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 아시안게임 -- >
+이글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훈련은 벌써 4일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늘도 사직구장은 쉴 새 없이 파이팅 소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역대 최고의 강행군인데요? "
" 그러게 말이야. 작년 W B C 때에도 소집 초반에는 2시간, 많아야 3시간이었는데 말이야. 첫날부터 4시간이었지 아마? "
대표 팀의 훈련은 공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첫날부터 오늘까지 사직구장에는 취재를 하기 위해 온 기자들이 연일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기에도 훈련 량이 상당했다.
" 신경이 많이 쓰이는가 보네요. "
" 그럴 만도 하지. 최근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좋았잖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금메달까지 땄고 말이야. 덕분에 야구도 양궁처럼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까지 왔거든. 국민들의 기대치가 너무 커져버렸어. 아시안게임쯤이야 랄까? "
" 그렇군요. "
대화를 나누던 두 기자는 다시 훈련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펜에서는 김시진 투수코치가 투수들을 모아놓고는 맨투맨으로 구위를 점검하고 있었다.
대표 팀의 수비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류중일 코치는 쉴 새 없이 내야 와 외야로 펑고를 날렸다. 그러면서 투수들의 수비훈련도 빠짐없이 체크를 했다.
이건열 타격코치는 미진한 부분이 보이는 선수들에게 특타까지 지도하며 컨디션을 체크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 모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대표팀 소집 7일째가 되는 10월 31일 저녁.
훈련이 시작된 이후로 조범현 감독을 위시한 코칭스태프들은 매일저녁마다 회의실에 모여 그날에 있었던 훈련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될 예정이었다. 바로 내일 있을 첫 연습경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 드디어 내일 대표팀 소집후 첫 연습경기가 있습니다. 제가 감독으로 있는 기아의 1.5군과 예정이 잡혀있데요. 그래서, 오늘은 일주일간 선수들을 지켜보시면서 느끼셨던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서 앞으로의 훈련방향과 연습경기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봤으면 싶습니다.
이야기의 서두를 꺼낸 조범현 대표 팀 감독은 잠시 말을 끊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다음 대표 팀의 투수코치를 맞고 있는 넥센의 김시진감독을 보며 말을 이었다.
" 김시진 코치님, 투수들은 어떻습니까? "
" 네. 다들 훈련에 따라서 서서히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만, 현진이가 아직은 좀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두 달 가까이 쉬다보니 그런 듯 합니다만, 그 덕분에 오히려 체력적으로는 충분하고 국제대회 경험도 많은 선수니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싶습니다. "
류현진의 마지막 등판은 9월2일 삼성전이었다.
팔꿈치 피로 누적이란 진단이 나왔고, 아시안게임 대표 발탁이 유력시 되다보니 팀의 배려로 2달 가까이 쉬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코칭스태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워낙 국제대회 경험도 많은 선수라 모두들 김시진 코치의 이야기에 수긍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군요. 그럼 내일 선발은 계획했던 대로 현진이로 가는 건가요? "
조범현 감독이 다시 한 번 물었다.
" 네. 실전감각 회복과 컨디션 점검 차원이니까요. 현진이를 선발로 올리는 것은 다들 아시는 사실일 테고, 그다음으로는 석민이와 지만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성이를 올려볼까 생각중입니다.
대회 첫 경기가 대만과의 경기였다. 류현진은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던 순간 이미 첫 경기 선발로 내정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며칠간 훈련을 하면서 지켜본 결과 아직까지도 컨디션이 살아나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경기 당일에라도 폼이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만약의 경우에도 대비를 해야만 했다.
김시진 투수코치는 차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윤석민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두 번째로 올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 투구 수는 40개 내외정도로 던지게 할 생각입니다.
나머지 투수들도 무리시킬 생각은 없구요. "
" 경완이와 민호 둘 다 출전시켜 투수와의 호흡도 체크해봐야겠지요. 알겠습니다. "
조범현 감독 자신이 포수 출신이다 보니, 아무래도 배터리 간이 호흡문제가 떠올랐다.
류현진과 박경완은 지난해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호흡을 맞춰봤으니 첫 연습경기에 다시 맞춰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 타자들은 어떤가요? "
이번엔 이건열 타격코치에게 물었다.
" 전반적으로 컨디션은 잘 들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만 대호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휴식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몸이 아직은 덜 돼 있는데다가 오른쪽 발목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아직은 페이스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타격 밸런스와 타이밍은 너무 빨리 올라와도 문제가 되니 천천히 올릴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입니다.
" 그렇군요. 그럼 신수하고 준혁은 어떻습니까? "
대표 팀에서 단 둘뿐인 메이저리거 이다 보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 신수는 훈련 이삼일간은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페이스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연습 때부터 확실히 괜찮아 진 것이 보이더군요. 타격밸런스나 배팅스피드가 무척 좋아 보이는 것이 시즌중의 감각의 7∼80%정도는 찾은 것 같습니다. 오늘 타격하는 것을 보니 공을 좌우 자유자재로 쳐내더군요, 임팩트 때의 손목 힘도 좋아서 타구의 절반이 담장을 넘어갔습니다.
당연히 해줘야할 선수인 추신수의 컨디션이 무난하게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다들 반기는 눈치였다.
" 준혁은 글쎄요. 아직은 컨디션이 좀 더 올라와야하지 않을 가 싶습니다.
가볍게 타구를 보내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파워가 아직은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주던 모습만큼은 올라오지 못하고 있어 보이더군요. 준혁도 대호처럼 천천히 끌어올려볼 생각입니다. "
조범현 감독은 마지막으로 수비코치인 류중일 삼성 감독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포괄적인 것이 아닌 특정선수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 그렇군요. 그러면 류중일 코치님 준혁이 좌익수 수비는 좀 어떻던가요? "
"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조금 낯설어할때는 있습니다만, 좌익수 수비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크게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현재로써는 한 80%정도 올라왔다고 보면 될 듯싶습니다.
