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33화 (133/309)

< -- 2011올스타브레이크 -- >

준혁이 나가고 난 후, 다시 거실로 내려와 이리 저리 TV채널을 돌리던 젠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노트북 하나를 들고 나온다.

그것을 탁자위에 올려놓고는, 예리엘이 아침 일찍 내려놓은 커피를 잔에 반 정도 담아서는 소파로 돌아왔다.

올스타전 시합이 이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인터넷에 연결하자, 거기에 관한 기사들이 화면이 매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그녀도 준혁과 그리고 예리엘과 함께 올스타전이 열리는 애리조나 주의 주도 피닉스에 갈 예정이다 보니, 자연히 그 기사들에 눈길이 갔다.

일정을 살펴보니, 마이너리그의 올스타전인 '퓨처스게임'은 오늘 1시경에 열리고, 그것이 끝난 늦은 오후부터 소프트볼 대회가 열렸다.

내일인 12일 늦은 오후에 홈런 더비가 예정되어있었고, 메인이벤트인 올스타게임은 그 다음날인 13일 오후 5시로 잡혀있었다.

작년과 비교해서 프로그램 자체는 바뀐 것이 없었다.

뭐... 솔직히 일 년 사이에 바뀌어봐야 얼마나 크게바뀌겠냐마는... 그래도 그중에 젠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 소프트 볼 대회라.... "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늦게 경기장에 도착하는 바람에 소프트볼 경기는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출발이 경기가 열리는 다음날이라 볼 수가 없다.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보려고 한다면 못고는 것은 아니지만...

" 재미있을 란가? 으음... "

대충 기사와 작년의 사진들을 보니, 메이저리그의 은퇴 노땅들과 연예인들이 함께 소프트볼 경기를 하는것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닌 걸로 보였다. 젠의 눈에는 단순히 팬서비스차원에서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정도로 보였다.

" 별것 없네. 그냥 내일 가서 홈런더비나 봐야겠다. "

올해는 준혁이 홈런더비를 참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일 있을 올스타전을 위해 팀 전체훈련도 예정되어 있다 보니, 다들 응원 반 구경 반의 마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야구장에 나간다고 한다.

젠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 홈런타자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결하는 것이다 보니, 은근 보는 맛이 있었다.

이렇게 젠은 애들 장난 같아 보이는 소프트볼을 시간 낭비라 생각하며, 인터넷 창을 하나 둘씩 닫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떤 여성의 사진 한 장에 마우스를 멈췄다.

처음볼때는 기사에 신경을 쓰느라 사진 등은 건성으로 넘겼었는데(비슷한 사진들이 많다보니), 지금처럼 창을 하나하나 닫기 시작하자 의외로 눈에 띈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뭔가 묘한 점이 느껴졌다.

" 호오~. 이건?..."

그녀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와 함께 다시금 손가락이 빨라졌다. 그러다가 아예 노트북을 들고는 그녀의 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의자에 앉아 데스크톱에 접속한 젠은 방금 전 본 여성에 대한 웹문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름 유명세가 있는지, 곧바로 그녀에 대한 이미지와 동영상, 그리고 기사, 문서 등등을 열람할 수 있었다.

" 뭔가 묘하단 말이야. "

사진속의 모습이라 그런지, 확실하게 이거다라는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시선이 끌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 그래 보러가는거야. 이 여자애도 가는 김에 확인도 해볼 겸 말이야. "

본래는 느긋해도 아주 느긋했는데, 이렇게 되니 시간이 빠듯해졌다.

비행기 편도 수배해야하고, 표도 구해야한다. 지금 시각 오전 10시. 4시간 뒤면 퓨처스게임이 열리고, 그다음 대략 저녁6시쯤에는 연예인소프트볼시합이 열릴 것이다.

보통사람이었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젠에겐 .... 글쎄? 잠시 후면 알게 될 일이다.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해리스 기자의 말마따나, 꽤나 긴 인터뷰이긴 이었나보다.

10시에 약속을 잡았었는데, 레스토랑을 나서고 보니 12시가 다되어간다. 더군다나 꽤나 많은 말을 해서 그런지, 간단한 디저트를 먹어가면서 인터뷰에 응했음에도 배가 조금은 고픈 듯 했다.

' 젠하고 밥먹으러나 나갈까? '내일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었고, 오늘의 유일한 약속이었던 인터뷰까지 끝낸 터라 시간은 널널했다. 준혁은 오랜만에 플러싱의 한식당에 가서 냉면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준~. "

그런데, 젠과 둘이서만 먹으러 갈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지금 회사에 있을 텐데, 왠 예리엘 목소리지? "

의아해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때... --빵~!

