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011시즌 -- >
진수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 역시,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돼. "
회사에서 일이 많다보니, 조금 늦게 퇴근했던 그였다. 회사에서 저녁을 먹기는 했지만, 늦게 까지 일했기에 집에 오자마자 허기가 느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여느 때처럼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다가 잠이 든 것이 분명했다.
자기혼자 열심히 소리를 내고 있는 탁자위의 TV를 보면 말이다. TV는 42인치 스탠드형 LED TV였는데, 남정네 혼자 사는 원룸 사이즈를 생각하면 조금은 부담스러운 크기이긴 했다. 하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였고, 그래서 오히려 더 큰 것을 살걸 하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었다.
TV에서는 코미디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린다. 그다지 좋아라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거실구석이 작은 서랍장 위의 전자 탁상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 9월 19일. 12시 20분. AM ]
시계가 표시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 이제 12시네. "
잠이 든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한 시간 남짓 되었나 싶었다.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 회사일로 일요일까지 나가서 일한 덕분에 그에게 월요일 하루 휴무가 주어졌다. 그래서 그냥 아침까지 잠들었어도 무방한 그였지만, 무언가 빠트린 것이 있지 않았나 싶었는데...
" 아차! "
다행히도 기억이 떠올랐다.
" MLB매거진 ! "
자정에 편성된 MLB관련 TV프로그램으로 매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각나면 챙겨 보려고 신경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일요일 방송분이라서, 평소와 달리 주간 결산과 핫이슈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날이었다.
" 늦었다아~~! "
진수는 급히 리모컨을 찾았다.
소파에서 누워서 TV를 보다 잠든 덕분에 그것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무엇이든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는가보다.
아무튼 그렇게 TV채널을 돌린 그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민성 캐스터와 송재익 해설위원 그리고, 김준형 객원기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메이저리그의 주간 동향과 각 팀 선수들의 이슈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죠. 그럼 이제 포스트시즌을 향해가는 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이민성 캐스터가 다른 주제로 멘트를 넘기고 있었다.
역시나, 이야기는 꽤나 진행된 후였다. 하지만, 그가 보고 그리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 다행이다.
늦지는 않았구나. "
잠든 바람에 지나쳐버린 앞의 주제들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꼭 보고 싶었던 이야기만 놓치지 않는다면, 그 아쉬움은 덜 할 듯싶었다. 그는 TV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김준형 기자님, 각지구의 우승팀들은 모두 결정이 났지요? ]이민성 캐스터가 자신의 오른편에 앉은 김준형 기자를 보면서 물었다.
이미 9월 초에 거의 윤곽이 들어났었죠. 이미 우승을 확정지은 팀도 있고, 나머지 팀들도 그때의 1위 팀들이 거의 우승을 99% 가시권 안에 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조만 빼놓고는 막판 이변은 없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TV의 자료화면에는 그의 말대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조의 칸을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부 필라델피아 필리스서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중부 밀워키 블루어스동부 뉴욕 양키스서부 ? 중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그럼 아직 서부 조는 확정이 안 된 거군요. ][ 네, 현재 텍사스 레인저스가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만, 2위 LA 에인절스와는 불과 1게임 반차이거든요. 이제 잔여경기도 불과 9게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죠. 물론 남은 일정은 텍사스에게 조금 유리하긴 합니다. 힘이 바닥에 떨어진 인디언스와 시애틀을 홈으로 불러들여서 6연전을 갖거든요. 하지만, 에인절스는 볼티모어와 토론토를 상대로 장거리 원정이 남아 있죠. 하지만, 마지막 결판은 에인절스의 홈에서 벌어지는 두 팀 간의 최종맞대결 3연전에서 갈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민성 캐스터는 김준형 객원기자의 설명을 듣고는 바로 송재익 해설위원에게로 질문을 넘겼다. [ 그래도, 아메리칸 리그 서부조 말고는 모두들 느긋하게 포스트시즌을 준비할 수 있겠군요. 송재익 위원님. 이렇게 여유로운 1위팀들과 달리, 와일드카드는 아메리칸 리그나 내셔널 리그 모두 치열하지요? ]송재익 해설위원도 곧바로 질문에 답변을 시작했다.
