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011시즌 -- >
" 스트라이크! "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 라는 속설이 있다. 야구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때렸을 때 안타가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은 것이 바로 바뀐 투수가 초구를 던질 때였다. 하지만, 준혁은 투수의 초구는 웬만하면 그냥 흘러 보낸다.
바뀐 투수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와 연습투구를 몇 개 던지는 것을 대기타석에서 지켜보긴 했지만, 그래도 타석에서 보는 것과는 똑같을 수는 없다.
준혁은 다시 한 번 투구 폼과 공을 놓는 타점, 그리고 자신의 타이밍 등등을 살펴본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2구째에 방망이를 돌려본다.
--따악!
--강하고 빠른 타구가 페어라인을 따라 외야로 날아갔다.
점점 오른쪽으로 휘어져서는 공 서너 개 정도 라인 바깥으로 빠지는 타구를 확인한 준혁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삐딱하게 흔들어본다.' 타이밍이 맞았다 싶었는데, 파울이네. '같은 왼손투수라고는 하지만, 앞선 커쇼에 비해서는 한결 편안한 투수였다.
공을 허리춤에 숨겨서 최대한 보여주지 않는 폼도 아니었고, 이중키킹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왼손투수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왼손타자로써의 껄끄러움이란 것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커쇼만큼 짜증스럽지는 않았고 말이다.
볼이 되는 3번째 공을 하나 지켜보고, 4번째 공은 가볍게 밀어 쳐봤다.
--따악--이번엔 3루 베이스 위를 살짝 비켜가는 파울이 되었다.
' 커쇼의 공을 너무 많이 봤나? '30개 가까이 되는 공을 보면서 커쇼의 타이밍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준혁이 느끼기에 한결 편안한 투구 폼인 스캇 엘버트의 공에 오히려 타이밍이 맞지 않고 있었다. 살짝 살짝 어긋난 다라고나 할까? 아무튼 미묘했다.
--따악!
----따악--바깥쪽은 밀어치고, 안쪽은 잡아당겼다. 가상스트라이크존 때문에 들어올 코스를 미리 알고 있는 준혁이기에 가능한 타격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타구가 모두 베이스 위를 통과할 때는 페어였으나, 떨어지는 지점에서는 외야의 페어라인을 살짝 벗어나는 파울타구와 파울 홈런이었다.
" 아. 진짜 안 맞네. "
오늘은 [슈퍼모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타격의 신]특기도 이미 발동된 후였다. 이번타석과 그리고 차후에 돌아올지도 모르는 타석에서는 순수한 자신의 힘 말고는 그 어떤 게임의 도움도 받기는 힘들다고 봐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으로 타구를 보내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운 그였다. 전전 타석에서 홈런성타구가 잡히기도 했었고, 실제로도 중앙펜스는 약 122 m 로 내셔널스파크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었다. 그래서 코너 쪽을 노린 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좌중간과 우중간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더 코너 쪽을 노린 것이었지, 극단적으로 페어라인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게임효과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나 핀 포인트로 페어라인을 타깃 삼아 보낼 재주는 준혁에게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타구들이었다. ' 무서운 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쓰며 타석에 다시 들어서는 준혁을 힐끔 쳐다보는 다저스의 포수 나바로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더불어 준혁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아챘다고 생각했다. ' 페어타구를 작정하고 노리고 나온 거야. 이번엔. '6개의 공을 던지게 하면서, 준혁은 총 4번의 스윙을 했다. 그리고 그 4번은 전부 파울이 되었다.
기록만 봐서는 2스트라이크 이후에 커트를 했구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포수의 자리에서 지며본 준혁의 타구는 커트 따위가 아니었다. ' 수비를 양쪽으로 붙여? 아니야. 그랬다간 오히려 안타를 쳐주세요 하는 꼴이 되고 말거야. '다저스의 감독 돈 매팅리의 마음도 나바로와 같았다.
그도 준혁이 대놓고 페어타구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보였다.
