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 2010메이저리그 -- >
2010시즌 마지막 시합에서 워싱턴의 선발은 리반 에르난데스였다.
한때 양키스에서 빼어난 투구를 선보였던 올랜도 에르난데스의 동생인 35살의 이 노장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의 고무팔투수이기도 했다.1996년 데뷔 때부터 시작된 혹사로 메이저리그 데뷔 초반에 비해서는 구속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능구렁이 같은 투구로 타자들을 요리해내는 경륜을 가지고 있었다.
빠른공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빼어난 성적을 보여주지도 못했기에 주목을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길고 꾸준하게 선수생활을 이어왔고, 올해는 케리어하이시즌이었던 2003년도에 근접한 좋은 성적마저 보이고 있었다. 비록 허약한 워싱턴이란 팀의 소속이다 보니 승수보다 패가 많은 9승 12패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3.66의 방어율과 32경기에 등판 205이닝을 책임져주었다.
경기당 허용볼넷 개수도 2.7개로 준수한 편이었고, 피홈런도 경기당0.6개로 공의 위력이 아닌 타이밍과 맞춰 잡는 유형의 투수다웠다.
메츠의 첫 타자는 호세 레이예스였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빠른 발과 높은 출루율을 지닌 전형적인 리드오프 타자이면서 스위치히터였다. 올해의 타율은 0.282로 매년 2할 후반 대를 찍어주며 유격수로는 준수한 타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2005년에서 2007년까지 3년 연속 NL도루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고, 2009년 부상으로 36경기밖에 출전을 못한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도루시도를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30개 이상은 너끈히 해내고 있었다. 다만 본래도 뛰어난 편이 아니었던 수비가 더욱 나빠지면서 그의 평가를 깎아먹고 있었고, 09년도 부상이후 올해도 잔부상으로 130경기만 소화한 점이 우려를 자아내고 있었다. 리반이 오른손 투수인지라 왼쪽 타석에 들어선 레이예스는 2구만에 유격수 뜬공으로 아웃이 되고 말았다.
뻔히 보이는 리반의 공에 배를 힘차게 돌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후 리반 에르난데스는 헤수스 펠리시아노를 4구만에 3루수 파울플라이아웃, 데이빗 라이트를 3구만에 우익수플라이로 아웃시키며 공 9개만으로 이닝을 넘겼다.
1회부터 아주 경제적인 투수를 하는 모습이 오늘 시합도 기대가 되어졌다.
이후, 1회 말 워싱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첫 타자는 준혁이었다. 그는 호세 레이예스와는 달리 파워형 1번 타자로, 요즘 메이저리그의 대세인 장타력을 가진 1번 타자를 선호한다는 점에 딱 들어맞는 타자였다.
핸리 라미레즈, 그레디 사이즈모어, 알폰소 소리아노, 커티스 그랜더슨 등 실제로도 많은 팀에서 파워형 1번 타자가 활약하고 있었는데, 이들과 준혁이 같은 파워형 1번 타자이면서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범접할 수 없는 빠른 발까지 가졌다는 점이었다.
물론 알폰소 소리아노가 2006시즌 역사상 네 번째로 40-40클럽을 가입하며 빠른 발과 강한 파워를 동시에 선보이긴 했지만, 현재는 시즌도루가 10개도 채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현재로써는 비교할만한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준혁도 오늘 시합에서 40홈런에 도전하고 있었고, 만약 성공한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5번째 40-40클럽 가입을 뛰어넘어 최초의 40-90도 바라보고 있었다. [ 마이크 펠프리 선수도 올해 성적이 좋군요. 14승 8패 3.66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민성 캐스터가 오늘 준혁이 상대할 메츠의 선발투수를 소개했다. [ 네. 요한 산타나 선수가 9월에 시즌 아웃되면서 실질적인 팀 내 1선발을 지켜주고 있는 선수가 바로 마이크 펠프리 죠. 메츠가 2005년에 드래프트에서 대학최고의 투수로 평가받고 있던 그를 6순위에서 지명했는데요. 유망주시절에도 메츠에이스의 계보를 이을 선수라는 평가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메츠의 2차례 월드시리즈 우승 때마다 한결같이 메츠 태생의 슈퍼에이스가 등장했었으니 당연한 관심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7월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그 결실을 올해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 그리고, 당연히 송재익 해설위원의 해설이 따라 나왔는데, 설명도중 재미난 사실이 생각났는지 살짝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 이 선수 투구할 때 얼굴표정이 독특한데요. 잠시 후 보시면 아시겠지만, 투구할 때마다 마치 메롱하는것처럼 혀를 내밀고 던집니다.