[ 네, 그렇습니다. 대 반전입니다. 불과 2주일 전만 하더라도 와일드카드도 거의 팀이 가려질것 같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대혼전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선 아메리칸 리그는 8게임 반차이나 앞서나가고 있던 보스턴 레드삭스가 2주간이나 선수들이 집단 슬럼프에 빠지면서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2게임차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셔널리그도 마찬가지였죠. 7게임이나 느긋하게 앞서나가던 애틀랜타가 단체로 채증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맥을 못 추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1게임차까지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으니까요. 보스턴이나 애틀랜타나 이제는 그 누구도 와일드카드 진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날 즈음, 화면이 바뀌었다.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의 남은 일정이 표로 보여지고 있었다. 세인트루이스9월19일 시카고 컵스(홈)9월20일 시카고 컵스(홈)9월21일 시카고 컵스(홈)9월23일 워싱턴 내셔널스(원정)9월24일 워싱턴 내셔널스(원정)9월25일 워싱턴 내셔널스(워정)9월2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홈) 9월27일 휴스턴 애스트로스(홈)9월28일 휴스턴 애스트로스(홈)애틀랜타 브레이브스9월19일 워싱턴 내셔널스(원정)9월20일 워싱턴 내셔널스(원정)9월21일 워싱턴 내셔널스(원정)9월23일 플로리다 말린스(원정)9월24일 플로리다 말린스(원정)9월25일 플로리다 말린스(워정)9월26일 휴스턴 필라델피아 필리스(홈) 9월27일 휴스턴 필라델피아 필리스(홈)9월28일 휴스턴 필라델피아 필리스(홈)[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 두 팀의 남은 일정입니다.
세인트루이스는 시카고 컵스와 3연전 후, 워싱턴과 원정3연전을 하고, 마지막으로 휴스턴과 홈에서 3연전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애틀랜타는 워싱턴과 원정3연전을 가진 후, 플로리다 말린스와 원정 3연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라델피아와의 홈 3연전이 남아 있지요. ]
[ 아. 그러고 보니, 두팀 다 워싱턴과 원정3연전을 하게 되어있군요. ]표를 보던 이민성 캐스터가 무언가 발견한 듯 가벼운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 맞습니다.
바로 내일부터 두 팀 모두 워싱턴을 상대로 3연전을 치르게 되어있습니다. 19일부터 21일까지는 애틀랜타와 그리고 23일부터 25일까지는 세인트루이스가 말이죠. 그런데, 막판 기세는 워싱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죠. 9월초 6연패를 당했지만, 스트라스버그가 복귀하고 로스 디트와일러가 확대로스트로 콜업되면서 투수쪽도 서서히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당장 내일 워싱턴과 애틀랜타의 선발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입니다. 그리고 로테이션 상, 세인트루이스도 3연전 중 한번은 스트라스버그를 상대해야 하구요. 더군다나 짐머맨이 스트라스버그의 앞 로테이션이기 때문에 세인트루이스는 조던 짐머맨도 상대해야합니다.
][ 이거 세인트루이스가 더 힘들겠군요. ]설명을 듣던, 이민성 캐스터가 세인트루이스가 애틀랜타보다 조금 더 불리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김준형 객원기자가 말을 받았다. [ 글쎄요.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애틀랜타만 만나면 다른 사람이 되는 존 래넌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까지의 앞선 로테이션대로라면 3연전 마지막에는 그가 선발로 나설 테니까요. ][ 하하하. 그런가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두 팀 모두 워싱턴을 상대로 껄끄러운 경기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긴가요? ][ 맞습니다.
후반기 워싱턴이 애를 먹었던 것은 투수진 때문이었거든요. 타자들은 전반기에 비하면 확실히 살아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민성 캐스터의 질문에 김준형 기자가 바통을 송재익 위원에게 넘겼다. [ 맞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중심타선이 재대로 힘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조던 짐머맨, 로스 디트와일러가 제몫을 해주면서 선발진들이 안정을 찾았지요. 워싱턴으로써는 정말 아깝지 싶습니다. 한 달만 일찍 투타의 밸런스가 맞아주었다면 최소한 와일드카드는 워싱턴의 차지가 됐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다시 김준형 기자가 받았다.
[ 맞습니다. 참으로 아깝지요. 그런데,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워싱턴과의 6연전이 죽음의 6연전이란 말도 되지 않겠습니까? 애틀랜타나 세인트루이스나 한경기 한경기 중요하지 않은 경기가 없는 상황에서 말이죠. ][ 그렇습니다.
두팀 중 어느 한 팀이든 만약에라도 워싱턴에게 스윕을 당하게 된다면, 치명타라고 봐야 할 테니까요. 이제 겨우 9게임이 남아있는 상황이니, 그렇게 되면 곧바로 탈락이라고 봐야겠지요. ]송재익 해설위원이 김준형 객원기자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한창 기세가 오르고 있는 워싱턴과의 대결은 두 팀 모두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한마디 덧붙였다.
[ 하하하. 이거 두 팀의 단장들 모두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는데요? 경기일정을 왜 이렇게 짜놓았냐고 말이죠. ]그리고, 그의 이말에 결국,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 하하하하하하. "
[ 하하하, 이거 송재익 위원임 말씀을 들으니 기대되는데요? 워싱턴이 고춧가루를 얼마나 재대로 뿌릴지 말이죠. ]이민성 캐스터가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한국의 방송이어서 망정이지, 두 팀의 관계자가 들었다면 기가 찰 이야기였다. 하지만, 방송을 듣는 시청자들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물론 진수도 마찬가지였다.