배팅 볼도 아닌 실제 경기에서 그게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우선은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한 개도 아닌 4개나 되는 타구가 전부 페어라인 근처를 살짝 벗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양쪽으로 두 개씩 사이좋게 말이다. ' 그러고 보니, 비디오판독으로 파울로 정정된 타구도 살짝 벗어난 타구였잖아. '거기에다가, 앞선 타구에서 페어를 살짝 벗어난 타구가 안타에서 파울로 정정된 타구를 포함하고도 2개나 더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것도 한방향이 아닌 양쪽으로 날아갔었다. 30개 가까이나 되는 커쇼의 공을 상대한 준혁이었다.
매타석 10개 가까운 공을 상대하다보면 파울이 여러 번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그 파울 중에서 한두 개 페어타구가 될 뻔 한 것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나를 의심하자,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감독이란 것은 생각나는 대로 싸지를 수는 없는 자리였다.
돈 매팅리 감독은 수비코치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 1루수와 3루수를 베이스 쪽으로 붙여보고, 외야수도 양쪽 라인근처로 이동시켜 보는 건 어떨까? "
루상에 나가있는 주자도 없었고, 선두타자였다.
말을 건넨 그도 상식적인 수비위치 변경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은 있었다.
" 감독님. 농담이시죠? "
역시나 그럴 것 같은 대답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비위치였다. 잡아당기기를 좋아라하는 타자에 대비해서 수비를 한쪽 방향으로 당기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루상에 주자도 없고, 노아웃이고 거기다 첫 타자를 상대하면서 양쪽 코너 내야수를 모두 베이스로 붙이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1루-2루간과 2루-3루간이 태평양처럼 넓어져버린다.
'안타를 치세요.'
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었다. 외야수비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준혁은 리그 수위타자였다.
" 계속 페어쪽 타구가 나와서 그러신 것 같은데, 우연입니다.
배팅볼 투수를 상대로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공이 일정한 방향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구질이 똑같은 것도 아닌데, 방향을 노리고 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것도 페어라인에서 공 두서너 개 정확도로 말이죠. 더군다나 준혁 리는 시프트가 먹히는 타자도 아니지 않습니까. "
수비코치 말 대로였다. 특정방향이 많은 타자라면, 그리고 그 방향을 고수하는 타자라면 시프트를 걸면 딱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밀어치기도 잘하는 타자였고, 타구의 방향도 골고루였다.
거기에 왼손투수의 공도 오른손 투수 상대하듯이 때려내는 선수였다. 시프트를 걸만한 건더기가 없었다.
" 우연히 겹쳤을 뿐일 겁니다. 그래도. 좌우 중간에서 조금 코너 쪽으로 노리는 것은 맞아 보이니. 외야수들만 조금 이동시켜 보는 건 어떨까요? 정말 아슬아슬한 페어 안타가 아닌 다음에는 그 정도로 충분할겁니다. "
그래도 감독이었다.
수비에서는 자신이 최고이겠지만, 결정권자는 감독이었다. 너무나 황당한 질문에 농담이냐고 되물었지만,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별말이 없는 것을 보니 돈 매팅리 감독도 자신이 말해놓고도 말이 안 된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감독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있었다.
" 자네 말도 맞아. 그편이 좋을 것 같군. "
돈 매팅일 감독은 수비코치의 수정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 상황은 내야수비위치는 그대로 두고 외야수만 조금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중견수 맷 캠프가 수비 범위는 넓은 편이니 말이다. 그렇게 수비위치를 조정시키고, 덕아웃 앞의 철봉에 기댄 돈 매팅리 감독이었다. 하지만. 단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수비코치를 쳐다보게 된다. 농담으로 치부되었던, 그 자신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싶었던 것이 실제로는 말이 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 이준혁 선수, 이번에도 아까웠지요? ][ 네. 맞습니다. 앞선 오심의 영향 때문일까요? 오늘 시합에서 유난히 페어라인을 살짝 벗어나는 타구가 많네요. ]앞선 3번째 준혁의 타석에서 나온 1루심이 파울이라고 선언했던 타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파울로 선언이 되긴 했지만, 화면상으로는 페어타구에 가깝게 보였던 것이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한 방향에서 바라본 화면밖에 나오지 않다보니, 파울인지 페어인지가 조금 애매하기도 했지만,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중계 진에게는 분명 페어였다. [ 페어 타구를 노리고 치는 것은 아닐까요? ]이민성 아나운서의 질문에 송재익 해설위원은 조금은 엉뚱하다고 생각하며 답을 했다.