[ 정말인가요? ][ 네. 경기시작하면 시청자 여러분도 유심히 한번 살펴보세요. 나름 재미 있으실 겁니다. ]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었다.
물론 이번엔 이민성 캐스터도 함께였다.
[ 그리고 이 선수는 신체조건도 아주 좋습니다.
201cm에 95kg인데다가 84년생으로 나이도 젊습니다. ]흔히 에이스의 필요조건을 말할 때 신체와 파워 두뇌 3가지를 꼽고는 한다.
에이스가 되려면 우선은 강력한 구위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 구위를 감당할 수 있는 신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구위와 신체를 활용할 수 있는 두뇌가 있어야한다. 이 3가지가 모두 충족되지 못하면 특급에이스는 요원해진다.
그런 점에서 펠프리는 필립 휴즈(뉴욕 양키스) 호머 베일리(신시내티 레즈)와 함께 특급에이스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닌 3인방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투수가 연습투구를 던지고 있을 때, 준혁은 준비타석에서 두어 번 방망이를 휘둘러보며 상대투수인 펠프리의 구질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펠프리는 97마일의 빠른 구속을 자랑하는 포심페스트볼과 92-95마일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구속과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는 투심페스트볼, 그리고 체인지업과 커브 슬라이더를 구사하는 투수였다. 그중 투심은 20-80스케일에서 70점을 받을 정도로 평가가 좋은데, 201cm의 큰 키의 덕까지 보면서 제구력도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좋은 페스트 볼을 받혀줄 브레이킹볼들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체인지업은 그나마 괜찮다는 평이었지만, 타자에게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아마추어시절 재미를 많이 봤던 커브는 빅리그의 타자들에게 통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슬라이더를 다듬고 있는 중이었는데, 들쑥날쑥한 제구력이 오늘의 시합에서는 어떨지가 궁금한 구질이었다.
역시나 초구는 기다리고 보는 준혁이었다.
그리고는 2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배트를 돌렸다.
--탁--' 큭'생각보다 공이 방망이의 아랫부분을 맞고 말았다.
좌타자를 상대로 각이 작은 빠른 컷패스트볼성격의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하더니 바로 그 공인듯 싶었다.
공은 힘없이 2루수를 향해 굴러갔고, 준혁의 첫타석은 아웃으로 끝이 났다.
이후, 뒤의 두 타자들도 상황은 준혁과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선발로 나선 모건은 깊숙한 외야플라이였지만, 미리 수비 위치를 뒤로 잡은 메츠 중견수 앙헬 파건에게 아웃, 오늘 시합에서 3번 타자로 나선 이안 데스몬드도 똑같이 중견수 플라이 아웃으로 이닝이 끝났다.
양팀 투수 모두 1회부터 시작이 좋았다. 워싱턴은 시즌 마지막 홈경기라는 상징성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을 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연승분위기까지 탄 상태였다. 그리고, 와일드카드가 걸린 메츠는 더 이상 질수 없다는 절박함이 선수들에게 있었다.
이런 분위기와 절박함은 투수라고 예외가 아니었고, 타자들보다 조금 더 강하다보니 그 결과가 1회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2회와 3회에도 계속되었다.
양 팀 모두 2회에는 삼자범퇴. 3회에는 워싱턴은 야수선택으로 메츠는 히트 바이 피치 볼로 1루를 밟은 것이 다였다. 4회들 어서는 양 팀 모두 하나의 안타를 때려냈고, 공교롭게도 모두 2루타였다. 하지만 후속타 불발로 점수가 나지 않은 것은 똑 같았다.