--갑작스런 경음기 소리까지 들려왔다.

준혁은 놀라며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어디선가 많이 보던 차가 서있는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 차의 앞문 유리창이 내려진 사이로는 예리엘의 얼굴이 보이기까지 했다.

" 어?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

준혁은 놀라움에 물었다. 차는 젠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리엘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대신 문이 열렸다.

' 야! 타! '그로부터 수시간뒤... 연신 눈을 깜빡이며 준혁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특유의 로고를 가운데 둔채, 그 양쪽으로 '체이스 필드(chase field)'라는 영문자가 위치해 있었다.

" 정말, 우리가 올스타게임이 열리는 경기장 앞에 서있는것 맞지요? "

예리엘도 믿기지 않는 듯 준혁에게 물었다.

" 그런 것 같은데. 간판이 체이스 필드잖아. "

" 그러네요. 맞네요. "

그때, 젠의 조금은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해?! 야구장 첨봐? 촌놈 도시구경 놀이는 그만하고. 어서 티켓부터 바꿔야지. "

그말에 두 사람은 조금은 앞서 걸어가는 젠을 보고는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 촌.. 놈 놀이? "

" 촌... 놀이라구요? "

" 풋! "

" 하하하. "

젠의 말대로 정말 촌놈놀이를 하긴 했다.

싶었다. 잠시라고는 하지만, 두사람 다 멍하게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도저히 이 시간에 여기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내일 출발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예리엘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비행기 표도 내일날짜로 끊어놓았었다. 오늘은 여기 올 생각도 안했다는 말이었다.

젠이 예리엘의 회사에 들려 그녀를 태우고 난 다음, 준혁을 '야타'라며 태우러왔던 시각이 낮 12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 준, 젠이 운전을 잘하는거에요? 아니면 차들이 다 양보운전을 해주는 건가요? 게다가 신호도 정말 잘 맞아떨어지네요. "

그녀의 말대로 도로의 차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그들이 타고 가는 차가 접근하기 무섭게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의아한 것이 당연했다.

" 그러네. 이런 날도 있네. "

예리엘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과 말에 준혁은 자시도 신기하다라며 맞장구를 쳐주었었다.

솔직히 준혁은 누가 무슨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옆자리 운전석에 앉은 젠이란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젠이 술수를 부려서 길이 뻥뚤리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알았다. 이렇게 그들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탑승데드라인인 출발20분전에 가까스로 세이프를 하고 젠이 구해놓은 표로 비행기에 타고 나서야 애리조나 피닉스의 공항까지 비행시간이 5시간 30분이나 된다는 것을 알았다.

" 이거, 아무리 빨리 야구장에 도착하더라도 7시는 되어야겠는데요? "

" 걱정 마. 시차 때문에 4시 30분이면 도착해. "

" 아! 맞다. 그러네요. "

준혁은 젠의 말을 듣자, 바로 워싱턴과 피닉스가 2시간의 시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애리조나 주의 주도 피닉스의 공항을 나선 시각이 오후 5시였고, 퓨처스게임이 이제 막 끝나간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지금 그들이 여기,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인 체이스필드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었다.

" 뭐해? 빨리 오라니까. "

앞서가던 젠이 서서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 알았어요. 갑니다. 가요. "

대답을 한 준혁은 예리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야 젠의 정체를 아니까, 그러려니 하고 말지만, 회사에서 일 잘하다가 갑자기 불려나온 얘는 얼마나 황당할까 싶었다. 준혁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 그럼 들어갈까? "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티켓을 바꾼 후, 준혁은 젠과 예리엘을 먼저 보냈다.

이왕 온 김에 왕년의 스타들에게 인사라도 할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온 마당에는 그리하는 것이 모양새도 좋았다.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이다 보니, 큰 어려움 없이 곧바로 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막 끝난 퓨처스 경기를 뒤로한 채 그라운드를 정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라운드 외야중간쯤에는 따로 펜스를 설치하고 있었는데, 물어보지 않아도 소프트볼시합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준혁의 목적지인 오늘의 시합을 위해 뽑힌 선수들(?)도 대부분 덕아웃 근처에서 놓아둔 의자에 앉아있거나, 잔디위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오오~. 이거 누구야? "

다가가자, 맨 먼저 그를 발견한 피아자가 아는 체를 해온다. 작년 올스타전때 작은 안면이 있어서 그런지 꽤나 반갑게 맞아주었고, 덕분에 준혁도 편하게 인사를 건낼수 있었다.

