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37화 (137/309)

< -- 2011올스타브레이크 -- >

준혁은 체이스필드의 실내연습장에서 운동을 하려던 계획을 바꿨다.

어젯밤, 호텔의 지하 바에서 들었던, '모래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는 이야기의 결과치고는 차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거리의 상태가 상당히 양호했기 때문이었다.'

응? 여기에 공원이 있었네? '게다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 오늘은 안 더운가? "

피닉스의 한여름은 한창 더울 때는 섭씨 45도, 가장 선선한 시간인 아침에도 30도의 기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조깅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생각보다는 괜찮은 날씨인가 싶은 착각마저 들었다. 준혁은 차를 공원 옆의 주차장에다가 세웠다.

호텔을 나서면서 자신도 그렇게 덥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뛰는 것보다는 주위풍경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비록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뛰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운동복으로 입고 나온 터라, 따로 준비할 것은 없었다.

준혁은 그저 스포츠고글을 쓰고, 목에 스포츠타월하나를 두르고는 앞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어오면서 봤던 안내표지판의 내용처럼, 가까운 곳에 큰 호텔이 있어서 그런지 공원은 정비가 잘되어있었서 조깅하기에도 편했다.

결코 시원한 날씨는 아니어서 꽤나 땀이 났지만, 본래 흘리려고 했던 것이었고,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지기 까지 했다.

' 허, 이거 괜찮은데? '본래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긴 했지만, 한국으로 치면 지금쯤이면 낮최고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릴 때였다. 결코 아침기온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꽤나 견딜만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럭저럭 햇살을 가려주고 있는 구름들도 한몫 한다 싶었다. 그렇게 한차례 뛰고나서는 공원에 설치된 음수대에서 물을 마시며, 숨을 고르고 있는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두 명의 여성이 음수대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둘 다 꽤나 키가 큰 여성이었는데, 꽤나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날씨를 생각한 듯 긴 소매와 바지였지만, 타이트하게 붙은 레깅스차림은 운동을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운동복 차림은 두여성의 체형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거기에 더해서 두 사람의 체형과 피부색이 대조적이다 보니 저절로 눈길이 갔다.

흑인여성은 꽤나 호리호리한 몸매였고, 백인여성은 상당히 글래머러스했다. ' 어?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아래의 얼굴이 상당히 눈에 익었다.

워싱턴이라면 몰라도 여기 피닉스는 원정경기가 있을 때나 들리는, 일 년에 몇 번 오지 않는 곳이었다. 당연히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준혁은 조금 더 자세히 보기위해, 스포츠고글을 벗었다.

그 순간, 백인여성이 반가운 듯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 준혁 리. 운동 하는 중인가봐요? "

" 아~. 케이트? "

그 목소리에 준혁도 눈앞의 여성이 케이트 이튼이란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살짝 미소를 짓는 모습에 준혁의 입가에도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케이트 이튼은 매니저와 함께 호텔의 도어맨이 문을 열어준 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 멜라니,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 더 보고 가면 안 될까요? "

" 내일 중요한 화보촬영이 있다는 것 알잖아. "

" 아니면 오늘 밤 늦은 비행기 편으로 가도 되지 않나요? "

케이트의 이야기에 매니저인 멜라니 오키프는 살짝 인상을 지어본다.

그녀의 말대로 늦은 밤비행기를 이용한다면, 다음날 스케줄에 맞추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 일하긴 힘들다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더군다나, 오늘도 정식스케줄은 없지만, 내일을 위해 준비시간을 가져야했다.

" 안돼요. "

단호한 한마디였다.

그 말에 케이트도 조그마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솔직히 그녀도 자신의 말이 억지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케이트의 모델경력은 짧지 않다.

15살 때부터 시작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미 12살 되던 해에 세계적인 모델에이전시인 트럼프모델메니지먼트로부터 모델을 제의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초 드디어 SI(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의 썸머수영복컬랙션 사진을 찍으면서 확하고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게스의 모델까지 따라왔다.

그런 인기에 힘입어 MLB올스타전 연예인소프트볼에 초대되기까지 했다.

굳이 회사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케이트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를 한다고, 가슴으로까지 아쉬움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그녀들이 탄 차는 스카이하버 공항이 목적지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묵었던 호텔과 공항의 중간에는 오늘오후 올스타 홈런더비가 열리는 애리조나 D백스의 홈구장인 체이스필드가 위치해 이었다.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구장의 모습이 차창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고, 케이트는 그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매니저인 멜라니 오키프의 입가가 묘해졌다.

