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111화 (111/309)

< -- 7.2011시즌 -- >

" 정말 괜찮은거에요? "

" 응. 직접 보고 있잖아. "

" 그렇긴 한데.... "

분명 젠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준혁이 느끼기에도 그랬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위화감이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그렇다면 그렇구나하고 넘어가야하는 것도 있었다.

램프를 벗어나게 된 기념으로 밖을 쏘다니다가(?) 왔다고 했다.

천년도 더 이상 된 세월동안 램프에 갇혀있던 젠이었다. 해방감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었다.

" 그럼 이제 램프는 필요 없는 건가요? "

램프에 묶여있던 제약이 사라졌다면 더 이상 필요없는것이 아닌가 싶었다.

" 아냐. 그렇진 않아.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않냐 싶을 수도 있는데... 행동의 제약만 없어졌다라고 나 할까? "

조금은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준혁의 짧은 생각으로는 더 이상 제약이 되지 못하는 램프가 굳이 필요한 것인가 싶었지만, 제3자인 그가 결론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웨이트리스가 먼저 주문한 맥주와 소다수, 빵을 가지고 왔다. 개막전 시합을 마치고 준혁과 젠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어쨌든.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처음으로 얼굴 보는 것이기도 했고, 예리엘이 개막전에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저녁을 사겠다고 한 것도 있다 보니(미국은 더치페이 문화가 발달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처럼 한사람이 몽땅 쏘는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회사 가까운 곳으로 오게 되었다. 준혁은 음료를 가지고 온 웨이트리스에게 메인요리는 일행이 마저 오면 시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 그보다 개막전을 졌는데 괜찮아? "

젠이 빵을 조금 찢어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레스토랑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렇게 메인요리전에 제공되는 빵은 대부분 무료에다가 무한리필이었다. 하지만 공짜라는 생각에 욕심을 부리면 정작 메인요리를 재대로 먹을 수 없으니 적당히가 필요했다.

물론 정령인 젠에게 적당히 란것이 필요하긴 한가 싶기는 하다.

" 뭐... 기분 좋을 리야 없지만, 내 능력 밖인걸요. "

젠의 물음에 준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삽질을 좀 하긴 했지만, 오늘시합에서 그의 출루율은 5할이었다.

홈런으로 1타점도 기록했고, 그의 몫은 충분히 한 것이었다.

" 내일 시합에서 이겨주면 되는 거죠. 더구나 내일은 애트랜타 한테 강한 존 래넌이 선발이니까 확률은 더 높겠죠. "

그래도 명색이 홈 개막전이었다.

아무리 팀의 객관적 전력이 애틀랜타에 비해서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연패를 당할 수는 없었다.

" 참. 그런데, 하나 좀 물어볼게요. "

젠이 야구 이야기를 꺼낸 덕분에 잊어버렸던 생각이 떠올랐다.

" 소원을 들어줄 때 구현되지 않았던 것이 차후에도 될 수 있는 건가요? "

" 무슨 말이야? "

젠의 표정에서 그녀가 직접 해준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준혁은 자신이 시합 중에 겪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 그랬어? 회귀하면서 없었던 능력이 활성화가 되었단 말이지? 그것도 지금 하고 있는 게임에서 받은 특기가? "

젠의 물음에 준혁은 바로 끄덕였다.

" 글쎄? 준혁이 하고 있던 게임을 그대로 소원으로 적용시켜준건 나이지만... 모르겠는데? "

역시나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녀마저 모른다면 정말 어디 가서 물어볼 데도 없다는 말과 같았다.

" 그래도 조금 생각을 해보자면... "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준혁의 눈은 급속히 초롱초롱해졌다. 분석능력이 상당한 그녀였다.

무언가 공통분모를 찾아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 준혁이 이곳으로 넘어오기전 하고 있던 게임이 '듀토리얼 모드'라고 했었잖아. 거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

" 무슨?? "

" 오늘 새롭게 사용이 가능해진 특기도 '듀토리얼 모드'쪽의 것이잖아. 그러니까, 듀토리얼 모드쪽의 능력들은 모두 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넘어온 것이 아닐까? 단지 조건이 만족 되지 못해서 발현이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조건은... "

젠의 말을 듣고 있던 그는 해답을 알 것 같았다.

준혁은 그녀의 말을 받아서 마무리를 지었다.

" 게임을 직접 클리어해서 기술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라는 말 인건가요? "

" 빙고~. "

" 무슨.... "

자신이 해답을 내려놓고도 말이 안 된다 싶었다.

" 말이 안 되기는. 그럼 지금 너하고 나하고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은 말이 되고? "

" 그... 그렇군요. "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가 램프의 요정을 만나서 과거로 회귀한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준혁은 이런 사실은 요즘 들어 자주 까먹고 있었다. 그만큼 경기 중 보이는 게임의 시스템이 한 몸처럼 자연스러워져서 그런지도 몰랐다.