" 오늘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반가운 소식입니다. 외야 옵션을 늘릴 수 있겠군요. "
대표 팀에 뽑힌 외야수는 추신수와 이준혁 이용규 김현수 김강민 이렇게 총 5명이었다.
그중에서 추신수는 우익수 자리 고정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그의 수비위치는 우익수였다. 그리고 중견수 자리는 이준혁의 몫이었다.
우익수까지 보는 그였지만 추신수가 우익수 고정이다 보니 그도 자연스레 중견수 자리에 고정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자리는 좌익수 한자리. 그리고 선수는 3명이었다.
김현수는 본래 좌익수를 보던 선수였고, 이용규는 외야 전 포지션이 모두 가능한 선수였다. 우익수 자원인 김강민은 자연스레 백업요원으로 분류가 되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유일한 오른손 외야수인 그를 백업으로만 쓰기에는 솔직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팀과 상대투수에 따라서 오른손 타자는 선발요원으로 필요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추신수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준혁에게 우익수를 보게 하면 김강민에게 중견수자리가 돌아가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1루자원이자 클린업트리오 인 이대호와 김태균 중 한사람은 스타팅에서 빠져야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대호가 3루 수비가 가능하지만, 최정을 빼고 그를 그 자리에 세운다는 것도 넌센스였다. 대표 팀 선발 때부터 고심을 했던 문제였다. 하지만, 추신수와 이준혁은 뽑는다는 조범현 감독의 생각이 확고했기에 다른 해결책은 없는 듯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소집과 함께 있었던 선수 개별면담에서 해결될 실마리가 보인 것이었다.
바로 준혁이 좌익수 포지션도 소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의 말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마이너리그 때에 잠시 좌익수로 뛰어본 적이 있었고, 메이저에 올라와서는 한 번도 서본 적이 없는 포지션이었지만, 코칭스태프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준혁이 좌익수까지 맞아준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도의 결과는 좋은 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 말씀 들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는 내일 연습경기에 참여할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죠. "
연습경기로 화제를 돌린 조범현 감독이 조금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 솔직히 1번부터 고민입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전부 경중은 있을지언정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범현 감독의 말뜻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1번에 들어갈 선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선수가 많아서, 그래서 그만큼 결정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김시진 투수코치나 류중일 수비코치나 대표 팀에서는 코치의 역할을 맞고 있지만, 소속팀으로 돌아가면 한 팀의 감독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타선과 조 감독이 생각한 타선을 비교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김시진 코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우선 1번을 맞을 수 있는 선수는 좌타자로는 이준혁과 이용규, 우타자는 정근우가 있군요.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준혁이 맡아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메이저리그에서도 계속 1번을 쳐왔던 선수이고 출루율이나 도루능력도 탁월하니까 말이죠. "
그러자, 류중일 코치도 한마디 거들었다.
" 저도 동감입니다.
올해 기록을 보면 좌투수 우투수 타율 편차가 1푼 밖에 안 됩니다. 준혁이를 테이블 세터진에 둔다면 번트 등의 작전수행능력이 좋아야하는 2번보다는 1번이 확실히 나아 보이는군요. 그리고 솔직히 홈런 타자에게 번트 시키는 건 아깝지 않습니까? "
그의 말에 좌중은 가볍게 웃었다.
준혁은 메이저리그 랭킹 5위의 홈런 타자였다. 그가 1번을 치고 있는 것에는 마땅한 1번 타자 감이 없는 워싱턴의 사정도 한몫했다.
이런 타자의 아웃카운트를 번트와 맞바꾸는 것은 상대팀을 도와주는 격이 될 수도 있었다.
조범현 감독의 의견도 두 사람과 다르지 않아서 1번은 쉽게 결정이 났다.
물론 지금 결정하는 것은 내일 있을 연습시합용이었다. 이 타순이 그대로 실제의 경기까지 갈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경기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바뀔 여지는 있었다.
아무튼 1번이 준혁으로 결정이 나고 나자, 2번은 쉬웠다. 준혁이 좌타자이다 보니 우타자인 정근우가 2번으로 낙점이 되었다.
3-4-5번은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대표 팀 소집 전부터 추신수와 이대호 김태균으로 정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본래 3번을 치던 선수가 낫지 않겠냐는 의견에 추신수에게 3번 자리가 돌아갔다. 그리고 4번은 김태균, 5번은 이대호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이도 앞서 말했다시피 완전 결정은 아니었다.
상대팀의 상황과 선수의 당일 컨디션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는 있었다. 물론 그렇더라도 4번과 5번의 크린업트리오중 한명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 후 6번은 좌익수를 보는 김현수로, 7번은 3루수 최정, 8번은 선발 투수 류현진과 호흡을 맞춰봤던 박경완, 마지막 9번은 유격수 손시헌으로 의견을 모았다.
최대한 대만 전을 가상으로 생각하고 라인업을 짜봤다.
시즌을 마친 후 첫 실전연습인 만큼, 경기일정에 맞추어 등판 간격과 컨디션을 조절해야하는 투수가 아닌 야수들은 모두 경기에 참가 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범현 감독은 스타팅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들은 따로 모아서 연습상대인 기아1.5군에 포함을 시킬 생각까지 해두었다.
코칭스태프 또한 선수들이 흘리고 있는 땀방울만큼이나 밤을 잊어가며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이렇게 밤은 깊어갔고, 결전의 날도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