" 준혁 리 가 그렇게나 마음에 들어? "

" 네? "

매니저의 말에 작지 않은 케이트의 눈이 더 커졌다.

" 준혁 리 때문에 오늘 올스타전 홈런더비를 보고 가자는 것 아니냐고. "

" 아... 아니에요. 오늘 홈런더비에 참가하지도 않아요. 어깨부상 때문에. "

케이트의 말에 멜라니의 작은 눈이 더욱 작아졌다. 초점을 그쪽으로 맞추고 있어서 그런지 케이트의 자세히 알고 있는 대답이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다.

물론 야구마니아라서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녀가 아는 케이트는 야구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농구를 훨씬 더 좋아하는 아가씨였다.

" 그래? 그럼 정말 홈런더비가 보고 싶었다는 거네? "

" 그럼요. "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하는 케이트를 보니 더욱 확실하다 싶었다. 그래서 멜라니 오키프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 미국인이 아닌 동양인이란 것이 마이너스이긴 하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이니까 말이야. 빅리그 등장과 함께 2년 연속 올스타선정. 부상만 없다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력한 MVP후보. 스타성도 충분하고, 동료선수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고. 장래 대박계약도 맞아놓은 당상이고 ... 이미 금발의 여자 친구가 있다라고는 하지만, 결혼을 한 것은 아니니 흠이 될 일은 아니니까. '그녀도 어제 야구장에서 케이트의 지근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미 케이트가 준혁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단순 호감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공원에서 그녀와 같이 있다가 준혁을 마주쳤을때의 케이트를 옆에서 본 느낌은 호감보다는 분명 윗단계의 느낌이었다.

' 솔직히, 준혁 리 선수가 호감 가는 인상이긴 하니까. '분명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훈훈하다라고나 할까? 준혁의 얼굴을 떠올리자 멜라니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렸다. 물론 자신은 케이트와 같은 감정은 아니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걸리기는 케이트도 마찬가지였다.

'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를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에는 막 조깅을 돌고 난 직후라고 했다.

향기가 나더라도 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 향이 나쁘진 않았다.

단순히 그녀의 마음때문일수도 있었다.

뭔가 그리운... 그리고 가까울 것만 같은 느낌이었고, 설렘이었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하기엔 그녀 자신도 애매했다.

그 정도의 가슴 떨림은 아니다 싶었다. 분명 관심이 가기는 하지만.... LOVE는 아닌 LIKE에 가깝다고나 할까? 물론 이것도 확실하진 않다.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두 여인은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멀어져 가는 체이스필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준혁은 체이스필드에서 올스타에 뽑힌 동료들과 함께 합동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투수 조는 투수 조끼리, 야수 조는 야수 조끼리 서로 뭉쳐서 간단한 몸 풀기 훈련과 토스훈련등을 소화했다. 그리고는 시간이 나면 팬들을 위해 사인을 해주었다.

모두들 올스타에 뽑힌 선수들이라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추천 선수가 아닌 팬 투표에 의해 뽑힌 선수들은 더욱더 대단했다.

" 리! 사인 좀 해줘요! "

모든 훈련을 마치고, 그라운드를 산책하고 있던 준혁의 귀에 꽤나 앳된 어린이 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팬들의 사인요청에 관대한 준혁이었지만, 어린이 팬들에겐 더욱 관대하다보니, 듣자마자 몸이 움직였다. 그렇게 다가가다 보니 옆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봤더니, 바로 필라델피아의 '클리프 리' 였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 클리프 리? 사인해주러 온 거에요? "

" 그럼, 꼬마 친구가 부르는데 와야지. 그런데 자네도 온 거야? "

" 네. 저도 '리' 잖아요. 하하하. "

준혁의 말에 클리프 리도

' 아하.'

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웃었다.

준혁의 말대로 정말 두 사람 모두 '리' 였다.

" 그러고 보니 그렇군. 그럼, 꼬마친구. 누구 사인을 받고 싶어? "

라며, 클리프 리는 조금은 짓궂은 미소를 띠며 둘 중의 누군가를 불렀을 10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애를 보며 물었다.

그 질문에 옆에 있던 준혁도 궁금해졌다.' 정말 누구의 사인을 받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꼬마는 씩씩했다.

감정표현에 솔직한 아이답게 두 명의 올스타의 관심을 받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채 씩씩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준혁과 클리프 리는 서로의 얼굴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어야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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