" 안녕하세요. "

" 홈런더비는 내일일 텐데, 어쩐 일이야? 아참! 올해는 참가 안한다고 했지? "

어깨가 좋지 않아,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을 떠올린 피아자는 몸은 어떠냐며 물어왔다. 준혁도 '덕분에' 나아지는 중이라며 대답했다. 그러자, 피아자는 홈런더비도 참여 안하는데, 너무 빨리온것 아니냐며 물었다.

" 누나가 소프트볼시합을 보고 싶다고 해서요. 그리고 저도 인사도 할겸 겸사겸사 해서... "

준혁이 대답하자, 마이크 피아자는

' 그래? 잘 왔다.'

라며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준혁이 그라운드로 들어서기 무섭게 카메라맨이 따라붙다보니, 그의 모습은 곧바로 체이스필드의 전광판에 비춰지게 되었다.

" 우와아아~~"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납치된 덕분에 준혁은 그대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항상 야구유니폼만 입고 있던 모습만 보다가 새로운 모습을 봐서인지 팬들의 함성이 평소보다 더 커다란 것 같았다.

하지만, 팬들은 그가 정장을 입어서가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인물이 나타났기에 놀람과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준혁은 손을 들어주며 화답을 해주었다. 그러자 함성은 더더욱 커진다.

불과 열흘전 컵스전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이 워낙 강렬하다보니, 팬들은 준혁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때의 여운이 다시 떠올랐다. 결코 싸다고 볼 수 없는 올스타전의 표값이었지만, 사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하하하. 이거 그냥 가면 안 되겠는데요. 준혁 리, 이왕온김에 같이 시합하는 것 어때요? "

이목이 집중되다보니, 어느새 연예인소프트볼시합에 출전하는 선수들도 준혁의 주위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WR인 래리 피츠제랄드가 운을 띄우듯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애리조나 디백스의 레전드인 루이스 곤잘레스가 (그는 작년 이 자리에서 영구결번 식을 가졌다.) 거들었다.

" 그것 좋겠군요. 오늘 이렇게 시합을 하는 것도 팬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정 안된다면, 이건 어떨까요?

"라고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는 옆의 제니 핀치를 불렀다.

그녀는 미국 소프트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영웅으로 작년에 은퇴를 한 두아이의 엄마였다.

" 제니 핀치, 당신이 하던 프로그램 있잖아요. TWIB(this week in baseball)라고. 다시 한 번 해보는 건 어때요? 배리 보즈와 마트 테세이라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던걸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 "

" 오~! 전 그게 더 좋아 보이는데요. TWIB라.

멋진데요? "

글리 시즌 2에 출연한 코드 오버스트리트도 찬성한다며 한마디 거들었다.

" 호호호. 저야 상관없죠. 그런데 당사자 의견부터 물어봐야하는거 아닌가요? "

제니 핀치가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로 쏠렸다.

조금 전부터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찍고 있던 카메라맨도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싶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모습이 전광판에 고스란히 중계가 되다보니, 야구장을 찾은 팬들마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마이크 피아자가 말했다.

" 글쎄. 이친구가 부상 중이라서 말이야. 그것 때문에 홈런더비에서도 빠졌거든. "

그의 말에 모두 ' 아차 ' 싶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은 바로 준혁을 비추었고, 체이스 필드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준혁은 바턴이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기엔 참으로 애매했다.

몸은 아무이상 없었지만, 구단에서는 자신이 아직 치료중인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홈런더비 참가도 불허했다. 그런데, 오늘 이 장소에서 제니 핀치를 상대로 방망이를 잡는다?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맞지 않나싶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체이스필드를 만원으로 매운 관중들과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재공해주는 것도 좋지 않나 싶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어깨가 정말로 안 좋았다면 모르지만, 이미 정상인 상태였다.

' 어차피, 때려낼 필요는 없잖아. 보는 눈이 있으니 조금만 힘빼고 해보는 거지. 삼진을 당하더라도 어깨가 안 좋아서 홈런더비도 빠졌다는 것을 알리고 하는 거니까 말이야. 오히려 시원하게 먹어주고, 제니 핀치를 치켜세워주는것이 더 낫지 않을까? ' 생각을 정리한 준혁의 입이 열렸다.

" 좋습니다.

해보죠. "

그의 단 한마디에 체이스필드가 떠나갈 것만 같았다. 그만큼 팬들로써는 생각지도 않았던 돌발 이벤트에 환호하고 있었다.

" 대신, 제니 핀치씨. 살살 좀 해주세요. 아셨죠? 저 환자거든요. 살살... "

라며 준혁은 조금은 과장되게 제스추어까지 해가며 엄살을 떨어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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