[ 하하하. 글쎄요. 그것은 좀 힘들지 않을까요? 실전에서 투수의 투구를 상대로는 말이죠. 한번 정도는 모르지만, 연속해서 계속 페어타구를 노리고, 또 그것을 페어지역으로 보낸다는 것은 말이죠. 이준혁 선수라면 가능하지도 않겠냐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조금은 힘들다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이준혁 위주의 편파방송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단정을 짓지도 않는 송재익 해설위원이었다. ' 설마....? '라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순간 스캇 엘버트의 7구째에 준혁의 방망이가 다시 돌아갔다.
--딱--[ 이준혁 선수, 잡아당겼습니다. 오른쪽 깊숙한 타구. ][ 이번에도 페어라인 쪽인가요? ]송재익 해성위원의 말대로 이번에도 페어라인 쪽이었다.
[ 들어가나요? 들어가나요?... 들어갑니다. ] [ 들어갔어요. 이번엔 들어갔어요. ]1루심이 오른손으로 페어라인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드디어 나온 '페어'시그널이었다. 그라운드 잔디에 떨어진 공은 파울라인 바깥쪽으로 굴러갔다.
안드레 이시어가 급히 공을 잡으러 달려왔다.
그리고, 공을 잡아 2루로 던지는 순간, 이준혁은 이미 2루베이스를 찍고 있었다.
[ 이준혁은 2루...2루 돌았습니다. 3루, 3루까지 갑니다.
3루 까지 여유 있게 들어가는 이준혁 선수입니다. ]이민성 아나운서의 말처럼, 준혁은 슬라이딩으로 3루베이스에 들어가고 있었다.
2루수인 제이미 캐럴이 안드레 이시어의 공을 받아 중계플레이로 던졌지만, 준혁의 발이 더 빨랐다.
더군다나, 공도 정확하지 않았다.
우측으로 치우쳐버렸다. 3루수 후안 유리베는 공을 잡기 위해 베이스를 버리고 이동했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공이 그라운드의 흙을 맞고 튀겨 오르며 뒤로 빠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공이 그대로 빠진 것이 아니라, 유리베의 몸을 맞고 굴절되다보니 백업을 들어온 투수 스캇 엘버트까지 역동작이 걸리고 말았다. [ 앗! 볼이 뒤로 빠졌어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더라면, 못봤을것이다. 하지만, 밴트 래그 슬라이딩을 시도한 준혁에게는 그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런 틈새를 놓칠 준혁이 아니었다.
스캇 엘버트는 자신의 뒤로 굴러간 공을 줍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쫓아가서 공을 잡고는 홈의 포수를 향해 던졌다. [ 이준혁 선수 홈까지 내달립니다.
홈에서 홈에서... 세이프 됐습니다. 이준혁! 홈에서 세이프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준혁의 발이 공보다 빨랐다.
" 세이프!!! "
주심을 보고 있던 게리 세더스트롬의 양팔이 지체 없이 바깥쪽으로 휘저어지고 있었다.
" 우와아아아아~~~!!! "
" 리! 리!! 리이~!!! "
준혁의 홈러쉬에 내셔널스 파크가 떠나가라 함성이 야구장을 뒤흔들었다.
관중들은 이 경기를 보기위해 지불한 비싼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경기를 보러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초반을 달군 양 팀 에이스들의 팽팽한 투수전. 그 사이에서 터져 나온 화끈한 한방. 선취점과 역전 그리고 재역전... 그리고 경기의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다가가며 터져 나온 준혁으로 시작해서 준혁으로 끝난 달아나는 점수의 화끈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바로 홈팀인 워싱턴이 앞서나가고 있다는 사실까지. 정말 경기를 볼 맛이 났다. 재밌었다.
왜 워싱턴의 일간지들이 일제히 오늘 있을 경기에 대해서 기사를 쏟아냈나 싶었더니,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 이준혁 선수. 그라운드를 돌아 홈까지 파고들었습니다.
한 점 더 추가하면서 점수는 4대 2가 됩니다. ]다시 한 번 준혁의 득점을 확인한 이민성 아나운서는 옆을 보면서 물었다.
