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1올스타브레이크 -- >
오후 5시, 2011시즌의 올스타 홈런더비가 시작되었다.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데이비드 오티스를 필두로 맷 할러데이, 리키 윅스, 로빈슨 카노 가 나섰고, 내셔널리그에서는 프린스 필더, 호세 바티스타, 맷 캠프,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나설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제외한 올스타에 뽑힌 선수들은 모두 관전모드로 돌입했다.
로이 할러데이와 클리프 리는 선수들을 위해 이날 특별히(?) 구장 안으로 반입이된 기다란 의자에 사이좋게 앉아서는 팔로 턱까지 괴며 날아가는 타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팀 린스컴이 이쑤시개를 입에다 물고는 있었다.
클레이튼 커쇼와 조이 보토는 아예 1루 측 파울지역의 잔디위에 두 다리를 쭉 벗고는 반쯤 몸을 눕히고는 아주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준혁도 타석에서가 아니라 관중의 입장으로 날아가는 타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1루 베이스 박스 석에 기대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가 기대어있는 바로 뒤에는 젠과 예리엘이 앉아있었다는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 본래 라면 준이 저기 서있어야 했었는데, 아쉽진 않아요? "
리엘의 말에 막 팬들에게 막 싸인을 해준, 준혁이 웃으며 말했다.
" 하하. 글쎄. "
전반기의 성적, 그리고 전년도에 보여주었던 엄청난 비거리를 생각하면 이렇게 관전모드로 있는 것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준혁이었다. 불과 30분전에 있었던 FOX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질문이 빠지지 않았었다.
" 그래도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큰 부상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무리해서 좋은 것은 없잖아요. 그리고 홈런더비에 참가했던 많은 선수들이 후반기에는 성적이 하락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무리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루쯤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
" 어. 그래?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
홈런더비 이후 선수들이 컨디션에 애를 먹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준혁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예리엘의 입을 통해 나올 줄을 몰랐기에 관심이 갔다.
" 인터넷 기사에서 읽었어요. 2005년도의 바비 어브레이유, 2006년도의 데이빗 라이트, 그리고, 2007년도 홈런더비 우승자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이들 모두 후반기에 타격슬럼프로 한동안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준혁도 마찬가지잖아요. 후반기 시작하고 얼마동안 애를 먹기는 말이에요. "
2007년도라면 준혁이 마이너리그에서 아등바등할 때였다.
더군다나 회귀도 2010년도로 했기에 2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였다. 2007년도 우승자는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그 앞에 선수들은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아니 아예 모른다고 하는 편이 나을듯 했다.
그래도 한가지, '홈런더비 후유증'이란 말이 각종 매체에서 인용되어진다는 것 만은 알고 있었다. 이 말은 홈런더비에 참가했던 타자가 후반기에 부진한 모습을 보여줄 경우 붙는 고유명사와 비슷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홈런더비가 홈런을 얼마나 많이 날리냐 라는 게임이다 보니, 참가한 선수들이 풀스윙을 할 수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그 타자의 고유의 타격 밸런스에 영향이 생길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을 근거로 홈런타자들이 자의반 타의반(팀의 만류등)으로 홈런더비에 참가를 꺼리기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첫 번째 순서로 나섰던 내셔널리그 대표인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1차 시기에서 9개나 되는 홈런을 날리고는 타석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온 선수는 로빈슨 카노. 한해도 홈런 30개를 넘겨본 적이 없는 선수였지만, 올해 전반기에는 17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페이스는 괜찮았고, 거기에 올해부터 바뀐 홈런더비 선수 추천방식으로 인해 데이비드 오티스의 추천으로 참가한 선수였다.
그리고 그도 곤잘레스에 버금가는 8개의 홈런을 날리며 홈런더비 시작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반기 31개나 되는 홈런을 날린 호세 바티스타가 겨우 4개를 기록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나며, 2라운드에는 애드리안 곤잘레스와 로빈슨 카노, 그리고 각각 5개를 날린 데이비드 오티스, 프린스 필더.... 이렇게 4명이 올라갔다.
2라운드도 곤잘레스와 카노의 독주였다. 그 둘은 각각 11개와 12개의 홈런을 날리며 1-2라운드 합산 20개를 기록했고, 오티스와 필더는 이름값이 아깝게 겨우 4개만을 기록 앞선 두선수가 기록한 홈런이 절반도 때려내지 못하며 탈락했다.
" 빅 파피. 올해는 영 실망인데요? "
조금은 뚱한, 그러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한 오티스에게 다가간 준혁은 그의 옆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그가 서 있던 곳과 오티스가 모든 라운드를 마치고 물러나있던 자리가 멀지 않다보니, 몇 걸음을 옮길 필요도 없었다.
" 어~. 준. 네가 없으니까 영~ 흥이 나야지 말이야. 하하. "
" 어 그래요? 저야 영광이지만, 저기 두 사람이 들으면 실망이겠는데요? 하하하 "
" 그런가? 뭐 저기까지 들릴 리는 없잖아. 너만 입을 다물어준다면 말이지. "
라면서, 오티스가 갑자기 헤드 락을 걸어왔다. 장난이었지만, 워낙 덩치가 좋다보니, 준혁은 그대로 그의 팔에 갇히고 말았다.
"으 가갸갸갸~. 알았어요. 알았어요. "
곧바로 약속을 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던 준혁은 ' 아이구 목이야' 라며 한참을 엄살을 떨며 오티스를 쳐다봤다. 준혁과 오티스는 띠동갑 나이였다.
거기에다가 결코 인상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그가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작년 홈런 더비 때의 인연이 있다지만, 인터리그때나 되야 보스턴과 만날 수 있었고, 그때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는것 그 이상은 없었다.