5회는 2회 때처럼 야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삼자범퇴. 투수혼자만이 아닌 팀으로 상대타자들을 상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양 팀이 보여주었다. 리반 에르난데스는 삼진를 하나 밖에 못 잡았지만 착실히 맞춰 잡는 피칭으로 메츠의 타자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마이크 펠프리는 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경기운영이 다른 두 투수였지만, 양팀의 타자들을 무실점으로 막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같았다. 그리고 맞이한 6회.
선취득점에 먼저 성공한 것은 메츠였다.
리반은 루벤 테하다와 투수인 펠프리를 모두 플라이 볼로 잘 잡아내며 이번 이닝도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6구만에 호세 레이예스에게 포볼을 허용하였고, 거기에 도루까지 허용 2루가 되었다.
그 후 또 다시 헤수스 펠리시아노의 2루타가 터져 나오며 결국 1실점을 하고 말았다. 이때의 리반의 투구 수는 95개. 결국 워싱턴의 불펜이 움직였고, 테일러 크리퍼드가 데이빗 라이트를 상대하기 위해 올라왔고, 초구를 건드려준 덕분에 유격수 땅볼로 더 이상 실점 없이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6회말. 펠프리도 8번 알베르토 곤잘레스와 9번 리반 에르난데스를 잡아내며 2사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1번 타자를 맞이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앞선 6회 초 리반의 상황과 흡사하기 까지 했다.
2사의 상황에서 모두 상대팀의 1번 타자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리반은 발 빠른 1번 타자를 포볼로 내보낸 후 도루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워싱턴의 준혁 리는 호세 레이예스의 전성기 때보다 발이 더 빠른 선수였다. 도루가 벌써 94개나 되었다.
포볼은 절대 금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팀의 호세와는 달리 준혁은 발도 빠르지만, 파워까지 갖춘 타자였다. 벌써 39개나 되는 홈런을 날리고 있는 NL랭킹 5위의 홈런 타자였다.
앞선 두 타석에서는 모두 범타로 물러났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타자가 준혁이었다. 정확하게 3할 9푼을 찍은 타자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슬라이더가 잘 먹히고 있으니까. '그가 오늘 호투를 할 수 있는 요인 중에는 슬라이더의 재구가 잘되고 있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종류의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우타자를 상대로는 속도는 느리지만 각이 큰 슬라이더를, 좌타자를 상대로는 85마일의 속도가 빠르면서 컷패스트볼처럼 살짝 꺾이는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시합에서 워싱턴의 좌타자들을 상대로 빠른 슬라이더가 재미를 보고 있었다.
' 이번에도!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펠프리의 선택은 이번에도 빠른 슬라이더였다. 앞선 두 타석에서 처럼 범타를 유도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슈우우우--그것은 바로.
--따악!
--평소보다 많은 105개나 되는 공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는 준혁에 대해 말하기를 최고의 파워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함까지 최고라고 한다.
더군다나 밀어치기에도 능해, 우타자가 치듯이 강하게 날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준혁의 실체를 모르기에 나온 말이다.
밀어 쳐서 나온 강한 타구들은 모두 슈퍼모드에 의한 것이었다. 준혁 본연의 힘으로 나온 강한 타구들은 전부 잡아당긴 타구였다.
어느 타자라도 제구가 잘된 몸 쪽 공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스윙이 조금 빠르면 파울이 되고, 반대로 늦으면 배트 중심을 비켜 맞고 만다.
게다가 바깥쪽 공까지 염두에 두어 둬야하니 포커스를 전력으로 맞출 수도 없다.
물론 게스히팅으로 몸 쪽을 노리고 있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노렸던 공이 들어오지 않으면 헛스윙으로 끝나기 십상이었다. 그러하기에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쓰기 힘든 방법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일반적인 보통의 타자가 아니었다. 가상스트라이크 존이 보이다보니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코스에 맞추어 스윙을 가져갈 수 있었고, 이번 타석에도 그랬다.
몸 쪽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준혁은 몸을 오픈시키면서 배팅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풀스윙으로 잡아당겼다.
바깥쪽 코스의 공은 완전히 배제한 철저하게 몸 쪽을 노린 스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