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011시즌 -- >
조쉬 존슨은 마린스의 에이스다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5이닝 동안 삼진을 6개나 잡아내고 있었고, 그중 루킹삼진이 4개나 되었다.
게다가 4회와 5회 각각 포볼과 안타 하나를 허용한 것 말고는 워싱턴 타자들의 진루자체를 꽁꽁 묶어놓고 있었다. 그에 비해 워싱턴의 선발 존 레넌은 불안 불안한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1회 말 피칭을 시작하자마자, 포볼을 내주더니, 곧바로 안타와 2루타를 연속으로 맞으며 1실점을 하였고, 4번 타자 가비 산체스의 내야 땅볼 때, 3루 주자가 마저 홈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1실점, 도합 2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 후, 2회부터는 레넌도 5회까지 무실점으로 막고는 있었지만, 투구내용은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상대편 투수인 조쉬 존슨이 타석에 들어섰던 4회를 제외하고는 매회 안타나 포볼 등으로 2명의 주자를 진루시키고 있었다.
빅리그 데뷔 다음해인 2008시즌부터 매년 외로이 워싱턴의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는 존 레넌의 아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WHIP, 즉 이닝당 출루허용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WHIP에도 홈런과 단타를 똑같이 취급한다는 등의 맹점이 있기도 했고, 투수의 WHIP가 높다고(나쁘다고) 반드시 승수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낮다고(좋다고) 승수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작년 아메리칸 리그(AL) WHIP 1위인 클리프 리는 1.00을 기록하고도 승수는 겨우 12승을 챙겼을 뿐이었고, 오늘 마린스의 선발로 나선 조쉬 존슨도 WHIP 1.11로 내셔널 리그(NL) 7위를 차지했지만 작년 그가 거둔 승수는 고작 11승이었다. 하지만, 작년 16승을 거둔 애틀랜타의 데릭 로우는 WHIP가 1.368이나 되었고, 시카고 컵스의 라이언 뎀스터는 1.319로 15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15승 투수인 뉴욕 매츠의 마이크 펠프리는 1.377이었다. 그렇다고 존 레넌의 통산 WHIP 1.445를 좋게 봐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작년에는 1.5를 한참이나 넘어선 1.563을 찍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높은 WHIP에도 그의 통산방어율은 4.14였다. 안타와 포볼 사사구 등을 많이 내주었지만, 위기관리능력이 좋아서 생각보다 실점을 적게 하는 투수였다. 하지만, 벤치의 입장에서는 똥줄 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실점을 적게 한다고 하더라도 매이닝 주자를 많이 내보낸다면 심장이 쫄깃질 수밖에 없다. 편안하게 경기를 보고 싶은 것은 비단 워싱턴을 응원하는 팬들만의 열망은 아니었다.
6회 초 워싱턴의 공격이 다시 돌아왔다. 매 이닝을 마운드위에 올라서는 투수의 입장에서 첫 타자를 아웃으로 잡고 시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만큼 중요한 문제도 없었는데, 조쉬 존슨이 앞선 회에서 8번에서 공격을 끊었던 터라, 이번회 워싱턴의 첫 타자는 투수인 존 레넌이었다.
내셔널 리그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선다. 때문에 상대편 투수가 타자로 들어서는 타석 앞에서 이닝을 종료시키게 되면, 그만큼 다음 회를 편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타격이 좋은 투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대부분의 투수들은 타율이 낮았고, 존 레넌도 작년타율이 .091로 보통의 투수였다. --딱--평범한 유격수앞 땅볼이었다.
마린스의 유격수 헨리 라미레즈는 가볍게 1루로 공을 던졌고, 조쉬 존슨이 의도한 대로 간단히 1아웃이 되었다. 타석에 들어서는 준혁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앞선 두 타석에서 모두 범타로 잡아낸 조쉬 존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두 번의 타석에서 모두 자신이 이기긴 했지만, 첫 번째에는 외야수의 호수비가 있었고, 두 번째는 11구나 가는 긴 승부 끝에 겨우 파울팁으로 삼진을 잡아낼 수 있었다.
' 분명 작년의 모습은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해. '존슨은 로진백을 만지며 생각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고, 겨우 일주일가량 지났을 뿐이긴 했지만, 작년의 괴물과 같던 타율과 달리 올해는 준혁도 인간적인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오늘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 속으면 안 돼. '히팅타이밍이 맞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구안은 여전히 좋았고, 커트실력도 최상으로 보였다. 2타수 무안타라고 쉽게 상대할 수는 없는 타자였다.
작년 쉽게 생각하고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었다가 눈물 흘린 투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타자는 3번 중에 1번만 성공해도 대단한 타자라 불리었다. 하지만, 투수는 아니었다.
10번 잘 던지다가도 1번 실패하면 경기자체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존 벅이 커브로 가자고 신호를 보내왔다. 조쉬 존슨은 순간 망설여졌다.
분명 오늘은 오프 스피드 피치에 약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준혁 리의 강점 중의 하나가 바로 커브 공략이었다. 한 번에 고개를 끄덕이기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조쉬 존슨이 선택한 것은 몸 쪽 커터였다.
--슈우우욱----따악!
