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29화 (129/309)

< -- 7. 2011시즌 -- >

결국, 잠브라노의 우려대로 컵스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 무사 1-2루의 찬스를 날려버렸다.

3회 말 수비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고도 잠브라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젠장. 그때 존슨 녀석이 바보짓만 안했으면 점수가 났을 것 아냐. '워싱턴의 톰 고르질라니는 플라이볼 투수다. 그리고 컵스의 타선은 3-4-5번 이었다.

무사 3루 상황이었다면, 최소한 한 점은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무득점. 존슨이 판단미스로 3루에 가지 못하고 2루에 멈추는 바람에 3연속으로 외야로 타구가 날아갔음에도 득점에 실패하고 만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 나온 준혁에게 날아간 짧은 플라이볼은 주자가 3루에 있어도 들어오기 힘든 타구라는 것은 잠브라노도 인정했다. 하지만, 두 번째 나온 깊숙한 타구는 준혁이 잡기는 했지만, 주자만 3루에 있었다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타구였다. 그리고 마지막 좌익수에게 날아간 외야플라이도 2아웃만 아니었다면 무난하게 주자가 리터치해서 홈을 밟을 수 있는 타구였다.

하지만, 주자가 2루에 있다 보니, 플라이 때 한 루를 진루하긴 했지만 정작 필요했던 추가점수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은 내가 갈수 있는 데까지 끌고 나가는 수밖에는 없는 건가? '다행히 1,2회 때의 투구 수 조절은 잘되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8회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능성도 있어보였다. 항상 그를 괴롭혔던 제구력 난조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고, 비록 두이닝을 던졌을 뿐이지만 포볼도 내주지 않았다.

경기당 3개가 훌쩍 넘어가는 포볼 허용을 보이고 있는 그에게는 보기 드물게 제구가 잡히는 날이라고 볼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단 6개의 공으로 8번과 9번 두 타자를 잡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준혁을 상대하게 되었다.

' 짜증 스러운 놈. '타석에 들어서는 준혁을 보자마자, 잠브라노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올해는 처음 시합에서 만나는 것이지만, 작년에 상대해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준혁은 수비도 짜증나지만 타격도 짜증나는 놈이란 기억밖에는 없었다.

' 하지만, 이번은 다를 꺼다. 본래의 내 컨디션이니까. '1회 때 깊숙한 타구를 치고 1루로 나가긴 했지만, 그것은 카스트로가 바보 같은 플레이를 해서라고 생각했다.

재대로만 잡아서 재대로만 던졌다면 승부가 될 수 있는 타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타를 맞은 구질도 오늘 날고 있는 투심이 아니라 다른 공을 던지다 맞은 것이었다. 사인을 교환한 잠브라노는 씨익하고 웃었다.

마치 준혁더러 보란 듯이.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물론 그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초구부터 정면승부로 들어간 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왜냐면.... 바로 준혁의 [슈퍼모드]가 보기 드물게 빠른 시간에 발동되어있던 상태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1회 초와 말에 터진 2번의 호수비와 그라운드 홈런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톰 고르질라니가 플라이볼 투수란 점도 준혁에게는 호재였다.

(반대로 보면 땅볼 유도형투수는 준혁과 상극이란 말과도 같다.) 장타를 많이 치는 것도 분명 포인트가 빨리 모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공격은 변화폭이 큰 가변 포인트란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수비에서 모이는 포인트는 그 양이 적기는 하지만, 항상 고정적으로 모였다.

거기에다가 수비에 관여만 하면 착실하게 쌓인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톰 고르질라니는 준혁에게 많은 수비 기회를 부여해줄 가능성이 높은 투수였다.

파인플레이로 잡힌 1회 수비를 제외하더라도, 2회 6타자가 등장하면서 더군다나 외야 쪽으로 타구가 안타를 포함 4번이나 날아오면서 준혁은 2번이나 수비에 기여했다. 그리고 3회에도 플라이볼 타구가 두 개나 그에게 날아왔다. 아무리 고르질라니가 플라이볼 투수라지만, 3회 만에 이렇게나 많은 공을 잡아보기는 준혁도 이례적일 정도였다.

거기에다가, 에러를 범했던 타구가 파인플레이로 인정되는 행운까지 겹쳐졌다. 이렇게, 겨우 3회 수비를 마쳤을 뿐인데도, 파인플레이 3번, 그리고 홈런 하나(그라운드 홈런도 홈런이다.) 거기에 수비기여횟수도 4번이나 되고 있었다.

