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26화 (126/309)

< -- 7. 2011시즌 -- >

모든 투수들이 그러하겠지만, 시합의 첫 타자를 상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한 달 만에 돌아온 복귀전인 톰 고르질라니에게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런 점에서 컵스의 첫 타자 리드 존슨을 헛스윙 스트라이크아웃으로 잡은 것은 큰 힘이 되는 듯싶었다. 2번 스탈린 카스트로가 타석에 들어섰다.

90생으로 작년 5월 빅리그로 승격된 선수였는데,타자로는 흔하지 않게도 AAA를 거치지 않고 AA에서 곧바로 승격된 케이스였다. 그만큼 컵스에서 기대를 한다는 말이기도 했고, 실제로도 천재유격수로 불리는 타자였다.

잘치고 잘 던지고 잘 달리는... 파워가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승격후 타율도 3할을 기록했고, 올해도 역시나 3할 언저리에서 놀 정도로 타격에서도 좋은 소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의 타구가 3구째에 외야로 떴다.

톰 고르질라니는 타구가 맞아나가는 순간 고개를 돌려 공을 쫓았다. 깊숙한 타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코스가 고약했다.

준혁은 스탈린 카스트로가 타격을 하는 순간 옆으로 뛰기 시작했다. 파워가 강하지 않은 선수의 타구답게 그의 눈에 표시된 타구의 궤적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하지만, 고르질라니가 느꼈던 것처럼 그도 고약하다 싶었다. 탄도가 높았다면 오히려 쉬웠을 타구였지만, 높이가 낮다보니 까다로운 타구였다.

' 하지만, 못 잡을 타구는 아니야. '다시 말하지만, 준혁은 게임시스템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훨씬 빨리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 그래서, 수비범위가 자연스레 넓어질 수밖에 없고, 남들이 보기에 안타성 타구도 곧잘 범타로 만들어낸다. 지금의 타구도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타구 낙하지점의 원의 크기로 봐서는 못 잡을 타구는 아니었다.

론 이것은 준혁에게만 보이는 것이었고, 그 만의 기준이었다. 밖에서 보이는 타구의 모습은 충분히 안타였다.

컵스의 스탈린 카스트로가 타격을 하는 순간 이민성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커졌다. 타구가 날아가는 지점으로 총알처럼 뛰어오는 준혁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위성을 통해 넘어온 화면이다. 아나운서인 이민성 만이 아니라, TV를 시청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준혁이 한발자국씩 내딛는 그 모습은 모두에게 맹목적인 기대감을 쌓고 있었다.

[ 2번 카스트로 3구째 타격! .... 우중간! 중견수 이준혁! 중견수 이준혁!! ] [... 잡았습니다!!! ] 이민성 아나운서의 멘트처럼, 역시나 준혁은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고 다이빙으로 그 공을 잡아내고 있었다. [ 아아~~. 이건 대단합니다!! ]송재익 해설위원도 탄성을 터뜨렸다.

매번 느끼지만, 준혁의 수비는 정말 그 격이 달랐다. [ 그렇습니다.

이건 이준혁 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수비입니다. ]

" 우와아아~~!!! "

워싱턴의 홈구장 내셔널스파크도 곧바로 달아올랐다.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의 눈에도 완벽한 안타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준혁은 글러브로 걷어내었다.

매번 보는 모습이었지만,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수비였다.

하지만, 워싱턴의 팬들은 이런 여운을 채 가라앉힐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딱--이번에는 아라미스 라미레즈의 타구가 외야로 떴다.

한해 30개 가까운 홈런은 너끈히 쳐낼 수 있는 타자답게 앞선 스탈린 카스트로의 타구와는 달리 깊숙했다. [ 라미레즈 쳤습니다.

좌중간 쪽입니다. 좌중간 깊게 날아갑니다. 깊습니다.

]이민성 아나운서의 멘트대로 타구가 펜스 가까이 날아가고 있었다. 최소한 펜스에 직격할 정도로 보이는 잘 맞은 타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준혁은 그 타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내셔널스파크를 찾은 팬들과 ESPN에서 제공하는 화면을 받아서 방송을 하는 해설자들과 또 그 방송을 시청하는 한국의 시청자들... 모두의 눈이 달리는 준혁과 라미레즈가 때려낸 타구에 쏠렸다.

그 순간, 거의 펜스 앞까지 달려온 준혁이 점프를 하며 글러브를 낀 손을 높이 들었다. [ 좌중간 완전히 갈랐습니까? 잡았습니까?... 잡았습니다!! ]

" 우와아아아~~~! "

[ 이준혁! 날았습니다!! 이걸 잡아냅니다!! ][ 이건 진짜, 말이 필요 없어요! ]송재익 해설위원이 앞선 타구에 이어 다시 한 번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것을 이민성 아나운서가 받았다.