" 이야기는 여기까지. 예리엘이 오고 있네. "

젠이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준혁도 고개를 돌렸다.

원피스 끝단을 찰랑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예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못본사이에 더욱 예뻐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여성들의 평균 신장이 162.5cm이라고 하니 170인 그녀는 큰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기본형이라고는 하지만 7~8cm은 됨직한 하이힐을 신고 있으니 그녀의 늘씬한 다리가 더욱 돋보였다.

그녀가 준혁의 옆자리로 와서는 앉았다.

" 고생 많았죠? 그리고 미안해요. 경기장에 못가서. 개막전이었는데. "

" 아냐 괜찮아. "

그녀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은 이렇게 해도 서운한 감이 조금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원하는 데로만 할 수는 없더란 것을 모를 나이는 아니었다.

경기 시작 시간이 오후 한시이니, 아무리 미국이 주 40시간 근무제라고 하더라도 시간을 빼기는 힘들 것이었다. 더군다나 예리엘은 그가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날에 맞추어 저녁을 해준다며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기 까지 했다. 그렇게 이해를 하면서도 조금... 아주 조금은 서운했었는데, 정말 그녀의 미안해하는 얼굴을 보자, 그냥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식사를 하면서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처음의 주제는 단연 야구 이야기였다.

세사람다 모두 야구를 좋아했고, 더군다나 준혁은 야구선수이기도 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사인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식사중이라며 양해를 구해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젠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 야구장에서 만났다면서요? "

" 응. 하루를 꼬박 사라지더니만, 야구장에 떡하니 와있더라고. "

예리엘의 질문에 준혁이 대답을 했다. 젠도 빙긋 웃어보였다.

" 후후. 뭐 그렇게 됐어. "

" 정말요? 호호.. 그래도 다행이네요. "

" 뭐가? "

" 준의 가족이 개막식을 보러 가줬으니까요. "

예리엘은 젠의 진정한 정체를 몰랐다. 그녀가 아는 젠은 개인투자회사의 오너였다.

회사의 일 때문에 충분히 하루정도는 집에 못들어 올수도 있다싶었다. 연락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못 들어온다고 직접 이야기도 했다.

그럼에도 준혁은 상당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예리엘의 눈에는 상당히 사이가 좋은 누나와 동생이구나 라고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 나도 저 사이에 끼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준혁과 자신은 연인 사이였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아무런 사이도 아닐 수도 있었다. 서로 감정이 상하면 언제라도 서로 돌아서는데 그 어떤 장해물도 없는 그런 사이였다.

한 달 만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이틀 전, 예리엘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준혁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말이다.

서로 책임지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 얼굴은 왜 그렇게 빨게? 더워? "

준혁의 말에 예리엘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화들짝 놀랐다.

" 아. 아녀요. "

" 아니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

준혁은 눈치 못 챘건 같았지만, 같은 여자인 젠에겐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 그녀를 보며 빙긋이 웃는 폼이 그랬다.

관심을 돌릴 것이 필요했다. 마침 그런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 참, 뉴스 봤어요? "

" 뭔데? "

" 무슨 뉴스? "

" 바로 옆에 뉴저지 주에요. 베로나 파크란 곳이 있는데, 어제 밤에 토네이도가 거길 덮쳤다고 하네요. "

" 정말? "

준혁은 놀랐다. 베로나 파크라면 작년 젠과 함께 갔었던 곳이었다.

" 네. 뉴스화면을 보는데, 아름다웠던 공원모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

예리엘의 표정에서 준혁은 피해를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토네이도는 그 크기만 수백km을 넘어가는 태풍에 비해 지속시간도 수 시간 정도로 짧고 크기도 수m에서 수km정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분명 전체적인 위력에서는 태풍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토네이도는 중심 풍속이 200m/s를 넘나들 정도로 세찬 바람의 위력이 국지적으로 집중되어졌다. 차도 들어 올리는 것이 토네이도이다 보니 영향을 주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적다고는 하지만, 지나간 자리는 쑥대밭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낸 예리엘이나 그것을 듣고 있는 준혁이나... 정작, 베로나 파크를 날려버린 토네이도의 원인 제공자가 그들의 앞에 앉아있는 젠이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에서의 토네이도는 이시기쯤이면 의례히 찾아오는, 한국의 봄철만 되면 사람들을 괴롭히는 황사와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예리엘이 본 뉴스에서도 역대급 최강의 토네이도라고만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왜 거기서 토네이도가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매년 봄철이면 토네이도는 항상 발생을 해왔으니까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