[ 원히트 원에러 로 봐야겠죠?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공을 후안 유리베가 실수한 것이 명백했다. 하지만, 그라운드 홈런(장내홈런/KBO의 명칭)이라 기록되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기록원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 네.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메이저리그의 명칭)이 아니라 원히트 원에러로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그렇다고 해도 이준혁 선수 정말 빠르지 않습니까? ][ 맞습니다.
이준혁 선수, 체력이 좋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저렇게 전력질주를 3루까지 하고 슬라이딩 까지 했습니다만 전혀 스피드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홈에서도 여유가 있었어요. 웬만한 선수는 저렇게 못합니다. 뛰다가 제풀에 지쳐버려요. ]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다시 보기 화면은 어김없이 나오고 있었다.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에 준하는 활약이었다. 리플레이가 안 나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 정말 그렇군요. 와아 스피드가 죽지 않았군요. 대단합니다. 이준혁 선수 마라톤 나가도 되겠어요. ]슬라이딩 후, 곧바로 일어나자마자 홈으로 내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송재익 해설위원이 부연설명을 곁들인다.
[ 자, 보십시오. 슬라이딩을 하면서도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잖습니까? 보통 선수였다면 3루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준혁선수 거기에 만족할 선수가 아니에요. 저 찰나의 순간에 3루수와 백업 들어온 투수의 위치, 공이 굴러가는 방향까지 확인한 겁니다. 이준혁 선수에게 저런 틈을 보인다는 것은 그냥 점수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송재익 해설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민성 아나운서가 궁금한 점이 있다면서 말했다.
[ 그런데, 이번에도 페어타구였잖습니까? 정말 이번에도 우연일까요? ][ 글쎄요.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답하기 힘들군요. 5번이나 연속으로 페어라인 가까이 타구를 보낸다는 것을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기엔 힘들겠죠. 하지만,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라면, 이준혁 선수의 타율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높았겠죠?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투수의 투구를 페어라인에서 공 서너 개 오차로, 그것도 한 타석에서 5개나 때려낸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보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제 이것은 준혁이 의도해서 그렇게 된 것이냐? 아니면 의도치 않았으나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냐 라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은 당사자만 알 일이었다.
[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겠죠. 이번타석에서 이준혁 선수가 범인은 보여줄 수 없는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줬다는 사실 말입니다. ]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지다 보니, 정말 그러한 듯 느껴졌다.
이것은 옆자리에 앉은 이민성 아나운서, 방송부스 주변의 스태프들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준혁도 원해서 그런 타구가 연속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커쇼의 공을 접하고 거기에 적응이 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스캇 엘버트의 편안한(?) 투구 폼에 미묘하게 어긋났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연속 페어라인 근처 파울이 설명되진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도 왜 그런지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이 되겠는가? 한마디로 꿈보다 해몽이라고 봐야했다. 송재익 해설위원은 평소 정확하고 사실적이면서 해박한 야구지식으로 정평이 나있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준혁에 대해서라면 자신의 해설에 자신이 빠져서는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시청자들은 이런 그의 해설을 최고라며 연일 방송국의 게시판에 칭찬 릴레이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 준혁의 허슬플레이 한방은 귀중한 추가득점을 얻을 것 이외에도 바뀐 투수 스캇 엘버트의 평정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것은 한껏 기분이 하늘에 닿아있는 대니 에스피노사의 연타석 홈런으로 연결이 되고 말았다.
이 2점이 그대로 경기 끝까지 굳어졌고, 워싱턴은 5대 2로 후반기 첫 시합을 승리로 가져갔다.
그리고, 경기의 MVP는 대니 에스피노사에게 돌아갔다. 결승타점을 역전홈런으로 기록했고, 연타석 홈런까지 때려냈다.
더군다나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에게로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편인 다저스의 돈 매팅리 감독은 안다.
진정한 MVP가 누군지, 그리고, 준혁을 진루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말이다. 워싱턴의 중심타선이 아직까지는 얌전해서 망정이지, 그들까지 달아오르게 된다면 메이저리그 최강의 공포의 타선이 될 것이라는 예감마저 들었다.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한 선발진만 안정이 된다면... NL동부지구는 파란이 일어나리라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