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 2010 메이저리그 -- >
자신은 공기 취급하고 스트라스버그만 찾던 꼬맹이.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물론... 꼬맹이보다는 그의 누나라던 레이디가 더 생각이 나긴 한다만...
' 그런데, 그 꼬맹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
사인을 대신 받아준다고 말했었기에 스트라스버그도 꼬마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꼬마가 누군지는 악 턱이 없다. 그런데 지금 스트라스버그의 말은 그 꼬맹이를 안다는 투였다.
준혁은 정색을 하며 급히 물었다.
" 너, 어떻게 그때 그 꼬맹이가 경기 보러 온다는 건지 아는 거야? "
" 어떻게 알았을까나? "
" 야! "
" 귀청 터지겠다. 어차피 3일후면 알게 될 일이잖아. 그러니까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자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까지야 말리진 않겠지만 말이야. 어! 감독님 나오신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같이 시선을 돌리니 진짜 감독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스트라스버그는 자리를 내빼버린다. 짐 리글리맨 감독이 손짓하며 부르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데, 못 가게 막을 수도 없다.
" 어떻게 된 게. 내 주변엔 죄다 이러냐.... "
그래봤자, 젠과 스트라스버그 단 2명이긴 하다만. 둘 다 서로 짠 건지 사람을 은근 고민되고 심란하게 하는 것에는 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램프의 요정과 스트라스버그가 서로 알고 있을 리야 만무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알긴 아는 걸까? 모든 이들에게 스트라스버그는 성실한 남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준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필요이상으로 진지해질 때는 있어도 헛소리를 할 인간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 어떻게 아는 거지? '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머리가 아파온다. 스트라스버그가 빅리그로 승격되어 준혁이 구장에서 그의 모습을 본 날은 홈 6연전 중 신시내티와 2번째 시합이 있던 날이었다. 첫 시합을 기분 좋게 이긴 워싱턴의 성적은 28승 29패로 올해도 NL동부지구 꼴지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작년과 달리 패수와 승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5할 승률에 근접해 있다는 정도였다.
올해의 워싱턴은 타자들의 성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NL동부지구 13개 팀 중 7위를 달리고 있었으니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투수진들이 번번이 팀의 승리에 발목을 잡은 덕에 올해도 예전과 같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늘 시합에서 워싱턴의 선발 루이스 아틸라노는 시원스럽게 2점을 내주며 경기를 시작했고, 워싱턴은 경기초반부터 리드를 당한 채 1회 말을 맞게 되었다. 6월 들어 워싱턴은 1번 타자로 준혁을 내세우고 있었다. 1번 타순은 그동안 크리스티안 구즈만이 도맡아 하던 자리였는데, 수비력을 비롯해서 여러 면에서 그 능력이 떨어지고 있었고, 타격은 쓸 만했지만, 똑딱이 타자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전형적인 '1툴 타자화' 되어가고 있었기에 팀에서도 변화를 꽤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1번 타순으로 최 전진 배치된 요 몇 번의 시합에서도 준혁은 코칭스태프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이번시합의 신시내티의 선발투수는 마이크 리크였다.2009년 6월 신시내티가 227만 달러에 1라운드 8픽에 뽑은 대학 재학 중이던 투수였는데, 마이너 등판 없이 메이저로 직행한 투수였다. 투수로는 95년 프레토 이후 오랜만에 메이저로 직행을 한 투수이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현재까지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88~92마일의 페스트 볼은 빠르지는 않았지만, 무브먼트가 좋았고, 쓰리쿼터 투구 폼에서 나오는 페스트볼과 같은 팔각도를 가진 체인지업을 포함한 5가지의 구질을 던 질수 있다 보니 선택지도 많았다. 게다가 미국 선수들이 의례 그러하듯이 대학에서 농구와 미식축구도 같이 병행하고 있었기에 수비력도 탁월했다. 그리고, 이런 매덕스급 수비력에 타격까지 좋은 선수였다. 그리고 실제 올해의 성적을 봐도, 앞선 10시합에 나와서 4승 무패 방어율은 2.45 피홈런은 4개를 맞고 있었는데 여태껏 원정에서는 단 한 개도 맞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73이닝을 던지면서 삼진은 45개 포볼은 25개를 내어주며 컨트롤도 수준급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 공은 빠르지 않지만, 좋은 컨트롤과 지저분한 무브먼트로 땅볼을 유도하는 유형이란 말이지? '
준혁은 타석에 들어서며 오늘 신시내티의 선발인 마이크 리크의 투구에 대한 정리를 마쳤다. 이렇게 준혁이 타석에서 자세를 잡고 서자, 신시내티의 포수 라몬 에르난데스는 준혁을 힐끔 쳐다봤다.
' 폼만 봐서는 그다지 대단해 보이진 않은데 말이야.'