[ 이준혁 선수, 오늘 경기시작부터 일을 내는데요? 믿을 수 없는 수비를 연속해서 2개를 보여줍니다. ][ 아니죠! 이준혁 선수만이 할수 있는 수비라고 해야 합니다! 이 정도는 이미 믿을 수 없는 수비가 될 수 없어요! 이준혁 선수에게는 말이죠!! ]하지만, 이민성 아나운서의 말에 송재익 해설위원이 반박을 한다.

방송이란 것도 잊고 그가 더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이닝이 넘어가고, 광고타임이어서 망정이지, 그대로 방송이 이어졌다면 방송사고가 나왔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 형님, 진정하세요. 하하하 "

" 아. 쏘리. 나도 모르게 흥분할 뻔했네. 하아~. "

방송카메라의 불이 꺼진 것을 늦게 확인하고는 송재익 해설위원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숨을 돌렸다.

" 초반부터 멋진 수비가 연속으로 나오다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지. "

" 하하하. 이해합니다.

정말 이준혁의 수비는 멋지죠. "

" 멋진 정도가 아니지. 저건 신이야 신. 수비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야. 두 번다 모두 안타성 타구였다고. 그런데 그걸 한번은 다이빙캐치로 또 한 번은 점프캐치로 잡아내는 것 봐. 어후~. 진짜 소름이 다 돋는다니까? "

그리고는, 방송중이라 하지 못했던 감정을 표출하고 싶었던 듯, 연신 팔을 으싸으싸 거린다.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던 메이저리그 방송을 책임지고 있는 이종률 PD는 방송 뒷이야기로 지금 이 장면을 넣으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리, 고마워. "

톰 고르질라니는 마운드에서 곧바로 내려가지 않고. 외야에서 뛰어오는 준혁을 기다렸다. 그리고는 감사의 말을 건넸다.

" 무얼. 내뱉은 말이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칼을 뽑기로 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어? "

" 무우? 칼? 리의 모국의 명언이야? "

" 하하하. 명언은 그렇고... 속담 비슷하다랄까? "

준혁은 고르질라니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 속담이라... 그렇군. "

고르질라니는 분명 좋은 뜻의 속담이라 생각했다. 그리고는 준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덕아웃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플라이볼 투수였다.

당연히 상대하는 타자들의 타구는 외야로 뜬공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준혁과 같이 수비범위가 넓고 어깨가 좋으면서 파이팅이 넘치는 수비 잘하는 외야수가 뒤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 좋았어. 준! "

덕아웃으로 들어서니 동료들이 거하게 준혁을 반겨주었다.

덕분에 1회 말 공격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팀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준혁이 보여준 플레이는 팀 동료 모두를 절로 흥이 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렇게 흥이 난 것은 덕아웃의 동료들만이 아니었다.

--짝짝짝짝!!

--

" 준혁 리! 준혁 리!! 준혁 리!!! "

내셔널스파크를 찾은 워싱턴의 모든 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며 준혁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 이준혁 선수, 시작부터 커튼콜을 요청받고 있네요. ][ 하하하. 그러네요. 중계를 하다 보니 심심찮게 보는 모습입니다만, 그래도 볼 때마다 기분 좋은 모습이네요. ][ 맞습니다.

꼭 제가 받은 것 같다니까요. 오~. 준혁의 여자 친구도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있네요. ]카메라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잡고 있었다.

[ 예리엘 버나드 양이라고 하지요?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미모인데요. 부럽습니다.

]미국에서도 진짜 금발미인은 흔하지 않았다. 금발로 염색을 한 여인네들이 대다수였다.

그런 점에서 예리엘은 진짜 금발미인이었다. 더군다나 준혁과 사귀면서 한창 물오른 미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송재익 해설위원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인이 된지 오래였다.

[ 하하하. 방송에서 말해도 괜찮은 건가요? 오늘 집에 못 들어가시는 것 아닙니까? ][ 제 아내는 대인배라 괜찮습니다. 그래도, 여보 사랑해. ] 그러면서, 슬그머니 책상위에 얹고 있던 두 손을 모아서 자그마한 하트표시를 만든다. 이것을 또 놓칠 이민성 아나운서가 아니었다.