[슈퍼모드]가 발동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물론 파인플레이로 인정되었다는 것은, 정확한 것이 아닌 준혁의 짐작이긴 했다.

시합초반 [슈퍼모드]가 발동된 것이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싶어서 경기 후, 젠과 함께 동영상을 보며 따로 시합 복기를 해보았다.

" 그냥 넘어졌더라면 단순 에러처리로 끝났을 거야. 하지만, 넘어지고도 옆으로 빠져나가는 공을 몸을 날려 잡아내고는 주자를 2루에 묶으며 진루를 최소화 시킨 것이 플러스로 작용한 것 아닐까? 그대로 빠졌다면 실점이 확실했잖아. "

듣고 보니 그랬다.

젠이 하는 말이라서 그런지 신빙성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일부러 에러해서 방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또다시 파인플레이로 인정이 될까?

" 글쎄? 고의 플레이라? 오히려 포인트가 깎이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은데? 그리고 오늘시합과 같은 상황이 또 오면 이번에도 100% 잡아낼 수 있겠어? "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런 경험은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임의로 파인플레이를 만들어낼수 있다면 좋지 않겠냐 싶었을 뿐이었다.

" 꿈 깨. 오늘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야. 경기장 사정으로 미끄러진 거잖아. 고의로 만들어낸 상황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아마도 게임시스템에서는 에러가 아닌 안타로 적용되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파인플레이가 맞는 것이지. 외야로 빠져나가 자칫 타자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공을 호수비로 2-1루로 묶어놓은 것이니까 말이야. "

물론 가정이긴 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빠른 [슈퍼모드]의 발동을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슈우욱--' 좋았어! '카를로스 잠브라노는 공이 그의 손을 떠나는 순간, 손가락의 감각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늘 던진 공중에서 가장 좋은 공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구속도 좋았고, 홈플레이트에 앞에서 멋지게 꺾여 들어갔다.

빗맞은 땅볼이 되면 가장 좋고, 최소한 헛스윙은 확실했다.

--따악!!

--하지만, 전혀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타격 음이 그의 귀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맞는 순간, 잠브라노는 큰 타구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재대로 던진 공이었다.

오늘 시합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투심중에서도 가장 살아서 꿈틀대는 공을 던졌다는 것에는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 공이, 자신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맞아서 날아가고 있었다. 끝까지 공의 궤적을 쫓던 잠브라노는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고개를 돌려 준혁을 찾았다.

타격을 하자마자 뛰기시작한듯, 거의 1루 베이스에 다 와있었다. 평소 매너있다라는 선수다웠지만, 한번 심사가 뒤틀린 잠브라노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에겐 동점이 되어 승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타자를 그는 좋게 볼 수 없었다. ' 젠장. 꼴 보기 싫은 놈. '생각해보니, 오늘시합에서 그의 승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준혁이었다.

1회에도 파인플레이로 안타를 두 개나 훔친 것이 놈이었고, 그라운드 홈런이란 치욕을 안기며 선취득점을 뺏어간것도 놈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동점을 만든 것도 또 같은 놈이었다. 준혁을 어떻게 하지 않고는 오늘도 승리는 힘들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저놈이 설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저지해야 돼. 안 그럼 답이 없어. ' 잠브라노는 덕아웃 앞에서 워싱턴의 놈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마저도 보기 싫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평정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그렇게나 좋던 투심의 무브먼트가 갑자기 죽어버렸다.

실투였다.

" 와아아아~~~!! "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이민성 아나운서의 시원한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 백투백 홈런! 대니 에스피노사! 잘 던지던 잠브라노 를 상대로 홈런을 날립니다.

][ 실투였지요? 하지만 그것을 놓치지 않은 에스피노사도 잘했습니다. 구속으로 봐서는 투심이지 싶은데요. 이준혁 선수에게 던질 때와는 달리 밋밋하게 들어갔네요. ][ 자신의 공에 의심이 들었던 걸까요? 아니면 더 잘 던지려고 했던 걸까요? ]송재익 해설위원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민성 아나운서의 질문에 대답했다.

