁 리가 캐치하고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그렇게 빨리 백업을 들어와 송구를 할 순 없었다.

' 수비 시프트였던 건가? 아닐 거야. 벤치의 사인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위치 이동이 있었을 것이고, 우리도 알았겠지. 그렇다면 리의 개인 판단으로 조금 먼저 움직였다는 말인데... '그게 맞겠다 싶었다. 그것 말고는 리의 빠른 백업이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벤치의 전달에 의한 시프트도 아닌, 개인적 판단으로 어떻게 그런 확신이 들었던 것일까? 소위 말하는 천재들의 감이란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진다. 범인인 자신으로써는 알수 없는 일이다.

8회 말 워싱턴의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났다. 비록 7-8-9 하위타순이었다고는 하지만, 자이언츠의 바뀐 투수 클레이 헨슬리는 잘 막아냈다.

바로 이어진 9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워싱턴과 마찬가지로 7번부터 시작하는 하위타순의 공격이었고, 워싱턴의 바뀐 투수 라이언 매드슨이 잘 던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타자들의 맥이 빠져있었다.

앞선 이닝의 홈에서의 보살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남아있는 듯했다. 그렇게 경기는 9회말, 워싱턴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으로 이어졌다.

"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

자이언츠의 보치 감독은 공수교대중인 그라운드를 바라보다가 벤치 코치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조금 뜸을 들인 후 나왔고 조금은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 상대는... 해야지 않겠습니까? "

" 그렇겠지? 상대하는 게 맞겠지? "

보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고심하는 것은 9회 말 워싱턴의 선두타자가 오늘 하루 미쳐있는 준혁 이었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4번 타석에 들어서서 전부 홈런을 날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앞선 8회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빠른 백업으로 홈에서 역전점수를 저지하기 까지 했다.

미쳐도 여간 미친것이 아니었다. 그런 '크레이지 모드'의 타자가 또다시 준비 중이었다.

" 1아웃만 되었어도 거르자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 이닝 노아웃에서 준혁 리를 거르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

벤치코치의 말은 보치 감독의 생각과도 일치했다.

준혁이 지난 달 기록한 도루 개수는 총 29개였다. 그중 9회에 기록한 도루는 총9개로 모두 2루와3루의 연속도루였고 10번시도 중 9번을 성공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준혁은 홈스틸의 끝내기 결승득점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고민은 여기에 기인하고 있었다. 준혁의 미친 타격감에 거르자니, 무사에 3루타를 맞은 것과 마찬가지인 빠른 발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2번은 몰라도 워싱턴의 3-4-5번 중심타선은 나름 제몫을 해주고 있었다.

" 아웃 카운트가 문제구만. 차라리 8회 말 상황에서 리를 타석에서 거를 것 그랬나? "

벤치코치가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보치 감독 본인이 내뱉고도 어이없다 싶은 말이긴 했다. 9번 타자에서 끝냈던 8회의 수비에서 1번 타자인 준혁을 거르기 위해서는 앞선 9번 타자도 고의사구를 줬어야한다는 말이었고, 1-2루의 위기상황을 벤치에서 스스로 자초하겠다는 말이었다.

2아웃인 상황이라지만, 두타자를 연속으로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 그래, 포볼은 9할의 3루타와 같지만, 승부를 하면 7할은 리를 상대로 아웃카운트를 올릴 수 있잖아. 아무리 미쳤다고는 하지만, 5타석 연속으로 나오기야 하겠어? '100여년의 넘는 역사동안 한게임 한 타자 4개의홈런은 여러 번 있었지만, 5개의 홈런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싶었다.

어차피 야구는 기록과 확률의 싸움.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론은 감독인 자신이 내려야하는 것이었다.

벤치코치와의 대화는 그것을 위한 하나의 과정. 코치의 의견에 그의 마음도 일치했을 뿐이었다.

" 불펜에 연락하게. "

결정을 내린 보치 감독은 벤치코치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는 스캇 베리 주심에게 걸어갔다.

이미 투수는 준비를 시켜놓은 상태였다. 다만 어떻게 상대를 할지 고심했을 뿐. 벤치코치는 불펜과 연결된 전화기를 들고는 말했다.

" 로페즈를 올려 보내게. "

자이언츠의 투수가 하비에르 로페즈로 교체가 되었다.

로페즈는 빅리그 경력 11년차의 좌완 베테랑으로 공은 빠르지 않지만, 좌타자 스페셜리스트였다. 이것은 그가 흔치않은 좌완사이드암이라는 투구 폼이 한몫을 하고 있었는데, 좌타자 통산피안타율 .216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 보치 감독, 로페즈를 내세우는군요. 준혁 리를 상대하기 위한 원포인트 릴리프로 봐야겠지요? ][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4번 라로시까지 끌고 갈수도 있습니다. 에스피노사가 스위치히터이지만 주로 왼쪽타석에 들어서고, 라로시가 왼손타자인것을 감안하면 말이죠. ]

" 대니, 만약에 내가 걸어 나가면 말이야. "

" 노렸던 공이나 한가운데 실투가 아니면 초구는 무조건 기다려라... 기억하고 있어. "

" 그래. "

올 시즌은 작년보다 포볼이 더 많아지자, 준혁은 9회 말 루상에 나가게 되면 아예 초구부터 도루를 감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이득이 있었다. 우선은 상대로 하여금 대놓고 포볼로 거를 수 없도록 만들었고, 도루를 성공하면 더블플레이 위험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스코어링포지션에 보내기 위해 아웃카운트를 허비할 필요가 없어졌고, 지금처럼 노아웃 상황이라면 3개의 아웃카운트를 전부 타격에 집중시킬 수 있었다.