--빨랫줄 같은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1루 측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186cm 102kg의 가비 산체스가 다이빙캐치를 시도했다. 리그 평균이상의 수비력을 보여주는 그의 글러브였지만, 타구는 이미 그를 통과하고 있었다.
" 파울 "
다행히, 마지막에 라인 바깥쪽으로 휘면서 1루심이 파울을 선언했다. 하지만, 야구공 두어 개정도 벗어났을 정도로 위험한 타구였다.
" 휴우... "
코너 워크에 신경을 쓴다고 던진 공이었다.
살짝 조금은 안으로 몰린 감도 있었지만, 쉽게 칠만한 코스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몸 쪽 공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배트가 돌아 나오니 타구의 질은 급속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조쉬 존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 후, 5개의 공이 더 오고갔고, 볼카운트는 2볼 2스트라이크가 되었다.
" 슬슬 살아나는 모습인데요. "
워싱턴 덕아웃의 릭 엑스타인 타격코치가 리글리맨 감독에게 말을 건넸다.
"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군. "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이 같음을 표시했다.
이것은 옆에서 묵묵히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는 존 멕클라렌 벤치코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준혁은 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타구의 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완벽하게 살아난 모습은 아니었지만,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많아진 것은 분명 좋은 징조였다. 그리고, 이것을 느낀 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존 벅의 패스트볼이 나오면서 3볼 2스트라이크가 되고 만 것이었다.
[ 오우. 공이 뒤로 빠졌군요. 투수의 와일드 피치인가요? 다시 화면이 나오나요? ]해설자의 요청을 듣기라도 했는지, 방금 전의 장면이 TV중계화면에 다시 한 번 나왔다.
[ 아아. 포수 패스트볼이군요. ][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공이었는데 말이죠? ]
[ 네. 맞습니다. 포수가 움찔하는 장면이 보이죠? 바운드 되는 공도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사인 미스인 것으로 보이는군요. 역시나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가는군요. ]해설자의 말대로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한 마린스의 포수 존 벅이 마운드의 조쉬 존슨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 왜 그래? "
" 미안해요. 사인을 잘못 봤어요. "
" 그래? 그럼 사인 다시 맞춰볼까? "
" 아뇨. 괜찮아요. 커터 사인을 슬라이더로 착각한건 바로 알았어요. "
존 벅이 냈던 사인이 맞았다.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잠깐 착각 한 듯 했다.
알았다며 한번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존 벅의 어깨에 한손을 얻었다.
" 준혁 리가 쉬운 타자가 아니라는 것은 너나 나나 아는 사실이니까. 조금 더 집중하자. 알겠지? "
힘내라며 한두 마디 더 건네고 나서야 존 벅은 마운드를 내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규정상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자신들에게 운이 있어서 안타를 허용하고 있지 않았지만, 분명, 첫타석보다는 두 번째 타석, 두 번째 타석보다는 지금의 타석에서 타구의 맞아나가는 질이 달라지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좋지 않은 신호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재대로 맞아나가는 페스트 볼과는 달리 커브 등은 타이밍이 맞지 않는 모습을 지금의 타석에서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 1아웃이라지만, 포볼은 위험해. '선행주자라도 나가있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부담 없이 유인구 승부를 걸 수 있었을 것이었다. 아무리 발이 빠른 준혁 리라고 하더라도 앞선 주자가 있으면 뛸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루상에 아무런 주자도 없었기에 내보내면 3루까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 다시 한 번 오프 스피드 피치를 믿어보자. '존 벅은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커브와 달리 앞선 두 번의 대결에서도 꺼내들지 않은 구질이었기에 허를 찌를 심산도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조쉬 존슨의 모습을 확인하며 마린스의 포수 존 벅은 자세를 잡았다. --슈우우우욱--' 좋았어! '체인지업은 페스트 볼과 똑같은 투구 폼에서 나올 때 그 위력이 배가 되는 구질이었다.
그런 점에 방금 조쉬 존슨이 던진 공은 나무랄 때 없었다.
오늘 시합에서 4개나 잡아내고 있는 ' 루킹 삼진'을 준혁에게서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미트를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맞추어 움직였다.
--따아아악!!
--' 됐.... 어?!! '스트라이크 존 낮은 쪽으로 떨어지는 공이었다. 앞선 공들이 모두 빠른공 위주였고, 준혁의 오늘 오프 스피드 피치에서의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점을 생각했을 때, 쉽사리 배트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나 나오더라도 정타는 힘드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타구는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존 벅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날아가는 공을 쫓았다.
[ 이준혁 선수 쳤습니다. 큰 타구! 넘어가나요? 우측 우측... 우측 폴대를 맞고 떨어집니다.
홈런! 이준혁 선수 오늘도 어김없이 홈런을 날립니다. 시즌 3호! ][ 대단한 페이스인데요! 오늘까지 6번째 시합인데요. 벌써 3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습니다.
타율을 작년보다 못하지만, 홈런 페이스는 더 좋아요. ]앞선 두 번의 범타로 조용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OBS의 중계 진은 건수를 잡았고, 이제껏 쉬면서 모아두었던 에너지를 마구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현지 MLB의 중계진도 마찬가지였고, 이 중계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그랬다.
하지만, 단 한사람 홈런을 친 당사자인 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