[ 하하해. 대인배시라면서. 마지막에는 또 뭡니까? 하하하. ][ 이민성 아나운서, 이쯤에서 넘어갑시다. ][ 하하하하. ]이민성 아나운서는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방송 중에 조금은 가볍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사람의 만담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그들이 시간을 쪼게며, 바쁜 월요일 오전에 TV와 인터넷방송 등을 붙잡고 있는 것은 모두 준혁의 활약상을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준혁이 두 번 연속으로 보여준 파인플레이는 그들을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았다.

그렇다보니, 관대해졌다. [ 네. 아쉽군요.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OBS에서 비싼 돈을 들여, 메이저리그 중계를 해주는 이유는 준혁과 같은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명인 준혁이 오늘시합에서도 역시나 좋은 플레이를 선보여주고 있다 보니, 자연 방송도 재미있어졌다. 그렇게 재미있다보니 시청률이 올라가고, 덩달아 광고금액도 뛰면서 방송사에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게 되는것 또한 사실이었다. [ 오늘도 어김없이 워싱턴의 공격은 이준혁선수부터 시작합니다.

]광고에서 돌아온 TV화면은 곧장 준혁의 모습을 비추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면 한편에는 준혁의 올해 시즌성적이 조그마한 박스 처리되어 표시되어졌다. 이민성 아나운서와 송재익 해설위원은 그것을 다시금 읽어주면서 설명을 곁들였다.

이렇게 한국의 팬들이 해설을 들으며 시청을 하고 있을 때, 워싱턴의 팬들도 준혁이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보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조금은 시끄러울 수도 있었지만, 이 재미에 야구장을 찾는 것이기도 했고, 시합 때마다 있는 일이다보니,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는 예리엘이었다.

갑작스레 일이 생겼다며, 나가버린 젠 때문에 오랜만에 홀로 야구장을 찾은 그녀였다. 항상 젠과 함께 오는 일이 많다보니, 조금은 허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1회 초에 보여준 준혁의 플레이를 보면서, 예리엘은 이런 남자가 자신의 남자라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어느 센가 허전함이 사라졌다.

' 멋있어. '그녀의 남자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준혁은 누가 보더라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팬 투표에서 과반수의 젊은 여성들이 그에게 표를 줄만하다 싶었다. 거기에다가, 그는 항상 팀의 선수들과도 친근한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선발투수가 기다렸다가 준혁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내려가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 덕아웃에서 과격한 환영을 받는 모습이 전광판에서 비추어지는 것을 보면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초구부터 방망이를 돌리는 준혁의 모습이 보였다.

[ 1구. 쳤습니다.] [ 깊숙한데요. 빠지나요? ]준혁이 친 타구가 2-3루간을 가를 것처럼 두어 번 바닥을 튀기며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송재익 해설자의 말대로 상당히 깊은 코스였다. 타구가 빠르다보니, 3루수는 잡을 수 없는 타구였다.

유격수가 처리하지 못하면 그대로 빠지는 코스였다.

[ 앗. 카스트로, 어느새 다가와서 잡습니다! ]빅리그 2년차인 컵스의 스탈린 카스트로도 천재유격수 소리를 듣는 선수였다.

파워 말고는 모두 가졌다는 컵스의 유망주. 공을 잡기위해 꽤나 먼 거리를 달려 왔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몸을 틀며 1루수 카를로스 페냐를 향해 공을 던지기 까지 했다. 자신도 수비에서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1회 초의 준혁이 수비에 자극을 받은 듯, 묘한 경쟁심이었다.

하지만, 달려 나가는 속도를 완전히 죽이지 못하고 몸을 틀며 던지다보니, 송구가 조금 빗나갔다. 본래 송구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었지만, 이번경우는 던지기 쉽지 않은 타구임에는 분명했다.

강한 어깨를 증명하듯이 다이렉트로 날아가긴 했지만, 타구가 워낙 깊었다.

발이 느린 타자였다면 모를까. 리키 핸더슨의 재림이란 소리를 듣고 있는 준혁을 잡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래도. 빠지는 타구를 잡아낸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은 했다.

[ 이준혁 선수. 깊은 유격수쪽 내야안타를 치고 1루로 나갑니다. ][ 잘치고 잘 잡았어요. 카스트로 선수, 이번 수비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준혁 선수가 아니었으면... 앗! ][ 억! 이준혁! 2루!! ]해설을 하던 송재익 해설위원은 하던 말을 미처 다하지 못했고, 이민성 아나운서는 다급하게 소리를 쳤다.

컵스의 유격수에게 잡히긴 했지만, 여유 있게 베이스를 밟고 지나가며 세이프가 된 준혁이 1루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않은채, 갑자기 2루로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모두들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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