아무래도 득점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자이언츠의 보치감독이 고심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하기에 준혁은 아예 대놓고 뒷타자에게 공하나 정도는 기다려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연히 데이비 존슨 감독도 경기후반부에 준혁이 살아나가면 뒷타자에게는 번트작전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준혁이 도루로 2루를 훔칠 확률이 번트성공확률보다 더 높으니 뭣 하러 아웃카운트 하나를 허비하겠느냐 말이다. 덕분에 워싱턴은 희생번트가 가장적은 팀이었다.

" 그런데, 무슨 포볼 타령이냐? 홈런을 노려야지. "

이번에도 홈런이 나온다면, 메이저리그 최초이자, 팀 역사에도 그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평생에 단 한번 올까말까 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번타석은 무조건 홈런을 노려도 모자란 것이었다. 대니 에스피노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 홈런이 마음먹는다고 나는 거냐? 그리고 혹시나 하는 거지. 재내들이 까다롭게 나올 것이 뻔 한데 욕심난다고 방망이를 마구 휘두를 수는 없잖나. "

물론,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앞선 타석에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4번째 타석에서 조금 욕심을 부려보긴 했지만, 그것도 타석에 들어서고 난 다음 또 다시 [타격의 신]특기가 발동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떠올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은 달랐다.

여기서 자신이 일을 크게 친다면 오롯이 자신의 이름만이 맨 앞줄에 놓일 것인데,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 걱정마라.

솔직히 까다롭긴 할 거다. 하지만, 내보내기만 하면 골치 아파지는 선두타자를 처음부터 내보내겠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을 거다. 승부가 들어올 거란 말이지. 넌 그것만 놓치지 않으면 되는 거다.

알겠지. "

에스피노사는 어깨까지 두드려주며 힘내라고 말해주었다. 엉겁결에 고맙다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왠지 기분이 묘하다라고나 할까?

" 야! 대니. 말하는 것만 봐서는 네가 4연 타석 홈런 친 타자 같다~? "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데스몬드가 한마디 던지는데, 순간 덕아웃은 웃음바다가 되고 만다.

이유는... 에스피노사가 4타수 무안타였기 때문이었다. 투수의 연습투구가 끝나자 스캇 베리 주심이 들어오라며 사인을 준다.

준혁은 두어 번 더 방망이를 휘둘러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내셔널스 파크를 찾은 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혹시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일어나라고 독려하기까지 했다.

비록 8회에 동점을 허용하며 승리를 결정짓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타석에 들어서는 첫 타자가 준혁이다보니 누구하나 상기되지 않은 팬들이 없었다.

이번타석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의 기록이 나올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이 나오는 순간, 워싱턴의 승리도 결정지어지기에 워싱턴 팬들의 기대감과 긴장감은 극도로 올라가 있었다.

' 이번에도 발동해주면 좋을 텐데. '앞서 4번이나 연속으로 터져주었으니, 깔끔하게 마지막도 [타격의 신]특기가 작동해주었으면 싶었다. 그리고... ' 그래도, 안 걸렀으면 좋겠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여태껏 기록에 대해서 큰 욕심은 없었다. 열심히 하면 기록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욕심이 난다.

" 후우~. "

타석에 들어서자, 절로 커다란 한숨이 나왔다. 그것은 다행의 한숨이었다.

고맙게도 [타격의 신]특기는 이번에도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준혁을 반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 준혁 리 도 긴장이 많이 되는가 봅니다. 한숨 소리가 여기 까지 들리고 있어요. ][ 하하하. 그럴 겁니다.

이번에도 넘기면 100년만의 대기록이니까요. 사람이라면 긴장이 안 될 수 없겠죠. ]ESPN의 해설자, 짐 고든과 제이슨 쇼월츠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포볼이나 고의사구라는 단어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준혁의 기록이나 첫 타자라는 상황, 그리고 뒤이은 중심타선의 컨디션... 등등을 생각할 때, 거른다는 것은 학생야구에서도 나올 수 없는 상식이하의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2아웃 이라던가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정면승부를 피해 기록을 세울 기회를 없애버렸다는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경기의 승패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작전일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노아웃 상황의 첫 타자, 그것도 리그최고의 빠른 발을 가진 선수였기에 그것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더군다나 자이언츠의 감독은 명장 브루스 보치 감독이었다.

' 긴장하는 것을 보니 녀석도 사람이었어. '자이언츠의 포수 버스터 포지는 비로써 준혁이 사람처럼 느껴졌다. 앞서 4개의홈런을 연속으로 날릴 때에는 사람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가 날린 홈런은 실투를 때려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공들이 까다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완전 타격의 신이었다. ' 이번만은 잡아낼 수 있겠어. 아니 잡아내고 만다.

'승부를 지시한 보치 감독이 고맙게 느껴졌다. 맷 케인의 실투는 하나도 없었다.

전부 자신이 요구했던 리드대로 던지다 맞았다. 그러했기에 기록은 맷 케인에게 남겠지만, 절반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이미 KO를 당해도 여러 번 당한 것과 같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의 자존심은 지켜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은 상황도 좋았다.

준혁은 왼손타자다. 아무래도 앞서 상대했던 오른손투수인 맷 케인보다는 왼손인 로페즈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통산기록에서 오른쪽 왼쪽 가리지 않는 것으로 나오는 준혁이었지만, 그래도 오른손투수를 상대할 때보다는 모자람이 있는 타율 이었다. 더군다나 로페즈는 그냥 왼손이 아닌 왼손사이드암. 왼손타자라면 등 뒤로 날아오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슈우우우--그가 요구한 대로 바깥쪽 살짝 걸친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 스트라이크. "

초구부터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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