체격도 다른 강타자들에 비해서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크게 빠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183cm의 키라면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였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신장인 187.2cm 체중 94.3에 같이 비교를 하다 보니 조금의 모자람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나름 평범하게만(?)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동양에서 온 타자에게 그동안 당한 투수들이 한둘이 아니다보니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 그러고 보니 둘 다 올해 빅리그가 첫해인 신인들이군. '
한쪽은 곧바로 승격 한쪽은 5년간 구르다 올라온 것이라 똑같을 수는 없지만, 둘다 메이저리그 첫해란 사실은 변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 누가 더 잘 적응해서 끝까지 살아남을지는 신만 아는 일이지 않을까? 포수와 투수에게 있어서 어느 타자를 상대하건 초구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준혁에겐 더더욱 신경을 써서 넣어야한다. 분명 그의 기록은 초구에 방망이가 잘 나가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신시태티의 포수 에르난데스를 포함한 각팀의 포수들은 알게 되었다.
손쉽게 스트라이크 잡겠다고 던졌다가 낭패 본 배터리가 한둘이 아니다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었다.
' 저 어설픈 타격 폼에 현혹되면 안 되는 거다. 역시 초구부터 까다롭게 가야하나? '
투수에 따라서 경중은 있겠지만, 투수들은 1회 시작할 때가 가장 어렵다. 그중에는 커맨드를 잡는 것도 포함이 된다. 초구정도는 영점을 잡기위해 조금은 쉽게 갔으면 싶지만, 오늘 상대하는 타자가 타자이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에르난데스는 조금은 까다로운 코스를 투수 마이크 리크에게 주문하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 제발 시작이 좋기를. '
하지만 곧 흠칫하고 만다.
마이크 리크가 던진 공이 가운데로 몰려 버린 것이었다.
' 이런! 제발 그냥 ! '
하지만, 이런 공을 놓칠 준혁이 아니었다. 1회 말 투수가 던지는 첫 공인데다가 카운트를 잡기 위한 페스트볼이 가운데로 몰려 들어오는 것이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에 뻔 하게 보이는데, 놓칠 수가 없는 공이었다.
--따악~!!
--
87마일의 적당한 코스에 정직한 페스트볼, 게다가 첫 공이라서 마이크 리크 특유의 지저분함도 없었다. 그러니, 힘껏 돌린 준혁의 방망이에 걸린 야구공은 빠른 속도로 외야를 향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준혁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로또 슈퍼모드에 의한 강타자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파워가 약한 타자라고 하지만, 적당한 높이 적당한 속도 그리고 하나도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한 속구를 힘껏 잡아당겨도 펜스도 못 넘길 정도의 약골은 아니었다.
--터엉~!!
--
그리고, 준혁은 그것을 1회 말 선두타자 초구홈런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아자! "
준혁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는 베이스를 돌았다. 오랜만에 자신의 순수한 파워만으로 쳐낸 홈런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기뻤고, 그러다 보니 그 표정이 여실히 얼굴에 들어났다.
생각 같아서는 조금 더 리액션을 취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괜히 상태투수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싶었다. 게다가 지금은 타자이지만, 본래 준혁도 투수출신이다보니 상대투수의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강하게 리액션을 취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다는 것도 한몫했다.
" 와아아아아~~"
" 리. 리! 리!! "
그리고, 결정적으로 리액션을 안취하더라도, 이렇게 홈 관중들로부터 커튼콜을 받는데, 무어가 아쉬우랴.
준혁은 샤프하게 헬멧을 벗어 들고는 감사를 전했다.
덕아웃으로 다시 들어가자, 스트라스버그가 이온음료를 건네준다.
" 오~. 서비스 좋은데? 웬일? "
" 미리 뇌물 먹이는 거지. 내가 던질 때도 부탁 좀 하자고. "
" 그래? 그럼 이걸로 는 약한데 말이야. 좀 더 써보는건 어때? "
" 그래! 좋아. 대인배 인 내가 굴하게 쏜다. 그날 네가 날 잘 도와주면 내가 저녁을 사도록 하지. 어때? "
" 오~? 정말? 이번엔 공짜 저녁 얻어 먹어보는 거야? "
" 그래. 그러니까 부탁한 거다."
" 염려 붙들어 매셔. 절대로 공짜 밥을 위해라도 반드시 보여줄 테니까. "
스트라스버그는 준혁의 말을 들으며 아직도 공짜 타령인가 싶었다. 마이너 때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제는 매일 1500달러정도는 받고 있을 터인데... 물론 메이저 최저연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짜 밥에 목메 달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러다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그것은 스프링캠프 때의 준혁과 자신이 했던 저녁밥 내기 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가장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 결국은 승부욕인건가? "
" 뭐라고? "
혼잣말이었는데, 용케도 준혁이 들었나보다. 그래도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는 듯 하니, 스트라스버그는 그냥 얼버무린다. 또 내기하자고 하면 골치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아냐. 잘 좀 부탁한다고. "
" 자식. 걱정마라니까. 나는 한번 한 약속은 절대 지키니까. "
준혁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믿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1회초 먼저 2점을 실점하긴 했지만, 1회말 곧바로 터진 준혁의 선두타자 홈런으로 경기의 향방은 또 다시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모르는채, 새로운 이닝이 시작되고 있었다.