잠깐의 웃음 후, 이민성 캐스터가 다시 진행을 이어간다.
[ 그럼, 마지막으로 이번엔 이준혁 선수와 개인 타이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죠. 송재익 위원님. 올해 내셔널리그 MVP에 근접해있는 선수들이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 맷 캠프와 라이언 브론, 그리고 우리의 이준혁 선수, 이렇게 3명 정도로 볼 수 있겠지요. 자료 화면이 준비되어있나요? 아. 나오는군요.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경기를 직접 중계하는 방송이 아니다 보니 사전에 대본이 짜여 있었다. 당연히 오늘 방송될 주제로 정해져 있던 이야기였기에 송재익 해설위원의 멘트에 맞추어 내셔널리그의 MVP 후보 3인에 대한 개인 성적이 화면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 먼저 맷 캠프 선수의 성적을 보시면, 리그 4위인 3할2푼4리의 타율에 홈런은 39개로 1위 타점도 129로 1위를 달리고 있고, 도루도 40개로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이언 브론 선수는 리그 2위인 3할3푼2리의 타율에 33홈런 111타점 33도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준혁 선수의 기록을 살펴볼까요? ]앞서 맷 캠프와 라이언 브론 두선수의 기록을 읽어 내리고는, 잠깐의 터울을 주고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송재익 해설위원이었다.
준혁의 기록을 앞선 후보들과 떨어뜨려 조금이라도 잘 들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료화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 보시다 시피, 3할6푼5리의 타율과 108개의 도루는 부동의 1위이고 홈런도 39개로 공동1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앞선 경쟁자들에 비해 타점이 87개로 많이 떨어집니다만, 이것은 1번 타자이기 때문으로 봐야겠지요? ]송재익 해설위원의 말을 받은 이민성 캐스터의 물음표에 이번엔 김준형 객원기자가 답을 한다.
[ 그렇습니다. 맷 캠프나 라이던 브론은 그 팀의 중심타선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이준혁 선수는 그렇지 않죠. 성적만 봐서는 4번 타자 같지만, 1번 타자입니다.
더군다나 올해 이준혁 선수가 기록한 포볼은 151개입니다. 거의 매 경기 하나씩 포볼을 얻어냈다고 봐야하지요. 1번 타자이고 포볼이 많으니 경쟁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타점을 기록할 기회가 적었다고 봐야합니다.
그런 중에도 87타점이나 기록한 것은 대단하다고 봐야할겁니다. ]다시 송재익 해설위원이 설명을 이었다.
[ 맞습니다. 물론 한 가지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준혁 선수나 맷 캠프나 소속팀이 지구 3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라이언 브론의 소속팀인 밀워키는 29년 만에 지구 1위를 달성했지요.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니 만큼 개인의 성적이 가장 우선시 되겠지만, 야구는 팀스포츠입니다.
더더군다나, 다른 타이틀보다 MVP는 팀 성적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준혁 선수의 기록이 워낙 압도적이지 않습니까? 100%는 아니더라도 99.999%는 확정적이다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이민성 캐스터의 단정적인 말에 김준형 기자가 조금은 우스갯소리처럼 대답했다.
[하하하, 맞습니다.
밀워키가 월드시리즈의 우승하고, 거기에서 라이언 브론이 시리즈 MVP라도 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올해도 이준혁 선수에게 돌아간다고 봐야겠지요. ]그러자, 이민성 캐스터도 조금은 농담조로 멘트를 받았다.
[ 아! 그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군요. 이거 밀워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바로 탈락하기를 빌어야 하는 건가요? ][ 하하하. 글쎄요. 그거 밀워키 팬들이 들으면 크게 화낼 말인데요? ]다시금, 방송부스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MVP에 관한 투표가 먼저 이루어지다보니, 포스트시즌의 성적이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것을 모를 김준형 기자가 아니었다.
단지 그만큼 MVP는 준혁에게로 확정된것과 마찬가지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것을 농담식으로 전한것이었다.
물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스포츠기자가 그것도 모르냐라는 욕을 먹을지도 모르는-이야기였긴했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방송부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후, 준혁의 이야기도 이민성 캐스터의 정리에 일단락이 되었다. 주어진 방송 시간이 거진 다 소비되었기 때문이었다.
[ 자, 그럼 오늘의 핫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주간MLB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닌 진수였다.
그는 이민성 캐스터의 코너 소개에 이제 오늘의 방송도 거의 막바지란 것을 알았다.
" 얼른 자야겠다.
리모컨의 전원버튼을 눌러 TV를 끄고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번엔 소파가 아닌, 담요를 깔아놓은 방의 바닥이었다.
' 오전 8시부터였지? '진수는 중계시간을 다시 떠올려보고는 눈을 감았다. 남들 모두 쉬는 일요일에 일한 덕분에 월요일 야구중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건가보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