' 하지만, 몇 번 만나본것이 다인것 치고는 꽤나 살갑게 군단 말이지. '준혁은 젠이 자신에게 부여해준 호감스런 분위기란 것이 여자들만이 아니고, 남자들에게도 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메이저리그가 여러 인종들이 섞여있다고는 하지만, 남미는 남미 선수들끼리, 미국본토 선수들은 그들끼리 ... 한마디로 끼리끼리 노는 것이 존재했다.
당연히 소수 인종의 선수들은 은근히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실력만 있으면 다 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런, 오티스의 별명처럼 큰아빠 같은 미소는 젠이 준혁에게 만들어준 '호감도 플러스 몸'이 아니라면 설명이 힘들다고 봐야지 않겠나싶었다.
동성이라도 첫인상부터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들어가는 것은 하등 나쁠 것은 없는 일이었다. 그 정도의 강도만 강하지 않다면...
" 으으으~... "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상상하고 말았다.
하트를 날리는 오티스를 ...
" 으윽!... "
"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
" 아. 아뇨. "
준혁의 미소가 조금은 어색했나 보다. 오티스가 어깨가 안 좋다더니, 조금 전 장난을 걸때, 조금 무리가 간 것 아니냐며 물어왔다.
" 아뇨. 괜찮아요. 전혀! 전 오히려 나보다는 오티스가 걱정인데요. "
준혁의 말에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던 오티스는 곧 그 의미를 알고는, 시선을 홈런더비가 벌어지고 있는 쪽으로 돌리며 말한다.
" 너도 이야기 들었냐? "
7월 달 들어오자마자, 그가 친타구를 다리에 맞았는데 부위가 좀 좋지 못했던 듯, 그 이후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팀에서도 홈런더비에 나서는 것을 만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준혁은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낸 것이었다.
" 네. "
" 그랬다면, 더더욱 너도 나왔어야지. "
" 아시잖아요. 전 오티스와 달리 이제 겨우 2년차잖아요. 하라는 데로 해야지요. 별수 있나요. "
" 허긴, 그렇긴 하다.
자신과 같은 베테랑이 아닌, 신인급선수들에겐 아무래도 팀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연봉조정권도 없는 1-2년차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테랑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21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올해로 벌써 35이란 나이를 먹고 있었다.
세월은 역시나 그를 비켜가지 않은 듯, 확실히 요 몇 년간 성적이 계속해서 좋지 않은 오티스였다.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끊고 난 이후, 한물간 타자가 아니냐는 말도 은연중 나오고 있었다.
" 자존심 이겠지. "
" 네? "
" 아직 이 오티스가 죽지 않았다는 자존심 말이야. 작년 네 녀석하고 홈런더비 결승전을 할 때는 그걸 느낄 수 있었거든. 나는 기네스신기록까지 기록한 홈런타자도 이길 수 있다는 그런 것 말이지. "
오히려, 해바라기씨 과다복용으로 준우승을 한 것이 오히려 오티스가 그를 좋게 보게 된 계기였던 것이었나? 준혁은 괜히 발칙한 상상을 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 그 이야기 사실이야. 아직도 맞은 부위가 조금은 안 좋아. 하지만, 160여경기나 되는 한 시즌을 치르다보면, 자잘한 부상 하나도 달지 않고 시합에 나서는 건 불가능 하다는 건 알잖아. 안 그래? "
오티스의 말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거의 부상 없이 시즌 전반기를 마친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봐야할 정도로 거의 모든 선수들은 자잘한 부상은 안고 있다고 봐야했다.
" 내 판단으로는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그래서 쉰다고 돌아온다는 보방도 없잖아? 그리고 무조건 쉬는 것보다는 홈런더비에 나서서 다시 한 번 살아있다는 것을, 나는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만의 치기랄까... 그것도 있었고 말이지. 네 녀석이 안 나오는 바람에 오히려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만. "
" 죄송해요. "
왠지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준혁을 보며, 오티스가 어깨를 주먹으로 툭하고 친다. 그리고는 급하게 사과를 한다.
" 아차! 미안! 어깨 다쳤다고 했지? 혹시 다친 쪽? "
오티스의 호들갑떠는 모습에서 급조된 연기가 티가 팍팍 났다. ' 네~에. 다친 쪽 맞습니다요. '이미 다 나아서 아무렇지 않은 어깨였지만, 괜히 미안해했다는 마음은 살아지지 않는 준혁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한 가지 사실도 더 알 수 있었다.
오티스도 생각보다 뒤끝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악의는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 워어~ 곤잘레스 저녀석 오늘 힘이 넘치나 본데? "
그의 말마따나, 애드리안 곤잘레스는 3라운드도 11개나 되는 홈런을 날리고 타석을 로빈슨 카노에게 넘겨주고 있었다.1-2라운드 20개나 되는 홈런을 때려내고도 11개라니... 적지 않은 숫자였다.
"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빅파피는 누가 우승할 것 같아요? 아니 누가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
아쉽지만 올해 홈런더비 결승에 나선 두 선수는 모두 아메리칸 리그의 선수였다. 거기에다가 곤잘레스는 같은 팀 동료, 카노는 같은 나라의 후배였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준혁은 이미 답을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도미니카 공화국 선수들의 대부라 불리는 오티스니까 말이다.
" 글쎄? 둘 중의 한명의 이기지 않겠어? 우승자가 결정되면 그 선수였다고 말하지 뭐. "
" ... ... "
대답이 참.... 억지스러웠다. 오티스 답다라고나 할까? 아무튼 홈런더비의 우승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이 났고, 우승자는 12개를 때린 로빈슨 카노였다. 그렇게 홈런더비의 날은 저물었다. 그리고, 올스타 브레이크의 메인이벤트인 올스타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