[ 아마도 전부다가 아닐까요? 앞서 이준혁 선수의 홈런 장면 리플레이를 보셔서 알겠지만, 에스피노사 선수가 실투를 놓치지 않고 홈런으로 연결시킨 것과는 달리, 이준혁선수는 투심을 정확하게 노려서 받아쳤거든요. 마치 떨어질 각도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죠. [ 그러고 보니 저도 그렇게 생각이 되는군요. 잠브라노가 싱커를 던지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면 정말 싱커라고해도 믿을 정도의 움직임 이었는데 그걸 때려냈죠. ]다시 송재익 해설위원이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그런 공을 펜스 중단까지 날려 보낸 것이 바로 이준혁 선수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여기에서 잠브라노 선수가 흔들렸다고 봐야겠지요. 완벽한 공이 커다란 홈런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실투가 나왔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에스피노사 선수도 잘 때려냈습니다만, 그 시작은 이준혁 선수라고 봐야겠지요. ] [ 그렇군요. ]이번에도 여지없이 송재익 해설위원과 이민성 아나운서의 결론은 ' 이준혁이 잘해서 그렇다.

'로 내려졌다. 역전홈런을 때려낸 대니 에스피노사가 들었다면 상당히 불만스러웠을 방송이었다. 하지만, 그가 한국까지 와서 OBS의 방송을 들을 일도 없는데 뭐 어떤가? 그리고, 시청자 최우선 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중의 하나 아니겠는가?

" 3루까지 달렸어야지. 바보 병신도 아니고 그 타구에 2루에서 멈춰버리니까 역전당하고 만 거잖아! "

잠브라노는 덕아웃으로 들어오자마자, 리드 존슨에게 화풀이부터 하고 본다.

" 뭐야? 말이면 다냐?! "

리드 존슨도 화가 났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남탓을 한다 싶었다.

" 어디서 홈런 맞은 놈이 더 화를 내는 건데? 홈런을 내가 맞았냐? 엉? 내가 맞았어?"

" 뭐야! 이... "

" 다들 그만해! 싸운다고 해결될 일이야? 역전 당했다지만 아직 1점이다. 1점이라고. 아직 시간은 많아. 따라가면 돼. "

보다 못한 소토가 둘을 말렸다.

그렇다 아직은... 아직은 1점 차이다. 소토의 말대로 남은 이닝도 많다.

잠브라노는 분풀이 대상을 찾았다. 미니 음료수 자판기는 이미 누군가 치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혼자 씩씩 거리며 화를 참아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리드 존슨에게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싸움을 걸었음에도 말이다.

리드 존슨도 잠브라노가 사과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제껏 봐온 것이 한두 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먼저 사과할 마음도 없었다. 어쨌든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잠브라노였다.

이렇게 컵스의 덕아웃은 오늘도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덕아웃 한쪽에서는 마이크 퀘이드 감독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저놈의 성질머리는 고칠 방법이 없다.

없어. '어쩐 일로 1회에 그라운드홈런을 허용하고도 화를 내지 않나 싶었다. 더군다나 구위도 좋았기에 오늘은 경기가 괜찮게 흘러가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잠브라노의 인내심은 3회가 한계였다.

비록 3회 초 리드 존슨의 주루가 아쉽기는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것을 자신이 홈런을 맞았다고 끄집어내어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화가 나면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이다 보니 감독도 별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자멸하는...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언제 고쳐질 지 ...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잠브라노는 4회 말이 시작되자마자, 안타를 허용하고는 5번 마이클 모스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 후 6번과 7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8번 이안 데스몬드에게 또다시 솔로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고, 투수 타석의 톰 고르질라니를 잡아내며 겨우 4회를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홈런만으로 3점을 더 실점하며 점수는 6대 2로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5회 초. 잘 맞은 페냐의 타구에 홈으로 들어오던 라미레즈가 아웃당하는 순간 잠브라노는 가지고 놀던 공을 던져버렸다.

' 이번에도 또 저놈! 저놈 때문에!! '전광판에서 앞에 떨어진 공을 잡고는 홈으로 던지는 준혁의 플레이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빠르고 깔끔한 송구가 원바운드로 정확하게 워싱턴의 포수 윌슨 라모스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정확하게 그리고 한 박자 빨리 들어온 공과 홈플레이트 앞을 재대로 막아선 포수의 콤비네이션에 라미레즈가 속절없이 보살을 당하고 있었다.

리플레이를 보며, 관중들의 함성은 더욱더 높아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덕아웃 앞 철봉을 붙잡고 있는 잠브라노의 손에도 더욱 더 힘이 들어갔다.

5회 말 워싱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첫 타자는 준혁이었다.3회 때와 마찬가지로 잠브라노는 이번에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왠지 모르게 그의 웃음이 앞선 대결 때와는 다르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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